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글로벌탐사저널리즘네트워크(GIJN)과 함께 전 세계 저명 저널리스트의 탐사보도 노하우와 취재 팁을 우리 말로 번역해 공개합니다. 비영리 탐사보도 기관인 뉴스타파와 GIJN이 공동 진행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탐사저널리즘의 저변 확대를 위해 기획됐습니다. - 편집자 주
어떠한 공격도 뚫고 들어올 수 없을 정도의 탄탄한 기사를 작성하는 일은 단순히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엄격한 기사 품질 관리 시스템을 통과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처음부터 꼼꼼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미션 인베스티게이트’(MI)는 다국적 뇌물범죄부터 조직범죄, 가톨릭교회와 국제연합(UN)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 기사를 보도하며 다수의 국제보도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MI 팀은 오보를 피하는 방법, 그리고 '보도 후 보도국 밖'이 아니라 '보도 전 내부에서' 기사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방법을 배우게 됐습니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3가지 체크포인트(Checkpoints)
출처: Unsplash / Canva
왜 체크포인트가 필요할까요? 불필요한 요식행위로 보일 수도 있지만, 과정을 체계화하지 않으면 기사 작성 시 필수적인 과정을 미이행한 채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확률이 높습니다. 그에 따른 리스크를 감안할 때, 노력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1시간 짜리 회의 두 차례와 하루 한 번의 팩트체크 회의. 아무리 소규모의 뉴스룸, 탐사보도 기자 또는 프리랜서 기자일지라도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은 핑계 삼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보도 시간이 다가올수록 들인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체크포인트 1: 기획 회의
기사 주제에 대한 사전 조사가 끝나면, 기자는 “기사의 중심이 되는 가설(해당 사안에 대한 취재가 필요한 이유와 이에 대한 논리)이 견고한가?” “가설에 반대되는 요소는 무엇인가?” 등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해당 취재에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는 기획 회의에서 다뤄야 하는 핵심 질문입니다.
기자들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측면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때문에 반대 의견을 가진 견제자(counterweight)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은 에디터나 기꺼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동료 기자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악마의 대변인’은 견제자 역할을 하기에 전에 잘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기사의 품질관리 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악마의 대변인 역할에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가설을 뒤집고 뒤트는 작업이 수반되며, 흔히 취재 대상의 관점에서 가설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렇게 비판적 질문을 던지는 과정은 때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비판 뒤에는 최선의 의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회의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이 알고 있습니다.
책임성(Accountability)은 기획 회의 체크리스트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항목입니다. 이 회의에서 일반적으로 취재 대상에게 접촉할 시기와 방법을 계획하게 됩니다. 필자가 일하는 MI팀은 이 작업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 접촉하도록 계획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취재 속도를 낼 수 있을뿐만 아니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언론 자유도가 낮은 억압적인 정치 환경의 국가에서는 접촉을 보도 직전까지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체크포인트 2: 중간 점검 회의
중간 점검 회의는 최소한 초안이 준비된 상태에서 진행되며, 기사 품질 논의를 목적으로 합니다. 아직은 기사 내용을 변경할 시간이 충분합니다.
중간 점검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결론: 가설이 입증되었는가? 가설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가? 어떤 식으로든 취재 결과에 의문이 제기되거나 반증될 수 있는가? 다른 모든 해명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가?
책임성: 최대한의 공정성을 유지했는가? 애초에 기자가 제기하고자 한 의혹이 풀리고 있지는 않은가?
전체 맥락: 누락된 사항이나 맥락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가? 사안을 지나치게 흑백논리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는가?
‘진실한 사실’만을 보도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기자들은 자신의 기사를 확인해 주는 정보에 집중하고 반대되는 사실은 무시하는 확증 편향을 보이곤 합니다. 이는 기사에 결정적인 사실을 빠뜨리거나 취재를 그릇된 방향으로 가져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기사에 어떤 팩트를 넣을지 선택함에 있어 통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기자 본인밖에 없습니다. 기자는 다음의 질문에 정직하게 답변해야 합니다.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도 이 내용을 자신에게 반복해 질문해야 합니다.
현재 빠져 있는 팩트 때문에 기사가 전반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가?
우리가 빠뜨린 부분을 대중이 알게 되면 실망할 것인가?
독자의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도 특정 팩트를 빠뜨리기로 한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다음의 두 항목을 추가로 확인해야 합니다.
출처: 출처를 신뢰할 수 있는가? 적절한 비판적 질문을 하고 있는가? 필요한 배경 조사를 완료했는가?
전문가: 관련 분야에 대표성이 있는 전문가인가? 신뢰할 만한 현직 전문가인지 확인했는가?
기자와 취재 대상자는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확한 사실만 보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체크포인트 3: 팩트체크
본격적인 문장 단위 팩트체크에 앞서, 취재 대상자에게서 받은 해명 자료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보통 취재 대상자는 기자를 포함한 다른 누구보다 문제의 사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지 않은 소식을 보도할 때도 기자와 취재 대상자는 적어도 한 가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바로 ‘정확한 사실만이 보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취재 주제와 관련된 인물들이 인터뷰를 거부하더라도, 그들을 접촉하면 사실관계에 대한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기자는 취재 대상에게 자신이 제기하는 의혹에 대한 상세 정보를 제공하는 개방성을 보여야 합니다. 기사에 어떤 표현이 사용될지를 미리 고지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보원이나 출처가 드러날 수 있는 세부 정보는 절대로 공개해서는 안 됩니다.
