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으로 방만한 돈... 정당 국고보조금, 널 믿어도 되는 거니?

2015년 02월 01일 14시 29분

'오빠 믿지' 식 기준 없는 회계보고서와 형식적인 감사시스템

정당들이여, 내 세금 어떻게 쓰고 있나요.

#1. 깊어가는 밤. 한창 바쁜 연초라 목이 타던 차였다. 호프에서 맥주를 마시며 회포를 풀던 정의당. 2013년 2월~5월경 사이에 가진 4번의 뒷풀이 비용은 129만5천원. 모두 국고보조금으로 계산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감사단은 정의당의 회식비를 위반행위로 적발했다.

#2. 새누리당 회계책임자 A씨. 연설업체로부터 임차비용의 일부인 70만원을 돌려받았다. 욕심이 생겼다. 고민 끝에 결국 회계보고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감사에서 발각됐다.

두 사례는 2014년에 선관위가 공개한 2013년 회계보고 위반행위다. 국민들은 각종 세금이 오를 때마다 속이 탄다. 세금의 일부는 각 정당에 국고보조금 형태로 지급한다.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은 깨끗하게 보조금을 운용하고 있을까. 보조금은 사용 규정을 지켜 지출하고 회계 장부에 내역 분류만 제대로 하면 합법적인 ‘잘 쓴 돈’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정당에 지급되는 보조금이 ‘국민의 혈세’라는 사실이다. 혈세는 정당이 마음껏 사용해도 괜찮은 ‘합법적으로 방만한 돈’이라도 괜찮은 것일까.

"정당 회계는 구멍가게라서 할 것도 없어요"

448억이 작은 돈이라는 새누리당

이 중 국고보조금은 61%인 274억에 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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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은 정치자금으로 굴러간다. 정치자금은 당비, 후원금, 기탁금, 보조금 등이다. 이 가운데 보조금은 국가로부터 받는다. 보조금은 정당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취재는 현 정권에 나온 회계자료(2012년1월1일~2014년6월24일까지)를 바탕으로 각 정당의 중앙당에 지급된 보조금에만 집중했다.

보조금 산정 공식은 ‘최근 실시한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의 선거권자 총수에 계상단가를 곱한 금액’이다. 계상단가는 ‘정당의 운영과 활동의 효율적 지원을 위하여 국고보조금 계상시 계상단가는 물가상승률을 반영(2008년 개정)’해서 매년 조금씩 올라 2014년 기준 968원이다.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정부3.0’, 들춰보니 ‘혼탁’

몇 명에게 지급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새누리당 인건비

다른 당은 보조금 외 당비로 사는 생수와 커피를 매달 보조금으로 구입하는 새정치

연말정산 기간이면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가 더욱 궁금하다. 잘 쓰이고 있다고 믿기에는 윗분들이 미덥잖다. 박근혜 정부는 ‘정부3.0’을 슬로건으로 공공정보의 공개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필자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얻은 자료는 ‘투명’이 아니라 ‘혼탁’했다. 아래 사진은 각 정당이 지출한 인건비 내역이다. 새정치와 정의당의 경우 인원수를 표기했지만 새누리당은 인원수조차 기록하지 않았다. 취재 결과 인원은 증빙서류를 봐야 알 수 있다. 증빙서류는 정치자금법 제42조에 따라 공개가 금지되어 있다. 정보공개가 혼탁한 이유다. 서보성 새누리당 재정팀장은 "인건비를 보면 많이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기업 수준은 아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경기대 이병철 교수는 "새누리당이 인건비를 몇 명에게 지급했는지 나오지도 않았다. 다른 당들도 적어도 평균 급여 정도는 적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각 정당이 보조금에서 충당하는 인건비 내역이다.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순

▲ 각 정당이 보조금에서 충당하는 인건비 내역이다.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순

