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흡연에 샤브샤브까지...김승연 회장의 ‘슬기로운 수감 생활’
2017년 12월 27일 16시 25분
만 6년 4개월, 헌정 사상 최장기 보석을 기록 중인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의 몸 상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회장은 2012년 ‘빠른 간 이식 수술’을 위해 미국에 입원을 하겠다는 이유를 들어 법원에서 병보석을 허락받았다. 하지만 뉴스타파 취재 결과, 해당 미국 병원은 “애초에 빠른 이식 수술은 불가능했으며, 미국에서 검사를 할 필요도 없었다”고 밝혔다. 당연히 이 회장은 간 이식 수술을 받지도 않았다.
지난달 24일 KBS는 이 전 회장이 술집에 자주 드나든다는 증언과 담배를 피우는 사진, 떡볶이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동영상 등을 공개했다. MBC 역시 지난 11일, 이호진 전 회장이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심지어 필라테스 강좌를 수강하기까지 했다는 최측근의 증언을 보도했다. 이에 따라 그가 과연 수감생활을 견딜 수 없는 몸상태인지, 보석으로 그를 풀어준 법원(당시 서울고법 형사3부, 부장판사 최규홍)의 결정이 정당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뉴스타파가 이호진 전 회장의 구속집행 정지와 병보석 허가 과정을 취재한 결과, 석연치 않은 정황이 다수 포착되었다. 이 전 회장은 보석을 받기 전 구속집행정지 기간 동안 간 절제술을 받았는데, 통상적인 회복기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계속 구속집행정지 연장 결정을 받아냈다. 뿐만 아니다. 이호진 전 회장은 미국에 가서 간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병보석을 받았는데, 정작 미국에 가서는 간 이식 수술을 받지 않았다. 그가 입원했던 미국 병원을 뉴스타파가 취재한 결과 이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는데는 최소 5년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석으로 풀려나 잠깐 미국에 가서 간 이식 수술을 받는 게 처음부터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애초부터 간 이식 수술을 위해서가 아니라 병보석을 목적으로 미국 출국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이호진 전 회장은 지난 2011년 1월 31일 회삿돈 1,400억 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리고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3월 24일 구속 집행 정지 결정을 받아냈다. 당시 이 전 회장은 간암이 3기까지 진행되는 바람에 간 절제 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구속 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속 집행 정지를 받은 뒤 12일만인 2011년 4월 5일, 이 전 회장은 실제로 간 절제수술을 받았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이 전 회장의 의료 기록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간의 약 35%를 절제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간 절제 수술을 받은 뒤 통상적인 회복 기간은 얼마일까? 뉴스타파가 간암을 전문으로 하는 복수의 소화기 내과 전문의에게 문의한 결과, 간 절제 수술을 받은 환자의 회복 기간은 길게 잡아도 6개월 정도다. 1개월이 지나면 수영, 자전거타기, 등산, 골프 등의 운동을 시작할 수 있고, 6주에서 8주 정도가 지나면 수술로 인해 생긴 복부 내부의 상처가 완전히 아문다. 일반적인 사무직 직장인의 경우 4주에서 6주 정도가 지나면 업무 복귀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호진 전 회장은 간 절제 수술을 받은 뒤 1년이 넘도록 재판이 열릴 때마다 휠체어를 타고 링거를 팔에 꽂은 채 재판정에 등장했다.
지속적으로 이렇게 아픈 모습을 언론에 노출한 덕분이었을까? 이호진 전 회장은 간 절제 수술의 회복을 이유로 수술 뒤 무려 1년 2개월 동안, 즉 2012년 6월까지 무려 13차례에 걸쳐 구속집행정지 연장 처분을 받았다. 이 전 회장은 일반인에 비해 회복 속도가 2배 이상 느렸던 것일까?
다음은 뉴스타파가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이호진 전 회장의 구속 집행 정지 기록이다.
날짜 | 사건 |
2011.1.31 | 이호진 전 회장, 구속 기소 |
2011.03.24 | 구속집행정지결정 |
2011.4.5 | 이호진 전 회장, 간암절제 수술 |
2011.04.07 | 1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
2011.05.02 | 2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
2011.06.03 | 3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
2011.06.30 | 4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
2011.08.03 | 5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
2011.09.08 | 6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
2011.10.14 | 7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
2011.11.17 | 8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
2011.12.23 | 9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
2012.01.27 | 10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
2012.02.21 | 11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
2012.02.29 | 12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
2012.04.06 | 13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
2012.06.29 | 보석허가결정 |
2012.7.16 | 미국 USC 대학병원 입원 |
이호진 전 회장이 간 절제수술을 받은 지 1년 2개월 만인 2012년 6월 29일,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의 병보석을 허가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재판부는 “환자의 현재 건강상태와 간 이식 수술 필요성을 고려해 보석을 허가” 했다고 밝혔다.
간 이식 수술을 위해 왜 굳이 보석이 필요했던 것일까? 답은 그 뒤에 곧바로 나온다. 재판부는 “한국 병원에 수술을 예약했으나 1년 뒤에도 수술 여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며 “미국 병원에서 수술 받기 위한 검사를 위해 출국을 허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주 동안의 미국 출국까지 허락했다.
