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인 고질이 있다. 낙하산이다. 역대 정권마다 코드·보은·정실인사는 없다고 호언하지만, 허언으로 끝난다. 바뀐 대통령과 이념·가치가 맞아야 일할 것 아니냐 하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낙하산 인사는 공공기관·공기업의 부실·비리·방만 경영의 온상이다. 국민의 세금을 쓰고 자체의 공적 시스템으로 운용하는 곳인데도, 공공기관은 정권의 전리품 취급을 받는다.
낙하산의 기부금 오남용…공공기관 기부금 어디에 쓰이나
비판과 감시의 사각지대, 복지부동의 상징인 공공기관·공기업은 ‘낙하산 권력’을 만나면서 더욱 망가진다. 최근 불거진 부패 스캔들(LH, 한국토지주택공사)이나 사장의 갑질 논란(김우남 한국마사회장)은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공공기관과 공기업은 모두 350개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는 공공부문 개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들 공공기관·공기업이 쓰고 있는 예산 집행 내역을 확보해 분석했다. 기관 감시의 본령인 예산 검증을 통해 낙하산의 폐해를 폭로하는 작업이다.
특히 공공기관 예산 항목 중 사회 공헌 명목으로 배정한 기부금·후원금에 주목했다. 이 예산은 주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소외·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공공기관마다 한해 수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을 집행한다. 또 예산 집행의 실적은 정부의 공공기관 평가에 반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돈이 정확히 어디에, 누구에게 어떤 명목으로 쓰이는지 공개되고 검증받은 적은 없다.
정보공개청구로 공공기관 73곳, 5년치 기부·후원 내역 확보
뉴스타파는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3개 부처에 속한 공공기관·공기업 73곳을 우선 선정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이들 기관을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해 5년치(2015∼2020) 기부금·후원금의 예산 집행 내역을 확보했다. 73개 기관의 기부금·후원금을 합하면 한해 평균 수천억 원에 이른다.
자료 확보는 수월하지 않았다. 일부 공공기관은 공개를 거부하고(한국국토정보공사, 한국건설관리공사), 어떤 곳은 총액으로 뭉뚱그려 공개해(한국전력, 인천국제공항공사)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검증할 수 없었다. 이들 기관을 대상으로 행정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런 종류의 예산 자료를 언론사가 요구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곳도 있었지만, 많은 기관은 취재진이 요청한 대로 자료를 공개했다.
낙하산 정치 권력의 오작동 → 예산의 오·남용으로까지 확장
지난 4개월의 분석 작업과 현장 취재를 통해 뉴스타파는 수많은 '낙하산들'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취약 계층 지원 등 공적 부조에 쓰여야 할 기부금·후원금 예산을 어떻게 오·남용해, 사적으로 편취하고 있는지 추적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낙하산 권력'으로 상징하는 '정치 시스템의 오작동' 현상이 국민의 세금인 '예산의 오·남용'으로까지 확장해 이어지고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배임, 공직선거법 위반 등 위법 행위까지 확인
낙하산 사장과 임원들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은 채, 공적 부조 성격의 기부금을 제 마음대로 쓰고 있었다. 총선 출마를 앞두고 자신의 지역구 단체에 수천만 원을 뿌리고(광물자원공사), 자신이 창립하고 대표였던 특정 단체에 후원금을 몰아주고(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의 모교에도 수천만 원을 기부하고(한국부동산원), 사장의 취미 생활을 지원하는 데도(한국농어촌공사) 예산이 쓰였다.
모럴 해저드나 사적 오·남용의 비위를 넘어 배임, 공직선거법 위반 등 위법 행위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낙하산 사장은 "기부금은 원래 사장 마음대로 쓰라는 돈"이라고 큰소리친다. 공공기관마다 많게는 수백억 원을 집행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심사·선정 시스템은 갖추고 있지 않다. 감독해야 할 소관 부처는 물론 감사원도 단 한 번의 전수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대선이 300일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낙하산의 폐해를 답습하게 놔둘 수는 없다. 뉴스타파가 해묵은 낙하산 병폐를 다시 취재하는 이유이다. 뉴스타파는 지난 5년 동안(2015∼2020) 전국 공공기관의 '낙하산들'이 벌인 기부·후원금 예산의 오·남용 실태를 6월 9일(수)부터 연속 보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