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감시

[37회] 잃을 게 없다 vs 읽을 게 없다

2012년 12월 08일 08시 06분

<앵커멘트>

지난 4일 대선 후보들 간에 첫 TV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세 후보가 나왔지만 이 날 토론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두 여성 후보간의 논쟁이었습니다. 이정희 후보가 주로 공격했고, 박근혜 후보는 쩔쩔맸습니다. 이를 지켜본 시청자들의 반응은 제각각. 공중파 방송과 보수 신문들의 보도는 제멋대로였습니다.

@ 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1차 토론회 12월 4일

지난 4일 18대 대통령 선거 TV 토론 직후의 사진입니다. 박근혜 후보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이정희 후보는 밝게 웃고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표정은 담담합니다. 다음 날 기성 거대 신문사들은 반 노골적으로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이정희 후보가 정말 미웠나 봅니다. 하지만 직접 TV 토론을 본 시청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이번 토론을 이렇게 비유 했습니다.

“여자 1호는 여자 3호가 밉다. 아주 밉다.”

“여자 1호 : 여자 3호는 왜 왔어요?”
“여자 3호 : 너 떨어뜨리려고 나왔어요.”
“남자 2호 : 제발 싸우지 맙시다.”
“여자 2호 : 난 잃을 게 없다.”
“여자 1호 : 난 읽을 게 없다.”
“남자 1호 : 난 낄 데가 없다.”

누리꾼들의 솔직한 평가엔 유머가 배어있습니다.

공중파 방송 시청률만 따져도 무려 36.2%가 나온 대선 TV 토론회. 5년 전 대통령 선거의 첫 토론회 시청률보다 12% 포인트 이상 높게 나왔습니다. 예상 밖의 흥행이었습니다. 이정희 후보의 공격적 토론 방식이 주목 받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정희]
“먼저 토론의 기본적인 예의와 준비를 갖춰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저희 당의 의원님들 성함은 김석기 이재연 의원이 아니시고 네 이석기 김재연 의원님이십니다.”
(미안합니다.)
“네 분명하게 해주시고요”

“박근혜 후보가 보여줬던 것처럼 전태일 열사 동상에 헌화 하겠다고 쌍용차 노동자의 멱살을 잡아 끌어내는 것, 소통이 아니죠, 불통입니다.”

“유신독재의 퍼스트 레이디가 청와대에 가면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 여왕 됩니다.”

“친일의 뿌리, 독재의 과거, 민생 외면 말바꾸기, 각종 비리 백화점, 꼬리 자르기, 툭하면 색깔론, 이 구시대 정치 누가 만들었습니까, 새누리당 아닙니까? 박근혜 후보 새투리당이 정치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말로만 민중들을 이야기 하지 빵 없으면 과자 먹으면 되지 이렇게 했던 마리 앙뜨와네뜨하고 다를 일이 없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박근혜 후보는 공보물에도 전 퍼스트 레이디라고 쓰셨다면서요, 유신의 퍼스트 레이셨죠.”

(우리 이정희 후보께서는 오늘 아주 작정을 하고 네거티브를 어떻게든지 해서 이 박근혜라는 사람을 어떻게든지 이번에 좀 내려앉혀야 되겠다고 작정을 하고 나오신 것 같아요.“

이정희 후보의 공격적 태도가 지나쳤다는 비판적 의견도 많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정견발표회 같은 형식적 TV 토론이 토론의 전형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이광재 한국 매니페스토 본부 사무총장]
“미국의 토론은 개싸움 토론을 붙이죠. 그 이유는 논쟁을 통해서 변별력을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우리나라 언론들은 늘 근사한 토론들을 원하는데 이거는 토론이 아니라 정견발표회에요. 토론이라는 건 치고 받는 게 토론이고 그 속에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거고요, 다만 룰에 의해서 정확하게 하라는 것이 하나고..”

