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인텐션’인가?... 세월호 항적 조작과 앵커설 검증
2018년 07월 13일 17시 38분
뉴스타파가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의 세월호 3차 모형실험 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세월호 외력 침몰 가설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이며 사고 당시 세월호의 거동은 외력을 전제하지 않고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마린은 보고서 초안에서 “외력 가설은 기각됐다”고 명시적으로 기재했었지만, 선조위 내 외력TF의 요구에 따라 최종본에서는 이 표현을 삭제해 줬다는 사실도 취재 결과 확인됐다.
네덜란드의 해양연구소 마린은 선조위 내 외력TF의 의뢰로 지난 6월 말 실시한 3차 모형실험의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를 최근 제출했다. 지난달 25일에는 초안을, 30일에는 최종본을 각각 선조위로 보냈다. 이 보고서 속에는 선조위 외력TF가 제기한 세월호 침몰 가설의 핵심 내용과 그 검증 결과가 담겨 있다.
마린 3차 모형실험의 목표는 외력TF가 제기한 세월호 침몰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사고 당일 오전 8시 49분 무렵 세월호가 정상적인 우현 선회를 하던 도중 선체 좌현 핀안정기에 수중물체와의 충돌 내지는 접촉이 발생함으로써 우현으로 더욱 급격한 선회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선체의 횡경사가 가중되어 고박이 부실했던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린 끝에 세월호가 침몰에 이르렀다는 가설을 말한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세월호 모형선을 우현으로 선회시키면서 윈치로 힘을 가하여 세월호 사고 당시 AIS 데이터에 나타난 최대 15˚/s(초당 15도)의 급격한 선회율(ROT, Rate of Turn)이 구현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때 15˚/s의 ROT란 정부 AIS 항적 데이터 상 사고 당일 오전 8시 49분 44초부터 45초 사이에 세월호의 선수방향이 199도에서 213도로 급격히 회전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 선조위의 담당 조사팀은, 당시 선체 횡경사가 45도를 넘어서면서 AIS의 선수방향 값을 제공하는 자이로컴퍼스가 오작동을 일으킨 것일 뿐 실제로는 초당 15도의 선회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냈지만 외력TF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외력이 작용한 부위가 선체 좌현 핀안정기였을 것으로 가정된 경위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선체 인양 이후 가장 우선적인 조사가 진행된 곳은 선체 외판이었다. 선조위 조사관들과 사고조사 용역을 맡은 해외업체 브룩스벨, 그리고 인하대 등 국내 용역팀들에 의해 전방위적 조사가 있었지만 인양 과정에서 발생한 손상 외엔 외부충돌 흔적으로 볼 만한 선체 변형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좌현 핀안정기 조사 과정에서 인양과 무관한 것으로 보이는 구조 손상이 유일하게 발견됐다. 좌현 핀안정기는 인양빔을 끼워넣는 작업에 장애가 되었기 때문에 수중에서 절단했던 바 있다. 절단 부위 외에는 외형상 손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지만, 내부의 회전축에서 손상 흔적이 나왔다. 회전축이 한계각도인 25도를 크게 넘어 50.9도까지 돌아갔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물론 선조위 내에서 이 손상의 원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다. 담당 조사팀은, 세월호가 침몰하며 선체 좌측면부터 바닥에 닿는 과정에서 돌출돼 있던 핀안정기에 일정한 힘이 가해져 과도한 회전이 발생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즉, 좌현 핀안정기의 회전축 손상은 사고 당시가 아니라 침몰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력TF는 이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외부 물체와의 충돌이나 접촉에 따른 손상이라는 독자적인 가설을 세웠다.
이에 따라 외력TF는 마린 3차 모형실험에 앞서 이 핀안정기가 감내할 수 있는 힘의 크기를 추정하는 조사를 수행했다. 제조사인 영국 롤스로이스를 통해 조사한 결과 핀안정기가 부러지거나 휘거나 찌그러지는 등의 외형 손상이 없이 버틸 수 있는 외력의 최대값은 260톤 가량으로 추산됐다. 바로 이 힘의 크기가 마린 3차 실험에 적용되었다.
