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목격담 담은 윤석열표 북한인권보고서

2024년 10월 08일 10시 00분

통일부는 지난 9월 10일 2024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했다. 북한인권보고서가 일반에 공개된 것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통일부는 지난 2017년부터 북한 인권 실태 조사 결과를 매년 국회에 보고했다.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른 조치다. 하지만 통일부는 이 보고서를 그간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이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북한의 인권 실태를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고 널리 알려야 한다'라고 지시하면서 별도의 일반 공개용 북한인권보고서가 발간되기 시작했다. 보고서 분량도 기존 10쪽 내외에서 400여 쪽으로 크게 늘었다.
북한 주민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이 또 전 세계 사람들이 북한 인권의 실상과 북한의 정치, 사회 상황을 알고 공유한다는 게 저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월 연두 업무보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윤석열 정부 들어 통일부는 북한인권보고서의 내용을 대중에게 홍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올해는 18억 원의 예산을 따로 배정해 북한의 인권 실상을 알리는데 사용할 계획이다.
문제는 매년 작성되는 이 보고서가 얼마나 북한의 인권 실태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발간된 통일부의 북한인권보고서 일체를 입수해 검증했다.  

시점을 지우고 다시 등장한 40년 전 목격담

올해 발간된 북한인권보고서에는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일부 탈북민들의 증언이 담겨 있다. 남녀가 교제했다는 이유로 총살되기도 하고, 매년 한두 차례 공개 처형이 이뤄진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목격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기술하지 않았다.
먼저 '남녀가 교제했다는 이유로 총살됐다'라는 증언은 난수 번호가 'N36'으로 시작하는 한 탈북민의 주장이다. 통일부는 탈북민의 신원 보호를 위해 실명을 쓰는 대신 영어와 아라비아 숫자로 이뤄진 열 자리의 난수 번호를 부여한다. 각각 본문과 인용문에 각주를 달아 누가 이 같은 말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뉴스타파가 N36으로 시작하는 난수번호를 검색해 보니, 이 탈북민은 북한 21호 관리소에서 일했던 기관원의 가족으로 나타났다. 그가 관리소에 머문 기간은 한 달 가량이었다. 
문제는 지난해 발간된 북한인권보고서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2023년 보고서에는 '21호 관리소 내부에 있는 시누이 집에서 한 달 정도 생활한 적 있다'라는 탈북민의 증언이 수록돼 있다. 지난해 보고서에는 이 탈북민이 관리소에 머물렀던 시기가 나오는데, 무려 40년 전인 1984년이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매년 1~2차례 공개 처형이 이뤄진다'라는 내용은 난수번호가 'E4M'으로 시작하는 탈북민의 증언이다. 2023년 북한인권보고서에도 이와 유사한 탈북민의 증언이 있다. 공개 처형을 목격한 장소와 처형 대상의 인원수, 죄명, 처형 방식 등 거의 동일했다.
이 목격담과 관련해, 2023년 보고서에는 담겼지만 2024년 보고서에서는 빠진 내용이 있다. 공개 처형을 목격한 시점이 1995년부터 2000년 사이라는 점이다. 
△ 2023년과 2024년 북한인권보고서에 실린 북한의 '공개 처형' 관련 증언. 목격 장소와 처형 대상의 인원수, 죄명, 처형 방식 등이 거의 동일하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처럼 수십 년 전에 목격한 인권 침해 사례를 마치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기술한 사례가 보고서 곳곳에서 발견됐다. 올해 보고서에 삽입된 '김일성 초상화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라는 증언은 1975년에 있었던 일로 확인됐다. '수용소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라는 증언 역시 1980년대에 목격한 내용이었지만 그대로 올해 보고서에 실렸다.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인권 기록은 정확히 기록하도록 되어 있다"라며 "30~40년 전 목격담을 발표하면 신뢰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통일부도 알기 때문에 정확한 시점을 가린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한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측은 "정치범 수용소 관련 증언은 2019년 사례를 포함해 꾸준히 수집되고 있고, 신뢰성과 정확성 제고를 위해 관련 기관에 확인과 검토를 거쳤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보고서에서 공개처형 관련 증언을 한 탈북민이 동일인인지, '최근까지 관련 증언을 확보했다'라는 답변의 구체적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최근에 탈북한 탈북민의 증언을 보고서에 많이 포함시키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뉴스타파가 올해 보고서에 기술된 정치범 수용소 관련 탈북민의 구체적 증언을 확인해 보니 모두 14개였다. 이를 시기별로 구분해 보니 △1990년 이전이 4건, △2000년대 초중반이 3건, △2010년과 2014년이 각 1건이었다. 시기를 특정할 수 없는 5건을 제외하면 최근 10년간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구체적 증언은 한 건도 없었다. 
통일연구원이 매년 갱신해 공개하는 북한인권백서에도 2016년부터 2023년까지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구체적 증언은 수집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 뉴스타파가 2024년 북한인권보고서에 기술된 정치범 수용소 관련 탈북민의 증언을 분석한 결과, 최근 10년 사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증언한 것으로 확인되는 내용은 한 건도 없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북한을 악마화하도록 결론 내려놓고 직접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왜곡하고 짜인 프레임에 맞춰 집어넣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순방 중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2023 북한인권보고서 발간 사실을 알리며 "남한 드라마를 보았다는 이유로 공개 총살된 끔찍한 사례가 있다"라고 말했다. 2024년 북한인권보고서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이 담겼다. 2022년 황해남도에서 남한 노래와 영화를 시청 및 유포해 공개 처형이 집행됐고, 2023년에는 이른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위반자들을 처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고서의 각주를 보면 이 증언들은 복수의 탈북자가 아니라 한 사람이 말한 것으로 나온다. 오랫동안 북한을 연구한 독일 출신의 한 전문가는 남한 드라마를 시청했다는 이유로 공개처형이 이뤄졌다는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법에서는 그렇게 나오지 않아요. (남한 드라마를) 시청하면 죄수로 5년간 감옥에 가야 한다고 그렇게 나오고. 그런데 사형까지는 하지 않아요. 유포자를 무조건 사형시킨다는 말 하나도 없어요. 

