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사전투표 조작설...'K값'과 판박이 음모론

2021년 10월 12일 15시 26분

"4.15 총선은 부정선거" 튀어나온 국민의힘 대선후보 TV토론회

2022년 치러지는 20대 대통령 후보 선거가 5개월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지난 총선 이후 일부에서 제기됐던 부정선거 논란이 대선 경선과정에서 다시 등장했습니다.
국민의힘 황교안 후보는 지난 4.15 총선에서 사전투표가 조작됐다고 국민의힘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주장했습니다. 사전투표에서 민주당이 일정비율로 더 유리한 득표율을 기록하도록 누군가 조작했다는 것입니다. 
21대 총선은 황 후보 자신이 미래통합당 대표로서 책임지고 치렀다가 패배했던 선거였습니다.
게다가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까지 지낸 황 후보의 주장에 검찰총장을 지낸 윤석열 후보와 감사원장을 지낸 최재형 후보는 동조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안상수 후보는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예비후보 8명 가운데 무려 4명입니다. 2차 컷오프에서 황 후보를 포함한 3명은 결국 모두 탈락했지만 대선 후보 토론회에 등장한 부정선거론은 많은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10월6일 국민의힘 6차 대선후보 토론회 모습 (출처:KBS)
3차 토론회(9월26일)에서 황 후보는 사전투표 용지에 QR코드를 부착한 다음 개표분류기에서 QR코드에 미리 입력된 정보대로 표를 분류해 개표를 조작했다고 주장했고, 5차 토론회에서(10월1일)는 “문재인 정권의 선거부정이 내년 대선에서도 또 자행될 수 있다”면서 사전투표 폐지론까지 꺼냈습니다.
뉴스타파는 황교안 후보가 제기한 4.15 총선 사전투표 조작설이 타당한지 선거데이터를 통해 검증했습니다.

"4.15 부정선거" 주장의 핵심은 사전투표 조작설

황교안 후보의 주장은 민경욱 전 의원 등 지난 총선에서 탈락한 일부 정치인과 극우 성향의 일부 인사들이 줄기차게 제기해온 내용입니다.

민경욱 전 의원 등 일부 보수 인사들이 제기하고 있는 21대 총선 사전투표 조작설. 오른쪽 그래프의 사전투표 득표율에서 민주당이 미래통합당보다 앞선다.
위 그래프는 4.15 부정선거론자들이 주장하는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20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사전투표 득표율이 비슷했지만 21대 총선에서는 사전투표를 조작해 거의 6대 4의 비율로 더불어민주당이 표를 더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뉴스타파는 이들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20대 총선, 21대 총선 데이터와 함께 지난 4월 보궐선거가 치러진 서울과 부산의 개표데이터를 수집해 비교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다음은 지난 20대 총선 당시 득표율 비교 그래프입니다.
20대 총선은 사전투표일과 본 선거일 득표율에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비슷한 분포를 보인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붉은색)과 야당인 민주당(파란색)의 선거일 득표와 사전투표 득표율이 서로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이와 달리 4년 뒤 열린 21대 총선 때는 선거당일과 달리 유독 사전투표에서 민주당은 거의 6대 4의 비율로 미래통합당 등 야권보다 높은 득표율을 보였습니다. 야당 표가 많이 나왔던 강남구와 서초구만 예외였습니다.
21대 총선에서는 사전투표에서 민주당의 득표율이 미래통합당보다 높은 분포를 보인다.
이것이 4.15 총선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장처럼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증거일까요?

사전투표와 선거당일 득표율이 다르면 부정선거?

국민의힘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압승했던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득표율입니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사전투표와 선거일의 득표율에서 큰 차이가 났다. 민주당은 사전투표일에 더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
민주당의 득표율은 21대 총선 때처럼 사전투표일에 본선거일보다 10% 이상 더 높습니다.
그렇다면 오세훈 후보가 당선된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부정선거였다는 것일까요?
누군가 사전투표를 조작했지만 국민의힘 후보의 당선을 막지 못한 걸까요?
부산시장 보궐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4.7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의 사전투표일 득표율이 선거일 때보다 높았다.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큰 표차로 압승했는데 민주당의 득표율은 사전투표일에 더 높습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도 부정선거였던 것일까요?
지난 보궐선거를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부정선거 주장에 대응하고 있는 중앙선관위 공보담당 관계자에게 물어봤더니 지난 서울과 부산 보궐선거 때는 21대 총선 때와 달리 부정선거 주장을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사전투표와 본투표의 득표 차이는 왜? … 20대와 21대 총선의 차이점

