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기록과 증언> ① '론스타는 산업자본'...2003년 금융당국은 정말 몰랐나

2022년 10월 19일 13시 10분

뉴스타파는 ‘외환은행을 헐값 매각, 불법 매각했다’는 의혹으로 시작해 검찰 수사와 재판, 국제분쟁으로까지 이어졌던 론스타 사건과 관련된 각종 기록과 증언 등을 <론스타 사건, 기록과 증언> 사이트에 공개한다. 지난 20년간 각종 논란과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이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뉴스타파가 공들여 발굴한 자료를 공개하고 공익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후원회원의 회비로 수집한 이 자료가 우리 사회의 공적 자산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①'론스타는 산업자본'...2003년 금융당국은 정말 몰랐나
지난 8월 31일,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결과가 나왔다.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 1650만 달러(한화 약 3000억 원)를 물어주라는 내용이었다.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2011년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팔고 떠난 직후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을 제기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사고 팔면서 4조 6000억 원의 이익을 챙겼다.
론스타 사건, 정확히 말해 ‘외환은행 헐값·불법 매각 의혹’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2005~2006년경 처음 나온 의혹은 외환은행을 의도적으로 부실은행으로 만들어, 헐값에 매각했고, 금융당국과 외환은행이 이 과정에서 BIS 자기자본비율 등을 조작했다는 것이었다.
2007년 이후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 문제가 추가로 나왔다.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 즉 산업자본이라면 우리나라 은행법 상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수 없는데도 금융당국이 이를 확인하지 않고 매각을 밀어 붙였다는 주장이었다. 이 의혹은 2011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팔고 떠날 때도,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을 제기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럼 2003년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는 비금융주력자였을까. 또 우리 금융당국은 이런 문제를 알고도 외환은행 매각을 추진했던 것일까. 또 2006년 당시 검찰은 이 문제를 어떻게 수사했을까.
지난 8월 31일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론스타가 제기한 국제투자분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론스타는 산업자본이었나?’…마지막 남은 ‘론스타 사건’의 퍼즐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3개월 전인 2003년 6월 30일, 당시 외환은행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세종 소속 변호사 3명은 12쪽 분량의 보고서를 만들어 외환은행에 전달했다. 제목은 ‘은행법상 외국인의 은행주식 한도초과 보유 자격에 관한 검토’. 문서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비금융회사의 자산 총액의 합계액이 2조 원 이상인 경우에는 비금융주력자로 인정되므로 은행 주식을 보유하는데 장애 사유가 될 수 있다…본건 거래와 관련하여 론스타가 영위하는 사업을 검토하여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법무법인 세종 보고서 (2003.6.30)
법무법인 세종은 20여 일 뒤 같은 문제를 지적한 문서를 외환은행에 이메일로 전달했다. 이메일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문제가 해소된다고 하더라도 비금융주력자와 관련된 문제는 여전히 남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재정경제부 등에서 비금융주력자에 관한 점을 들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무법인 세종 이메일 (2003.7.24)
이들 문서가 만들어질 당시 론스타는 외환은행에 대한 실사에 나서는 등 인수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두 개의 문서에 등장하는 표현인 ‘비금융주력자’는 금융자본이 아닌 산업자본을 뜻한다.
당시 우리나라 은행법은 비금융주력자, 즉 산업자본은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을 4% 이상 소유할 수 없고, 예외조항을 적용한다 해도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는 없다’(은행법 2조, 15조, 16조)고 정하고 있었다.
이 조항에 따라, 론스타가 산업자본으로 평가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외환은행의 주인이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외환은행의 법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들은 바로 이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에도, 2006년 국회와 감사원 등의 고발로 검찰이 론스타 사건을 대대적으로 수사했을 때도, 론스타가 산업자본인지 여부, 즉 외환은행을 애초에 인수할 자격이 있었는지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고, 크게 문제되지도 않았다. ‘론스타 사건’을 다룬 책 ‘투기자본의 천국’을 저술한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KBS 홍사훈의 경제쇼’에 나와 이 같이 말했다.
“론스타는 이미 2006년에 산업자본인 것으로 증거가 드러났습니다. 2006년에 이미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없는 것이 명확했고요. 중요한 건 2003년에,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에도 산업자본이었느냐가 중요한데, 정부가 그걸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거나 조사를 했음에도 묵인했거나 적당히 흘려보냈을 가능성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것이고요. 지금까지는 2003년에 명확하게 (론스타가) 산업자본이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은 상태에요.”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투기자본의 천국’ 저자, 2022.9.1)
론스타 사건을 오랫동안 추적해 온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 불법 인수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제일 먼저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였느냐, 따라서 외환은행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었느냐는 문제를 따져봤어야 합니다. 그렇게 했다면 제대로 법을 집행하고 국민의 이익도 지킬 수 있었는데 못 한 겁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뉴스타파가 입수한 '론스타 사건' 검찰 수사 기록과 공판 기록.

“론스타 펀드는 부동산과 부실자산에 투자”...금융감독위원회 보고서 

문제는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론스타가 국내 금융기관을 소유할 수 없는 비금융주력자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는 데 있다.  
당시 은행법은 비금융주력자의 기준을 두 가지로 보고 있었다. 첫째, 자본총액의 25% 이상이 비금융회사에 들어가 있는 경우. 둘째, 비금융회사에 2조 원이 넘는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경우였다. 그런데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 펀드 Ⅳ는 국내에만 극동건설(7000억 원대), 서울 강남 스타타워(6000억 원대) 외에도 일본에 1조 원이 넘는 부동산과 사업체를 소유하는 등 총 2조 원이 넘는 산업자본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론스타의 실체가 제대로 조사되고 평가됐다면 외환은행 인수는 불가능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했던 금융당국은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당시 론스타가 은행을 소유할 자격이 없는 산업자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알았지만 모른 체 하고 매각을 진행했던 것일까. 이 의문을 풀어줄 단서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직전인 2003년 7월 7일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작성된 문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은행감독과가 만든 ‘외환은행 주식매각 관련 자격요건 검토’란 제목의 문건에는 론스타 펀드 Ⅳ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돼 있다.   
론스타는 80년대말 미국 텍사스에 설립된 부실자산 투자전문 펀드로서 현재 42.5억불 규모의 론스타 펀드 Ⅳ를 통해 유럽 및 아시아 등에서 부동산과 부실자산 등을 투자.

금융감독위원회 문서 (2003.7.7)
이 문서는 당시 금융감독위원회가 론스타 펀드의 실체, 규모 등을 대략 알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있는 금융주력자’인지 여부를 따져볼 수 있는 정도의 자료는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 문서를 작성한 금융감독위원회는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한 기관으로,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인지 아닌지, 그래서 외환은행을 사들일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봐야 할 공적 책임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런 정황 증거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는데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결정한 금융당국은 별다른 조사없이 론스타가 산업자본이 아니라고 판단해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했고, 또 9년 뒤인 2011년 론스타가 아무 문제없이 외환은행을 팔고 우리나라를 떠나도록 도왔다.
그럼 2006년 외환은행의 헐값 매각, 불법 매각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뤘을까.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사실을, 따라서 은행법을 어기고 외환은행 매각이 추진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을까. 뉴스타파는 검찰이 100명이 넘는 수사인력을 투입했던 론스타 사건의 수사, 재판 기록에서 새롭게 확인한 내용을 이어서 보도한다.
제작진
취재한상진 최윤원 송원근 김지연
영상 취재정형민 김기철 오준식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