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가 저에게 '엄마, 여기는 정말 안전해요. 가방을 열어두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아무도 눈독 들이지 않았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여기 있으면 정말 편안하고 사람들도 너무 친절해요'라고 했어요. 그게 한국에 대해 그레이스가 처음 했던 말 중 하나였어요.조안 라쉐드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그레이스 라쉐드 씨의 어머니
네이슨이 '정말 미안해요, 그레이스가 세상을 떠났어요'라고 했어요. 제가 '무슨 뜻이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고 했어요. 그는 무언가에 덮여져 있는 그레이스의 마지막 모습을 봤고, 그게 그레이스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어요. 저희는 영사관에도 이 사실을 알렸죠. 영사관에서도 그레이스의 여권 사진을 확인한 결과, 그레이스가 사망했다고 했어요.조안 라쉐드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그레이스 라쉐드 씨의 어머니
결국 저는 정보를 알아내려고 개인적으로 온라인에서 기사를 읽고 관련된 부모님의 이름을 찾고, 스스로 조금씩 조사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한국 정부에서는 아무도 우리에게 정보를 주지 않고, 업데이트를 주기 위해 연락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마치 이 일이 그냥 잊힌 것 같았어요. 저는 한국 정부가 최소한 연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사건은 한국에서 발생했잖아요. 피해를 당한 이 아이들은 한국 시민들과 외국인이고, 이들이 당신의 도시를 방문했어요. 당신들은 보호 의무가 있어요.조안 라쉐드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그레이스 라쉐드 씨의 어머니
왜 그걸 볼 수 없나요? 그 정보를 왜 공개하지 않습니까? 왜 안 되죠? CCTV에서 우리가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게 무엇인가요? 그 영상이 그날 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마도 저희가 원하는 더 많은 답을 찾아줄 수도 있어요. 저희는 답이 필요해요. 그래서 왜 영상이 공개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조안 라쉐드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그레이스 라쉐드 씨의 어머니
놀러 가서 죽었는데 뭐 자랑이라고 떠드냐, 시체 팔이 한다, 뭐 고통 팔이 한다, 일하다가 죽은 사람도 가만히 있는데 또는 나라 지키다가 죽은 것도 아닌데 유난이다. 저는 2차 가해성 댓글이 우리 사회의 편견을 응축해서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성실 근면만이 정답이고 유흥은 너무 나쁜 것이고. 이런 것들이 응축돼 있는, 오래전부터 쌓여 있던 사회적인 편견들이 2차 가해성 발언으로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어요.김초롱 / 작가, 이태원 참사 생존자
참사 당일엔 10만 명이 조금 넘는 인원, 2017년에는 20만 명의 인원... 사람이 산처럼 쌓여 죽어간 2022년과 달리 2017년의 참사와 같은 공간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넓었다.
참사의 원인은 피해자가 그곳에 갔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군중 밀집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
어떤 할머니가 ‘놀다가 죽은 걸 뭐 어쩌라는 거냐'라고 말했다. 할머니, 트로트 좋아하세요? 임영웅 같은 사람이요. 임영웅이 무료 트로트 축제를 열었대요. 놀러가고 싶으시죠? 거기 놀러 갔다가 깔려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할머니에게 대놓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생존자가 말했다. '그때 나에게 왜 백화점에 갔냐는 사람은 없었다'고.김초롱 씨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중 일부 발췌
다시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생뚱맞게 집에 가는 길을 잃어버린다거나 여기가 어딘지 갑자기 모른다거나 그래서 경찰서에 몇 번 전화도 하고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요. 마치 치매 환자처럼. 그리고 집 도어락 비밀번호가 생각이 안 난다거나. 하루에도 몇 번씩 지갑, 핸드폰, 노트북을 잃어버렸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내가 잃어버렸는지도 전혀 기억이 안 나고... 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전쟁을 겪은 병사들이 흔히 겪는 PTSD가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하는. 그래서 다시 PTSD가 발현이 됐구나.김초롱 / 작가, 이태원 참사 생존자
이런 말을 실제로 진짜로 입에 닿는 사람이 실제 하는구나. 그것도 내 가족이 그러는구나. 지난 1, 2년 동안 사람을 안 만나게 되는 이유도 그런 것 같아요. 괜히 상처받을까 봐. 그래서 나의 입장과 같거나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 그런 경향성이 짙어졌죠. 스스로 그냥 고립시키는 거죠. 굳이 상처를 받을 일을 안 만드는 건 사람을 안 만나는 거더라고요.김초롱 / 작가, 이태원 참사 생존자
재판이 김광호의 무죄로 끝났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마음이 무너지더라고요. 내가 조금 더 용기가 있었다면, 직접 가서 얘기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내가 가서 직접 증언을 했으면 조금 달라졌을까. 글로 전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던 걸까.김초롱 / 작가, 이태원 참사 생존자
존경하는 재판장님 10.29 이태원 참사 당사자이자 목격자이자 생존자 김초롱입니다.
