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저축은행이 앗아간 전세 난민 '마지막 비상구'

2021년 09월 17일 16시 02분

서울의 아파트 숲을 지나 북으로 달린다. 동부간선도로를 벗어나 반듯한 경기도청북부청사 부근 신도시를 만난다. 여기서 더 가야 한다. 공사판과 허허벌판을 지나 뻥 뚫린 하늘이 있는 곳, 원룸과 빌라가 밀집한 도시의 끝자락이다. 서울 도심에서 달린 지 1시간 반, 이곳에 높은 임대료에 떠밀리고 떠밀린 전세 난민들의 '마지막 비상구'가 있다.

전세 난민의 마지막 비상구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소재, 천수이너스빌. 총 4개동 28세대로 이뤄진 신축빌라다. 황동색으로 번듯하게 장식된 간판에 새겨진, '이너스빌'이라는 이름은 '마지막 비상구'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윤기나는 쥐색 마감재와 신축 건물에서만 볼 수 있는 전자식 현관 출입구 또한 그렇다. 
△ 의정부시 금오동 소재 '천수 이너스빌'. 총 4개동 28세대로 이뤄진 신축빌라다.
하지만 실제 건물을 향해 걷다 보면 겉과 다른 속을 금세 알 수 있다. 입구의 좁은 도로는 차 두 대를 보내지 못하고 서로 엉킨다. 엉기성기 그려진 주차선은 도무지 어떻게 들고 나라는 건지 종잡기 힘들다. 건물 입구에 서면 낯선 사람을 몰아내야 할 현관 출입구가 허무하게 입을 벌린다. 엘리베이터에는 사용 중지라는 안내문만 간신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입주민이 안내한 건물 내부도 하자투성이였다. 세면대 앞에 있어야 할 거울은 사라졌고, 모퉁이 벽지에 핀 거뭇거뭇한 곰팡이가 겨울철 결로를 예고한다. 취재진이 인터뷰를 준비하는 사이, 옆집 아이의 울음 소리가 벽을 넘어 왔다. 밤에는 이웃의 코골이 소리가 바로 옆에서 나는 것처럼 들린다고 한다. 물이 나오지 않는 집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도 있다. 입주할 때 있던 관리 직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췄다.
△ 천수이너스빌 내부 엘리베이터. 사용중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 빌라의 겉과 다른 속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건물 등기부 등본을 떼어보면 A4용지 8장이 딸려나온다. 글씨보다 빨간 줄이 더 많다. 신탁과 가압류, 경매와 또 가압류.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이 집의 너절한 역사를 들여다 보면 누구든 계약을 망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지난해 9월, 천수이너스빌은 첫 세입자를 받았다. 부동산 중개 웹사이트와 휴대전화 앱을 통해 매물이 소개됐다. 이때 제시된 전세가는 3400만 원. 주변 시세의 절반에, 월세 부담도 없는 귀한 전세 매물이었다. 채 두 달이 안 돼 27채 집이 모두 임대됐다. 세입자 상당수는 본래 의정부에 살던 사람이 아니었다. 서울, 인천, 평택 그리고 전라북도 김제에서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예산에 맞춰 이곳으로 떠밀려 온 이른바 '전세 난민'이었다.