그런데 마린 모형실험의 준비 단계부터 외력TF의 가설은 이론적 난관에 부딪혔다. 마린은 실제 테스트에 앞서 CFD(Computational Fluid Dynamics, 전산유체역학) 수치해석을 실시했다. 선체를 15˚/s의 속도로 선회시킬 수 있는 힘의 크기를 수학적으로 사전 예측해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선체 진행 방향으로는 26,133톤, 진행 경로의 수직방향으로는 무려 232,763톤의 힘이 필요한 것으로 계산됐다. 이는 핀안정기가 파손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인 260톤의 무려 100~1000배에 해당한다. 반대로 말하면, 선체를 15˚/s의 속도로 선회시킬 정도의 힘이 가해진다면 핀안정기가 먼저 부러지게 된다는 의미였다.
이같은 사전 수치해석 결과가 나왔지만, 외력TF는 모형실험을 실시했다. 당시까지 조사됐던 세월호 GoM(복원성 수치)인 0.58로 세팅한 모형선을 선회시키면서 윈치를 이용해 핀안정기가 버텨낼 수 있는 260톤 이내의 힘을 가하는 실험이었다. 힘의 크기와 작용 각도, 작용 시간을 각각 달리하여 수십 차례의 실험을 반복했다.
실험 결과, 최대 260톤의 힘을 가했을 때 확인된 ROT(선회율)의 최대값은 2.7˚/s(초당 2.7도)에 불과했다. 외력TF가 확인하고자 했던 15˚/s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값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실험을 통해 얻어진 최대 ROT인 2.7˚/s는 좌현 핀안정기의 대각선 뒷쪽에서 힘을 가했을 때, 즉, 운항 중인 세월호의 왼쪽 뒷편에서 다가온 수중물체가 좌현 핀안정기 부분을 추돌하는 상황을 가정한 외력을 작용시켰을 때 얻어진 값이었다. 그런데 이 방향에서 힘을 가했더니 ROT는 증가했지만 횡경사 각도는 오히려 줄어들고 선체 속력이 빨라졌다. 이는 실제 발생했던 상황과 정반대의 결과였다. 사고 당시 세월호의 좌현 횡경사 각도가 급격히 커진 것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확정된 사실이며 그 당시 세월호의 속력이 크게 줄어든 것도 AIS 데이터 기록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외력을 가했을 때 ROT와 횡경사 각도, 속력의 변화라는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실제 상황에 부합해야 하지만, 오직 ROT 변화만 만족시키고 나머지 두 요소는 설명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마린은 보고서를 통해 위와 같은 문제점들을 일일이 지적하면서 외력TF가 세운 가설을 ‘비현실적 시나리오’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어 종합 결론을 통해, 세월호의 사고 당시 거동은 외력의 작용이 없이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고 당시 세월호의 복원성과 타각이 적절히 조합될 경우 AIS 항적과 유사한 선회가 나타날 수 있고, 화물 이동이 시작된 횡경사 18도에도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이상의 내용들이 기재된 마린 보고서 최종본과 함께, 그보다 닷새 전인 지난달 25일에 먼저 제출됐던 보고서 초안도 함께 입수했다. 그런데 이 초안에는 최종본에 언급된 것보다 훨씬 더 명확한 표현을 통해 외력 가설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마린 보고서 초안의 종합결론을 보면, “윈치로 가한 힘의 크기, 방향, 지속시간의 어떠한 현실적 조합으로도 선조위가 AIS 헤딩값에서 추출한 ROT 값에는 도달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급격한 ROT를 야기한 것이 외력이라는 가설은 기각된다”고 적시되어 있다. 모형실험을 담당한 전문기관으로서의 판단을 명시적으로 기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최종본에서는 이런 표현이 사라졌던 것일까.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는 선조위 외력TF의 요구 때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선조위 외력TF 소속의 한 조사관이 지난 7월 27일 마린 측에 보낸 이메일 내용을 입수했다. 메일을 보면 외력TF는 마린 보고서 초안의 내용들 가운데 6곳에 대해 코멘트를 달고 추가 설명이나 내용 수정, 혹은 삭제를 요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는 종합결론 부분에서 “외력 가설은 기각된다”는 언급이 담긴 내용 전체(chapter 5.2) 를 삭제해달라는 요구가 포함돼 있다.
