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태광 이호진은 미국에 왜 갔나... '황제 보석'의 진실

2018년 11월 12일 17시 00분

만 6년 4개월, 헌정 사상 최장기 보석을 기록 중인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의 몸 상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회장은 2012년 ‘빠른 간 이식 수술’을 위해 미국에 입원을 하겠다는 이유를 들어 법원에서 병보석을 허락받았다. 하지만 뉴스타파 취재 결과, 해당 미국 병원은 “애초에 빠른 이식 수술은 불가능했으며, 미국에서 검사를 할 필요도 없었다”고 밝혔다. 당연히 이 회장은 간 이식 수술을 받지도 않았다.

지난달  24일 KBS는 이 전 회장이 술집에 자주 드나든다는 증언과 담배를 피우는 사진, 떡볶이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동영상 등을 공개했다. MBC 역시 지난 11일, 이호진 전 회장이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심지어 필라테스 강좌를 수강하기까지 했다는 최측근의 증언을 보도했다. 이에 따라 그가 과연 수감생활을 견딜 수 없는 몸상태인지, 보석으로 그를 풀어준 법원(당시 서울고법 형사3부, 부장판사 최규홍)의 결정이 정당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뉴스타파가 이호진 전 회장의 구속집행 정지와 병보석 허가 과정을 취재한 결과, 석연치 않은 정황이 다수  포착되었다. 이 전 회장은 보석을 받기 전 구속집행정지 기간 동안 간 절제술을 받았는데, 통상적인 회복기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계속 구속집행정지 연장 결정을 받아냈다.  뿐만 아니다. 이호진 전 회장은 미국에 가서 간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병보석을 받았는데, 정작 미국에 가서는 간 이식 수술을 받지 않았다. 그가 입원했던 미국 병원을 뉴스타파가 취재한 결과 이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는데는 최소 5년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석으로 풀려나 잠깐 미국에 가서 간 이식 수술을 받는 게 처음부터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애초부터 간 이식 수술을 위해서가 아니라 병보석을 목적으로 미국  출국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회복 기간 길어야 6개월”...이 전 회장은 14개월 간 구속집행정지

이호진 전 회장은 지난 2011년 1월 31일 회삿돈 1,400억 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리고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3월 24일 구속 집행 정지 결정을 받아냈다. 당시 이 전 회장은 간암이 3기까지 진행되는 바람에 간 절제 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구속 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속 집행 정지를 받은 뒤 12일만인 2011년 4월 5일, 이 전 회장은 실제로 간 절제수술을 받았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이 전 회장의 의료 기록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간의 약 35%를 절제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간 절제 수술을 받은 뒤 통상적인 회복 기간은 얼마일까? 뉴스타파가 간암을 전문으로 하는 복수의 소화기 내과 전문의에게 문의한 결과, 간 절제 수술을 받은 환자의 회복 기간은 길게 잡아도 6개월 정도다. 1개월이 지나면 수영, 자전거타기, 등산, 골프 등의 운동을 시작할 수 있고, 6주에서 8주 정도가 지나면 수술로 인해 생긴 복부 내부의 상처가 완전히 아문다. 일반적인 사무직 직장인의 경우  4주에서 6주 정도가 지나면 업무 복귀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호진 전 회장은 간 절제 수술을 받은 뒤 1년이 넘도록 재판이 열릴 때마다 휠체어를 타고 링거를 팔에 꽂은 채 재판정에 등장했다.

지속적으로 이렇게 아픈 모습을 언론에 노출한 덕분이었을까? 이호진 전 회장은 간 절제 수술의 회복을 이유로 수술 뒤 무려 1년 2개월 동안, 즉 2012년 6월까지 무려 13차례에 걸쳐 구속집행정지 연장 처분을 받았다. 이 전 회장은 일반인에 비해 회복 속도가 2배 이상 느렸던 것일까?

다음은 뉴스타파가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이호진 전 회장의 구속 집행 정지 기록이다.

