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측근 녹음파일...'캠프 공약' 수정하고 인사 개입한 정황

2024년 11월 03일 10시 00분

2024년 11월 03일 10시 00분

뉴스타파는 김건희 여사가 자신의 지인을 통해 윤석열 캠프의 공약 작성에 관여한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을 입수했다.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 정책총괄지원실장이었던 신용한 전 서원대 석좌교수(이하 정책총괄)는 "김동조 당시 후보 메시지총괄이 김건희 여사의 지인에게 전화해서 얘기를 들어보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실제로 통화가 이뤄졌고, 문화·예술 공약 일부가 수정됐다. 김건희 여사 주변 인물들이 대선 캠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사례가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동조 캠프 메시지총괄은 대통령실 국정메시지비서관을 거쳐 현재는 국정기획비서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주식 거래 전문가로 공직이나 행정 업무 경력은 없던 그가 비서관으로 전격 발탁된 배후로 김건희 여사가 지목된다. 김 비서관은 김 여사가 운영한 코바나컨텐츠 전시회에서 도슨트(전시 설명가)로 활동한 사실이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대통령실 인적 쇄신을 요구하며 김 비서관의 실명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비서관은 김건희 여사의 '비서실장'으로 불릴 만큼, 측근 중의 측근으로 꼽힌다. 올해 대통령실 재산 공개 대상자 중 가장 많은 재산(329억 원)을 신고한 인물이기도 하다. 
뉴스타파 보도 화면.

신용한 외장하드서 발견된 녹음파일..."사모 지인이니까 통화해서 잘 들어줘라" 

신용한 정책총괄은 윤석열 캠프에서 정책 전문가들과 공약을 만들고 후보에게 보고하는 실무 책임자였다. 대선을 20일 앞둔 2022년 2월 16일, 김동조 메시지총괄이 갑자기 전화번호 하나를 건네며 "한○○ 씨가 (윤석열) 후보 사모의 지인이니까 통화를 해서 잘 들어줘라 당부했다"고 한다. 이후 한 씨와 통화하며 녹음했고, 관련 기록을 휴대전화에 남겼다.  
실제로 그의 휴대전화 연락처 정보에는 '2022년 2월 16일', '김동조 대표 소개' 그리고 '김건희 사모 지인'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녹음파일은 신 정책총괄의 외장하드에서 발견됐다. 파일 정보에 따르면 한 씨와의 통화는 2022년 2월 16일 오후 6시 28분부터 약 10분간 이뤄졌다. 
"(김 비서관이) 나한테 소개하자마자 내가 전화를 한 거지. (연락처 이름 옆에 적혀 있는) 이 별표는 내가 만나본 적 없다는 사람의 표시야. 통화만 한 거야. '(김동조가) 사모(김건희) 지인이니까 통화를 해서 잘 들어줘라'라고 말을 했었어."

신용한 전 서원대 석좌교수 (윤석열 캠프 정책총괄지원실장)

