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20대, 소위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이들에 대한 선배 세대들의 충고는 잊을만하면 언론을 통해 소개 되고, 소개가 될 때마다 이런 저런 논란에 휩싸이곤 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충고를 하는 이들이 단지 장 노년층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장 노년층은 물론 386세대, 그리고 소위 x세대라 불리는 298세대 모두 한 마디씩 거든다.
그러다 보니 충고의 내용도 크게 세 가지로 분류가 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최근 개봉한 국제시장의 주인공과 같은 세대인 장 노년층들의 경우 오직 정규직 일자리만 바라는 20대의 태도에 특히 문제를 제기한다. 중소기업 혹은 3D 업종엔 일자리가 많이 남아도는데도 불구하고 20대가 편한 일자리만 바라기 때문에 취업을 못한다는 게 이들 세대의 주요 의견이다. 더불어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같은 일도 결코 ‘부당한 대우’가 아니라 인생에 있어 ‘좋은 경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386세대는 부당함에 저항하지 않는 20대에 불만이 많다. 아무리 일자리를 얻기가 어렵더라도 부조리와 불합리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순응하는 요즘의 20대는 그들이 보기에 나약하거나 혹은 이기적으로 비친다. 무엇보다 그러한 부당함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단순히 자기 일자리만 지켜서는 안되고 그러한 부당함을 강요하는 ‘사회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게 이들 주장의 요지다.
마지막으로 90년대 초중반, IMF 외환위기 이전에 대학을 다녔던 298세대는 뭔가 늘 주눅들어 있고 눈치를 보고 열심히 적응하려 애쓰는 20대가 불만스럽다. 열심히 일하든 부당함에 저항하든 아니면 다른 뭘 하든 간에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는데 요즘의 20대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다른 내용의 충고들이지만 이들 세대 모두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태도가 있다. 자신들이 20대에 경험했던 것을 기준으로 현재의 20대를 판단하고 규정한다는 점이다. 현재 20대가 경험하고 있는 것들, 그리고 현재의 20대에게 주어진 현실에 근거해서 판단하지 않는다.
더불어 중요한 또 하나의 공통점은 각 세대 나름대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고, 그 희망은 적어도 내일이 오늘보다 나으리란 ‘낙관’ 속에 놓여져 있었다는 점이다. 장노년층에겐 ‘경제성장’을 통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리란 희망이 있었고, 386세대에겐 ‘민주화’를 통해 ‘독재’로부터 벗어나리란 희망이 있었고,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과실 모두를 영위한 298세대에겐 그러한 구조적 문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을 추구하는, 서구 유럽의 선진국 같은 미래가 찾아올 것이란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20대가 경험하는 현실이란 어떤가? 위 세대의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저성장’이란 환경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해 경제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더 나은 내일’은커녕 ‘오늘보다 나쁘지만 않은’ 내일을 바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단순히 지금 현재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임금이 낮고의 문제만이 아니라 심지어 앞으로는 상황이 더 나빠질 거라는 불안감, 바로 그러한 불안감 속에서 20대를 맞이한 ‘첫 세대’인 셈이다.
고속성장 속에서 20대를 보냈던 대부분의 선배세대는 적어도 20대에 이처럼 ‘불안한 미래’ 속에서 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기 나름대로 무언가를 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고, 실제로 각 세대 나름의 무언가를 이뤄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부분이 각 세대가 지니는 ‘자부심’이자 ‘자존감’으로 형성이 됐다.
반면 현재의 20대에겐 그러한 ‘자존감’이 허락되지 않는다. 자기 세대 나름의 새로운 무언가를 이뤄내기는커녕 선배세대가 기존에 만들어 놓은 구조에 ‘편입’되기 위해, 그 구조로부터 미끄러져 추락하지 않기 위해 바둥거리는 데, 그 모습 어디에서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여지가 생길 수 있겠는가? 수동적이고 회피적인 삶은 오히려 자존감을 깎아 먹기 마련이다.
그런 그들에게 선배세대가 쥐어주는 건 두 가지. 하나는 자기계발서고 다른 하나는 소위 ‘힐링’ 도서다. 자기계발서엔 당연히 자기 세대가 어떻게 성공했는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 20대가 놓여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결코 아니다. 그렇게 충고하는 것이 미안했는지, 혹은 충고해줘봤자 어차피 지금의 현실에서 20대가 따라할 수 없는 걸 알았는지 다른 한 켠으론 힐링 도서를 내민다. 그러면 두 권의 책을 쥔 20대는 마치 냉온탕을 오가듯 자기계발서와 힐링 도서 사이에서 ‘가상의 희망’이란 걸 잠시나마 쥐어 보게 된다. 물론 그 희망은 진짜가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 이런 걸 속된 말로 ‘꼰대질’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꼰대는 꼭 나이가 많아야 하는 건 아니다. 정치성향과 이념성향이 특정한 쪽에만 꼰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 하루 버텨내기 어려운 20대 들에게 선배가 되어줄 자신이 없으면 꼰대질은 하지 않는 게, 현재 20대가 겪는 불안감 가득한 세상을 만든 선배 세대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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