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자격

2014년 07월 09일 15시 56분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를 꿈꾸는 이들을 가슴 설레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안타깝게도 이와 거리가 멀다. 선거라는 아주 짧은 시기 정도에 그나마 이 말이 적용되는 것처럼 보일 뿐, 선거가 끝나면 정치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투표에 나선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선거를 통해 권한을 위임하는 형식의 ‘대의 민주주의’ 체제는 애초에 이러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모두가 상시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이상 권한을 위임 받은 이들이 늘 국민들이 원하는 모든 걸 실행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 선거’를 기반으로 한 현재의 ‘대의 민주주의’는 애초부터 ‘불완전한’ 제도인 셈이다. 이 불완전한 제도에 의존하여 가끔씩 투표를 하는 수준으로 정치에 참여해 놓고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마치 수영장에서 물장구 몇 번 쳐보고 몸이 물에 뜨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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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사회학자 힐러리 웨인라이트는 이러한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우리의 세금을 거두어 쓰며 지배하는 이들을 통제하기에 지금의 대의제는 너무나 취약하다. 민주주의를 강력하게 만들 방법과 수단을 찾아내야 한다.

보다 강력한 방법과 수단. 그 중 하나가 다름 아닌 ‘데모’다. 데모는 대의 민주주의라는 불완전한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그 본질적 의미를 지닌다. 물론 여전히 많은 이들은 데모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데모를 한다고 해서 과연 세상이 바뀔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도 있고, 혹은 데모가 그저 떼쓰기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데모가 어떠한 형식으로 직접 민주주의에 기여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다. 다름 아닌 ‘과로사’가 그것이다. 과거 일본에서는 한 청년이 신문 보급소에서 일하다 과로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에 유족들은 회사를 상대로 개별적인 소송을 진행했는데, 당연히 개별적인 소송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일을 겪은 다른 유족들이 함께 모여 데모를 하자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우선 이 사건을 언론이 보도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등장한 단어가 다름 아닌 ‘과로사’다. 지금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말이지만 그때만 해도 새로 만들어진 ‘신조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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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보도를 접한 일본인들은 ‘과로사’라는 개념을 통해 이것이 단순히 신문보급소에서 일하다 죽은 특정한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과로에 시달리는 모든 노동자들의 삶의 질과 연관된 개념임을 인식하게 된다. 결국 ‘과로사’는 ‘사회적 의제’로 자리 잡게 되고, 정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는 유족들의 데모를 통해 시작된 것으로 그저 개별적 소송에만 그쳤다면 결코 도달할 수 없던 결과인 셈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사회 구성원 ‘일부의 문제’가 데모를 통해 ‘공동체의 문제’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데모는 단순히 정치에 해결책을 요구하는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 의식’을 발현시키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기도 한 셈이다.

공동체 의식. 이를 프랑스에서는 ‘솔리다리테’라고 부른다. ‘연대책임의식’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사회 구성원들의 문제는 단순히 ‘너의 문제’나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고 하는 개념이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무려 평균 3건이나 발생하는 프랑스의 데모에 대해 프랑스 사람들은 비교적 관대하다. 데모하는 이들만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결국 우리의 문제라고 하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솔리다리테에 근거한 자유로운 데모를 통해 프랑스에선 비록 선거 기간이 아니라도 사회 구성원들의 문제가 언제든 사회적 의제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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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와 연대책임의식은 이처럼 하나의 쌍을 이뤄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서 존재하며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데모를 통해 연대책임의식이 발현되고, 연대책임의식에 기반하여 데모는 자연스러운 것이 되는 식이다. 그리고 누구나 인정하듯 프랑스는 선진국 중에서도 민주주의 제도가 잘 정착된 나라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데모를 혐오하거나 데모의 효용성에 회의감을 갖는 건 연대책임의식이 부족하거나 결여되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데모를 하는 이들의 문제는 ‘그들의 문제’일 뿐, ‘우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선 사회 구성원들은 ‘개별화’되고 ‘파편화’되며 그 사회는 ‘공동체’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당연히 구성원들 개개인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나아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당연히 정치인들은 구성원들 일부 혹은 개개인의 문제에까지 나서서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다. 대학 등록금 문제는 대학의 문제고, 이동권의 문제는 장애인 단체의 문제고, 노인들의 노후 문제는 복지부의 문제가 되는 식이다. 그나마 선거 기간이라면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서 관심을 보이지만, 선거 기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만약 우리가 정말 주권 국가의 ‘주인’으로서 존재하고자 한다면 그저 투표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의 민주주의라는 불완전한 제도는 다양한 직접 민주주의 방식을 통해 보완되어야 하며 ‘데모’는 그저 몸부림을 치거나 떼를 쓰기 위함이 아닌 매우 중요한 ‘직접 민주주의적’ 참여 방식이라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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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를 위해서는 ‘연대책임의식’이 반드시 필요하며, 연대책임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사회란 구성원들이 처한 모든 문제를 오로지 구성원 스스로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사회이자, 심지어 사회 구조적 문제까지도 구성원 자신의 탓으로 돌리게 되는 매우 암울한 사회라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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