서구 민주주의에서 정치인들의 치열한 토론은 일반적입니다.

@ CNN 토론장면

언론이 TV 토론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정치인들이 사실에 근거해 논쟁 하는지 여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공격한 발언들 가운데 과연 사실이 아닌 게 있었는가.

“전두환 정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쓰던 돈이라면서 박근혜 후보에게 6억원 줬다고 스스로 받았다고 하셨잖아요? 당시 은마아파트 30채 살 수 있는 돈이었다는 거 아닙니까?”
(6억이나 이런 거에도 얘기를 하셨는데 사실은 그 당시에 그 아버지도 그렇게 이제 흉탄에 돌아가시고 나서 어린 동생들과 그 살 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이런 거 아무 걱정이 문제가 없으니까 좀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해주겠다 할 때 뭐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또 그거는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식도 없고 또 아무 그런 그 어떤 가족도 없는 상황에서 나중에 그것은 다 사회에 환원을 할 것입니다.)

집권 여당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공중파 방송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실들이었습니다. 특히 그동안 모두가 알았으면서도 쉬쉬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각이 박근혜 후보 면전에서 거론된 건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충성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까기 마사오, 누군지 아실 겁니다. 한국 이름 박정희. 해방되자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고는 4대 매국 한일협정 밀어붙인 장본인입니다. 좌경영공으로부터 나라 지킨다면서 유신독재 철권 휘둘렀습니다. 뿌리는 속일 수 없습니다.”

@ MBC 박경재 시사토론 / 박근혜氏 아버지를 말한다 1989년 5월 19일 방송

박근혜 후보는 지난 8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 체제를 옹호한 바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주국방과 자립경제를 그 기간 안에 이루기 위해서 아버지가 유신을 하신 것이기 때문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비판한 사람들이 오히려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며 그런 역사를 바로잡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런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에요.”

대통령 후보가 된 뒤 한 발 물러서긴 했지만 박 후보의 생각이 정말 얼마나 바뀌었는지 확인하긴 어렵습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의견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사실의 문제가 언급된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박근혜 후보가 청와대에서 나올 때 6억을 받았다 라든가, ‘다카키 마사오’라는 이름으로 그 일제 강점기 동안에 박정희 前 대통령이 했던 행동이 과연 박정희 前 대통령을 평가하는데에 필요한 정보인지 아닌지 그런 것들이 전혀 언급이 안 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은 그게 언급할만한 가치가 없거나 또는 보도해서는 안 되는 내용이 아니라 특정 후보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안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이정희 후보가 언급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각과 박근혜 후보의 6억원 수수는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장 아픈 부분을 공격당한 박근혜 후보는 이정희 후보를 특유의 색깔론으로 되받아쳤습니다. 애국가도 안 부르는 대통령 후보라고 공격 했습니다.

“근데 이정희 후보와 통합 진보당은 국기에 대한 경례도 하지 않고 또 애국가도 부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를 못 보셨던 모양입니다. 제가 당 대표로서 국가 행사에서 이런 국가 차원의 공식의례들을 다 함께 했고 그 텔레비전에도 방송이 됐는데 왜 기억을 못 하시고 지금 이 질문을 하시는지 저는 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좀 정확하게 아시고 질문하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 제 66주년 광복절 경축식 - 애국가 부르는 이정희

그러나 사실은 달랐습니다.

보수 신문을 인용한 박 후보의 색깔론은 계속 됐습니다.

“그 애국가를 불렀다 그러셨는데 그 당에 속해있는 의원들 중에서 이제 그것을 거부하는 의원들이 있기 때문에 혼자만..”
(알고 말씀하셔야 됩니다. 그건 사실과 전혀 다른 말씀입니다.)
(준비를 잘 해갖고 오셨어야죠.)
“아니 그거는 뭐 신문에도 다 보도 된 걸 여기서 아니라고만 해갖고 될 일은 아니고요..”

