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8개월 고양지청 특수활동비 869건 전수조사

2023년 10월 12일 13시 30분

뉴스타파와 3개 시민단체(세금도둑잡아라,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 시민행동), 그리고 5개 독립언론·공영방송(경남도민일보, 뉴스민, 뉴스하다, 부산MBC, 충청리뷰)이 ‘검찰예산검증 공동취재단’(공동취재단)을 꾸려 사상 처음으로 전국 67개 검찰청의 특수활동비 예산 검증에 들어갔습니다. 검찰의 특수활동비 부정 사용과 오남용에 관한 공동취재단의 취재 결과를 공개합니다. - 편집자 주

지방검찰청 단위 특수활동비 집행 실태 최초로 전수조사

뉴스타파와 3개 시민단체(세금도둑잡아라,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가 3년 5개월의 행정소송 끝에 검찰로부터 받아낸 특수활동비 집행 증빙자료는 모두 ‘먹칠 투성이'였다. 검찰은 ‘수사 기밀'이 노출 될 우려가 있다며, 증빙서류에 담긴 집행사유, 수령자 이름, 직함 등을 먹칠로 가렸다. 
검찰은 구체적 내역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특수활동비 집행을 잘 관리하고 있으니 믿어달라고 했다. 또한 검찰은 뉴스타파와 공동취재단의 검증으로 확인된 국정조사 격려금, 공기청정기 월 임대료, 전출 기념사진 제작 등 특활비 오남용과 부정 사용 사례는 일부 검찰청의 일탈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뉴스타파와 공동취재단은 전국 67개 지방검찰청 중 하나인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이 국민 세금으로 쓴 특수활동비 집행 기록 전체를 검증했다. 검증 대상은 2017년 9월부터 2023년 4월까지 5년 8개월치 950쪽 분량의 고양지청 특활비 기록으로, 집행 건수로는 869건이다. 지방검찰청 단위에서 특수활동비 집행의 실체를 전수조사 형태로 검증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특활비 집행사유별 지출 “정보교류 활동” 평균 60만 원, “검거활동” 평균 32만 원

▲고양지청의 특수활동비(2017.9.~2023.4.)를 집행사유 유형별로 분류했더니 “수사활동"에 쓴 금액은 전체의 49.2%를 차지했다.
뉴스타파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이 5년 8개월간(2017년 9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집행한 특수활동비 869건 중 761건(697건 판독, 64건 부분 판독)의 가려진 집행사유를 확인하고, 714건을 집행 유형별로 분류했다. 해당 기간 고양지청이 집행한 특수활동비는 총 3억 5,766만 5,300원이다. 집행사유는 “수사활동”(49.2%), “정보교류활동”(8.9%), “검거활동”(7%), “공판활동”(3.8%), “집행활동”(2.7%) 순으로 나타났다. 
그 중 “수사활동 지원" 또는 “수사업무 지원"이라고 집행사유에 적힌 지출 건은 529건으로 전체의 60.8%, 금액으로는 1억 7,606만 8,500원으로 전체의 49.23%를 차지했다. 수사활동을 지원하는데 쓰였다고 적힌 지출 건을 제외하면, 대부분 검사들이 누군가와 “정보교류 활동"을 한다는 명분으로, 또는 재판을 담당하는 검사에게 “공판활동"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특수활동비가 꾸준히 나갔다. 
특수활동비 집행사유 유형별로 건당 지출 금액을 추산했다. 건당 평균 지출 금액이 가장 큰 경우는 “정보교류활동"으로 약 60만 3,345원이었다. 반면 “검거활동"의 경우 대부분 집행과 수사관에게 지급됐는데, “정보교류활동"의 절반 수준인 건당 평균 32만 8,434원으로 확인됐다.