삭제를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3차 실험은 외력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서 앞서 실시했던 1, 2차 실험과는 무관함에도 종합결론에는 앞선 실험에서 나타난 세월호의 항적 경향을 인용해 판단을 내리고 있다”면서, “선조위는 마린에게 종합결론을 내려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없으며, 이런 내용을 적는 것은 상호간에 합의된 과업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뉴스타파는 마린 보고서 작성자인 빅터 페라리 매니저에게 직접 연락해 최종보고서에서 ‘외력 가설 기각’ 표현이 삭제된 경위에 대해 질의했다. 그는 “마린은 독립적 연구기관이기 때문에 고객의 요구가 있다고 해서 결론을 바꾸거나 하지는 않는다”면서 “최종 보고서에서 ‘외력 가설 기각’ 표현이 삭제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내부 토론을 거쳐 결정한 사항”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외력TF 소속 조사관이 발송한 메일 내용을 이미 취재했다고 밝히자 그의 대답은 다소 달라졌다. 그는 “그 문제(종합결론 전체 삭제)에 대해 선조위와 조율 과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그것 때문에 결론을 바꾼 것은 아니다”라면서 “비록 형식적으로 ‘외력 가설 기각’ 표현을 최종본에서 빼주긴 했지만, 세월호의 선체 거동을 설명하기 위해 외력을 고려할 필요가 없으며, 외력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도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페라리 매니저는 “이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현 시점에서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곤란하다”며 “(선조위와의 계약관계가 끝나는) 8월 7일 이후에 정식 인터뷰를 진행했으면 한다”고 취재진에게 제안해 왔다.
종합하면, 마린은 선조위 외력TF가 의뢰한 외력 검증 테스트 결과에 대해 ‘외력 가설 기각’이라는 자신들의 판단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려 했지만, 외력TF의 요구로 내부 논의를 거쳐 이 표현을 삭제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당시 세월호의 거동은 외력을 적용시키지 않고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는 자신들의 입장엔 변함이 없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선조위 내 외력TF가 출범하게 된 건 ‘조타장치 이상설’과 ‘외력설’을 세월호 침몰 원인 조사 과제로 함께 공식화한다고 밝힌 지난 4월 13일 전원위원회 직후부터였다. 이동권 비상임위원이 TF 팀장, 장범선 비상임위원이 자문을 맡은 가운데 5~6명의 조사관이 투입되어 권영빈 제1소위원장과 상시 소통하는 체제로 운영되어 왔다.
외력TF는 2달여 간의 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당초 지난 7월 25일 전원위원회에서 발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날 어떤 언급도 없이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7월 25일은 ‘외력 가설 기각’ 표현이 담긴 마린의 보고서 초안이 선조위에 접수된 날이었다.
외력TF의 조사결과 발표는 김창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이틀 뒤인 7월 27일 전원위원회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이날 보고회를 마친 후에도 외력TF는 이 내용을 정식 조사보고서로 상정해 심의 의결를 거친 뒤 종합보고서에 포함될 공식 자료로 남길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결정을 유보했다. 바로 이날 외력TF는 마린에 ‘외력 가설 기각’ 표현에 대한 삭제를 요구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7월 30일 전원위원회에서 외력TF는 자신들의 활동 결과를 정식 조사보고서로 만들어 안건으로 상정했다. ‘외력 가설 기각’ 표현이 삭제된 마린 보고서 최종본이 이날 새벽 접수되고 난 뒤 이뤄진 일이었다. 외력TF가 상정한 보고서는 찬성 3인(권영빈 소위원장, 이동권 위원, 장범선 위원)과 반대 3인(김창준 위원장, 김영모 부위원장, 김철승 위원)의 입장을 병기한 채 심의 의결됐다.
이처럼 외력TF가 외력설을 공식적인 조사결과 보고서로 제출하는 과정에서 마린 보고서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선조위 외력TF의 세월호 침몰 가설은 오는 6일 선조위 활동 종료와 함께 발간될 종합보고서에 담기게 됐다. 외력TF를 주도했던 권영빈, 이동권, 장범선 위원이 종합보고서 집필진과 별개로 외력설 내용을 정리해 종합보고서에 별도의 장으로 삽입시키기로 한 것이다.
종합보고서 기획과 집필을 담당하고 있는 전치형 카이스트 교수 등 4명의 외부 집필진은 외력설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외부 집필진들은 선조위의 각종 조사보고서과 용역보고서 검토, 조사관들과의 토론회 참석 등을 거쳐 종합보고서 초안을 작성해 놓고 있었다. 여기에는, 중고선 도입 후 무리한 증개축으로 복원성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운항하던 중 사고 당일 조타장치 이상으로 통제불가능한 러더의 우현 급회전이 발생해 선체가 왼쪽으로 크게 급격히 기울어졌고 이로 인해 고박이 부실했던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며 횡경사가 가속화됨으로써 결국 침몰하게 됐다는 일련의 과정으로 세월호 침몰 원인이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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