날짜 사건
2011.1.31 이호진 전 회장, 구속 기소
2011.03.24 구속집행정지결정
2011.4.5 이호진 전 회장, 간암절제 수술
2011.04.07 1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2011.05.02 2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2011.06.03 3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2011.06.30 4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2011.08.03 5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2011.09.08 6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2011.10.14 7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2011.11.17 8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2011.12.23 9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2012.01.27 10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2012.02.21 11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2012.02.29 12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2012.04.06 13차 구속집행정지연장결정
2012.06.29 보석허가결정
2012.7.16 미국 USC 대학병원 입원

“미국에서 수술받겠다”며 병보석… 정작 수술은 안 받았다

이호진 전 회장이 간 절제수술을 받은 지 1년 2개월 만인 2012년 6월 29일,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의 병보석을 허가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재판부는 “환자의 현재 건강상태와 간 이식 수술 필요성을 고려해 보석을 허가” 했다고 밝혔다.

간 이식 수술을 위해 왜 굳이 보석이 필요했던 것일까? 답은 그 뒤에 곧바로 나온다. 재판부는 “한국 병원에 수술을 예약했으나 1년 뒤에도 수술 여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며 “미국 병원에서 수술 받기 위한 검사를 위해 출국을 허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주 동안의 미국 출국까지 허락했다.

한국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기증자가 있어야 한다. 환자 본인이 간 기증자를 구하지 못할 경우 질병관리본부의 장기 이식 관리센터에 등록을 해야 한다. 일단 등록을 해 놓고, 간 기증자가 나타날 때마다 순서대로 이식을 받는 것이다. 문제는, 기증자는 적은데 대기자가 수천 명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 전 회장은 한국에서는 차례를 기다릴 수 없다며 미국에 가서 수술을 받겠다는 이유로 보석을 신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병보석을 허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호진 전 회장은 미국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지 않았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이 전 회장의 의료 기록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2012년 7월 16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병원(USC)에 방문하여 간이식 대기자 등록을 위해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수술은 받지 않았다. “미국에 가서 수술을 받겠다”는 게  병보석의 이유였는데,  정작 수술은 받지 않은 채 검사만 받고 돌아온 것이다.

▲ 뉴스타파가 국회를 통해 확보한 이호진 전 회장에 대한 소견서. 이 전 회장은 지난 2017년 국정감사에서 증인 출석을 취소해달라며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에 이 소견서를 첨부했다.

애초에 미국에 갈 이유도, 입원할 이유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간 이식 수술 차례를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 수술을 받겠다”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한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미국에 가면 간 이식 수술을 한국에서보다 쉽고 빠르게 받을 수 있다”는 가정이다. 그런 가정이 없다면 굳이 미국에 가야할 이유가 없고 따라서 병보석을 받아야 할 명분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간 이식 수술을 쉽고 빠르게 받을 수 있었을까?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호진 전 회장이 병보석을 받은 뒤 미국으로 출국해 방문한 병원은 USC, 즉 남캘리포니아 대학 병원 산하의 Keck Medical Center다. 이 전 회장은 이 병원에 약 2주 동안 입원을 했다. 뉴스타파는 해당 병원에 직접 연락해 간 이식 수술의 조건과 절차, 기간 등에 대해 문의했다.

USC 산하 Keck Medical Center는 뉴스타파의 문의에 대해  “우리 병원에 기증자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대기자가 많기 때문에 기증을 받기까지는 평균 5-10년이 걸린다. 이 기간을 단축하려면 환자 본인이 가족이나 친척, 친구 등 기증자를 찾아서 데리고 와야 한다” 라고 답변했다. 비용을 아주 많이 지불하면 빠른 수술이 가능하지 않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불가능하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즉, “미국에 가면 간 이식 수술을 한국에서보다 쉽고 빠르게 받을 수 있다”는 가정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애초에 미국에 가봐야 간 이식 수술을 신속히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굳이 미국에 갈 이유가 없었고 따라서 병보석을 받아야 할 명분도 없었다는 뜻이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이호진 전 회장의 의료 기록 등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14일동안 Keck Medical Center에 입원을 했다. 그런데 이 병원 관계자는 뉴스타파 문의에 대해 , “간 이식 수술과 관련한 검사를 한국에서 받은 적이 있다면 미국에 와서 다시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 전 회장은 한국에서도 계속 입원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에 출국하기 얼마 전까지 검사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굳이 미국에 가서 새로 검사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는 얘기다.