지청장 이임식 3일 전 일요일, 집행내용확인서 자체 생략하고 현금 150만 원 수령

고양지청이 공개한 특수활동비 집행내역기록부에 따르면, 2018년 7월 15일 일요일 누군가 “수사 및 정보 활동 등 경비집행의 목적달성에 현저히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어 집행내역확인서 작성을 생략”하고, 특수활동비로 현금 150만 원을 수령했다. 휴일에 누가 긴박한 기밀 수사라도 벌인 것일까. 그러나 검찰은 해당 날짜의 수령인 이름과 직함을 ‘수사 기밀'이라는 이유로 먹칠해 가렸다. 
뉴스타파와 공동취재단은 일요일에 기밀 수사를 하느라 집행내역도 생략한 채 현금수령한 사람을 알아내기 위해 검찰이 가린 알파벳 패턴의 잉크 뒤로 숨겨져 있는 글자를 판독 복원했다. 그리고 “김국일 지청장"이라는 여섯 음절을 확인했다.
▲고양지청에서 먹칠해 공개한 2018년 7월 특수활동비 집행내역기록부 중 7월 15일 현금수령한 사람의 이름과 직함 글씨를 복원하고 검사실 배치표와 대조해 “김국일 지청장"이라는 글씨를 확인했다.
복원된 여섯 글자에 따라 김국일 고양지청장이 ‘수사 목적 달성에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다’며 집행내역서를 생략하고 세금 150만 원을 받아갔다면, 김 지청장은 본인의 휴일 지출을 직접 결제한 셈이 된다. 그런데 ‘셀프 결재’로 특활비를 받아간 이 날은 김 지청장이 고양지청에서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한 이임식 사흘 전이었다.
이에 대해 김국일 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장은 “인사 발표 이후 두문불출하던 때”였다며 “일요일에 출근했을리 없고, (특활비 수령)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2018년 7월 15일(일요일) 수사기밀을 이유로 150만 원의 특수활동비를 현금으로 셀프 수령한 날은 김국일 지청장의 이임식이 있기 사흘 전이었다.

똑같은 사유로 똑같은 금액 나누는 ‘부서 나눠주기’ 반복 확인돼

2018년 8월 23일, 고양지청에서 100만 원 1건, 50만 원 4건의 특수활동비가 집행됐다. 이날 집행내역기록부에 까맣게 칠한 알파벳 패턴으로 가려진 수령인 이름과 직함은 “신호철 차장검사"로 복원됐다. 복원된 집행사유는 “수사 지휘업무 등 수사활동 지원”이었다. 특별히 어떤 수사에 필요해 집행한 것이 아니라 수사 지휘를 포함해 수사 관련 업무 전반의 지원업무를 한다는 명목으로 특수활동비가 집행된 것이다.
▲고양지청에서 먹칠해 공개한 2018년 8월 특수활동비 집행내역기록부 중 수령한 사람의 이름과 직함 글씨를 복원하고 검사실 배치표와 대조해 “신호철 차장검사"라는 글씨를 확인했다.
같은 날 집행된 50만 원짜리 4건의 집행사유도 복원했는데, 각각 “공안사건 수사활동 지원”, “환경범죄 수사활동 지원", “마약범죄 수사활동 지원", “조세범죄 수사활동 지원"으로 나타났다. 공안, 환경, 마약, 조세는 각각 고양지청 형사 1, 4, 2, 3부의 담당 업무에 해당한다. 고양지청 각 부서별 분장된 업무 역할을 명목으로 같은 금액의 특수활동비를 같은 날 똑같이 나눠 집행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특별히 기밀이 필요한 수사에 집행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2019년 11월 19일, “수사정보 교류활동 지원"이라는 동일한 집행사유로 5명이 100만 원씩 같은 금액의 특수활동비를 현금으로 수령했다. 이 날의 집행내역기록부에 가려졌던 수령인 이름과 직함을 복원해보니, “차장검사"와 “1, 2, 3, 4부장검사"로 확인됐다.
그다음 달인 2019년 12월 17일 역시 “수사정보 교류활동 지원"이라는 동일한 집행사유로 “2, 3, 4 부장검사"와 직함을 복원할 수 없었던 ‘불상의 1인’까지 총 4명이 똑같이 100만 원의 특수활동비를 현금으로 수령했다. 역시 ‘부서별 특활비 나눠주기 의혹’이 제기된다.

