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민원㉓ 윤석열이 완성한 '6대1' 방심위, '대통령 욕설 논란' 보도 징계 예고

2024년 01월 23일 18시 41분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의 ‘청부민원’ 의혹으로 파행을 거듭한 방심위가 정부·여당 독식체제를 굳히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류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던 야권 추천 방심위원 두 명을 동시에 날린 데 이어 대통령 추천 위원 2인만 다시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방심위 내부와 언론계의 비판을 묵살하고 ‘류희림 체제’를 감싸려는 대통령의 인사권 오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민원을 사주한 의혹을 받고 있는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몫’ 방심위원만 다시 위촉…문재완·이정옥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2일, 최근 해촉한 김유진·옥시찬 방심위원을 대신해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전임교수와 이정옥 전 KBS 글로벌전략센터장을 신임 방심위원으로 위촉했다. 전임 정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위촉했던 두 위원 자리를 비우고, 대통령 추천 몫 위원을 다시 위촉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과 9월 차례로 해촉한 국회의장(야권) 추천 위원 두 자리는 이번에도 비워뒀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후임 위원 2인을 모두 추천한 뒤로도 윤 대통령은 3개월째 위촉을 미루고 있다. 그 사이 추천인사 2인 중 한 사람은 최근 위원직을 고사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여야 추천 9인의 합의제 기구인 방심위가 사실상 여야 6대1 구도로 유례없이 기울게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문재완·이정옥 신임 방심위원의 적격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MB정부 미디어법 개악·MBC 탄압 인사 다시 기용

문재완 신임 방심위원은 매일경제신문 기자 출신으로 법조팀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보수 성향의 학자로 평가받는다. 문 위원의 과거 행보는 지난 십여년간 언론계의 논란거리였다.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6년 6월, 국책방송인 아리랑TV 사장에 문 위원이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곧장 언론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당시 이렇게 평가했다. 
“문재완 사장은 MB정권의 언론장악이 본격화된 이후 대통령실 방송통신정책자문위원, 국회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며 종편 출범 등 미디어법 개악을 적극 옹호해왔다.”
아리랑TV 사장 임명 이튿날, 경향신문 사설은 문 위원에 대해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로 재직하면서 김재철 사장 전횡으로 MBC가 공정성과 신뢰도 평가에서 거의 매번 바닥을 칠 때도 김 사장을 옹호하는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과 보조를 같이했다.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국책방송 사장으로 방송의 공영성과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물인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썼다. 
문 위원은 2009년 당시 국회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 자유선진당 추천으로 참여했다. 문 위원과 여당 측 위원들은 야당 측 위원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 여당의 미디어법 개악안을 그대로 반영해 최종보고서 발표를 강행했다. 종합편성채널 출범의 논리와 명분을 만드는 작업에 앞장선 것이다. 문 위원은 같은 해부터 2012년까지 여당 추천으로 MBC 최대주주인 방문진 이사를 지내며 임기가 남은 엄기영 당시 MBC 사장의 사퇴를 종용하고 김재철 사장 선임에 손을 보탰다. 2010년에는 문 위원과 여권 방문진 이사들이 ‘PD수첩 진상조사위’ 설치 안건 처리를 강행하려다 MBC 구성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철회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해 검찰의 표적이 됐던 PD수첩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방문진 여권 이사들이 계획한 일이었다.