사안에 대한 ‘진짜 전문가’인 취재 대상자에게 사실 확인을 할 수 있다는 점 외에 다른 장점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설명이나 해명을 검증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기사의 허점을 메울 수 있는 새로운 정보를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보도 후가 아닌 보도 전에 취재 대상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물론 이러한 투명한 방법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폭력 단체나 권위주의 정부를 상대하려면 다른 접근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GIJN 기사 <Tips for the No Surprises Letter> 참조) 그러나 위험 인물을 취재한다고 해서 정확성과 공정성에 주의를 덜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문장별 팩트체크 작업을 시작해 봅시다.
원칙은 단순합니다. 기사에서 확인 가능한 모든 정보의 출처를 추적해야 합니다. 문장별 팩트체크는 보도 전에 충분한 리드타임(상품 생산 시작부터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을 두고 이루어져야 하며 ‘악마의 대변인’이 전체 과정을 이끌어야 합니다.
보다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 리서치했던 자료를 준비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방송 원고 각 페이지나 기사의 각 섹션 마지막에 출처 링크를 각주로 달면 출처 추적 작업이 더 쉬워집니다.
팩트체크는 완벽한 집중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온종일 집중력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더 핵심적이고 까다로운 문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기사에는 언제나 의문을 제기할 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먼저 집중해 해결한 뒤, 세부 사항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모든 결론에 근거가 있는지’를 반드시 물어보고 넘어가야 합니다. 대답에 따라 결론의 어조가 더 날카로롭게 하거나 더 부드럽게 바꿀 수 있습니다.
내용이 복잡한 기사인 경우, 기자는 참석자들에게 리서치한 자료를 배부해야 합니다. 이후 어떻게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준 후 팩트체크를 시작해야 합니다. 현장에서는 때로 이 과정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방대한 데이터세트나 재무 보고서 같은 복잡한 문서에 기초해서 기사를 작성된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본격적인 뉴스룸 내 팩트체크에 앞서 해당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문장 단위로 사전 팩트체크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재능 기부를 기꺼이 해줄 외부 전문가에게 사실 관계의 재확인 및 취재 방법론 검토를 받을 수 있겠습니다.
출처: Unsplash/wocintechchat
이 외에도 기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사 내용이 공정하고 반론을 다루고 있는가?
모든 의혹에 대한 반론, 그 중에서도 관련성이 가장 높은 내용으로 다루고 있는가? 인터뷰 녹취록 전체를 확인해야 할 수도 있다.
취재 대상에 대한 모든 부정적인 세부 사항을 꼭 기사에 담겨야 하는가? 애초에 제기하고자 했던 의혹이 설명됐다면 이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임하고 있는가?
문장 단위의 데스킹 과정에서는 겉보기에 무해해 보이는 부분까지 모든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소한 실수 하나도 기자의 신뢰성을 훼손하자 하는 무리에 이용될 수 있습니다. “사실인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취재 기자의 말 한마디로는 예외를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름, 직위, 날짜, 숫자 및 그밖에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번 더 확인해야 합니다. 인용문도 예외는 아닙니다. 인터뷰 대상자가 틀리게 말한 사실 관계가 있다면 기자는 이 부분을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10가지 팩트체크 팁
원본 문서를 사용하라: 원본 문서를 입수할 수 있다면 다른 문서는 배제해야 한다.
인용 전에 확인: 아무리 신빙성이 있어 보여도 다른 매체가 보도한 사실에 의존하지 않는다.
정확한 숫자 사용: 숫자를 과장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12명이 영향을 받았다면 ‘많은’이란 모호한 표현 대신 정확한 숫자를 보도해야 한다.
피해자와 거리두기: 피해자에 대한 신뢰가 아무리 높아도 피해자의 주장을 확인하기 이전에는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라는 말은 확인이 어렵지만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는‘사실’이 된다.
입증하기 어려운 가치 판단 피하기: 과도하게 내린 결론은 불필요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업주는 안전 규정을 무시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면, 의도적으로 규정을 무시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반면, “사업주는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라는 표현은 사실을 전달하고 있다.
한계는 투명하게 공개한다: 모르는 부분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증명할 수 없는 부분을 기사에 넣고 싶은 유혹을 조심해야 한다. 모르는 점을 투명하게 공개할 때, 기자의 신뢰성이 높아진다.
개인 식별정보는 생략한다: 그래픽, 사진과 영상 자료에서 문서에 기재된 이름과 기타 정보, 자동차 번호판, 도로명, 우편함에 적힌 이름 같은 불필요한 개인정보는 제거한다.
프레임별 분석을 수행한다: 취재 시 입수한 사진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기사나 본문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진에 대한 사실 확인 작업이 간과되는 경우가 있다. 구글 이미지, 페이스북 등 여러 플랫폼을 사용하면 손쉽게, 때로는 너무 쉽게 사진을 검색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역추적 검색 및 다른 도구도 활용해 이미지 원본을 확인하라. (GIJN 관련 기사 Four Quick Ways to Verify Images 참조)
제작 마무리 단계에서 자체 점검을 해본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남아 있는가? 의심스러운 곳이 있는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의견을 나눠보자.
수정 사항이 반영되었는지 확인한다: 맞춤법, 사람 이름 등 모든 수정 사항이 그래픽과 기사의 다른 부분에 적용되었는지 확인한다. 이를 위해서 추적 검토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팩트체크 과정에서 부득이한 취재상 실수가 드러나 기사는 물론이고 탐사보도 기자로서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과정 없이 기사가 나갔을 경우 취재 대상에게 부당한 피해를 끼쳤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문장 단위 팩트체크 작업을 통해서 기자는 즉각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밤 중에 사실 관계 오류가 떠올라 식은땀을 흘리며 깨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틀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