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는 3개 시민단체(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 시민행동,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와 함께 <검찰 예산감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세금을 오남용한 국회의원 80여 명을 추적해 2억 원이 넘는 세금을 환수한 <국회 세금도둑 추적>에 이은 두 번째 권력기관 예산감시 협업 프로젝트다.
뉴스타파와 3개 시민단체는 3년 5개월의 행정소송 끝에 특수활동비를 포함한 검찰의 예산 자료 16,735장을 사상 처음으로 공개받아 검증 중이다. 검증의 초점은 다른 권력기관과 마찬가지로 세금 오남용과 사적 사용 여부를 가려내는 데 있다.
수십 년 동안 감춰져 왔던 검찰 예산의 실체가 곧 드러날 것이다. 앞으로 추가 공개될 수십만 장의 검찰 예산 자료에 대한 검증 작업도 계속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두 개의 판결
2018년 12월 15일, 서울행정법원 지하 2층 B219호 법정. 1년 8개월 전 기밀 수사에만 쓰게 돼 있는 검찰 특수활동비 200만 원을 봉투에 담아 법무부 검사들에게 격려금으로 준 사실이 적발돼 쫓겨난 이영렬 전 중앙지검장의 면직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한 선고가 내려졌다.
결과는 이영렬 전 지검장의 승소. 법원은 법무부의 징계 조치가 과도하다며 이영렬 전 지검장의 면직 처분을 취소했다. 이날 법원의 이영렬 지검장 복직 선고는 특활비 오남용 의혹에 휩싸인 검찰에 면죄부를 주는 마지막 절차였다.
검찰 특수활동비 '돈봉투' 사건으로 물러났던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앞서 돈봉투 사건에 연루된 상당수 검사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기소된 이들도 무죄가 선고됐다. 이로써 2017년 5월 검찰 조직을 뒤흔들었던 ‘특활비 돈봉투 파동’은 흐지부지 일단락 됐다. 이영렬 지검장은 복직 하루 만에 사표를 던졌다.
법원의 판결문을 곱씹어 보면, 꼭 이영렬 전 지검장의 손을 들어 준 것만은 아니었다. 이영렬 전 지검장의 특활비 돈봉투 행위를 두고, 법원은 “기획재정부 예산 지침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특활비 오남용에 대한 법원의 중요한 판단이었으나 널리 회자되지 못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2023년 4월 13일. 대법원 특별2부는 또 다른 행정소송을 마무리 지었다. 뉴스타파와 세금도둑잡아라 등 3개 시민단체가 검찰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심리불속행’ 결정이 나왔고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두 달 뒤 6월 23일 검찰의 ‘검은 예산’이라 불리는 특수활동비 실체가 검찰청 캐비넷 밖으로 처음 나왔다. 법원이 판결한 대로 이날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은 2017년 1월~2019년 9월 기간 전체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기록, 그리고 일부 특정업무경비 기록을 1차로 공개했다.
지난 23일 뉴스타파 취재진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대검찰청 특수활동비 기록을 수령해 청사 밖으로 나오고 있다.
사라진 3개의 장부, 74억 원어치 특활비기록 사라져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검찰이 제출한 특활비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검찰청은 특활비 증빙내역과 수령증 등 세가지 종류의 기록을 생산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세부 내용을 확인해 보니, 2017년 1월부터 4월까지 특활비 관련 기록 세 가지가 통째로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해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에는 세 가지 기록 중 두 개가 증발한 상태였다.
자료가 사라진 시기 동안 대검은 특활비를 얼마나 썼을까. 74억 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산출은 이렇게 했다.
대검이 밝힌 2017년 전체 특활비 집행 액수가 총 160억 원이다. 그리고 집행 기록이 남아있는 2017년 5월부터 12월까지 특활비 자료를 집계하면, 8개월간 대검이 집행한 특활비는 86억 원가량이다. 따라서 160억에서 86억을 뺀 금액인 74억 원의 국민 세금에 대한 사용 내역이 증발한 것이다. 74억 원의 특활비를 어디에 썼는지 확인할 길이 아예 없어진 것이다.
세 가지 변수가 가리키는 ‘무단 폐기’ 의혹
특수활동비도 엄연한 정부 예산의 하나이고, 예산 집행기록도 공공기록물로써 관리돼야 하는 점을 고려했을 때 검찰 특활비 집행 기록이 사라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3가지다. 1) 검찰이 해당 기록을 애초부터 만들지 않았거나 2)기록물을 생산했지만 중간에 폐기했거나 3) 분실한 경우이다.
먼저 첫번째 경우인 기록물을 전혀 생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2007년 11월 개정돼 계속 적용되는 국고금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재무관은 지출원인행위를 할 때 지출원인행위서를 작성하고 이를 지출원인행위부에 기재해야 한다. (제39조) 또 지출결의서 작성과 관련해 지출관은 지출결의서에 따라 지출하고 그 결과를 지출부에 기록해야 한다.(제44조)
이런 절차를 거친 뒤에야 정부 예산은 한국은행이 관리하는 국고금 계좌로 입금된다. 검찰의 특수활동비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지출원인행위서나 지출결의서 없이 특수활동비 예산이 검찰에 배정될 순 없다.
이 문서가 없이 세금이 쓰였다면 어떠한 절차도 없이 검찰이 원할 때마다 국고에서 대량의 현금을 찾아 썼다는 뜻이 된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다음 경우의 수는 기록물 폐기다. 이때도 문제는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뉴스타파와 3개 시민단체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직후인 지난 4월에 검찰이 특활비 기록을 폐기하는 상황에 대비했다. 곧바로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을 상대로 기록물 폐기 정보의 공개를 청구해 받아낸 것이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대검찰청의 폐기물 목록이 담긴 엑셀 파일 갈무리. 2017년 특수활동비 기록이 폐기됐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대검찰청 기록물 폐기 목록(2017~2022년) 특활비 내역 없어
정상적인 절차로 특활비 기록을 폐기했다면, 해당 폐기 정보가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한다. 대검찰청의 2017~2022년 치 기록물 폐기 목록을 확인한 결과, 특수활동비 관련 기록을 없앴다는 내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남은 경우의 수는 하나다. 검찰이 특수 활동비 기록을 분실했거나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무단 폐기했을 가능성이다. 공공기록물을 무단으로 폐기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돼 있다.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뉴스타파 전문위원)는 “기획재정부 지침상 아무리 특수활동비라고 하더라도 현금을 수령한 사람의 수령증이나 영수증, 집행내용 확인서 등을 남겨야 한다”며 “영수증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