시세 보다 싼 집을 찾은 죄

고향을 떠나 10여 년째 타지살이 중인 서른두 살 현영수(가명) 씨도 전세 난민이다. 6년간 살아온 자취방 임대 보증금이 올라 지난해 이사를 하게 됐다. 부동산 중개 앱을 뒤져 예산 6천만 원 범위에 맞는 의정부 일대의 집을 찾았다. 하지만 살만한 집은 이미 현 씨의 예산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천수이너스빌이 사실상 현 씨의 조건에 맞출 수 있는 유일한 매물이었다.
전세가가 저렴한 이유를 나름대로 꼼꼼히 확인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임대인인 건설 회사가 대출을 많이 끼고 있어서 저렴하게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업력이 10년 이상 된 탄탄한 기업이기 때문에 부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만에 하나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 집이 경매에 들어간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안심시켰다. 주택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의정부시 기준 3400만 원까지는 소액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 현영수(가명) 씨는 입주한지 채 한 달이 안 돼 임의경매에 들어간다는 법원의 통보를 받았다.
적은 예산으로 집을 찾으면서 근저당권 하나 없이 말끔한 전셋집을 바라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금융기관이 대출을 실행했다면 임대인인 건설회사가 그만큼 믿을 만한 기업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현 씨는 판단했다. 비교적 '뽑기 운'이 좋았다. 별다른 하자가 없는 집이었다. 거실과 방 세 칸, 혼자 쓸 수 있는 넓은 화장실은 이전보다 훨씬 쾌적해 보였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현 씨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집에 어울리는 큼직한 가전제품도 곧장 사들였다. 하지만 정착을 꿈꾼 청년 난민의 소박한 꿈은 채 한 달을 가지 못했다.
작년 11월, 현 씨는 집이 곧 임의경매에 들어간다는 법원의 통보를 받았다. 집에서 또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풀던 짐은 박스째 그대로 두었다. 일상이 삐걱댔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올해 2월, 택배 상자 하나 가득 소송 서류가 배달됐다. 상자 안 서류에는 난생처음 보는 법률 용어가 빼곡했다. 사해행위, 통정허위표시, 악의 추정, 가장 임차인 등등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골치 아픈 일에 연루됐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시세 보다 싼 집을 찾아온 것이 죄가 되는 줄은 몰랐다.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라

자초지종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현 씨와 임대차 계약을 맺은 건설회사는 이른바 '좀비기업'이었다. 이 회사가 키움저축은행에서 끌어다 쓴 사업 대출은 45억 원이나 됐다. 천수이너스빌을 임대 놓기 직전인 지난해 8월부터 이 회사는 각종 세금과 대출 이자를 연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천연덕스럽게  총 27세대와 계약을 맺었고, 임대 보증금을 모두 챙긴 채 사라졌다. 나중에 경찰 조사에 나온 이 회사 대표는 돈을 모두 써버렸다고 진술했다.
키움저축은행은 채권 회수를 위해 지난해 11월 천수이너스빌을 임의경매에 부쳤다. 하지만 소액 임차인의 보증금 일정액은 최우선 순위로 보호한다는 주택 임대차보호법 조항에 따라, 세입자들의 몫 임대 보증금 약 9억 원은 회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순리대로 됐으면 여기서 끝났을 일이다. 하지만 키움저축은행은 이 돈까지 제 몫으로 여겼다. 키움저축은행이 고안해낸 방법은 소송을 통해 아예 세입자들의 임대차 계약을 무효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 키움저축은행 측의 소장 일부. 세입자들을 사해행위를 한 수익자라며 임대차계약의 무효를 주장했다.
현 씨에게 전달된 키움저축은행 측 소장의 요지는 천수이너스빌 세입자들이 도망간 건설회사와 가짜 전세 계약을 맺고 들어온 가짜 세입자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근거는 이랬다. 등기부등본에 이미 키움저축은행의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어서 세입자들이 임대인의 채무 과다 상태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에 의해 보장되는 3400만 원에 정확히 임대보증금을 맞춰 들어온 것을 보니 건설회사와 공모한 것이 의심된다는 논리다. 애초에 부실한 건설회사를 섣불리 믿고 돈을 내준 것은 신용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은 키움저축은행의 잘못이지만 잘못에 따른 책임을 지는 대신 무고한 세입자들을 공모자로 내몬 것이다.
키움저축은행은 절박한 전세 난민들의 사정도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이런 부실한 매물이 불과 두 달 사이에 다 나간 것은 사전 모의 없이는 힘들다고 의심했다. 본래 의정부 주민이 아니었던 서울, 수도권 사람들이 의정부의 외곽으로 몰려든 것도 모의의 정황이라고 봤다. 돈이 없어서 그나마 법으로 보장되는 3400만 원짜리 전셋집을 찾고, 여유가 없어서 하루라도 바삐 입주하고, 본래 살던 터전엔 더 살 수 있는 집이 없어서 마지막 비상구를 찾아온 현 씨는 황당했다.