미공개 공약 미리 보고, 특정 인사 배제 요구...이틀 뒤 실제로 수정된 공약

신 정책총괄과 한 씨의 통화 녹취록을 보면, 한 씨는 윤석열 후보의 문화·예술 분야 공약이 공식 발표되기 전에 미리 내용을 받아봤다. 한 씨는 통화에서 "김동조 선생님(메시지총괄)으로부터 기초안을 받았다"면서 자신이 팩트체크(사실 확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녹취록에서 한 씨는 문화·예술 공약 기초안에 담긴 예술인 관련 법 개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서, 숫자나 각주 같은 세부 내용까지 면밀하게 지적했다. 이어 윤석열 캠프에서 임명한 특정 인사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했고, 이재명 쪽 인물이라며 사실상 배제를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정작 한 씨는 캠프에서 어떠한 직함도 갖고 있지 않았다. 관련 분야 자문 위원으로 임명된 사실도 없었다.
통화 이틀 뒤인 2022년 2월 18일, 윤석열 캠프는 문화·예술 공약을 발표했다. 뉴스타파가 공약 기초안과 발표된 최종안을 비교해보니, 한 씨가 통화에서 지적한 내용 중 일부는 실제로 반영됐다.  
● 한○○ : 제가 그분한테 김동조 선생님한테 제가 기초안은 받았습니다. 오전에. 그래서 제가 그거를 좀 한번 팩트체크를 좀 해달라고는 부탁을 드려서 내일까지 하려고 했는데 기간이 언제냐고 물어보니 (김동조 선생님이) 몰라가지고. 이 법이 실질적으로는 이게 양쪽을 다 봐야 되잖아요. 고용주와 고용인 둘 다 봐야 되는 부분이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불공정하다는 것들이 예를 들면 작사라든가 기업에서의 문제점이 되게 많이 도래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중략)

● 한○○
 : 임ㅇㅇ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공연 예술계 쪽에서는 전통 문화 예술 쪽에서는 원로이신데 이분은 원래 문재인 정부 쪽에서 일을 하고 계시거든요. (이재명) 선거 활동도 열심히 하고 계시고 그런데 그분한테 무슨 문화특보 특보 무슨 선대위 특보 임명장이 날아갔나 봐요.

○ 신용한 정책총괄 : 
예. 그러니까 그분에 대해서 임명장이 잘못 갔다는 말씀이신가요?
 
● 한○○ : 예. 그분은 이쪽인데 이재명 쪽인데 문재인 정부 때 기관장을 하시고.  

신용한-한모씨 통화 녹취록 중 (2022.2.16.)

문화예술 공약 수정 전후 비교.

대통령 취임식 등 굵직한 정부 행사 연출한 한 씨는 '허위 경력' 논란 인물 

한 씨는 문화·예술 공연 연출자다. 대선 직후 한 씨는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위촉됐고, 대통령 취임식 사전 행사를 연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 사전 행사를 연출한 것인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이후 100억 원 규모의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막식 등 굵직한 정부 행사를 연출했는데, 이때도 언론에서 한 씨의 허위 경력 의혹이 불거진 사실이 있다. 별다른 공모 절차 없이 총연출자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한 씨를 만나 신용한 정책총괄과 통화한 경위와 이유를 물었다. 한 씨는 우선 신 총괄과 통화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녹음파일이 존재한다고 말하자, "통화를 실제 나눴더라도 문화·예술 현장에 대한 소신 발언을 했던 것"이라면서 말을 바꿨다. 또 한 씨는 김건희 여사와 김동조 비서관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녹음파일에서 한 씨는 '김동조 선생님'을 스스로 언급하고 있다. 
" (제가) 예술인이기 때문에 (신 정책총괄이 제게) 예술인 고용보험 이런 걸 물어보신 거잖아요. 그리고 김동조라는 분이 전화번호를 줘서 전화했다? 사실 그때 김동조라는 분이 계셨는지도 저는 정말 몰랐거든요. 그럼 전 그분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왜 내 전화번호를 줬는지. 좋은 의견을 반영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뭐요? 그 말한 게 잘못된 건가요?"

 공연 연출자 한모씨 입장
물론 김동조 메시지총괄이 한 씨가 김건희 여사의 지인이라고 거짓말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대선 후 한 씨의 행보를 보면 김건희 여사가 배후에 있을 확률이 훨씬 더 높아 보인다. 일련의 의혹이 사실이라면, 김건희 여사가 자신의 지인을 내세워 대선 공약과 캠프 인사에 관여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한 씨가 대형 정부 행사를 잇따라 연출한 배경도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뉴스타파는 김건희 여사의 반론을 받기 위해 대통령실 사실 관계를 묻고 반론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김동조 국정기획비서관에게도 수차례 연락했지만 현재까지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제작진
취재봉지욱 이명선
영상취재김기철 김희주
리서치차우형
편집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