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선포 직후 발표된 포고령 1호는 모든 언론과 출판이 계엄사령부의 통제를 받도록 했다. 이를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하고 계엄법에 따라 처단한다고 했다. 실제 윤석열은 비상계엄 발표 3시간 전 조지호 전 경찰청장을 안가로 불러 MBC 등 언론사를 장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같은 포고령은 비상계엄 상황에서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한 계엄법 제9조에 따른 것이다.
만약 12.3 내란이 성공했다면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는 어떤 상황에 놓였을까. 뉴스타파는 군 합동참모본부가 계엄 상황을 대비해 만든 2023 계엄실무편람을 통해 언론의 자유가 어떻게 침해될 수 있는지 살펴봤다.
계엄실무편람은 군 합동참모본부 계엄과가 계엄 상황에 대비해 만든 일종의 지침서다. 계엄실무편람 서문에는 '계엄 업무 관계관들에게 계엄의 개념과 계엄법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자 작성됐다'고 기술돼 있다. 또 계엄을 담당하는 각 기구의 임무와 역할 등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총 300여 페이지로 구성돼 있으며, 합참 정보공개 운영 규정상 대외비에 준해 관리하는 비공개 자료다.
12.3 내란이 성공했다면, 전 국민이 검열 대상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이 선포 후 계엄사령부에는 비서실과 기획조정실, 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 등 2실 8처의 부서가 조직된다.
이 가운데 보도처는 계엄사령부의 대변인 업무를 맡으면서 '보도 검열단'을 편성·운영하고 보도 일원화를 위한 통제 및 감독, 대국민 홍보 활동을 관장한다.
이를 위해 보도 검열단은 신문반, 방송반, 통신반, 외신반, 출판반, 공연반, 전시물반, 음반류반, 사이버 검색/대응반을 하부 조직으로 구성된다. 보도 검열단 인원은 현역 군인과 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의 검열 및 감시 대상은 언론사에 국한하지 않는다. 계엄실무편람은 영화 대본과 노래 가사, 공연 대본 등은 사전 검열 대상이고, 인터넷 포털의 카페와 블로그에 올린 글은 사후 감시 대상이라고 적시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현재 이름 'X')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그리고 유튜브 같은 개인 인터넷방송 역시 사후 감시 대상이다. 보도 검열단 내 공연반과 음반류반, 사이버검색/대응반이 이 같은 업무를 맡게 된다. 사실상 전 국민이 검열 또는 감시대상인 것이다.
언론사의 경우 더 혹독한 검열을 당한다. 계엄실무편람에는 보도 검열 시 유의할 사항을 9가지로 정리했다. 이 가운데 몇 개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기사 속에는 특이한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검열을 실시해야 한다.
삭제할 내용은 예상하지 못한 구석진 곳에 있다는 생각으로 확인한다.
문화 및 스포츠면 등 보도 검열단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에 기사를 포함하여 보도하는 경우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기사 마감시간 및 심야 취약시간을 이용해 기자가 조속히 검열해 줄 것을 재촉해도 여유를 가지고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민간인 보도 검열관에 대해 기자들이 집단으로 항의하고 어필할 때에는 현역 검열관으로 교체 후 직접 검열을 실시할 수 있다.
보도 검열 지침은 두 가지, '보도 금지' 또는 '확대 보도'
계엄실무편람은 보도 금지 사항과 확대 보도할 사항으로 구분해 보도 검열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도 지침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은 일부 또는 전부를 삭제하거나 내용 수정을 지시하도록 했다. 이를 위반한 매체는 취재를 제한하고, 지속적으로 위반할 경우 계엄 포고령 위반자로 처벌한다. 이 경우 포고령 1호에 따라 영장 없이 체포 및 구금할 수 있다.
계엄실무편람은 보도 금지 사항으로 36개 세부 항목을 나열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정부 정책을 비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게 정당한 비판이고, 어떤 게 비난인지는 전적으로 보도 검열단의 손에 달렸다.
또 군수 물자 부정 유출과 유통 등 군용물 관련 범죄 행위나 지휘관의 무능, 작전 실패 등도 보도해선 안된다. 심지어 누군가 몰래 마약을 만들어 시중에 판매한 사실도 보도할 수 없다. 계엄군이 경찰력을 대신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범죄행위가 보도될 경우 군의 위상이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계엄사령부가 내린 지시 사항은 중요하게, 또 자세히 다뤄야 한다. 군의 작전 성공 사례와 무용담, 미담 등은 부풀려 보도해야 한다. 계엄군에 대한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서다.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이 같은 보도 지침에 대해 "전체주의적이고,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할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이러한 보도 검열이 낳을 수 있는 참상을 1980년 5월 광주를 통해 경험했다. 계엄군들이 언론 보도를 통제하면서 당시 국민 대다수는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을 알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광주민주화항쟁은 1988년 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진실을 규명하기 전까지 불순분자들의 폭동으로 잘못 각인되기도 했다.
전두환 신군부가 계엄법에 근거해 만든 보도 지침은 언론을 철저하게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시켰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이튿날인 1979년 10월 27일부터 내란 수괴 전두환이 집권에 성공해 비상계엄을 해제한 1981년 1월 24일까지, 15개월간 계엄군은 108만 건의 기사를 검열했다. 이 가운데 2만 9,010건의 기사가 보도 지침 위반으로 삭제됐다.
