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우리법 재판소’라는 프레임이 불러올 결과

2025년 02월 04일 11시 07분

20년 가까이 사법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로 일했다. 법조는 좁은 곳이어서 누군가를 실명으로 비판하고 나면 취재원이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당사자는 물론 그와 가까운 사람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비판한 대상과 가까운 사람이었는지는 내 전화가 거부되면서 알게 된다. 아둔하고 소심한 나는 누군가를 직접 비판한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데, 그런 내가 실명으로 비판한 두 사람이 지금 헌법재판관인 정계선과 이미선이다. 그것도 그들의 임명을 시비하면서다. 
서울대 의대를 그만두고 서울대 법대에 새로 들어가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한 정계선은 오래전부터 유력한 대법관 후보였다. 그에 앞서 대법관이 된 여성에 대해서는 여성 대법관을 늘려야 한다는 구호에 밀려 실력 없는 사람을 앉혔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계선을 두고는 그런 말이 나올 수 없었다. 법률 해석도 재판 실력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2021년 그를 대법관으로 제청해서는 안 된다는 칼럼을 썼다.
내용은 이렇다. “법조계가 주목하는 것은 정계선 판사를 제청할지다. 그는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모두 거친 사람이다. 이런 이력을 가진 사람은 대한민국을 통틀어 김 대법원장 자신과 정 판사뿐이다 (우리법연구회의 긴 그림자, 경향신문 2021. 05. 18.).” 이 글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행사와 대법관 제청권 행사를 우려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 법조에서는 정계선 판사는 언제 돼도 될 사람인데, 김명수 대법원장 제청을 받아서는 그에게도 나라에도 좋을 게 없다고들 했다. 
이미선 재판관에 대해서는 이름까지 제목에 단 칼럼을 썼다 (이미선이라는 재판관의 등장, 경향신문 2019. 05. 08.).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선 재판관을 대통령 몫 재판관으로 임명한 직후였다. 당시 보수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이 대법관과 재판관을 유난히 많이 임명해 사법부를 물갈이한다고 했지만, 거짓이었다. 1988년 개헌 이후 대통령들은 모두 대법원장 1명과 대법관 11~13명, 대통령 몫 재판관 3명을 임명해 왔다. 나는 칼럼에서 이미선 재판관이 특별히 진보적이지도 않고 노동자 편에 선 판결도 없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무슨 이유로 재판관으로 골랐냐고 비판했다.
내용은 이렇다. “그의 수십억원대 주식투자는 윤리적으로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자유시장 경제질서가 우리 헌법의 이념이다. 다만 주식투자는 자본의 이윤 추구를 응원하면서 돈을 버는 일이다. 당연히 노동생산성이 낮은 기업에 투자할 수 없다. 부가가치는 21세기에도 노동자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 이제까지 이미선 재판관의 노동감수성은 드러난 바 없지만, 자본에 기울어진 사회경제적 정체성은 부정하지 못한다.” 실제로 지난 6년 그의 의견을 살펴보면 주로 다수의견에 합류하는 중도성향이었다.
지난 헌법재판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정계선 재판관은 취임 시점에 상당한 안목을 갖춘 재판관에 들고, 이미선 재판관은 그간 결정에서 드러났듯이 진보와 보수 사이를 오간 스윙 보터(swing voter)에 속한다. 이들이 해산한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다고 해도, 그래봐야 수석 합격한 모범생 법조인이고 재산이 적지 않은 중도성향 법조인이다. 더구나 내란 혐의 영장 집행을 막겠다며 경찰을 가로막는 반국가세력이 좌파라고 평가할 대상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가장 우측에 누워 부정선거 같은 거짓 사실로 폭동을 획책(劃策)하는 그들에게 좌파가 아닌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정계선‧이미선‧문형배 재판관 등을 두고 이들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기에 좌편향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의 노림은 재판 불복이다. 헌정 질서를 부정하고 국가를 전복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조만간 나올 탄핵 심판 결과에서 전체 재판관 의견 분포를 보면, 국민 다수가 반대로 생각하게 될 테다. 이들 재판관이 좌편향이 아니라 국민의힘이 극우 세력이라고. 국민의힘은 머리를 차갑게 하고 헌법재판소법을 펼쳐 제2조 헌법재판소 관장 사항에 탄핵심판과 함께 정당해산심판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