산불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재난이다. 연평균 481건의 산불이 발생해 1,087ha 이상의 산림을 불사른다. 하루 1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지만, 산불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은 태풍과 지진 같은 다른 대형 재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대체로 산불의 발생과 진화가 이뤄지는 공간이 일반 주거지와는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산불이 달라지고 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더 자주 발생한다. 한번 몸집을 키운 산불은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빨리, 더 강하게 확산된다. 이른바 산불의 연중화, 대형화 현상이다. 이 변화의 이면에는 기후 위기가 있다. 이상 기후로 발생한 고온과 가뭄 현상이 산림의 수분을 빼앗아 산림 전체를 '거대한 땔감'으로 만들고 있다.
화마의 공포는 산림 주변에 사는 주민들을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주요 국가 기반 시설, 에너지 시설들은 겹겹의 숲 뒤에 있다. 산불은 이 시설들의 담장에서 넘실거리며 우리가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하루 전인 3월 4일, 경북 울진군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그 경고였다. 전례 없는 속도로 확산돼 열흘 동안 불타며 2만 ha의 산림을 태웠다. 불길 속 원자력발전소와 송전탑은 주민 피해를 감수하는 진화 총력전을 펼치고서야 구할 수 있었다. 이 산불의 진화 책임자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하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을 끌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전문가들은 울진 산불의 전과 후는 반드시 달라야 한다고 경고한다.
달라진 산불과 그에 맞서며 얻은 교훈, 그리고 이러한 변화 앞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 우리는 2022년 3월 4일 울진군 현장으로 돌아가 언젠가 돌아올 화마에 맞설 수 있는 단서를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