각 정당이 선관위에 제출한 회계자료에는 특이점이 발견됐다. 새누리당의 경우 ‘사무기기’에 지난해 상반기동안 9회 지출했다. 구입한 지점은 총 4곳인데 이 중 S컴퓨터에서 사무기기 총 지출액의 79.7%에 달했다. 매달 약 46만원~326만원 어치의 사무기기를 구입한 것도 눈에 띈다. 한 관계자는 "매년 새 기계를 사는 등 비품구입에서 낭비가 심하다. 몇 년 치 비품목록을 비교해 보면 얼마나 자주 컴퓨터나 프린터를 바꾸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한 지점에서 몰아 구입하는 것이 의심쩍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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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의 경우 ‘생수구입비’와 ‘커피머신이용료 및 원두구입비’가 눈에 띄었다.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매달 일정한 금액으로 구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생수와 커피는 다른 당에는 없는 내역이다. 서보성 새누리당 재정팀장은 "보조금은 아주 엄격하게 써야한다"며 "우리도 생수는 한 달에 백만원 정도 나오는데 ‘보조금 외’ 항목으로 처리한다"고 했다. 정의당 김재윤 총무실 실장은 "정의당은 보조금이 다른 당에 비해 훨씬 적다. 인건비를 빼면 남는 게 없어서 ‘보조금 외’ 비용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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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당마다 내역이 다른 데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사2과 강호진 주무관에 따르면 "내역은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정치자금법만 따르면 괜찮다"고 했다. 또한 이병철 교수는 "내역을 통일하는 것은 발전을 막기 때문에 지양하지만 이 정도로 다른 것은 잘못됐다"고 했다. 정의당 김재윤 실장은 "선관위가 정치자금법을 들어 제시하는 과목해석표와 당에서 실제로 행해지는 부분과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형식적인 정당 회계 감사시스템

내부감사․ 외부감사․ 선관위감사

"국고는 혈세니까 투명해야 하잖아요"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정당 회계에 대해서 "선관위가 정당한테 어떻게 썼는지 보고하라고 하는 걸 보면 완전 주먹구구식이다"고 했다. 현행 감사 제도에 대해서는 "형식적인 것이다"고 했다. 우리나라 정당 회계는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고 선거가 있거나 지도부가 바뀌면 또 감사를 한다. 감사는 세 종류다. 먼저 당내에서 내부회계감사를 실시한다.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선관위로부터 회계감사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공인회계법인에 외부감사를 맡긴다.

▲ 각 정당이 보조금에서 충당하는 인건비 내역이다.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순

▲ 각 정당이 보조금에서 충당하는 인건비 내역이다.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순

당내에서는 예산결산위원회가 감사를 한다. 예결위원 수는 새누리당은 5명, 새정치민주연합은 7명, 정의당은 9명으로 각 당의 당규로 정했다. 예결위가 임명한 공인회계사 한 명을 반드시 포함한다. 하지만 당은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가를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최호윤 회계사는 "정당에서 방만한 보조금 사용을 막기 위해 적어도 예산심사 내용을 국민이 볼 수 있게끔 인터넷에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선관위에서는 당에서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면심사를 한다. 위반혐의가 있는 부분이 발견되면 현지심사를 한다. 예를 들면 고액의 선거용품을 구입했는데 기록된 업체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식이다. 하지만 전체 내역을 현지심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관계자는 "고액이 아닌 경우 위조 영수증을 만들어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귀띔했다.

공인회계법인에 외주를 주는 외부감사는 더 심각하다. 외부감사 선정 방식에 대해 새정치연합의 김영문 재정팀 부국장은 "적당한 가격을 찾기 위해 입찰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정의당은 ‘당에서 아는 사람’에게 외부감사를 받는다고 했다. 예전부터 당의 외부감사를 맡아왔거나 정당 회계법을 잘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게 이유다. 최호윤 회계사는 "정당이 스스로 감사인을 정하는 게 아니라 제3자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 2012~2014년도에 각 정당이 외부감사를 맡긴 공인회계법인과 감사인. 새누리당과 새정치는 같은 회계법인이 감사하고 있다.

▲ 2012~2014년도에 각 정당이 외부감사를 맡긴 공인회계법인과 감사인. 새누리당과 새정치는 같은 회계법인이 감사하고 있다.

김형준 교수는 "선관위는 정당으로부터 국정감사를 받는다. 미운 털 박히지 않으려고 감사를 대충한다"고 했다. 또 "가장 독립적인 감사원이 감사를 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며 "대폭적으로 손질이 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뉴스타파 동계 연수생 박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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