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 강행과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는 그 정점에 있습니다. 뉴스타파와 미디어오늘, 시사인,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 5개 언론사는 각 사 울타리를 넘어 진행하는 ‘진실 프로젝트’ 첫 기획으로, 현 정부의 언론장악 실태를 추적하는 ‘언론장악 카르텔’ 시리즈를 함께 취재 보도합니다. <편집자주>
윤석열 정권에서 공영방송 및 방송통신정책기관 흔들기에 앞장선 보수 단체들의 뿌리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여러 불법적 지원을 받았던 일명 ‘아스팔트 우파’ 세력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세력은 과거 국가정보원(국정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을 통해 자금을 지원 받았고, 이후 간판만 바꿔 달며 이합집산을 거듭하다 현재에 이르렀다.
문재인 정권 당시 이들에 대한 수사를 한 건 윤석열 중앙지검장이었다. 사법 처리까지 됐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마치 좀비처럼 부활한 뒤 윤석열 정권 언론장악의 선봉에 섰다. 이 세력을 구성한 여러 단체들은 겉으로 보이는 이름만 다를 뿐, 상당수가 같은 건물에 모여 있거나 사무실을 공유했다. 특정 인사들이 이 세력을 지배한 사실도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 등 5개 언론사가 속한 ‘언론장악 카르텔 공동취재팀’(이하 공동취재팀)이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돌격대로 나선 ‘아스팔트 우파’의 기원을 추적했다.
‘언론장악 카르텔’... 데이터 분석으로 실체 그려보니 '양대 산맥'으로 분할
앞서 공동취재팀은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곳곳에서 주요 선수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네트워크 지도를 그렸다. 사회관계망분석(SNA)을 통해 분석한 결과, 이들은 크게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와 새미래포럼이라는 두 개의 단체를 중심으로 각각 두 덩어리로 나뉜다. 두 단체는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발족해 언론 분야에서 여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실상 관변 단체 구실을 해왔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출신과 기원에는 차이가 있다.
오른쪽 덩어리인 공언련류 단체가 지상파 방송사 내 보수 성향 노조에서 비롯된 연합체라면, 왼쪽은 새미래포럼류 단체다. 새미래포럼류 단체는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라고 불리는 극우 성향 재야 단체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동취재팀이 공언련에 이어 새미래포럼류 단체의 기원을 추적한 결과, 이들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시절 국가정보원(국정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은 ‘화이트리스트’였고 이후 간판을 바꿔 달며 이합집산을 거듭하다 현재에 이르렀다.
공동취재팀이 ‘윤석열 정부 언론 장악의 홍위병 역할을 하는 단체’의 네트워크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새미래포럼’(왼쪽)을 중심으로 한 그룹과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를 중심으로 한 그룹 등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왼쪽 네트워크에 속한 새미래포럼과 자유언론국민연합은 최근 2년여간 여당 국민의힘이 주최한 국회 토론회에 가장 많이 참여한 곳으로 꼽힌다. 새미래포럼은 공언련와 함께 윤석열 정부 '언론장악 카르텔 인물 네트워크’의 양대 축이다. 자유언론국민연합은 가짜뉴스뿌리뽑기범국민운동본부와 함께 지난해 한국언론재단의 사업 지원을 받아 ‘가짜뉴스 시상식’을 개최했다. 이 시상식은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 MBC의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보도를 ‘가짜뉴스’로 선정하기도 했다.
새미래포럼(위)과 자유언론국민연합(아래)의 홈페이지 모습. 다른 단체이지만 생김새가 매우 유사하다.
공동취재팀은 왼쪽 네트워크에 속한 단체들을 추적하며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이 단체들의 홈페이지가 매우 유사한데다 주소지가 한군데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종로빌딩이다.
