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 마나' 메르스 관리지침

2015년 06월 17일 18시 26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와 같은 신종 감염병이 국내에 유입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스와 신종플루 등이 이미 여러 차례 한반도를 관통했다. 정부는 이같은 감염병 발생 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감염병 위기관리 매뉴얼'을 마련해 두고 있다. 이에 더해서 각 감염병의 특성에 맞춰 세부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개별적 지침들을 따로 만들어 두기까지 했다. 메르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중동호흡기증후군 관리 지침'이 이미 지난해 7월에 만들어졌고 12월엔 한 차례 개정도 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 관리지침은 메르스 사태가 실제 발생하고 확산되는 동안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꼭 필요한 지침이 빠져 있거나, 그나마 있는 지침도 현장에서는 적용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5월 20일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지 닷새 만에 기존의 관리지침을 개정한 3판을 내놓았고 이후로도 세 차례에 걸쳐 수정을 가해 현재는 3­-­­3판까지 나와 있는 상태다. 한 마디로 관리지침에 따라 메르스 확산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메르스가 확산되는 양상에 맞춰 뒤늦게 관리지침을 수정해 나가고 있는 꼴이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질병관리본부는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던 메르스 관리지침 1판과 2판을 현재 모두 삭제한 상태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정부가 따르도록 돼 있던 ‘메르스 관리지침 2판’(2014.12)을 중심으로 과연 무엇이 문제였는지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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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경보 ‘관심’ 단계서 ‘대국민홍보’ 해야”... 현실은 ‘보도자료 단 1건’

국내외에서 감염병이 발생하면 정부는 감염병 위기경보를 발령한다. 총 4단계로 심각성 정도에 따라 관심-주의-심각-위험 순이다. 당연히 단계별로 대응 내용이 다르다. 5월 20일 첫 환자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메르스에 대한 감염병 위기경보는 ‘관심’수준이었다. 2013년 이후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등 해외에서 환자가 다수 발생하고 있었지만 아직 국내유입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르스 관리지침에 따르면 이 시기 정부는 감염 예방을 위해 언론기관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일선 병원에 예방주의 안내문을 배포하는 등 ‘대국민 홍보’를 실시해야 했다. 그러나 보건당국이 ‘관심’ 단계에서 메르스와 관련해 배포한 보도자료는 작년 5월 15일 질병관리본부에서 낸 ‘메르스 특성과 예방수칙 당부’ 1건이 전부다. 이후 첫 환자가 발생한 지난 5월 20일까지 1년 동안 어떤 홍보 활동도 없었다.

질병관리본부가 없었던 2003년 사스 상륙 당시엔 첫 감염자 발생(2003.4.29) 이전에 보건복지부는 보도자료 7건을 냈다. 이와 함께 관계부처 차관회의(2003.4.23)를 열고, 고건 당시 국무총리가 대국민담화(2003.4.28)를 통해 국민들에게 사전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관리지침이 규정한대로 사전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는 감염 의심자를 최초로 진료하게 되는 일선 의사들의 인식 미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한의사협회 신현영 홍보이사는 “메르스가 어떤 질병이고 언제 신고를 해야 하며 의심환자가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든 것을 첫 환자가 발생한 이후에야 알았다"면서 “솔직히 정부가 메르스 관리지침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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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경보 ‘주의' 단계서 일선에 진단시약 배포... 현실은 ‘배포할 시약 없어'

이처럼 메르스에 대한 위기 의식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에서 5월 20일 첫 환자가 발생했다. 정부는 관리지침에 따라 감염병 위기경보를 ‘주의’로 격상했다. 메르스 지침에 따르면 ‘주의’ 단계가 되면 질병관리본부가 일선 병원에 진단시약을 배포해 의심환자들에 대한 발빠른 진단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현실은 어땠을까.

정부는 첫 번째 환자가 발생했으나 일선 병원에 진단 시약을 배포하지 않았다. 아니 배포할 수가 없었다. 준비된 시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급처와의 계약 절차 등에 시간을 소요한 뒤 첫 환자 발생 15일 만인 6월 5일에야 진단시약을 배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마저도 일선 병원 전체가 대상이 되지 못했다. 6월 8일에야 녹십자의료재단 등 5개 검사업체와 삼성서울병원, 동탄성심병원 등 일부 대형병원에만 진단시약이 배포됐다.

