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 영정을 품에 안고...아리셀 참사 유가족 “왜 죽었는지 알려 달라”

2024년 07월 30일 17시 31분

지난 7월 27일 토요일은 아리셀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34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유가족들은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희생자의 영정을 품에 안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서울역 광장까지 걸었습니다. 유가족 30여 명과 시민 300여 명이 함께 걸었습니다. 이들은 이날, 왜 거리 행진을 했을까요. 
사진 설명 : 아리셀 화재 참사 34일째였던 지난 7월 27일, 희생자 가족들이 영정을 품에 안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서울역 광장까지 행진했다. 이날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아리셀 측의 성실 교섭과 정부의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아리셀 화재 참사는 지난 6월 24일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리튬 전지 제조 업체 ‘아리셀’ 공장의 화재로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입니다. 노동자 23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특히 23명의 사망자 중 18명은 외국 국적(중국 17명, 라오스 1명)으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습니다.
이번 참사의 직접적 원인은 리튬 전지에서 발생한 화재였지만, 다수의 인명 피해로 이어지게 된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바로 위험의 ‘외주화’와 ‘이주화’ 문제입니다. 기업이 하청 또는 파견 노동자들에게 위험한 공정을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는 유사한 참사가 있을 때마다 지적되어 왔습니다.
이번 아리셀 화재 참사에서 특이한 점은 이런 위험의 외주화에 더해 위험의 ‘이주화’라는 현상까지 보여주는 참사라는 점입니다. 아리셀은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에 금지된 파견 형태로 이주노동자 상당수를 고용했으며, 위험 물질을 취급하는 외주 및 이주 노동자들에게 안전 교육조차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의 화재 직후 모습
이렇게 아리셀 화재 참사는 위험의 ‘외주화’와 ‘이주화’를 방치해 온 우리 사회 노동 구조의 문제가 집약돼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참사’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참사의 정확한 원인은 현재 진행 중인 경찰과 고용노동부 수사에서 구체적으로 밝혀질 텐데요. 그에 앞서 유가족들은 참사를 대하는 사측의 무책임함과 정부의 안이한 태도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사고 다음 날, 아리셀 모회사인 에스코넥 박순관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와 관련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되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인들과 유가족분들께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진심을 다해 필요한 사항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참사 34일이 지난 현재의 모습은 다릅니다.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에 따르면, 사측은 지난 7월 5일 단 한 차례 가족협의회와 만난 뒤, 더 이상의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희생자 23명 중 20명의 유가족으로 결성된 가족협의회와의 교섭을 거부하고, 개별 합의를 시도하며 사건을 빨리 종결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사측이 제시한 개별 합의안의 내용도 유가족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사측이 희생자들의 국적과 비자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배·보상 금액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희생자들의 비자는 F4(재외동포 비자), H2(방문 취업 비자), F6(결혼이민 비자)로 다양하고, 비자에 따라 국내 체류 기간과 일할 수 있는 업종이 달라집니다. 체류기간이 짧은 비자에 더 적은 배·보상을 하겠다는 게 사측의 입장인데, 유족들은 목숨 값을 차별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사측의 성의 없는 태도에 유가족들이 상당히 분노하고 있습니다. 가족협의회를 통한 교섭을 요구했더니 사측이 가족협의회에 소속되지 않은 유가족을 개별 접촉해 합의를 시도했고요. 개별 합의안 자체도 굉장히 무성의했습니다. 라오스 국적 피해자 가족에게 중국어로 된 배·보상안을 제시한다거나, 한국인 희생자 A라는 분에게 보낸 합의안을 B라는 분에게 이름도 바꾸지 않은 채 그대로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또 희생자들의 비자 종류에 따라 보상금 지급 기준을 달리 적용하는 배·보상안을 제시하기도 했고요. 노동자의 목숨 값을 차별하는 사측의 행태에 유가족들이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한상진 /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대변인
유가족과 사측간 교섭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정부의 유가족 숙식 지원도 곧 끊길 위기입니다. 유가족의 상당수는 중국에서 입국했습니다. 정부 지원 없이 한국에 오래 머물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유족에 대한 화성시 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재대본)의 지원은 오는 7월 31일로 만료됩니다. 가족협의회 등은 피해자 지원 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성시 측은 “검토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하며 지원 만료 시점을 하루 앞둔 오늘(30일)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 중 하나는 ‘알 권리’ 보장입니다. 사고 원인과 관련한 경찰 수사와 정부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내용을 전달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연대를 위해 정부에 생존한 부상자들의 정보를 요청했지만, 이 역시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참사 직후부터 요구했던, 유족 추천 전문가가 포함된 민관합동조사위원회 구성도 요원합니다. 
참사 34일째, 유가족들이 폭우를 뚫고 거리로 나온 이유입니다.
아리셀 참사로 애들을 보낸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독가스에 질식하고 1,000도가 넘는 불길 속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릅니다. 이번 참사를 당한 분들은 대부분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아직 젊은 한민족이라 불리는 동포들입니다. 언어나 생활 습관이 똑같은 김치를 담가 먹는 동포들입니다. 우리는 알고 싶습니다. 23명의 소중한 생명이 왜 처참하게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모든 생명은 똑같이 소중합니다.

지경옥 / 아리셀 화재 참사 희생자 고 김지현 씨 어머니
(사진 설명 : 지난 7월 27일 서울역 앞에서 진행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시민추모제’에 참석한 아리셀 화재 참사 유가족의 모습. 이날 유가족들은 시민추모제에 앞서 정부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희생자 영정을 들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서울역 광장까지 행진했다.)
결국 아리셀 화재 참사 유가족들이 바라는 건 앞선 사회적 참사 당시의 유가족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의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적극적 조치, 그리고 사측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 있는 태도입니다. 아리셀 화재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두 번, 세 번 거리로 나서지 않도록 사회의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현재 아리셀 참사 유가족으로 구성된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와 시민 대책위인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에서는 참사 부상자분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체와 연결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의 번호로 연락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 031-268-9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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