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삼성의 위험한 공장 ③ 위험은 진화한다

2023년 03월 16일 20시 00분

삼성전자가 베트남 박닌시에 위치한 자신의 공장에서 최소 2년 이상 폐수를 무단 방류한 정황이 드러났다. 폐수가 나온 일부 공정에서는 하천 생태계와 인근 주민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유해 물질이 사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공장에서 일했던 삼성 내부 관계자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의 경영진들이 이 같은 사항을 보고받았지만 사실상 방치했다고 말했다.

"공장 가동 2년까지 폐수처리 시설 없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삼성전자 베트남 박닌공장의 환경안전 문제를 조사한 내부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2012년 12월 작성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보고서 작성 시점까지 폐수처리장 건설이 완료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는 박닌공장이 가동된 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보고서에는 이 같은 폐수 무단 방류로 인해 법적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언급도 나온다. 문서의 '법규 위반사항' 란에는 일부 공정에서 발생한 폐수가 우수관로를 통해 외부 유출되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 2012년 작성된 삼성전자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공장 가동 2년이 지난 시점까지 폐수처리장 건설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박닌공장 현장에서 이 문제를 조사했던 전직 삼성전자 환경안전 관리자 강 모 씨는 이 보고서 내용이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강 씨는 박닌공장 내부에서 이뤄지던 도장, 인쇄, 금형 등의 공정에서 발생한 폐수가 사실상 정화 처리 없이 그대로 외부로 흘러나가고 있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당시 식당, 화장실 등에서 나온 생활 오수를 처리하는 시설은 있긴 했지만 이조차도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화학물질이 섞인 공장 폐수가 오수처리 시설까지 흘러들어오면서 오수의 생화학적 정화 방식이 무력화됐다는 설명이다.
뉴스타파는 2016년 작성된 박닌공장 화학제품 사용 기록을 토대로 폐수가 발생한 공정에서 사용된 유해 물질 성분을 시민단체 반올림 등과 분석했다. 분석 결과, 폐수로 하천에 흘러들었을 경우 하천 및 주변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수생환경 유해성 물질'이 최소 10종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물질들은 주로 금형, 사출, 고무, 인쇄 등 공정에서 사용됐다. 
국내외 화학물질 유해성 정보들을 종합하면, 해당 물질들이 최소 2년에 걸쳐 장기간 방류됐다고 했을 때 인근 생태계에 직·간접적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금형 공정에 사용된 'N-페닐-1-나프틸아민' 물질의 경우, 환경 유입을 막도록 강하게 권고하고 있는 유해성 1등급 물질이다. 사출, 금형, 고무 공정에 두루 쓰인 '수소 처리된 경질 정제유' 등도 유해성 2등급 물질로 오랫동안 하천에 흘러들었을 경우 주변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 2016년 박닌공장에서 사용된 유해물질 가운데는 하천에 유출됐을 경우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수생환경 유해성 물질'이 포함돼 있었다.
취재진이 만난 박닌공장 인근 주민들은 과거 공장에서 나온 폐수가 환경에 악영향을 줬다고 주장했다. 푸른 논밭이었던 땅이 삼성 공장이 들어선 이후 사실상 황무지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 취재진이 현장을 취재했을 때, 공장 주변의 땅은 대부분 오수가 고이고 쓰레기가 쌓인 채 방치된 상태였다. 취재진과 만난 한 주민은 이 같은 환경 파괴로 인해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주민까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경영진과 베트남 당국, 환경 오염 몰랐을까? 