이러다보니 그 이전까지의 모든 진단 검사는 국립보건연구원이 전담해야 했다. 그런데 이곳에선 하루 60여 건의 검사만 가능했다. 그러나 메르스 의심 격리자 수는 6월 1일과 2일 사이 682명에서 791명으로 하루 동안에만 100명 넘게 증가했다. 이미 이때부터는 국립보건연구원 혼자서 검사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결국 감염 의심자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판정은 즉각 이뤄지지 않는 상태가 한 동안 지속됐고 그만큼 정부의 후속 조치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측은 “만약 진단시약이 구비된 상태였어도 이를 검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병원이 많지 않아 모든 병원에 다 배포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사실 미리 진단 체계를 갖춰놨어야 지침대로 진단시약을 배포할 수 있는데 이론과 실제에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의심신고는 보건소로 하라더니...보건소는 “서울로 가라”

메르스 관리지침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증상이 의심되는 환자를 즉각 보건소로 신고하고, 보건소는 지체 없이 질병관리본부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10번 환자는 중국 출장을 5일 앞둔 5월 21일 거주지인 수원 지역 보건소에 연락해 “아버지가 메르스 확진을 받았는데 나도 고열 증상이 있어서 검사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보건소에는 검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으니 대형병원을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나흘 뒤 거주지역인 수원의 한 대형병원을 찾아 증상을 설명하고 검사를 요청했지만 역시 검사를 할 여건이 안 된다며 다른 병원으로 가보라고 대답을 들었다. 결국 이 환자는 메르스 검사를 받지 못한 채 26일 새벽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중국 현지에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게 됐다.

10번 환자의 아내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보건소에 신고했고 병원에도 설명했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아무도 검사를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정부와 언론은 남편을 메르스 감염 사실을 알고도 출국한 파렴치한으로 호도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해당 보건소는 “당시는 메르스 대응에 관한 공문을 받은 것도 없었고 질병의 위험도도 확실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 보건소에서는 진단을 안 하니 병원으로 가보라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만약 관리지침이 제대로 적용됐다면 10번 환자가 스스로 보건소와 병원을 뛰어다니는 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어야 했다. 관리지침에는 격리 조치가 필요한 ‘밀접접촉자'란 ‘확진 또는 추정 사례를 돌본 사람(의료인, 가족 포함)’, ‘환자 및 의사환자가 증상이 있는 동안 동일한 장소에 머문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10번 환자는 5월 21일 확진 판정을 받은 3번 환자의 아들로서 문병과 간호를 했기 때문에 정확히 밀접접촉자에 해당한다. 그러나 10번 환자의 아내는 “남편은 시아버지가 확진 판정을 받고 출장을 떠나기 전까지 보건당국으로부터 격리 조치는 커녕 전화 한 통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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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병원 관리지침' 아예 없거나 비현실적…”환자 아예 안 받는 게 ‘암암리 지침’"

이미 160명을 넘긴 메르스 확진자들 가운데 눈에 띄는 이들은 단연 의료진이다. 환자를 진료하던 의사와 간호사들마저 메르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반 시민들의 공포는 더 커졌다. 정부가 만들어 뒀던 메르스 관리지침은 일선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의심 환자들을 다룰 경우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라고 규정하고 있을까.

취재진이 확보한 메르스 관리지침 2판까지에는 황당하게도 이에 관해 규정된 바가 거의 없었다. ‘의사(의심) 환자를 보건소로 신고하라’는 것이 전부였다. 반면 공항 검역소는 열감지 카메라를 통해 입국자 중 발열 증상을 확인하고 객담을 채취해 검사를 의뢰하는 등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돼 있었고 보건소와 질병관리본부, 시도 지자체의 검역관의 임무와 역할도 비교적 상세하게 규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내용은 현실적이 못하다는 것이 증명됐다. 메르스처럼 최장 2주일의 잠복기를 거쳐 발열과 기침 등 증상이 발현하는 감염병의 경우, 공항 입국 시 열감지 카메라 등을 동원한 검역으로 의심환자를 포착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의 시초가 된 첫 번째 확진자 역시 5월 4일 입국 당시엔 증상이 전혀 없다가 1주일 뒤에 고열이 발생했다. 결국 메르스 의심 증상이 있는 환자들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사람은 일선 병원 의료진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그런데도 관리지침에는 이같은 상황에서 일선 병원의 관리지침이 거의 규정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보건당국은 첫 번째 환자 발생 5일 후에 나온 메르스 지침 3판에서야 비로소 ‘의료기관에서 의심환자 신고 시 조치사항’을 추가했다. 의심환자 진료시 의료진이 N95 마스크, 장갑, 고글 등의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하도록 했고, 의심환자를 격리병실이나 독립된 공간에 분리시켜 두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병원의 경우 개인보호장비를 상시 구비하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대부분 진료실이 비좁다보니 의심환자가 들어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염 위험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대형병원은 몰라도 시설이 열악한 개인병원에선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의심환자를 받았다가 오히려 의료진이나 다른 환자들에게까지 더 피해가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의사들 사이에선 개인병원은 의심환자를 아예 안 받거나 문 앞에서 돌려보내든지, 입구에 핫라인으로 바로 전화하라는 안내문을 붙여놓는 게 암암리 지침”이라고 털어놨다.