부정선거론자들이 정상적인 선거였다고 주장하는 20대 총선을 살펴보면 당시 전체 사전투표율은 11.6%로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또 20대 총선 당시 서울에서는 약 5백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했는데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득표수가 213만 대 182만으로, 표차이가 31만표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민주당이 약간 우세했던 정도였습니다. 
또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당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얻은 전체 득표가운데 각각 사전투표에서 얻은 득표의 비중은 구별로 평균 약 18.8%와 20.4%로 2% 포인트 차이도 나지 않았습니다
정당별로 따져봤을 때 20대 총선 서울의 경우 민주당과 새누리당 모두 사전투표일 득표 비중이 20% 정도로 비슷했다.
그러나 21대 총선은 많이 달랐습니다.
먼저 사전투표율이 26.7%로 20대 보다 2배 이상 높아졌습니다.
전체 투표율도 58%에서 66.2%로 뛰었습니다.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득표율 차이가 10% 넘게 차이가 나면서 서울 지역에서 얻은 표 차이도 66만 표(304만 대 238만)로 20대 총선에 비해 3배 이상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사전투표에서 국민의힘보다 더 많이 투표했습니다.
구별로 보면 민주당을 찍은 유권자의 평균 46.6%가 사전투표에 참여해서 야당의 33.7%보다 10% 이상 많았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절반 가까이가 사전투표 때 투표했지만 국민의힘 지지자는 30% 정도만 사전투표일에 투표한 것입니다.
21대 총선 서울의 경우 민주당은 전체 득표의 46.6%가 사전투표일에 몰렸다. 미래통합당은 33.7%에 그쳤다.
정리하면, 민주당에 쏟아진 표가 66만표가 더 많았는데 20대 총선과 달리 민주당을 찍은 유권자들이 국민의힘 지지 유권자들보다 사전투표에서 훨씬 많이 투표했기 때문에 사전투표일과 선거당일의 득표율이 큰 차이를 보인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높은 사전투표 참여율 자체가 조작의 결과일까요?
그렇다면 4.7 보궐선거의 결과도 조작이어야합니다. 
국민의힘이 압승했던 4.7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도 사전투표 참여율은 민주당 지지자가 10% 이상 높았습니다. 
부정선거 논란이 없었던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의 득표 44.5%가 사전투표일에 몰렸다. 21대 총선과 비슷한 수치다.
민주당이 참패했던 부산시장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4.7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의 득표 41가 사전투표에 몰렸다. 국민의힘의 34%보다 높았다.
민주당은 참패했지만 사전투표에서 득표율은 본선거일보다 7%  포인트나 높았습니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조작됐다고 말하는 21대 총선과 같은 양상이지만 아무도 부정선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민주당의 사전투표 쏠림에 대한 통계학적인 분석