언론장악 카르텔 거점 기지는 ‘종로빌딩’
종로빌딩 3층 사무실 유리창에 붙은 단체 소개 팻말들. (2024년 8월 26일 촬영)
종로경찰서 맞은편에 자리잡은 종로빌딩 5층과 8층에는 자유연대, 자유민주국민연합, 자유언론국민연합, 한국NGO연합, 국민노동조합, 새미래포럼, 가짜뉴스뿌리뽑기범국민운동본부, 언론테러범시민대책위원회, 대한민국 감사국민위원회, 비상시국국민회의, 자유민주국민연합, 더트루스닷컴, 광화문광장편법공사저지시민연대, NGO프레스, 국민의자유와인권을위한 변호사모임, 프리덤칼리지장학회, 자유시민서울시장후보공천연대 등의 단체들이 주소를 두고 있다.
이들은 언론 분야를 포함해 각종 정치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기자회견, 토론회, 고소·고발 등 활동을 벌이며 정부·여당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해온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 단체다.
‘아스팔트 우파’ 중 각종 기자회견, 집회, 행사 등을 주도하며 굵직한 역할을 해온 단체는 자유연대가 대표적이다. 자유연대는 “참여연대를 벤치마킹하되 참여연대를 뛰어넘는 것이 목표”라며 2018년 8월 발족했다.
자유연대는 갑자기 생겨난 단체가 아니다. 뿌리는 애국단체총협의회(애총)이다. 이들은 “문재인 정권이 애총을 수시로 압수수색하자 더 이상 자유진영의 사령탑으로서의 시민단체 운영을 할 수 없다”며 2017년 11월 자유민주국민연합을 만들었다. 또 “문재인 정권과 좌파 대응에서 실천력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며 2018년 8월 자유연대를 창립했다. 애총에서 자유민주국민연합과 자유연대가 갈라져 나온 것이다.
‘이명박근혜’ 시절 국정원 지원 관변단체들, 좀비처럼 언론장악 돌격대로 환생
애총은 과거 국정원과 대기업의 돈을 받아 관제데모 등을 기획한 ‘관변 단체’ 중 하나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종북세력” 또는 “좌파”로 규정하고 이들이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활동을 했다. 국정원의 아스팔트 우파 단체 활동 지원은 좌파, 종북세력 저지 활동의 일환이었다. 당시 국정원은 이른바 ‘대기업 매칭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기업들이 후원, 협찬, 기부금, 사무실 지원 등의 형식으로 아스팔트 우파 활동을 지원하게 했다. 국정원은 애총을 A급 단체로 분류해 STX로부터 돈을 받게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애총은 국정원과 전경련을 통해 대기업 지원을 받았다. 2017년 박영수 특검팀은 청와대 요구를 받은 전경련이 회원사인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대기업 자금을 통해 보수단체 42곳에 3년간 약 69억원을 지원했다고 수사 결과를 보고했다. 애총은 당시 7회에 걸쳐 2억6천만 원을 받았다. 42개 단체 가운데 네번째로 많은 액수다.
애총은 재향경우회, 고엽제전우회, 자유총연맹 등 11개 단체가 참여한 우파 단체 연합체로, 이명박 정권 시절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치 현안이 떠오를 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2013년 통합진보당 해산,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역사 국정 교과서 논란 등 다양한 국면에서 집회·회견을 열어 보수 세력의 스피커 역할을 했다. 2016년 말부터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당시 애총은 촛불 집회에 맞선 맞불 집회의 한 축으로 활동하며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불씨를 당기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적폐 청산’ 작업 과정에서 이명박-박근혜 시절 조직적인 관변단체 지원 의혹이 불거지며 대부분의 단체들이 와해되면서 활동 범위가 축소됐다. 그러나 애총은 자유민주국민연합, 자유연대 등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아스팔트 우파 단체를 재구성했고, 이들은 윤석열 정부 ‘언론장악 카르텔’의 돌격대가 됐다.
70평 종로빌딩 사무실에 수십 개 단체를 만든 사람
종로빌딩에 입주한 각 단체의 활동 내역과 등기부등본 등을 종합하면, 이 단체들을 설립했거나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인물은 이희범 씨다. 이 씨는 각 단체들의 대표, 또는 사무총장 등 요직을 맡고 있다.