참사는 다양한 형태로 인간의 삶을 짓밟습니다. 한겨울에도 온몸에서 땀이 나 애꿎은 보일러만 자꾸 끄기를 반복하고, 침대에서 잘 수가 없어 참사 이후 몇 개월은 침대를 거부한 채 앉아서 쪽잠으로만 자기도 했습니다. 그마저도 잠깐 잠이 들었다 싶으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깨어나는 형태입니다. 먹은 것이 없지만 구토를 수없이 하기도 했고, 어쩐 일인지 씹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져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스스로 버리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집에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여기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어서 두렵고 어지러운 마음에 서른이 넘은 나이에 길바닥에서 그만 어린아이처럼 오줌을 싸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곳에 놀러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가지 말 걸 너무 후회돼요'라고 말하던 저에게 '아니에요 놀러가서 죽은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겁니다. 우리 모두는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국가가 지켜주는 게 맞아요'라는 말을 심리 상담사가 아닌 국가로부터 듣고 싶습니다.
이태원 참사의 유일한 원인은 군중 밀집 관리의 실패입니다. 2017년 핼러윈 당일 참사 현장과 동일한 장소에서 찍은 저의 사진은 사진 자체가 증거였습니다. 20만 명이 모였던 2017년 참사 현장은 사람 간의 거리가 충분했고 담소를 나눌 정도로 거리가 확보되어 있었습니다. 2022년 10만 명이 모였던 때보다 인원이 두 배가 많은 날의 현장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진 한 장으로 '그래 나는 정말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펑펑 울었습니다.
더 나은 어른이 있다고 알려주세요. 더 나은 어른들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부디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김초롱 드림.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 씨가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제출한 발언문 중 일부 발췌
참사 이전에 만들어졌고, 참사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 영화이기도 해요. 그런데 참사를 고민하는 데 있어서 이태원이라는 공간의 어떤 역사와 문화와 맥락들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압사 이후에 이어졌던 사회의 반응들까지도 저는 참사로 바라보고 싶거든요. 사람들이 '이태원에서 문란하게 노는 애들 아니냐' 이런 비난을 쏟기도 했었잖아요. 그 비난들이 왜 쏟아졌을까 배경을 생각했을 때 다른 어디도 아닌 이태원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맥락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이 이태원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그래서 '놀러 가서 죽은 것이다' 이런 말과 편견이 나왔다고 생각해요.이상민 / 서울 용산구 주민
이태원에 한 명이라도 더 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것도 맞아요. 그래서 '핼러윈이 이렇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파티랍니다'라는 걸 알려드리고, '참사 골목도 한번 보시고 마음속으로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고요. 저는 늘 조마조마해요. 핼러윈이 약간 쉬쉬되고 안 좋은 것이라는 오해가 쌓일까 봐요. 그렇게 되면 하나의 놀이 문화를 세상에 빼앗기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지 않았으면 해요. 오히려 더 핼러윈을 지켜내야 참사가 이태원이 잘못한 게 아니고 핼러윈에 참여한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김초롱 / 작가, 이태원 참사 생존자
사랑하는 그레이스에게. 네가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23살, 그 후의 너의 모습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구나. 나는 네가 우리를 떠날 때의 모습, 행복과 삶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 모습을 영원히 기억할 거야. 그리고 네가 얼마나 우리를 사랑했고, 우리가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느끼게 해주었는지 항상 기억할 거야.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해 10월 17일 이른 새벽에 공항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였어.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택시를 타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판단해 현관 앞에서 작별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아침 너를 공항까지 데려다주었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을 거라고 계속 후회하고 있단다.
너는 사랑도, 가슴앓이도 알았고, 실패도, 성공도 해봤고, 긴장감도 행복도 아는 인생을 살았지. 열심히 일했고 보람도 얻었지. 젊은 시절 여러 곳을 여행했고 참 많은 것을 배웠지. 나는 늘 누군가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단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단다.
네가 이걸 들으면 너무 기뻐할 거야. 2023년 2월, 너의 마지막 직장이었던 영화제작사 'electriclime'과 대학에서 너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었단다. 이 장학금은 '그레이스 라쉐드 인턴십'이라고 한단다. 이런 기회를 통해 젊은 여성들이 영화 제작 분야에서 유망한 경력을 쌓을 기회를 얻게 된다니 네가 보았다면 분명 뿌듯했을 거야.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너는 네 이름만큼이나 늘 아름답고 온화하게 삶을 살았지. 그레이스, 너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었을 거야. 네가 많이 보고 싶다.네가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늘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사랑한다, 우리 딸. 엄마가.조안 라쉐드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그레이스 라쉐드 씨 어머니
취재 | 홍주환 |
영상취재 | 김희주 이상찬 오준식 정형민 |
편집 | 장주영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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