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청와대→총선낙마→낙하산→지역구 '셀프기부'→출마

2021년 06월 17일 10시 00분

 최상화 씨는 '원조 친박'이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한나라당(지금의 국민의힘)에서 일했다. 한나라당 총무부장, 사무총장 보좌역, 대변인실 행정실장 등을 거쳤다. 2004년 한나라당의 '천막당사' 시절, 당 대표 박근혜를 만나며 인연을 쌓았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직능총괄단장, 당선 후엔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실무추진단장, 2013년 2월에는 대통령을 따라 청와대에 들어가 박근혜 정부 초대 춘추관장이 됐다. 춘추관장은 청와대 출입기자 300여 명의 취재 지원을 돕는 자리인데, 대변인과 더불어 언론 소통의 중요 보직이다.  
▲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장의 최상화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실무추진단장
 최 씨는 춘추관장으로 만 2년을 재직했다. 장수했다. 청와대 비서진의 잦은 물갈이에도 대통령의 변함 없는 신임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정당 사무처의 하급 당직자에서 권력의 정점인 청와대 1급 비서관까지.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사천 촌놈으로 출세"한 인생이다.
 최 씨는 2015년 춘추관장을 마치고, 고향인 경남 사천으로 내려갔다. 이듬해 총선에서 사천·남해·하동 지역구의 새누리당 예비 후보로 뛰었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공천 심사에서 탈락했다. 청와대 비서관 출신으로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선거에 나섰지만, 고배를 마셨다. 
총선 3개월 뒤, 2016년 7월 그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뒷배'를 봐준 건 이번에도 박근혜 대통령이다. 고향 사천에서 가까운 경남 진주시에 본사를 둔 발전 공기업 한국남동발전 상임감사에 임명됐다. 남동발전 상임감사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 발전 공기업 중 하나인 한국남동발전 외경
 이상은 '낙하산은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본보기 같은 뻔한 결말의 이야기다. 총선에 실패한 참모를 향한 대통령의 보은 인사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멈춰선 곤란하다. 진짜 '스토리 텔링'은 이제부터다. 
 낙하산이 내려온 뒤, 공공 기관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명토를 박듯, 한 명 한 명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낙하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낙하산의 폐해는 '권력 나눠 먹기' 또는 '억대 연봉 축내기'에 머물지 않는다. 소중한 세금이나 마찬가지인 공공 기관 기부·후원금 예산의 오·남용으로 확장되고 있다.  
 뉴스타파는 최상화 씨가 한국남동발전의 상임감사로 있던 2016년에서 2018년 사이, 한국남동발전의 기부·후원 예산이 집행된 곳을 전수 조사했다. 대부분 공동모금회나 장애인·아동 복지단체에 쓰였다. 그런데 '구계서원대관대유계회', 생소한 이름의 단체가 눈에 띄었다. 
▲ 최상화 전 한국남동발전 재임 당시 남동발전의 기부·후원 예산 집행 내역
 최 상임감사의 임기 중이던 2017년 3월 현금 500만 원, 퇴임 이후 석 달이 지난 2019년 3월 현금 300만 원, 모두 800만 원의 기부·후원금이 '구계서원대관대유계회'에 지급됐다. 최 상임감사가 낙하산으로 오기 전에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기부였다.  
 구계서원대관대유계회가 어떤 곳인지 확인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취약 계층을 위한 단체나 복지 시설은 아니다.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구암 이정' 선생을 기리고 연구하는 유학 연구 단체이자 구계서원을 관리하는 곳이다. 이정 선생의 본관이 경남 사천이다. 
▲ 조선시대 성리학자 '구암 이정' 선생을 기리는 경상남도 사천의 '구계서원' 외경 
 왜, 갑자기 이 유학 단체에 기부를 한 것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국남동발전에 경위를 물었다. 남동발전은 "발전소를 운영하는 지역에 있는 단체이고, 기부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진행했다"는 원칙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걸로는 의구심이 풀리지 않았다. 이게 전부일까. '구계서원대관대유계회'가 있는 곳은 경남 사천. 최상화 전 상임감사가 총선에 출마한 바로 그 지역이다. 
 확인해보니, '구계서원대관대유계회'와 최 전 상임감사는 아주 특별한 관계였다. 기부·후원이 이뤄진 바로 그때, 최 전 상임감사는 '구계서원대관대유계회'의 이사장이었다. 즉, 공기업 상임감사로 재직하는 동안 유학 단체의 이사장도 겸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 전 감사는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직후인, 2016년 4월 1일 이사장에 취임해 지금까지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 한국남동발전의 기부·후원금 집행 당시 '구계서원대관대유계회'의 이사장은 최상화 상임감사였다.
 최상화 씨는 한국남동발전 상임감사에서 물러나고, 2020년 1월 또 다시 사천·남해·하동 지역구에서 자유한국당(지금의 국민의힘) 국회의원 예비 후보로 나선 바 있다. 공기업 상임감사라는 직위를 남용해, 이사장으로 있는 단체에 공공 예산인 기부금을 몰아줬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퇴임하자마자 해당 지역에 총선 출마한 것도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결국 기부·후원 예산의 의사 결정에 대한 확인이 중요해졌다. 취재진은 기부 결정과 집행 과정에 최 전 상임감사의 지시 또는 요구가 있었는지, 한국남동발전에 물었다. 한국남동발전은 "감사님이 '지시를 했다, 안 했다'까지 확인하는 것은 모르겠고, (확인이) 가능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인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답변이었다.
 최 전 상임감사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그는 감사 재직 당시, 기부·후원 담당 부서로부터 '구계서원대관대유계회'의 기부 요청이 있었다고 보고를 받은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기부·후원 예산의 집행을 직접 지시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 전 상임감사는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예산을 줘라, 마라'라는 식의 직접적인 지시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한국남동발전은 낙하산 임원이 겸직을 하고 있던 유학 연구 단체에 공기업 기부·후원 예산을 집행했다.
 최 전 상임감사의 해명을 다시 정리하면, '기부 요청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기부하라고 지시하진 않았다'이다. 담당 부서가 알아서 기부·후원을 결정했다는 이야기다. 취재진은 그에게 다시 물었다. "만약 상임감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단체가 아니었다면, 과연 한국남동발전이 기부·후원금을 줬을까요?"
 결국 최 전 상임감사는 이런 식의 '셀프 기부', '셀프 후원'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소외·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데 쓰여야 하는 공기업 기부·후원 예산의 취지와 목적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공기업 기부금 800만 원이 누군가에겐 생명을 살리는 절실한 '구휼' 예산이다.     
내가 (상임감사로) 있으니까, (기부) 요청을 했으니까... (구계서원대관대유계회를) 몰랐으면, 못 할 수도 있었겠죠. '서원에 (기부를) 해줬으니까 그 돈이 다른 데 못 갔다' 이런 이야기인가요? 그것이 문제가 있다고 하면, 문제로 볼 수 있겠네요. 