이 씨는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의 대항 세력을 자처했던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공학연)’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면서,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 시절 ‘화이트리스트’를 모두 경험했다. 공학연은 GS(2011년 6000만원), LG(2012년, 2013년 총 2억원)을 지원 받았다. 또 국정원 지원을 받고 서울 역삼동의 ‘부림주택’에 입주한 관변단체 중 하나인 자유민주주의수호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이었다.
2022년, 이희범 자유연대 대표가 미 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수요시위에 맞서 맞불집회를 열고 방해하는 모습.
뿐만 아니다. 이 씨는 ‘촛불집회는 북한 추종세력이 주도하는 대한민국 체제 전복 시도’라고 주장하는 한국자유회의 창립 발기인이다. 또 민주노총에 대항하여 만들었다는 국민노조의 위원장이며, 애총 사무총장이자 청원 시스템을 구축하여 각종 사안에 대해 지지자들의 서명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의 사무총장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당시에는 윤석열 캠프에서 활동했다. 공동취재팀이 입수한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조직도를 보면, 이 씨는 당시 시민사회본부 본부장으로 박승환 전 한나라당 의원(17대 국회), 박인주 전 청와대 사회통합수석(이명박 정부) 등과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지난 대선 윤석열 선거대책본부 조직총괄본부(주호영 본부장) 조직도. 이희범 씨는 시민사회본부장에 이름을 올렸다.
선대위 조직도를 보면, 이 씨는 최근 논란이 됐던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비서관보다 높은 직급(본부장)이었다. 김대남은 대통령실 입성 전, 윤석열 대선 후보 선대본 투게더본부의 ‘부실장’이었다. 공동취재팀은 지난 10월, 김대남이 ‘새로운민심새민연’이라는 단체를 통해 정부 비판 언론에 대한 고발을 사주한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3월30일 한 유튜버 영상에 등장한 이 씨는 “오늘부터 케이비에스 시청료 거부 운동을 시작했다”면서 “일단 1단계, 전기요금에 징수되는 시청료를 분리징수해야 한다. 시청료가 안 들어가야 케이비에스(KBS) 직원들이 반성도 하고, 구조조정도 한다. KBS, MBC는 대한민국에 없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 시기는 대통령실이 국민제안사이트에 ‘국민참여 토론’을 제안(3월9일)하며 TV수신료 분리징수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던 때다. 정부 방침에 발맞춰 보수 단체가 행동으로 호응한 셈이다. 이 씨는 수신료 거부 서명 운동을 “우리 자유연대”와 함께 ‘종로빌딩’에 있는 단체가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공동취재팀과 만난 이 씨는 “종로빌딩은 오랫동안 자유우파 시민사회의 거점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교조가 극성이던 시절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공학연) 등을 통해 잘못된 권력에 대해 많은 저항을 해왔다. 박근혜 정부 화이트리스트 해봤자 불과 돈 몇 푼인데 큰 일이 있는 것처럼 다 압수수색하고 구속하고 잡아들였다”라고 말했다. 최근 언론 관련 활동에 매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의 문제다. 상황이 악화되고 하니까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서 결성하고 활동도 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아웃사이더... 국민의힘은 우리를 동반자라고 생각 안 해”
이 씨는 올해 1월 초 언론테러범시민대책위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2월 말, 실제로 이 단체가 만들어졌지만 이 씨가 활동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지난 4월 19일 법정 구속됐기 때문이다. 2019년 검찰이 자유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는데, 이 씨는 당시 검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5개월을 구속된 채로 재판을 받다 지난 9월13일에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공교롭게도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 2024년 총선 등 대형 선거가 끝날 때마다 형사 처벌을 받은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씨는 현재 자신의 처지를 “아웃사이더”라고 표현한다. 그는 취재진에게 “이 사회가 미친 사회다. 민주당은 NGO 단체 자체가 하나의 권력 동반자인데 국민의힘은 권력의 동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의 모양 내기밖에 안 된다”라며 정부 여당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정상이 되는 때 나서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나중에 때가 되어 어느 정도 사회가 정상이 될 때 정치를 하는 게 의미가 있다”라며 외곽에서 또다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