“공정성, 정권에서 독립이 먼저”라더니…대통령 비판 보도 제재에 앞장

이정옥 신임 방심위원은 30여년 경력의 KBS 기자 출신으로 대외 명망이 높은 인물이다. 1999년 코소보 전쟁 참상 취재 등 전 세계 분쟁지역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보도한 이력과 함께 ‘방송 기자 최초의 여성 파리특파원’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KBS에서 보도본부 해설위원, 글로벌전략센터장을 지냈다. 
2011년, 그의 경력에 흠집이 나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 재임 시절 해외 출장비를 과다하게 사용한 일이 방송협회 내부감사에서 적발됐고, 규정을 초과한 금액을 반납하게 된 것이다. 2010년 1주일 일정의 해외출장에서 하룻밤에 100만 원을 상회하는 고급호텔 객실에서 숙박한 일이 문제가 됐다. 이 위원은 당시 규정금액 초과분 500만 원을 반납했으나, 당시 출장과 관련된 방송협회 직원 4명이 최대 감봉 6개월 등 무더기로 징계받으면서 ‘화풀이 징계’ 논란이 일었다. 이 위원이 사무총장으로서 규정 초과 출장비를 사용한 당사자인데도 직원들에게 책임을 미루며 부적절한 행태를 보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위원은 2021년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후보의 언론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면서 사실상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방심위·방송통신위원회 등 감독기구 위원, 공영방송이나 국책방송 이사 또는 수장으로 언제든 발탁될 수 있는 후보군에 들게 됐다.
2018년, 이 위원은 KBS 신임 사장 공모에 지원해 최종 후보 3인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이 위원의 포부와 발언은 현재의 방심위 파행 국면에서 다시 주목할 만하다. 이 위원은 KBS 사장 후보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 권력에 독립된 공영방송과 언론의 역할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강조했다.
“공영방송에 대한 도전은 5공화국 때 입사해 6공화국에 이를 때까지 피부로 느낄 정도로 억압을 느꼈다. 특히 5공화국 시절 문화부에 근무할 때 북풍을 공작하기 위해 섹스(Sex),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라는 3S 정책을 통해 당시 국민들의 시선을 정치 외적으로 묶어두는 현실을 목도하고, 당시 전두환 대통령 부인인 이순자 여사 보도를 아름답게 포장해 보도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018.2.20 / 민주신문)
이 위원은 같은 인터뷰에서 KBS 뉴스의 위기에 대해 “공정성은 집권한 정권으로부터 독립이 먼저다”라며 “뉴스는 정치, 자본의 압력으로부터 독립돼 보도하는 공정성을 확보하고자 한다”고도 말했다.
5년 전 이 위원의 말은 방심위에 합류한 순간부터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그는 위촉 당일인 22일 처음으로 방심위 전체회의에 참석하자마자 윤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방송 보도에 대한 무더기 제재에 가장 먼저 앞장섰다. 이날 전체회의에는 여권 추천 위원 6명만 모였다. 이 같은 회의 구도에서 이 위원이 2022년 9월 방미 현장, 윤 대통령의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발언 보도 심의 안건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MBC의 최초 보도뿐 아니라 KBS, SBS 등 지상파와 종편 4사, 보도전문채널 YTN 등 총 10개 방송사의 보도가 심의 대상이다. 이들 보도로 외교 현장 한복판에서 채록된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의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자, 외교부는 MBC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었다. 방심위는 지난해 5월 “소송 결과가 나온 뒤 다시 심의하겠다”며 의결을 보류한 바 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12일 외교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이 위원은 처음 참석한 전체회의에서 외교부가 승소한 1심 판결을 근거로 해당 보도들에 대한 재심의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위원의 제안에 힘입어 방심위 방송심의소위는 오는 30일 해당 보도들을 재심의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심의 대상인 방송사들에 대해 중징계에 과징금 부과까지 의결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김준희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심위 지부장이 23일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 앞에서 류희림 방심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홀로 남은 야권 위원 “윤석열, 방심위를 집권당의 언론검열기구로”

방심위 직원들을 조합원으로 둔 언론노조는 문재완·이정옥 위원이 위촉되자 강하게 반발했다. 언론노조는 성명을 내고 “류희림 체제 방심위의 도덕적·윤리적 정당성이 파탄 지경에 이르렀으며 회생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야권 추천 방심위원과 임명이 보류된 위원 후보자들에게 “방심위원직과 후보자 지위를 사퇴해 류희림 체제 방심위를 전면 거부하라”고 촉구했다.
언론노조는 또 “류희림 일당만이 남아 의결하는 모든 사안들은 최소한 공정성과 독립성도 확보하지 못한 채 법적 시비에 휘말릴 것”이라며 “이제 수명을 다한 류희림 체제를 유지하기 보다 방심위원 전원이 총사퇴하는 것이 오히려 언론자유의 헌법가치를 지키고, 윤석열 정권의 방송장악 도구라는 오명을 벗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유일하게 남은 야권 추천 인사인 윤성옥 방심위원은 심의 활동과 회의 참석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윤 위원은 지난 19일 입장문을 내고 “(여야) 6대 1의 기형적 방심위 구조에서 거수기 역할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위원들에 대한 부당한 해촉과 선택적 위촉으로 방심위를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재편했고 집권당의 언론검열기구를 만들었다”고 했다.
제작진
취재홍우람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