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라는 주홍글씨 - 공익제보자 이야기
2017년 11월 08일 13시 14분
지난 11월, 경기도 이천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장애인 간의 성폭력 사건이 방치되고 시설 책임자 등이 장애인의 금전을 갈취했다는 내용의 진정이 국가인권위원회로 접수됐다. 인권위는 조사 후 진정 내용이 사실이라며 관할 시에 행정처분을 권고했고, 책임자 등을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자 시설 측이 인권위에 진정한 사람을 색출하겠다고 나섰다. 인권위 진정 이전부터 문제제기를 해오던 김모 씨(가명)가 가장 먼저 의심을 받았다. 시설 측은 진상조사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김 씨에게 제보자인지를 집요하게 물었다. 시설 내부 문제를 외부에 알려 자신들의 이미지가 망가졌다며 질타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시설 측은 수시로 김 씨에게 시말서 작성을 요구했고, 지난해 12월부터는 사무직이던 김 씨를 스테이플러 심을 포장하는 단순 업무에 배치시켰다.
하루종일 스테이플러 심만 포장하는 거예요. 안에 있으면 무슨 독방에 있는 느낌이 들죠. 아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여기 다녀야 되나? 계속 자존감이 떨어지고... 퇴사하고 나가는 걸 기다리는 거예요.
이 스테이플러실은 시설 내에서는 일종의 유배지 같은 곳으로, 같은 시설에서 직업훈련교사로 근무하던 이모 씨(가명) 역시 시설 내 문제들을 지적하다 스테이플러 심 포장 업무로 쫓겨났다. 책임자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공공연하게 ‘이 씨가 일을 그만뒀으면 좋겠다. 안 나가겠다고 한다면 일을 다 뺏겠다’고 말했다. 이 씨는 결국, 지난해 11월 시설을 그만둬야 했다.
김 씨도 계속되는 시설 측의 압박에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김 씨는 인권위에 진정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김 씨가 관련 내용을 진술한 사실을 시설 측이 알아냈다. 시설 측은 이번에는 이를 이유로 징계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월 30일, 김 씨는 인사위원회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인권위에 진술을 해서 기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를 알게된 경기도 장애인인권센터가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 소지를 들어 징계 중단을 요구하자 시설 측은 이번에는 이유에서 인권위 진술 부분만 뺀 채 업무 태만이나 풍기 문란 등을 이유로 징계를 추진했다. 인사위 전 날 밤, 인권위가 긴급구제를 결정한 후에야 징계 절차는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시설 측은 인사위원회를 미룬 것일 뿐 언제든 다시 징계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씨에 대한 징계가 인권위 진술에 대한 보복성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보복성은 절대 아니고, 인사위 출석 요구는 시설의 복무규정에 의해서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경기도 소재 장애인시설에서 근무하던 박모 씨(가명). 지난 2016년 8월, 시설 안에서 장애인 학대로 의심되는 정황을 발견하고 동영상으로 촬영해 신고했다. 이후 감봉과 정직 등의 징계가 이어졌고, 공익신고 내용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이 나자 ‘허위사실을 신고해서 조직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해고 당했다.
국민권익위원회와 노동위원회가 공익신고자 보호를 위한 조사에 나서자 시설 측은 박 씨를 복직시켰지만, 수시로 경위서를 쓰게 하는 등 불이익을 이어갔다. 박 씨는 결국 지난해 8월, 스스로 일을 그만뒀다.
이렇게 공익신고 후 제보자로 지목되거나 관련 조사에 응했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익신고자에 대한 색출과 불이익 조치가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박광우 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2과 과장은 “일반적으로 시설들이 지능적으로 제보자를 색출하지 노골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긴급구제 등) 인권위 결정은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사유를 서면으로 제출하게 하고 징벌적 차원에서 공표하는 정도를 인권위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나 권익위가 보호 조치를 취해도 일시적으로 따르는 척 하다 다시 징계를 시도하는 경우도 많다. 정은수 국민권익위원회 공익심사정책과 주무관은 A 시설과 같은 지속적 징계 시도에 대해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계속 있다. 권익위의 조치 이후에도 징계를 하거나 괴롭히거나 감찰을 하거나 할 수 있기 때문에, 보호조치 이후 2년 동안 조치가 잘 이행되고 있는지 추가적인 보복은 없었는지 올해부터 모니터링을 도입해서 시행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권익위가 공익제보와 관련한 연구자와 교수 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79%가 현행 공익신고 보호제도가 허술하다고 답했다. 개선이 시급한 사항으로는 ‘신고자에 대한 비밀보장'(54.8%)과 ‘불이익조치로부터 보호(29%) 등을 꼽았고, 우선 도입해야 할 대책에서도 ‘익명/대리 신고’(43.5%)와 ‘국민권익위원회 권한 강화’ (32.3%) 순으로 꼽았다. 결국 공익신고자의 신분 노출과 불이익 문제 해결이 공익신고자를 보호하는 데 가장 시급한 대책인 것이다.
취재: 박경현
촬영: 신영철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삽화: Adul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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