잔인한 추석, 만삭 임산부도 길바닥에 나앉는다

엎친 데 덮친 격, 이달 9월 초에 또 법률사무소의 서류 봉투를 받았다. 키움저축은행이 경매 절차에 의해 새 주인이 됐으니 9월 30일까지 집을 비워달라는 내용증명이었다. 물론 보증금 3400만 원도 돌려주지 않은 채 빈손으로 그냥 나가라는 것이다. 점유권을 포기하고 기한 내에 이사하면 이사비 200만 원을 지원하겠다는 회유 아닌 회유도 있었다. 지난 5월 키움저축은행은 자신이 경매에 부친 천수이너스빌이 2차례 유찰되자 3차 경매에서 자신이 다시 낙찰받았다. 
△ 키움저축은행은 천수이너스빌을 낙찰받은 후 세입자들에 퇴거 통보를 하는 한편, 소송을 제기해 세입자들에게 임대보증금이 지급되는 것을 막았다.
정리하면 상황은 이렇다. 일단 집 주인은 현 씨가 전세 계약을 맺은 건설회사에서 키움저축은행으로 바뀌었다. 새 집 주인이 자신이 집을 쓰겠으니 나가라고 했으니 세입자 현 씨는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전 주인에게 맡겼던 임대보증금은 아직 받을 수 있다는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법원은 배당 선고를 통해 낙찰액 가운데 임대보증금 약 9억 원을 세입자들에게 배당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키움 측은 미리 제기한 소송을 이용해 발목을 잡았다. 키움 측은 법원의 배당 선고에 이의 제기를 하고 민사 소송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현 씨를 비롯한 세입자들은 이 소송이 취하되지 않는 이상, 임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9월 말까지 빈손으로 집을 떠나야 한다.
누군가는 정당한 소송절차라고 하겠지만, 적어도 이들 세입자에게는 법이 길바닥에 나앉으라고 명령한 것이나 다름없다. 세입자들은 급하게 입주민 회의를 꾸려 대책 마련에 나섰다. 모아놓고 보니 청년, 노인, 실업자, 저소득층이었다. 당장 10월에 아이를 낳아야 하는 신혼부부도 있었다. 현 씨뿐만 아니라 천수이너스빌의 27세대 모두 임대보증금 3400만 원이 전 재산인 사람들이었다. 
△ 세입자들 가운데는 다음달 출산 예정인 만삭의 임산부도 있다. 전 재산인 임대 보증금 없이는 집을 나갈 수도 없는 처지다. 
돈이 없어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이 없었다. 3400만 원을 돌려받자고 변호사를 선임했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클지 모른다는 말이 나왔다. 사업 경험 경험이 있는 70대 김일환 씨가 대표를 맡았다. 법률전문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직접 답변서를 썼다. 세입자들은 금융전문가가 아니고, 임대인의 채무 상황을 알 방법도 능력도 없었다고 호소했다. 임대보증금과 관리비 송금 내역, 전기세, 가스비, 상하수도 사용 내역을 첨부해가며 자신들이 진짜 세입자라고 외쳤다. 

키움 "소송 계속 하겠다"

집에서 온수를 얼마나 썼는지까지 다 드러내며 결백을 증명해도 상대는 묵묵부답이다. 세입자들은 키움저축은행을 찾아가 담당자를 찾았지만 만날 수조차 없었다. 소송이 진행 중이니 답변할 것이 없다는 메시지만 돌아왔다. 지난 6월 재판정에 나온 키움 측 변호인단도 소송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취재진은 천수이너스빌 세입자들의 전세 계약을 대필한 부동산 중개업자들을 만났다. 중개업자들은 키움 측이 정상 계약을 맺은 세입자라는 것은 알아도 진즉 알았다고 손사래쳤다. 지난해 9월 전세 계약 체결 당시, 본인들이 직접 키움저축은행에 전화해 매물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소송을 고집하는 진짜 이유는 세입자들이 정말 가짜라고 생각해서라기보다는 법적 대응이 어려운 자신들이 보증금을 일부라도 포기하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세입자들로부터 제기되는 이유다. 
△ 다우키움그룹 계열사인 키움저축은행 본점. 키움저축은행 측은 세입자를 상대로 소송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키움저축은행은 "세입자들을 괴롭힐 의도는 없지만 소송과 퇴거 절차는 계속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키움저축은행 관계자들은 뉴스타파와의 만남에서 법리적으로 볼 때 여전히 세입자가 주택 임대차 보호법을 악용해 채권자의 이익을 침해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상적인 채권 회수 노력이기 때문에 오히려 소송을 중지하는 것이 배임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송 제기 전부터 정상 전세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은 부인했다. 자신들 역시 채무자가 임의로 전세 계약을 체결하고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밝혔다.
제작진
촬영오준식, 김기철, 정형민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