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교수 임용 앞두고 업적 부풀리기 의혹

2022년 04월 21일 15시 57분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정부출연 연구기관 재직 시절, 자신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연구 보고서를 출처 표기 없이 베껴 논문을 만들고, 학술지에 다시 게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후보자는 이후 출처 표기 없이 베껴서 만든 이 논문을 숭실대학교 교수 채용에 연구업적으로 제출해 점수를 인정받고 교수에 임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발표한 자신의 연구 성과물을 그대로 베껴 논문으로 만들고, 출처 표기 없이 다시 학술지에 내는 행위를 '부당한 중복게재'라고 부른다. 학계에서는 금지하는 연구 부정 행위이다. 김 후보자가 숭실대 교수 채용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연구업적을 부풀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 측은 학회가 중복게재 금지 규정을 만들기 이전에 이루어진 투고였고, 따라서 연구 부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자의 논문 투고는 중복게재를 금지하는 학회의 연구윤리 제정 7개월 전에 이뤄졌다. 
출처를 밝히지 않는 중복게재는 남의 자료를 훔치는 표절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연구인 것처럼 독자를 속이는 중대한 부정행위이다. 따라서 금지 규정이 있든 없든, 연구자가 결코 어겨서는 안 되는 기본 윤리에 속한다. 다른 곳에 이미 발표되거나 투고한 적이 없는 '독창적인 논문'만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이 모든 학계의 오랜 불문율이다. 
▲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김현숙 후보자는 국회의원을 지낸 경제학자다. 2003년 7월부터 2007년 8월까지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을 거쳐, 2007년 9월에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전임강사, 즉, 교수로 채용됐다. 
그해 5월, 숭실대가 발표한 교수 채용 공고를 보면, 교수 지원자에게 2002년 9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최근 5년 이내의 논문, 저서 등 연구업적을 내도록 했다. 그렇다면 김 후보자는 어떤 연구업적을 제출하고 교수직에 합격했을까?
▲ 숭실대학교 교수 채용 공고(2005년 5월)
뉴스타파는 그 시기 김 후보자의 연구업적을 추적했다. 김 후보자 본인 홈페이지는 물론, 한국연구자정보, 한국연구정보서비스 등을 샅샅이 확인했다. 
▲ 김현숙 후보자의 2002년 9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연구업적
해당 기간(2002년 9월~2007년 5월 17일)에서 확인되는 김 후보자의 연구업적은 모두 6건이었다. 해외 학술지에 발표한 SCI급 영어 논문 1건, KCI급을 포함해 국내 학술지 논문 2건, 나머지 3건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재직 시절에 쓴 연구보고서였다. 
● 소득과 주택자산 소유분포에 관한 연구 (2005.12 / 한국조세연구원)
● 우리나라 가구의 소득과 주택자산 소유분포 분석 (2006.6 / 한국여성경제학회 여성경제연구)
● 여성노동공급 활성화를 위한 소득세 개편방안 연구 (2006.12 / 한국조세연구원)
● 장기적 인적자본 형성을 위한 조세 재정정책 (2006.12 / 한국조세연구원)
Market Power and Network Constraint in a Deregulated Electricity Market (2007.4 / IAEE Energy Journal)
자녀세액공제제도 도입이 기혼여성 노동공급에 미치는 영향 (2007.5 / 한국재정학회 공공경제)
이 6건 가운데, 김 후보자는 숭실대에 두 건을 제출했다. 채용 평가에서 점수를 인정받을 수 있는 KCI급 논문 1건, SCI급 논문 1건이다. 점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연구 보고서 3건은 제외했다. 또 그때까지 KCI급 학술지에 등재돼 있지 않는 학술지 발표 논문 1건도 뺐다. 
그런데 뉴스타파의 취재 결과, 김 후보자가 숭실대에 제출한 KCI급 논문이 이전 김 후보자의 연구물을 출처 표기 없이 그대로 베낀 이른바 '재탕 논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의 논문은 <자녀세액 공제제도 도입이 기혼여성 노동 공급에 미치는 영향>이다. 김 후보자가 숭실대에 채용되기 직전인 2007년 5월, 한국재정학회의 학술지 '공공경제'에 발표했다. 