한국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기증자가 있어야 한다. 환자 본인이 간 기증자를 구하지 못할 경우 질병관리본부의 장기 이식 관리센터에 등록을 해야 한다. 일단 등록을 해 놓고, 간 기증자가 나타날 때마다 순서대로 이식을 받는 것이다. 문제는, 기증자는 적은데 대기자가 수천 명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 전 회장은 한국에서는 차례를 기다릴 수 없다며 미국에 가서 수술을 받겠다는 이유로 보석을 신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병보석을 허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호진 전 회장은 미국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지 않았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이 전 회장의 의료 기록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2012년 7월 16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병원(USC)에 방문하여 간이식 대기자 등록을 위해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수술은 받지 않았다. “미국에 가서 수술을 받겠다”는 게 병보석의 이유였는데, 정작 수술은 받지 않은 채 검사만 받고 돌아온 것이다.
“한국에서는 간 이식 수술 차례를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 수술을 받겠다”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한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미국에 가면 간 이식 수술을 한국에서보다 쉽고 빠르게 받을 수 있다”는 가정이다. 그런 가정이 없다면 굳이 미국에 가야할 이유가 없고 따라서 병보석을 받아야 할 명분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간 이식 수술을 쉽고 빠르게 받을 수 있었을까?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호진 전 회장이 병보석을 받은 뒤 미국으로 출국해 방문한 병원은 USC, 즉 남캘리포니아 대학 병원 산하의 Keck Medical Center다. 이 전 회장은 이 병원에 약 2주 동안 입원을 했다. 뉴스타파는 해당 병원에 직접 연락해 간 이식 수술의 조건과 절차, 기간 등에 대해 문의했다.
USC 산하 Keck Medical Center는 뉴스타파의 문의에 대해 “우리 병원에 기증자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대기자가 많기 때문에 기증을 받기까지는 평균 5-10년이 걸린다. 이 기간을 단축하려면 환자 본인이 가족이나 친척, 친구 등 기증자를 찾아서 데리고 와야 한다” 라고 답변했다. 비용을 아주 많이 지불하면 빠른 수술이 가능하지 않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불가능하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즉, “미국에 가면 간 이식 수술을 한국에서보다 쉽고 빠르게 받을 수 있다”는 가정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애초에 미국에 가봐야 간 이식 수술을 신속히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굳이 미국에 갈 이유가 없었고 따라서 병보석을 받아야 할 명분도 없었다는 뜻이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이호진 전 회장의 의료 기록 등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14일동안 Keck Medical Center에 입원을 했다. 그런데 이 병원 관계자는 뉴스타파 문의에 대해 , “간 이식 수술과 관련한 검사를 한국에서 받은 적이 있다면 미국에 와서 다시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 전 회장은 한국에서도 계속 입원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에 출국하기 얼마 전까지 검사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굳이 미국에 가서 새로 검사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는 얘기다.
왜 입원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Keck Medical Center는 뉴스타파 질의에, “간 이식 수술의 사전 검사는 흉부 엑스레이, 랩 테스트, 심전도 검사 등인데 이 검사들을 위해 굳이 입원을 해야할 필요는 없다” 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호진 전 회장은 대체 왜 굳이 미국까지 가서 검사를 받겠다며 입원을 한 것일까? 참고로, 뉴스타파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호진 전 회장이 14일 동안의 입원을 위해 지불한 돈은 미화 161,000 달러, 우리 돈으로 1억 8천만 원이었다.
종합하면, 이호진 전 회장이 미국에 가서 1억 8천만 원을 내고 14일 가량 입원을 한 것은 한마디로 반드시 필요한 치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에 간다고 해서 간 이식 수술을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굳이 미국에서 검사를 새로 해야할 이유도, 입원을 해야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병보석을 받아내기 위해서 미국에 가야만 했고, 미국에 간 김에 1억 8천만 원짜리 입원 생활을 하고 돌아왔다는 게 가장 유력한 추정이다.
병보석을 받아 미국에서 1억 8천만 원짜리 초호화 입원 생활을 하고 돌아온 이호진 전 회장은 한국에서도 질병관리본부 산하 장기이식센터에 대기자로 등록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은 없다. 2012년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대기자 등록을 했다고 가정해도 벌써 6년째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만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질병관리본부 산하 장기이식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간 이식을 받은 환자들의 평균 대기일수는 155일이었다. 평균 대기일수가 155일, 즉 5달 정도인데 이 전 회장이 6년 넘게 대기만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기이식센터에 따르면 간 이식 수술은 대기자 등록을 먼저 했다고 해서 먼저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선착순이 아니라는 뜻이다. 순서보다 중요한 것은 증상의 위중함이다. 병세가 위중한 환자일수록 먼저 간 이식 수술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이호진 전 회장의 간 기능은 수감생활을 견디지 못할만큼 나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KBS가 공개한 이호진 전 회장의 행적은 이러한 추정에 무게를 더한다.
뉴스타파는 이같은 의혹을 풀기 위해 여러 국회 의원실을 통해 병보석 당시 이호진 전 회장 측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와 법원의 병보석 심리 당시 속기록 등을 입수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법원은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어 당사자 외에는 공개할 수 없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뉴스타파는 이호진 전 회장 측에도 검증을 위해 동일한 자료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아무 답변을 받지 못했다.
지난 10월 25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은, 이호진 전 회장이 보석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거짓 서류를 제출하는 등 법원을 기망했다면 이를 수사할 수 있는지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질의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거짓 서류를 제출했다면 그 부분은 수사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뉴스타파의 취재 결과, 이 전 회장의 병보석의 이유였던 ‘미국 수술’은 애초에 불가능한 사안이었다. 이 전 회장이 거짓 서류를 제출하거나 법원을 속였을 가능성이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의 약속대로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취재 : 심인보,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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