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기업이 침묵하는 이유
2018년 04월 11일 18시 56분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어요.
10번이 넘는 기도 확장 수술 끝에 담당 의사가 김미향(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박나원, 박다원의 어머니) 씨에게 말했다. 오랜 투병의 후유증으로 기도 협착이 왔고 숨을 쉬기 위해서는 기도의 살을 끊임없이 깎아내야만 한다고. 나원이(8세, 1단계 판정, 피해 판정은 1단계부터 4단계로 이뤄지는데 1단계가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단계임)는 목에 구멍을 내 플라스틱 관을 연결해야만 숨을 쉴 수 있다. 김미향 씨는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모든 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왜 나는 아무것도 몰랐을까.” 2011년 8월, 원인미상 폐손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된다는 발표로 세상이 떠들썩했고 같은 해 11월, 유해성이 확인되자 가습기 살균제를 수거하고 판매금지 조처까지 이뤄졌다. 하지만 김미향 씨는 뉴스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계속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대체 왜 아무것도 몰랐을까.”
김미향 씨는 2011년 10월, 쌍둥이 자매를 얻었다. 친정집에서 아이를 돌볼 때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아이들을 가습기와 함께 재웠다. 그렇게 4개월을 밤낮없이 사용했다. 판매금지 조처가 내려졌지만 몰랐다. 미리 사두었던 가습기 살균제를 계속 사용했다. 두 아이에게 차례로 호흡곤란 증세가 찾아왔다. 둘째 다원이(당시 2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1단계)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다음 해 11월 기흉 시술을, 첫째 나원이는 돌을 갓 지난 뒤 목에 구멍을 뚫는 기관 절개술을 받아야만 했다.
“차라리 옥시 제품을 썼더라면 달라졌을까요?” 김미향 씨가 구매한 제품은 애경 가습기 메이트였다. 민형사상 처벌을 받고 개별 피해자 보상을 진행 중인 옥시와는 달리 가습기 살균제 판매자 애경과 살균제 원료를 만든 SK 케미칼은 아무런 민형사상 처벌도 받지 않았고, 개별 피해자 보상도 진행하지 않았다.
나원이의 경우 기관 절개수술 후 지속적으로 갈아줘야 하는 플라스틱 관과 그 관의 가래나 이물질을 제거하는 석션 기계, 산소 발생기, 포화도 측정기까지 구매해야 하는 등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이미 5년 전 1단계 피해자로 인정받았음에도 관련 비용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끈질긴 문의와 항의 끝에 기계 유지 비용 등 정부 지원은 2년 전에야 가까스로 가능해졌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아이 치료를 위해 이동하는 비용만 한 번에 20만 원 가까이 들지만 이는 지원조차 안됐다. 가해기업의 배상이 절실했다. 하지만 SK케미칼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SK케미칼과 애경은 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을까. 공정거래위원회는 SK케미칼과 애경에게 두 차례 면죄부를 줬다.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미상 폐손상의 원인임이 밝혀진 2011년 당시 공정위는 PHMG(폴리헥사메틸렌 구아니딘,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소독제 화학물질)를 원료로 해 제품을 생산한 기업은 검찰에 고발했지만 SK케미칼과 애경은 제외시켰다. 당시 옥시 제품 성분이었던 PHMG의 유해성은 입증됐던 반면, 애경과 SK케미칼의 원료물질이었던 CMIT(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화학방부제),MIT(메칠이소티아졸리논,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화학방부제 )의 유해성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2016년에도 재차 시민단체 등이 SK케미칼과 애경에 대해 문제 제기하면서 공정위는 재조사를 진행했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심의 절차 종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환경부는 당시 동물실험 결과와 관계없이 CMIT, MIT 물질도 유해성이 있다고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공정위는 환경부에 문의조차 하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공정위는 재조사를 결정하고 환경부의 입장을 들었다. 지난해 9월 환경부는 공식적으로 SK케미칼과 애경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다는 공식 입장을 공정위에 전달했다. 그제서야 올해 2월, 공정위는 SK 케미칼과 애경을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난 것으로 보고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환경부가, 공정위가, 검찰이 헛발질을 하는 동안 SK케미칼 원료로 만들어진 가습기 살균제 사용 피해자는 방치됐다. 최예용 사회적참사 특조위 가습기 살균제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 위원장은 “화학물질에 관한 안전 관리를 하지 못한 것이 정부의 1차 책임이라면, 2차 책임은 바로 피해 판정을 부분적으로 진행함으로써 기업의 책임을 형사적으로 물을 수 있는 공소시효를 놓치게 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원인미상 폐 질환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지목된 지 7년째, 여전히 피해 규모는 확정되지 못했고 상당수 책임기업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김미향 씨의 쌍둥이 자매는 애경 가습기 메이트만 사용한 SK케미칼 단독 피해자다. 국가가 인정한 피해자 607명(중복자 제외)중 SK케미칼 단독 피해자는 10명에 불과하다.
우리는 피해자가 너무 적어서 싸움도 힘들어요. 대기업은 너무 힘이 세잖아요.