뉴스타파는 추가로 선거데이터를 보다 정밀하게 검증하기 위해 통계 분석 전문가인 고려대 빅데이터사이언스학부 최보승 교수와 김경훈 박사에게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사전투표율과 민주당의 높은 득표율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21대 총선 데이터에 조작으로 볼만한 특이한 점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최 교수팀이 서울과 부산의 20대, 21대 총선과 4.7보궐선거 데이터를 종합해 분석했더니 전체 사전투표율이 높아질수록 민주당의 본투표 대비 사전투표 득표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과 부산의 20대총선,21대총선,4.7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사전득표율과 전체 사전투표율과의 상관관계 분석.<br>전체 사전투표율이 높아질수록 민주당의 본선거일 대비 사전투표일의 득표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위 그래프의 X축은 전체 사전투표율을 말하고 Y축은 민주당의 본투표 대비 사전투표 득표율 값입니다. 
민주당은 본투표보다 사전투표에서 득표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전체 사전투표율이 증가할수록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지는 것을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즉, 21대 총선의 데이터가 20대 총선과 같은 흐름 속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대 총선이 부정선거였는가에 대한 통계학적인 답은 다음 그림에 있습니다.
서울의 20대와 21대 총선, 4.7 보궐선거의 서로 다른 사전투표율을 같은 기준으로 보정해 민주당의 사전득표율 값(민주당의 선거일 대비 사전투표일 득표율을 사전투표율로 나눠준 값)을 나타낸 것입니다.
서울지역 민주당의 선거일 대비 사전득표율을 사전투표율 대비 보정해준 평균값 그래프. 20대 총선의 평균값이 가장 높다. 민주당이 얻은 사전투표에서의 득표가 다른 선거에서보다 전체 사전투표율로부터 더 영향을 받았다는 뜻이다.
가운데 동그라미가 평균값이고 위아래 꼬리가 95%신뢰구간을 나타냅니다.
21대 총선과 4.7보궐선거의 평균이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고 20대 총선의 평균이 더 크게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잡해 보이는 이 그래프의 의미를 쉽게 말하면 20대 총선에서 서울지역의 민주당 사전 득표율이 21대 총선보다 전체 사전투표율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는 뜻입니다. 
즉, 21대 총선 때 사전투표율을 높여놓고 사전투표에서 민주당이 몰표를 가져가도록 누군가 조작했다는 것이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주장인데 사전투표율과 민주당이 사전투표에서 가져간 표의 비율을 살펴봤더니 오히려 20대 총선이 더 심했었다는 말입니다.
적어도 이 통계분석에는 전국의 모든 선관위 직원들과 개표요원, 정당별 참관인들을 속이고 단 한명의 양심선언도 없도록 입막음하면서 투표지분류기를 해킹한 뒤 21대 사전투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당이 승리했는지와 상관없이 모든 선거에서 실제 개표데이터들이 비슷한 통계학적인 패턴을 보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결국 4.15 총선 부정선거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전투표와 선거일의 득표율이 같아야하거나 비슷하게 나와야 정상이고 그렇지 않으면 조작이라는 전제는 틀린 것입니다.
사전투표일과 선거일 양쪽의 투표참가자들이 서로 연령대, 직업, 정치 성향 등이 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다른 득표 결과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상식이 통계학적으로도 증명되는 것입니다.

21대 총선 사전투표 조작설은 K값의 보수판 닮은꼴

2012년 18대 대선 때는 김어준 씨 등 진보진영으로 분류되는 일부 인사들이 개표조작을 주장했습니다. 투표지분류기를 조작해 미분류표(분류기가 분류를 보류한 표)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가 일정비율로 표를 더 가져가 당선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른바 ‘K값’이 1이 나와야 정상인데 전국적으로 일관되게 1.5가 나왔다며 누군가 조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대선인 19대 대선이 끝나고 이들이 주장했던대로 뉴스타파가 ‘K값’을 분석했더니 1.6이 나왔습니다. 보수 후보였던 홍준표 후보가 미분류표에서 문재인 후보보다 1.6배나 더 가져가는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는데도 이번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것입니다. 개표부정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4월에 치러진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데이터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선관위로부터 입수했고, 같은 방식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랬더니 서울에선 ‘K값’이 1.26이 나왔고 부산에서는 1.42가 나왔습니다.
역시나 1이 아닌 값이 나왔지만 더이상 개표조작을 주장하는 진보측 인사들은 없습니다.
4.7 보궐선거에서도 K값이 서울은 1.26 부산은 1.42가 나왔습니다. K값이 1이 아니라고 해서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더이상 없습니다.
지난 보궐선거에서도 50대 이상의 투표율이 높을수록, 그리고 보수 성향의 후보일수록 미분류표에서 표를 더 많이 받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기존 다른 선거보다 K값이 다소 낮게 나온 것은 서울 오세훈 후보와 부산 박형준 후보가 20대 젊은 층의 지지를 다른 선거보다 더 많이 받았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개표조작설 또는 음모론은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자취를 감췄지만 이번에는 일부 보수진영 인사들에게서 비슷한 논리와 주장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전투표와 선거일 득표가 같아야 한다는 전제는 분류표와 미분류표에서의 득표율이 같아야 한다는 이전의 진보측 주장을 빼닮았습니다.
사전투표지의 QR코드를 통해 투표지분류기로 조작했다는 주장도 분류기를 해킹해 미분류표를 빼돌렸다는 주장과 비슷합니다.
투표지 오투입과 개표상황표 기재 착오 등 선관위의 일부 부실한 선거관리업무 행태를 총체적인 부정선거의 증거로 삼고 있는 것도, 투표지분류기 사용을 금지하고 전면 수개표로 바꿔야한다는 주장도 판박이입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들까지 이런 음모론을 TV토론에서 버젓이 떠들었다는 점 정도일 것입니다.
☞20대 총선과 21대 총선, 21년 4.7 보궐선거에서의 서울과 부산 지역 사전투표와 선거일 득표율 비교는 데이터저널리즘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작진
취재최기훈
데이터분석김강민
데이터시각화김지연
데이터입력황다예 한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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