지침에 공개돼 있던 ‘국가지정 격리병원’, 정작 메르스 발생하자 ‘삭제'

▲ 국내에 메르스 환자가 처음 발생하기 전에 만들어 진 메르스 관리 지침 1판과 2판에는 국가지정격리병원이 공개돼 있다. 하지만 이 병원명단은 3판에서 모두 빠졌다.
▲ 국내에 메르스 환자가 처음 발생하기 전에 만들어 진 메르스 관리 지침 1판과 2판에는 국가지정격리병원이 공개돼 있다. 하지만 이 병원명단은 3판에서 모두 빠졌다.

정부는 지난 6월 5일 평택성모병원 한 곳의 실명 정보를 처음 공개하기 전까지 메르스와 관련한 모든 병원 명단을 철저히 감췄다. 여론에 떠밀려 6월 7일부터 확진자 발생 및 경유 병원들을 전면 공개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는 병원이 있다. 바로 감염병 환자 치료를 전담하도록 국가가 지정한 격리병원 17곳의 명단이다. 이로 인해 SNS 상에서는 격리병원이 마치 환자 발생 병원인 것처럼 잘못 알려지는 등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정부의 비공개 방침은 요지부동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부가 꼭꼭 감추고 있는 국가지정 격리병원 명단은 메르스 관리 지침 초판과 2판에 이미 기재돼 있던 것이었다. 초판에는 지역별로 분산된 16개 격리병원의 실명 정보와 음압/일반 병상 현황이 모두 공개돼 있었다. 2판에는 경기지역 격리병원 1곳이 추가돼 모두 17개 병원이 익명으로 기재됐지만, 지역과 구축연도, 병상 수 등을 초판과 비교하면 각각 어느 병원인지 모두 알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막상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5월 20일 이후 나온 지침에선 이 격리병원 명단이 통째로 빠져버렸다. 그 이유를 질병관리본부에 물었지만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관계자로부터 “기본적으로 병원을 공개할 경우 기존 환자들과 해당 병원이 있는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비공개한 것”이라는 입장만 들을 수 있었다. 정부가 확진자 발생 및 경유 병원을 공개하자 오히려 대다수 국민들이 ‘혼란이 줄었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 아닐 수 없다.

‘지역사회 확산’ 시 지침 전혀 없어… 현실화될 경우 혼선 재연 우려

6월 17일 기준으로 메르스 확진자는 162명에 달한다. 확산의 2차 진원지였던 삼성서울병원 발 확산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특히 응급실 이송요원과 의사가 격리대상에서 빠진 채 수백 명과 접촉한 것으로 확인돼 3차 유행 가능성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병원 외 감염' 의심 사례도 이미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구급차 운전자인 133번 환자의 감염 사례는 택시와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 내에서도 감염자가 나올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119번 환자의 감염경로도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어 사실상 병원 밖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병원 울타리를 벗어난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지만 현재로선 이럴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지침 자체가 없다. 감염병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신종 감염병이 국내에 유입된 뒤 타 지역으로 전파되면 현재 ‘주의’ 단계인 경보를 ‘경계’로 격상하도록 돼 있는데, 메르스 관리지침은 1판부터 가장 최근의 3-3판까지 모두 ‘주의'단계를 전제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일선 의료진들도 이와 같은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한 개인병원 의사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최근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인 환자가 내원했는데 확진자가 발생하거나 경유한 병원을 거친 적이 전혀 없는 경우여서 ‘지역사회 감염'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려고 정부의 메르스 관리지침을 모두 뒤져봤지만 해당되는 내용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보건소에 연락해 검사를 의뢰했더니, 메르스 관련 병원 접촉 이력이 없는 환자는 아예 검사 자체를 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어쩌면 지금 현재도 지역사회 감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검사 자체를 안 해주기 때문에 사례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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