왜 입원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Keck Medical Center는 뉴스타파 질의에, “간 이식 수술의 사전 검사는 흉부 엑스레이, 랩 테스트, 심전도 검사 등인데 이 검사들을 위해 굳이 입원을 해야할 필요는 없다” 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호진 전 회장은 대체 왜 굳이 미국까지 가서 검사를 받겠다며 입원을 한 것일까? 참고로, 뉴스타파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호진 전 회장이 14일 동안의 입원을 위해 지불한 돈은 미화 161,000 달러, 우리 돈으로 1억 8천만 원이었다.

▲ 이호진 전 회장이 병보석을 받아 입원한 미국 USC 산하 Keck medical center. 이 병원은 뉴스타파 질의에 대해 1. 간 기증을 받기까지는 5-10년이 걸리고 2. 한국에서 검사를 받았다면 미국에서 다시 검사를 받을 이유가 없으며 3. 검사를 위해 굳이 입원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답변했다. (사진 출처 : Keck medical center 홈페이지)

종합하면, 이호진 전 회장이 미국에 가서 1억 8천만 원을 내고 14일 가량 입원을 한 것은 한마디로 반드시 필요한 치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에 간다고 해서 간 이식 수술을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굳이 미국에서 검사를 새로 해야할 이유도, 입원을 해야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병보석을 받아내기 위해서 미국에 가야만 했고, 미국에 간 김에 1억 8천만 원짜리 입원 생활을 하고 돌아왔다는 게 가장 유력한 추정이다.

6년째 간 이식 대기 중…위중하지 않을 가능성 높아

병보석을 받아 미국에서 1억 8천만 원짜리 초호화 입원 생활을 하고 돌아온 이호진 전 회장은 한국에서도 질병관리본부 산하 장기이식센터에 대기자로 등록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은 없다. 2012년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대기자 등록을 했다고 가정해도 벌써 6년째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만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질병관리본부 산하 장기이식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간 이식을 받은 환자들의 평균 대기일수는 155일이었다. 평균 대기일수가 155일, 즉 5달 정도인데 이 전 회장이 6년 넘게 대기만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기이식센터에 따르면 간 이식 수술은 대기자 등록을 먼저 했다고 해서 먼저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선착순이 아니라는 뜻이다. 순서보다 중요한 것은 증상의 위중함이다. 병세가 위중한 환자일수록 먼저 간 이식 수술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이호진 전 회장의 간 기능은 수감생활을 견디지 못할만큼 나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KBS가 공개한 이호진 전 회장의 행적은 이러한 추정에 무게를 더한다.

병보석 받은 과정 수사해야

뉴스타파는 이같은 의혹을 풀기 위해 여러 국회 의원실을 통해 병보석 당시 이호진 전 회장 측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와 법원의 병보석 심리 당시 속기록 등을 입수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법원은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어 당사자 외에는 공개할 수 없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뉴스타파는 이호진 전 회장 측에도 검증을 위해 동일한 자료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아무 답변을 받지 못했다.

지난 10월 25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은, 이호진 전 회장이 보석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거짓 서류를 제출하는 등 법원을 기망했다면 이를 수사할 수 있는지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질의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거짓 서류를 제출했다면 그 부분은 수사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뉴스타파의 취재 결과, 이 전 회장의 병보석의 이유였던 ‘미국 수술’은 애초에 불가능한 사안이었다. 이 전 회장이 거짓 서류를 제출하거나 법원을 속였을 가능성이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의 약속대로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취재 : 심인보,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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