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영 기자의 독일 사이버 정책 연수기 II. "이 여행 증명서의 소지자는 이스라엘 시민이 아닙니다"
2014년 08월 13일 15시 38분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거대한 색유리창(Stained Glass)의 모습이 생경하다.동양의 이방인에게는 낯선 건축양식이기도 했지만 색유리창에 묘사된 풍경과 인물들이 특이했다. 여기는 독일 베를린의 한 명문 경영학 대학원(European School of Management and Technology). 과거 동베를린 건물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놨다. 그래도 아무리 그렇다고 “영원히 앞으로 전진하자”는 문구와 레닌의 얼굴이 들어있는 사회주의 색채 물씬 풍기는 동독의 색유리창 예술품을 그대로 놔둔것을 어찌 봐야 할까?
참을 수 없는 궁금증.궁금하면 물어볼 수 밖에 없다.
"이건 뭐냐? 경영대학원에 사회주의 예술?"
학교 가이드를 자청한 독일 학생은 “과거를 보존하기 위해서”라고 답했고,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한 독일인 기자는 이렇게 툭 내뱉었다.
자본주의가 이겼다고 자랑하는 거지.
어느 말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끄러운 과거이든 영광스러운 역사이든, 원형은 최대한 보존하고 내부만 현대적으로 바꾼 이런 건물들은 베를린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건물 내부 복도도 “과거”의 냄새가 물씬 난다. 높고 기다란 복도에 적막함이 깃들면 금방이라도 KGB나 게슈타포가 튀어나올 것 같다.
이렇게 비밀스러운 분위기때문만은 아니었다. 필자는 이 곳에서 이번 연수 기간 동안 가장 놀랄만한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산드로 가이켄 박사 (Dr.Sandro Gayken).
위 사이트에 나타난 그의 경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유럽 최고의 군사 첩보 관련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북대서양 조약기구, 나토(NATO)에서는 직접 사이버 보안 관련 업무를 담당했고 현재도 나토와 G8, EU, IAEA 등에 보안 관련 자문을 해 주고 있다.
그가 세계 각처에서 인터넷으로 온라인 미디어를 활성화시켜보겠다고 온 우리들에게 강조한 것은 딱 한 가지다.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다 뚫린다,세상에 비밀은 없다, 정말 확실히 ‘문제아’가 되어서 정부가 언론을 쉽사리 탄압하지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아예 인터넷을 하지 말라”였다.
그는 아직도 군사 첩보 전문가 등과 접촉하고 있었으며 그들과 만날 때는 어떤 디지털 기기도 휴대하지 않고,목소리를 식별할 수 없도록 방해 전파가 흘러나오는 매우 두꺼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밀폐된 방에서 만난다고 했다.
그가 묘사한 바에 따르면 정보기관들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들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얻어낼 능력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VGA단자에 보이지 않게 아주 조그마한 칩 하나만 꽂아놓아도 그 단자에 꽂아있는 칩을 통해 그 방에서 하는 업무보고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도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가령 청와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주요 업무들 역시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에 의해 탐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또, 최근 프랑스에서 개발한 사이버 보안 기술은 가령 중국이 미국의 기업이나 국가 정보를 빼내기 위해 해킹을 하고 있을 때 이를 탐지해서 중국과 미국의 사이버 공격과 방어의 과정, 기술들을 모두 복제해 버린 뒤 이후 똑같은 방법으로 미국이나 타국을 공격하면 그것이 마치 중국에 의한 공격인 것처럼 오판하게 만드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군사첩보나 인터넷 보안,사이버 해킹 등이 가장 발달된 나라로 러시아, 중국, 미국, 프랑스, 이스라엘, 루마니아, 시리아 등을 들었다.한국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 그리고 현재도 언론의 자유가 극히 미약한 나라들은 과거 냉전시대 소련으로부터 배운 군사첩보 기술을 사이버 공간에 그대로 접목해 ‘여론 통제용’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인터넷과 보안기술의 발달로 감시나 정찰, 스파이 활동이 매우 쉬워졌고, 비용도 싸졌으며 더욱 광범위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과 정보기관 등이 보안 등을 이유로 관련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을 찾고 있지만 그게 꼭 보안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그의 말 속에는 인터넷을 통한 자유나 정보의 평등이 아닌, 글로벌 기업이나 국가를 통한 ‘빅 브라더’식의 감시나 통제가 훨씬 더 쉬운 사회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배어 있었다.
강연 도중 아직도 미국 첩보기관 등에 의한 주요국가들 대통령이나 수상에 대한 감시나 도청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거야 너무나 뻔하지. 그걸 왜 그만둬?”라고 반문하던 산드로 박사에게 강연 직후 정말 물어보고 싶었지만 낯 부끄러워 물어보지 못한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 16일 수요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사실상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해서 큰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당신 말대로라면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같은 나라들의 첩보 기관들은 알 수 있겠네."
혹시나 해서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필자에게 그는 애처롭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은 아마도 알고 있을 것이다(Highly Possible)
어쩌면 우리의 지금 상황은 지금 아무도 모르겠지 하며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고 있지만 엉덩이는 완전히 발가벗겨진 타조의 신세인지도 모르겠다.
최경영 기자는 지난 8월 3일부터 10일까지 독일연방정부 초청으로 독일의 사이버 정책 등에(Visitors Programme of The Federal Government-Dialogue with Germany) 관한 5일 동안의 연수에 참여했습니다.비행기 왕복 항공료를 포함한 독일 베를린 현지의 숙박과 식비 등 일체의 경비는 독일연방정부의 후원이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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