현재 박닌공장의 정화 시설은 정상 가동 중이다. 악취와 폐수 문제를 일으키던 박닌공장 내부의 도장, 인쇄 등의 공정은 이후 아예 없어졌고, 해당 공정들은 외부 협력사로 넘어간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미 흘러가버린 폐수와 황폐화된 주변 식생 간의 정확한 인과 관계를 밝히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거의 일이라고 해서 삼성 경영진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2012년 작성된 보고서를 통해 삼성의 경영진들은 폐수 방류 사실을 보고받았다. 제보자 강 씨는 상급자가 이 보고서를 묵인하려 하자 해당 내용을 직접 본사 임원에 보고하는 방식으로 실태를 알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강 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폐수 방류 문제는 소수의 관리자들만 알고 있는 상태로 덮어졌다. 시간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즉각적인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 베트남 감독당국은 2017년 IPEN 등 시민단체의 보고서가 나온 이후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 내부를 감독했지만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장기간에 걸친 폐수 방류를 알고도 삼성이 침묵할 수 있었던 배경에 주목한다. 결국 이면에는 삼성그룹이 베트남에서 갖고 있는 영향력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베트남 감독당국은 2017년 국제 유해 물질 반대 네트워크 IPEN 등의 보고서가 발간된 이후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 대한 내부 감독을 진행했지만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는 이번 뉴스타파의 연속 보도를 통해 드러난 삼성 자체의 환경안전 조사 결과와 상반된 결론이다.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은 지난해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25%를 맡고 있을 정도로 베트남 경제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베트남 당국 역시 문제를 공론화하기보다 이른바 '조용한 해결'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박닌 공장에서 근무한 적 있는 강 씨의 증언도 이러한 맥락과 닿아있다. 그는 행정 문제를 풀기 위해 삼성과 베트남 정부 당국 관계자와 교류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뤄져왔다고 증언했다. 

해외에 나가서도 변하지 않는 삼성

삼성전자 공장의 폐수 방류 문제가 불거진 것은 베트남 사례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다. 산업화 시기 삼성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 제조 공장의 폐수 방류 문제는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90년대 들어 환경 오염과 노동자 건강에 대한 시민 의식이 제고되면서 문제는 점차 자취를 감췄다.
가장 최근 삼성의 폐수 관리 문제가 드러난 곳은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다. 미국 현지 언론 보도 등에 의하면, 지난해 1월 말 삼성의 공장에서 3달 넘게 폐수가 흘러나와 인근 하천의 물고기가 폐사하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보도 이후 삼성은 폐수가 새어나간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폐수 성분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뉴스타파는 이 문제를 조사 중인 텍사스 환경 위원회(TCEQ)에 조사 결과에 대해 문의했지만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답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 2022년 1월, 미국 현지 언론들은 텍사스주 오스틴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폐수가 누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전직 삼성 환경안전관리자로 삼성의 국내외 공장을 조사했던 강 모 씨는 이러한 공장의 부실과 환경오염 문제는 이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닌공장에서 관리 업무를 맡아 많은 환경안전 문제를 개선한 후, 베트남 호치민 공장으로 다시 발령받았을 때 마주했던 막막한 현실에 대해 회상했다. 
백색가전을 주로 제조하는 호치민 공장의 상태는 2012년경 그가 처음 박닌공장을 방문했을 때의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유해 물질 관리와 폐수 관리가 부실했고, 공장의 노동자들은 안전설비를 가동하지 않은 채 일하고 있었다. 경영진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지만, 이번에도 개선 조치는 차일피일 미뤄졌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강 씨는 삼성에 대해 갖고 있는 자부심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환경과 인권에 대한 의식 수준이 높지 않은 국가들로 퍼져나간 글로벌기업 제조 공장의 환경안전 실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언론과 국제시민사회의 감시망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든 환경이기 때문이다. 조 디간지 국제 유해 물질 반대 네트워크 'IPEN' 과학기술고문은 내부 고발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해외 공장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내부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삼성이라는 이름과 규모에 걸맞는 책임 경영이라고 조언한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전 세계 사업장에서 환경안전 관련 법규와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라며 “규정 미준수 등이 발생한 경우 즉각 개선 조치를 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제작진
취재김새봄, 오대양, 이명주
촬영이상찬
편집정애주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