당시 보도 지침을 거부한 기자 899명은 해직됐다. 해직 기자 중에는 지역 MBC를 합치면 방송 기자가 318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앙 일간지 265명, 지방지 235명 등의 순이었다.
이종혁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계엄실무편람에 수록된 보도 지침이 실제 운영될 경우 "국민들의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의견 교환이 안 되고, 건강한 여론 조성 체계와 프로세스 자체가 망가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도검열지침은 국내 언론사뿐만 아니라 외신 기자들에게도 적용된다. 이를 위해 보도 검열단에는 외신반이 따로 구성된다. 외신기자들의 경우, 보도 지침을 위반할 경우 추방될 수 있다. 계엄실무지침의 사후 검열 및 위반 매체 제재 조치에 비자(VISA) 취소와 출국조치(외신 매체)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계엄군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재판 당시 UPI 통신 등 외신 보도에 대해 검열을 실시, 기사 일부를 삭제하거나 수정한 바 있다.
1980년 8월 19일 UPI 통신의 서울 주재 기자가 작성한 기사 원고에는 '검열필' 도장과 함께 기사 일부를 삭제하거나 단어를 수정하는 등 계엄당국의 검열 흔적이 드러나 있다. (자료 제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증 : 린다 허프만 존스)
서울에서 활동하며 영국 가디언에 기사를 기고하는 프리랜서 기자 라파엘 라시드 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검열을 요구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고 "알 권리가 있는 국민들에게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국가 비상사태에도 언론·표현의 자유 보장하는 선진국들
뉴스타파는 주요 선진국들에서도 국가 비상사태에서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미국의 경우, 1814년 영국과의 전쟁 와중에 사상 처음으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남북전쟁 때는 링컨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3년간 계엄을 실시하는 등 지금까지 최소 68회 계엄령이 선포됐다.
하지만 계엄이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현행 연방 헌법에는 계엄 관련 조항이 아예 없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주 헌법에 계엄과 관련된 조항을 갖고 있는 곳은 모두 8개 주다. 이 가운데 3개 주는 명시적으로 계엄을 금지하고 있고, 나머지 5개 주에서만 주지사 또는 주의회가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5개 주에서도 계엄을 이유로 행정권이나 사법권을 정지시킬 수 없고,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 및 표현의 자유도 제약할 수 없다.
미국은 5개 주에서만 계엄령 선포가 가능한데, 실제 계엄이 발령되더라도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
캐롤라인 핸드리 미국 기자협회 사무총장은 "언론의 자유는 미국 헌법 권리장전을 구성하는 10개 수정안 중 첫 번째 수정안에 의해 보장된다"며 "계엄령이 선포되는 경우에도 미국 국민의 언론 자유에 대한 헌법상 권리는 축소될 수 없다"고 밝혔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 계엄 상황에서 언론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 프랑스는 시민혁명 직후인 1791년 계엄법이 처음 제정됐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계엄이 선포된 적 없다. 1, 2차 세계대전 중에도 계엄령은 없었다.
프랑스 국방법은 계엄 상황에서 제한할 수 있는 시민의 기본권을 4가지로 명시하고 있다. 치안을 위협할 소지가 있는 출판 및 집회만 예외적으로 금지할 뿐 국민의 알 권리와 자유로운 의사표시까지 제한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단 한번도 실제 계엄을 발령한 바 없다. 프랑스 국방법은 계엄 상황하에서 치안을 위협할 소지가 있는 출판 및 집회만 예외적으로 금지할 수 있을 뿐 국민의 알 권리와 자유로운 의사 표시까지 제한할 수 없다.
독일의 경우, 한 발 더 나아가 언론 출판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 외부 세력으로부터 국토가 공격받더라도 정치적 자유권과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보장한다고 명시돼 있다.
영국은 2004년 계엄 관련 법을 모두 정비해 국가비상관리법으로 통합했다. 이 법은 비상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거나 발생한 경우, 대중에게 경고하고 정보 및 조언을 제공할 수 있을 뿐 언론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명시적 규정은 없다.
크리스 프로스트 영국 언론노조 윤리위원장은 "만약 (정부가) 언론이 출판 또는 방송하려는 내용을 제한하려고 한다면 엄청난 반발이 일어날 것"이라며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취재팀을 보낸 적 있는데 그때도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에 제한이 없었다"고 말했다.
언론계 "계엄법에 기본권 제한 규정 수정·삭제해야"
이 때문에 언론계를 중심으로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현행 계엄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모든 국민의 언론 자유인데 이것을 법률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악용 소지가 너무 크다"며 "미국의 경우처럼 어떤 법률로도 언론 자유를 제약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현 한국기자협회장도 "언론 자유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는 장치"라며 "계업법의 관련 규정을 수정 내지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혁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언론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인데 계엄법이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명시하는 것이 모순"이라며 "이번 기회에 언론 자유를 제약하는 조항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2·3 내란 시도 이후 국회에는 계엄법 개정안이 37개 발의됐다. 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