11월⋅12월 연간 지출액 29~44% 차지, ‘연말 몰아쓰기' 반복

뉴스타파가 지난 5년 8개월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이 쓴 특수활동비를 연간 지출 금액으로 살펴본 결과, 2020년에는 총지출이 2,700만 원에 불과하지만 2021년 7,800만 원으로 한 해만에 2.8배 늘어나는 등 집행 총액의 편차가 컸다. 
그러나 고양지청 특수활동비 연간 지출총액이 얼마가 됐든, 그해 11월과 12월에 대부분 몰려 집행된다는 사실은 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았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의 2017년 9월부터 2023년 4월까지 5년 8개월간 특수활동비 월별 지출총액을 그래프를 살펴보니 11월과 12월에 그래프가 항상 솟아있다.
고양지청이 공개한 5년 8개월간 전체의 특수활동비에 대한 월별 지출총액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어느 해든 11월과 12월에 항상 크게 솟아있다. 2018년 고양지청의 연간 특수활동비 지출총액은 5,176만 4,000원인데, 그중 11월과 12월 두 달 동안 2,300만 2,000원이 집행됐다. 연간 지출액의 절반 가까운 44.44%였다. 또 2019년 11월과 12월은 그해 사용액의 34.33%, 2020년 39.47% 2021년 40.93%, 2022년 29.08%로 나타나 특수활동비를 ‘연말에 몰아쓰는 행태’는 공개된 자료 기간 내내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고양지청이 공개한 모든 연도의 자료에서 11월⋅12월에 특수활동비를 몰아쓰는 경향이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고양지청이 자료를 공개한 5년 8개월간 특수활동비 자료 중 하루에 가장 많은 특활비가 지출된 날은 2017년 12월 26일이다. 이날 200만 원씩 2건, 100만 원씩 4건 등 총 800만 원이 집행됐다. 해당 6건에 대한 집행사유를 모두 복원했다. “검찰총장 수사지휘 지원" 1건, “검찰총장 수사활동 업무 지원” 3건, “검찰총장 국정수행 업무 지원” 2건으로 확인됐다. 검찰총장이 비정기적으로 고양지청에 내려 보낸 특수활동비를 각각 수사지휘, 수사활동, 국정수행 업무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6~8글자를 기재하고 백만 원 단위의 현금을 나눠가졌다.
고양지청이 가린 특활비 집행사유와 수령인의 직함을 모두 복원한 결과, 연말마다 백만 원 단위의 큰 금액을 여러 명이 동일하게 수령하는 패턴이 반복 확인됐다. 2019년 한 해 중 두 번째로 특수활동비를 많이 지출한 날인 12월 17일, 형사 2, 3, 4부장검사를 포함해 총 4명에게 “수사정보 교류활동 지원"을 명목으로 100만 원씩의 특수활동비가 집행됐다.
또 2020년 한 해 중 가장 많이 특수활동비를 지출한 12월 15일에도 형사 1, 2, 3부 부장검사를 포함해 총 4명이 150만 원씩 특수활동비를 받았다. 11월과 12월에 특수활동비 지출이 쏠리는 현상이 검찰 주장대로 연말에 기밀 수사가 많이 몰리기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이유다.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 무소용, 관행만 남아

뉴스타파와 공동취재단이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서 5년 8개월간 집행된 특수활동비의 모든 증빙서류 869건 중 761건의 집행사유를 해독한 결과, 그 중에는 ①공개돼서는 아니됐을 국가 안보나 ②어떤 수사 결과에 지장을 줄만한 중요한 비밀 ③보호받아야 할 특정인의 개인정보 같은 것은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관행적 나눠먹기 등 오남용 사례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등 그동안 검찰의 비공개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검찰 특수활동비의 민낯이 선연히 드러났을 뿐이다. 거의 대부분 현금으로 받아가며, 성의없이 반복적으로 두루뭉술하게 쓰인 집행사유, 부서 나눠쓰기, 연말 몰아쓰기 행태가 반복 확인됐다.
2017년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특수활동비를 봉투에 담아 법무부 검사들에게 나눠준 사실이 드러나고,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특수활동비 오남용 개선 대책안을 마련했다. 법무부가 2017년 8월 작성하고 다음 달인 9월 문무일 검찰총장이 대검 각 부서와 일선 검찰청에 통보한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 개선 방안> 공문이 그 대책안이다. 
이 제도 개선 방안에는 “기밀 유지 필요성이 낮거나 ⋯집행 사유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는 원칙적으로 카드를 사용"하라고 적혀 있지만,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의 특수활동비는 대부분 현금으로 집행됐다. 5년 8개월간 869건 특수활동비 집행 가운데 카드 사용은 30건에 불과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2017년 9월 대검 각 부서와 일선 검찰청에 통보한 <특수활동비 집행 제도개선 방안> 공문에는 기밀 유지 필요성이 낮거나 집행 사유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는 원칙적으로 카드를 사용하라고 적혀있다.
오유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선임간사는 “특수활동비 지침, 집행 실태 점검 등 특수활동비를 쉽게 쓰지 못하도록 한 모든 조치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마음대로 특수활동비를 지출했다”며 세금 오남용을 막기 위해 “특수활동비 증빙 서류를 공개하고 새로운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 특수활동비 증빙서류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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