하지만 이도 딱히 사실이라 말하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MBC와 친 여당성향의 신문사들은 급하게 실시한 여론조사를 근거로 제시하며 박근혜 후보가 토론의 승자였다고 평가 했습니다. 공격당한 박근혜 후보를 어떻게든 보호하려는 정파색이 드러났습니다.

[이광재 한국 매니페스토 본부 사무총장]
“이명박 대통령 당시 서울시장 후보와 김민석 후보가 토론을 했어요. 그때 누가 뭐래도 김민석 후보가 원사이드하게 잘했다라는 평가였는데 그때 같이 토론을 봤던 이제 아줌마 주부 모니터들하고 우리가 이 토론에 대해서 한 번 논의해보자 얘길 했는데 아줌마들 90% 가까이가 무엇을 지적하냐면 눈 찢어졌어, 입꼬리가 내려갔어, 쟤 얘기할 때 말투가 어때 뭐 이런 얘기들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논리적이었냐 아니냐가 아니고 그러면서 김민석 후보한테 네거티브하게 하는 아주머니들이 많았는데 ‘쟤는 입꼬리가 내려가고, 말 하는 걸 보니까 이기적이야, 감성이 메말랐어’ 이런 감성적인, 그러니까 정성적인 평가를 하시더라는 거예요.”

박근혜 후보는 그 동안 TV 토론을 기피해왔습니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이전에는 단일화 이후로 양자토론을 미뤘고.

@ 11월 7일 인터뷰

[백기승 새누리당 공보위원]
(11월 25일 전까지 단일화를 하고, 공영방송사에서 뭘 하겠다.. 양자 토론을 하자.)
“만드세요.”
(하실 의향이 있으세요?)
“아 그럼 지금 못할 게 뭐 있습니까 하시면 되죠.”

단일화 이후에는 유세 일정 때문에 양자 토론을 거부했습니다.

@ SBS 출발 모닝와이드 11월 29일

[박선규 새누리당 선대위 대변인]
“박근혜 후보는 토론을 기피하지 않습니다. 상대 후보가 너무 늦게 결정되면서 시간이 촉박해졌고..”

이번 토론으로 이정희 후보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엔 선관위에서 정한 법정선거토론까지 문제삼고 있습니다. 이정희 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규정에 따라 토론회에 나온 대통령 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 CBS 김현정의 뉴스쇼 11월 6일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
(이정희 후보는 억지로 해서 거기 들어간 것은 아니고 선관위에서 정한 법에 의해서 5석의 주인공으로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제가 질문을 드렸다고 설명을 드리고요.)
“네 근데 저는 선관위가 앞으로 법을 바꿔야 된다고, 앞으로 토론은 저는 그런 사람은 끼우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두 번의 법정토론은 박-문 양자대결로 가야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덩달아 언론도 새누리당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 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TV 토론을 거부할 때는 거의 비판하지 않았던 언론사들이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지지율이 낮은 데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자격으로 토론에 참가한 것이 문제다라고 얘길 한다면 지지율이 거의 비슷한 후보들끼리 토론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한다면 그런 토론을 하자고 할 때 박근혜 후보가 제가 알기로는 분명히 거부를 했어요. 그랬을 때 사실은 그 지금의 그런 이정희 후보가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언론들은 그 당시에는 왜 안 하느냐고 얘기를 했어야 마땅한 거죠. 따라서 과거의 그 언론들이 보도했던 보도 태도와 지금의 보도 태도가 일관적이지 못하다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지적은 객관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후보와 관련해서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고 혐의를 받아도 무방하다라고 생각합니다.”

5년 전에도 유권자들은 대통령 후보를 제대로 검증받지 못 했습니다.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도 토론을 기피 했습니다. TV 토론은 대통령 후보에 대한 검증의 장입니다.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토론은 지금보다 더 치열해져도 무방합니다. 지난 5년의 결과, 만족한 선택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유권자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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