아들 동후가 2단계(가능성 높음) 판정을 받은 변정원 씨는 애경과 SK케미칼로부터 보상은커녕 사과도 받지 못했다. 직접 애경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답답한 상황을 설명해야만 했다. “그 사람들이 물어본 건, 우리 아들이 몇 단계를 받았냐는 거였어요. 그리곤 연락도 없어요.”
서른여섯이란 늦은 나이에 얻은 귀한 아들 동후였다. 건조한 집 때문에 애경 가습기 메이트를 사다 썼다. “두 해 겨울 동안에만 썼을 뿐인데…” 동후는 이후 천식과 호흡곤란을 달고 산다. 초등학교 때는 한 여름에도 물을 따뜻하게 데워 보온병에 싸줬고, 한번 감기에 걸렸다 하면 2주 내내 밤낮으로 기침을 해 응급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한 번은 새벽에 크게 아파 병원 문 앞에서 아침이 밝을 때까지 아이를 끌어안고 밤새 울기도 했다.
우리 아이가 그래요. ‘엄마, 나는 코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동후는 코로 호흡이 어렵다. 입을 벌려 숨을 쉬는 방법 밖에는 없다.
SK케미칼과 애경은 목소리를 잃을지 모르는 나원이와 코로 숨 쉴 수 없는 동후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SK케미칼 측에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및 배상 계획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물었으나 "현재 정부의 추가적인 인과관계 규명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관련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드리지 못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고 응답해왔다.
왜 SK케미칼은 털 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을까요?
최예용 사회적참사 특조위 가습기 살균제사건 진상규명 소위원장은 특조위 제1과제가 바로 가해기업에 대한 잘잘못을 다루는 일이라고 말한다. SK케미칼은 옥시 등의 제품에 사용됐던 PHMG 원료물질을 17년간 공급하고 CMIT, MIT 원료물질을 수입해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했을 뿐 아니라 애경에 판매권까지 팔았다. 최예용 진상규명 소위원장은 “SK케미칼은 2016년 국정조사 당시에도 자신의 책임을 피하려는 전사적인 로비가 있었다는 정황들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그룹 차원의 움직임이 있었다고 보고 이 부분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으려 한다.”라고 말했다.
2016년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많은 피해를 낳은 옥시에 이목이 집중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자체가 ‘옥시 불매’ 혹은 ‘옥시 싹싹제품’으로 상징될 정도였다. 그렇다고 옥시가 모든 책임을 졌다고 보기도 힘들다. 영국 본사의 책임도 해결되지 않았다. 최 소위원장은 “무엇보다 옥시 뒤에 롯데, SK, 심지어 삼성까지 숨어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판매한 국내 기업들은 SK케미칼(애경 가습기 살균제), 롯데쇼핑(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 신세계(이마트 가습기 살균제), 삼성(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삼성은 홈플러스가 2011년 테스코에 매각되기 전까지의 기간 즉 2005년부터 2011년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을 제조 판매한 홈플러스를 운영한 바 있음) , LG생활건강(119가습기 세균제거), GS리테일(함박웃음 가습기세정제) 등 쟁쟁한 대기업들이다. 옥시 뒤에 숨어 다른 가해 기업들은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최 소위원장은 특조위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왜 SK케미칼은 털 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을까? 다른 가해기업들은 어떤 책임이 있는지 밝히는 것”이라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8일, 직접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공식 사과했다. 피해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었다. 실제 인정 질환이 기존 2개에서 폐손상과 태아를 포함한 천식, 소아간질성 폐 질환 등 모두 4개로 늘었고 폐 질환 인정 비율도 늘어났다.
하지만 최예용 소위원장은 “신청자 10명 중 1명을 인정하는 판정의 흐름까지 바뀌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는 현재까지 6,049명이 피해 신청을 접수했다. 하지만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하고 지원금을 지급하는 1, 2단계 피해자는 폐 질환 피해자 468명, 태아 피해자 26명, 천식 피해자 120명이다. 여전히 피해자에게 입증책임을 100% 지우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게 최 소위원장의 견해다. 최 소위원장은 “ 장기적으로는 기업 입증책임을 50% 정도까지 끌어올리는 제도화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제정됐지만 특조위 구성과 시행령 정비 등의 준비로 올 8월에서야 예산이 배정됐고 실제 조사를 담당할 조사원을 모집하고 있다. 채용이 마무리되는 10월 경에야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될 전망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특조위는 제1과제로 가해기업의 책임을 규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민형사상 처벌과 책임 있는 배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효적 결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는 94년부터 판매가 시작돼 7년 전 판매금지가 내려졌다. 공소시효가 가해기업의 처벌에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또 특조위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다. 실효적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편집자주>가습기 살균제가 원인미상 폐손상의 원인임이 밝혀진 지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요원한 상태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피해 규모나 피해 질병이 계속 증가, 확대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올 8월 10일 기준으로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 접수자만 6,049명에 이르지만 실제 정부가 피해자로 인정한 1단계(가능성 거의 확실)와 2단계(가능성 높음) 피해자는 607명이다. 지난해 12월, 세월호 참사와 함께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 규명과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후 이 법령에 근거해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 가동됐다. 올 10월 경 본격적인 조사업무에 들어간다. 뉴스타파는 이후 가습기 살균제 참사 문제를 지속적으로 취재 보도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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