최상화 전 한국남동발전 상임감사 
 뉴스타파는 지난 수개월 동안, 최상화 전 상임감사를 포함해 많은 낙하산과 정치 권력의 역학 관계를 추적했다. 이를 통해 낙하산 보은 인사에서 시작한 권력의 오작동 현상이 공공 기관 예산의 오·남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① 대선 캠프에서 정권 창출의 공로를 인정받아 청와대 등 권력의 요직으로 들어간다. ② 청와대 이력 등을 발판삼아 국회의원 등 공직에 도전한다. ③ 당선이 안 될 경우, 공기업 낙하산 임원으로 내려가 훗날을 도모한다. ④ 재임 기간, 해당 공기업은 낙하산 임원이 이사장·대표로 있는 겸직 단체에 기부·후원 예산을 준다. ⑤ 이 같은 예산의 집행은 낙하산 임원의 사적 이익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모든 정권은 낙하산을 뿌리 뽑지 못했다.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위에 나열한 낙하산 폐해의 연결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공공 예산을 허투루 쓰게 해선 안 된다. 뉴스타파가 공공 기관 개혁 프로젝트 [낙하산이 쏜다]를 집중하는 이유이다. 대선이 270일 앞으로 다가왔다.
제작진
영상 취재이상찬, 최형석
편집박서영
CG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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