이 논문은 2006년 12월, 김 후보자가 공동 저자로 참여했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공식 연구 발간물 <여성노동공급 활성화를 위한 소득세 개편방안 연구>를 48% 베꼈다. 분석 결과를 정리한 표, 그래프는 물론, 논문의 핵심인 결론 부분도 전체 17문장 중 14문장이 정확히 일치했다. 하지만 인용이나 출처 표기는 없었다. 
▲ 김현숙 후보자는 자신의 이전 연구물을 출처 표기 없이 그대로 베낀 논문을 KCI급 학술지에 게재했다.
김 후보자는 2007년 5월, 이같이 출처·인용 표기 없이 베낀 논문을 연구업적으로 숭실대에 제출해 점수를 인정받았고, 그해 9월 숭실대 전임강사에 채용됐다. 결국, 김 후보자가 교수 채용 과정에 자신의 연구 업적을 부풀려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재탕 논문'을 만든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이에 대해, 김현숙 후보자 측은 "해당 논문들을 게재하였을 당시에는 연구 보고서나 연구 발간물에 기초하여 논문을 작성하는 경우, 출처 표기에 대한 규정과 인용 기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중복게재 금지규정 제정 이전에 일어난 일이어서 연구윤리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실제 김 후보자의 주장처럼 한국재정학회는 김 후보자가 문제의 논문을 투고한지 7개월 뒤인 2007년 11월, '자신의 이전 연구결과와 동일 또는 실질적으로 유사한 저작물을 출처 없이 게재'하는 '중북게재' 행위를 심각한 연구 부정행위로 명문화했다. 
▲ 한국재정학회의 연구윤리준수 서약서
한국에서 출처를 밝히지 않는 중복게재가 크게 공론화된 것은 2000년대 중반이었다. 2006년 11월, 당시 김병준 교육 부총리 후보자(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가 논문 중복게재 의혹으로 낙마했다. 한 달 뒤인 2006년 12월, 이필상 고려대 총장도 논문 중복게재 의혹이 불거졌고 결국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이 두 사건은 학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이를 계기로 학계에서 연구윤리 제정 움직임이 잇따라 일어났다. 2007년 이후 모든 학회에서 논문 중복 게재를 표절, 조작과 마찬가지의 심각한 연구 부정행위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뉴스타파가 찾아낸 김 후보자의 논문 중복 게재 시기가 바로 '김병준·이필상 연구 논란'이 벌어진 직후였다.
더욱이 이같은 금지 규정이 있든 없든, 출처를 밝히지 않는 중복게재는 모든 연구자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적 윤리다. 한국에서 학술지를 통한 연구 발표를 시작한 이후, 모든 학술지는 다른 곳에 이미 발표되거나 투고한 적이 없는 독창적 논문만 게재하는 것이 학계의 오랜 불문율이었다. 또한 1980~90년대조차 부득이하게 이전 연구물을 다시 논문으로 발표할 경우, 출처를 충실하게 밝히는 것이 학계의 보편 원칙이었다.
뉴스타파는 김 후보자 측에 다시 연락했다. 당시 숭실대 교수 임용 과정에 중복게재 논문을 낸 이유가 무엇인지, 이렇게 중복 게재 논문을 제출함으로써 공정해야 할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부당한 이득을 얻은 것은 아닌지, 다시 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김 후보자 본인의 답변은 끝내 오지 않았다. 대신, 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원하는 여성가족부 공무원을 통해 "연구윤리 제정 이전에 일어난 일로 연구 부정 행위가 아니다. (교수) 채용 목적으로 논문을 쓴 게 아니고, 채용 진행을 앞두고 논문이 통과됐기 때문에 제출한 것"이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제작진
영상취재김기철, 이상찬
CG정동우
편집윤석민
웹디자인허현재
웹출판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