와이저 마틴(북한학 연구자, 독일 베를린자유대 박사과정)  
뉴스타파는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북한 법령집에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의 법조문을 확인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제 27조부터 41조까지 각각의 구체적 위반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나열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최고 사형을 언도할 수 있는 위반 행위는 두 개다. 
첫 번째는 제 28조의 규정인데 "많은 양의 적대국 영화나 녹화물, 편집물, 도서를 유입, 유포하였거나 많은 사람에게 유포한 경우 또는 집단적으로 시청, 열람하도록 조직하였거나 조장한 경우에는 무기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포르노 영화와 미신 전파 관련 내용인데 "많은 양의 성 녹화물(포르노) 또는 색정 및 미신을 설교한 영화나 녹화물, 편집물, 도서, 사진, 그림 같은 것을 만들었거나 유입, 유포하였거나 많은 사람에게 유포한 경우 또는 집단적으로 시청, 열람하도록 조직하였거나 조장한 경우에는 사형에 처한다(제29조)"라고 되어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남한 드라마와 영화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사형을 시킬 수 없다. 반동문화사상배격법 제 27조는 "괴뢰(주로 대한민국을 지칭) 영화나 녹화물을 보거나 보관하는 자, 유입 유포한 자는 5년 이상 10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다. 노동교화형은 우리의 징역형과 유사한 처벌이다.
통일부가 최소한의 교차 검증조차 하지 않은 채 탈북민의 일방적인 진술을 보고서에 담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랑이 신부를 업거나 선글라스를 끼면 반동사상 행위?

2024년 북한인권보고서는 북한이 금지하는 반동사상 행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결혼식에서 신랑이 신부를 업거나 신부가 흰색 드레스를 입는 경우,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여성이 장신구를 여러 개 하는 것 등 6가지 사례다. 
△ 한 러시아 여행객이 올해 4월 촬영한 북한 영상, 선글라스를 낀 북한 주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북한의 실제 모습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보면 이 같은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4월 한 러시아인 여행객이 북한 평양에서 촬영한 영상에는 선글라스를 착용한 북한 주민들과 귀걸이와 목걸이 등 한껏 치장을 여성이 등장한다. 
2022년 일본 교도통신이 촬영한 화면에도 시계와 반지, 팔찌, 목걸이 등 장신구를 걸친 북한 여성의  모습이 나온다. 

정부 입맛 따라 바뀌는 '고무줄식' 보고서

통일부가 북한인권법에 따라 2017년 처음 국회에 제출한 북한 인권 실태 조사 보고서에는 "강제 송환된 북한 주민 일부가 구금 시설에서 강압적인 조사를 받았고, 장애인과 아동, 여성 등 취약 계층의 인권 상황이 열악하다"라고 기술돼 있다. 
그런데 이듬해 작성된 보고서에는 북한 인권에 대한 긍정적인 변화가 강조됐다. 구금 시설에서 폭행을 당하지 않았다는 증언과 임산부가 임신 4개월이 되면 구금 시설에서 내보낸다는 탈북민의 증언을 실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은 북한의 구금 시설과 보육 시설, 취약 계층의 인권 상황이 어떻게 나아졌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기술됐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2년부터는 보고서의 내용이 판이하게 바뀌었다. 구금 시설에서 가혹행위가 이뤄지고 있으며, 공개 처형과 여성 구금자에 대한 성폭행 등 인권 유린을 고발하는 탈북민의 증언이 다시 담기기 시작했다. 마치 정권의 입맛에 맞추듯 보고서에 기술된 북한의 인권 실태가 극적으로 달라졌다.
북한 인권 전문가들은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근거가 빈약한 보고서로 갈등을 부추기는 대신 남북 간의 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과거 유럽에서 헬싱키프로세스를 추진하면서 인권에 대한 개념들이 다르고, 서로 대립적인 상황에서 문제를 풀어갔던 방식이 바로 인적 접촉을 인권 문제에서 떼어낸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북한과 대화를 해 나가면 어느 시점에서인가 인권 문제가 자연스럽게 올라온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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