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브리지, 무자격 재향군인회와 33억 마스크 거래

2021년 05월 20일 15시 00분

국내 3대 구호지원기관 중 하나인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사업권이 없는 재향군인회와 33억 원대의 마스크를 불법 거래한 사실이 확인됐다. 뉴스타파 취재결과 이 불법거래를 주도한 사람은 재향군인회 간부 출신인 김정희 희망브리지 사무총장이었다.
희망브리지가 재향군인회와 마스크를 불법거래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마스크 긴급수급조정조치를 위반한 정황도 드러났다. 희망브리지에 문제의 마스크를 납품한 재향군인회 관계회사(P사)의 마스크 구매 수량과 희망브리지가 P사로부터 납품받았다는 수량 사이에서 상당한 차이가 발견된 것. 최대 150만 장 가량이 ‘무자료 거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2월 정부가 발표한 마스크 긴급수급조정조치는 품귀 현상을 빚던 마스크의 생산, 유통, 판매를 정부가 통제하기 위해 시행한 조치로 위반시 최대 징역 2년형을 받도록 하고 있다.
희망브리지는 사무총장의 불법거래 개입 등 의혹에 대해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희망브리지에 마스크를 납품한 재향군인회 관계사인 P사도 “거래에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앞 뒤가 안 맞는 마스크 거래 내역

뉴스타파는 희망브리지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희망브리지가 사들인 마스크 구매 내역이 기록된 파일을 입수할 수 있었다. 지난해 6월 마스크 유통회사인 P사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총 200만장의 마스크를 구매했고, 9월 말 전국 지자체로 배분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지난해 상반기 코로나 19 국민성금으로 희망브리지가 진행한 마스크 거래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P사와의 거래는 모두 정식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희망브리지와 P사가 사고 판 마스크 수량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지난해 P사가 사들인 수량, P사가 희망브리지에 납품한 수량, 희망브리지가 P사에서 샀다고 기재한 수량이 모두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지난해 P사에 마스크를 판 제조업체는 모두 3곳이다. 이들은 P사에 49만 6000장을 팔았다고 신고했다. 그런데 P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는 유일한 거래처인 희망브리지에 132만 장의 마스크를 팔았다고 신고했다. 사들인 것보다 3배 가까이 많은 마스크를 팔았다는 주장. 더 이상한 건 희망브리지였다. 희망브리지는 P사로부터 200만 장을 샀다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거래 내역을 내부장부에 적어두고 있었다. 
마스크 판매 수량 허위 신고는 물가안정법에 따른 마스크 긴급수급조정조치 위반에 해당된다. 지난해 2월 정부는 품귀 현상으로 인한 마스크 가격 폭등을 비롯해 업체들의 불법 행위가 빈발하자 유통 과정 감시를 강화하는 방안으로 긴급수급조정조치를 도입한 바 있다. 마스크 판매업자가 동일한 판매처에 1만장 이상의 마스크를 판매할 경우 판매 다음 날까지 판매 수량 등 그 상세 내역을 식약처에 신고해야 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강력한 조치였다. 실제로 경찰은 정부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마스크 약 60만 장을 몰래 판매한 혐의로 의약품 도매업체 ‘지오영’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 송치하는 등 미신고 마스크 거래를 대상으로 단속과 수사를 이어 나갔다.
뉴스타파 확인결과 대량의 미신고 마스크를 희망브리지에 유통한 P사는 2019년 자본금 2000만 원으로 설립된 태양광업체였다. 그리고 P사는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던 지난 해 4월 23일, 마스크 유통 사업을 위해 의약외품 도소매업종 신고를 했다. 희망브리지와 대량의 거래를 하기 직전이었다. 희망브리지가 사들였다는 200만 장이 사실상 P사의 유일한 마스크 거래실적이었다.
희망브리지에 200만장의 마스크를 납품한 P사의 등기부 등본. 2020년 4월 23일 마스크 유통업을 위한 의약외품 도소매업을 추가했다. 

재향군인회의 등장

그런데 P사 측은 뉴스타파에 이 문제의 마스크 거래가 자신들이 아닌 국가보훈단체인 재향군인회를 통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P사 직원 : 저희들은 그런 거(마스크 사업) 안 하고 태양광 쪽 사업을 합니다.
⚫ 기자 : 마스크 유통업은 안 하시나요?
⚪P사 직원 : 예전에 재향군인회가 했었는데 그 사업단은 다 없어졌기 때문에, P사에서 마스크 사업은 하지 않습니다.

P사 직원과의 대화
재향군인회 측 역시 지난해 P사를 통해 희망브리지와 마스크 거래를 했던 사실을 인정했다.
⚫ 기자 : 작년에 P사라는 업체를 통해서 희망브리지에 마스크를 납품하지 않았습니까?
⚪재향군인회 관계자 : 그런 거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재향군인회 관계자와의 전화통화

마스크 거래의 배후, 재향군인회의 불법 수익 사업

종합하면, 희망브리지에 33억원에 달하는 마스크 200만장을 실제로 판매한 곳이 P사가 아니라 재향군인회였다는 것인데, 이 역시 실정법 위반에 해당한다.
한해 80억원에 달하는 국가 보조금을 받고 있는 재향군인회는 관련법에 따라 각종 수익사업을 새로 시작할 경우 국가보훈처의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그동안 수의계약 등을 통해 진행된 재향군인회의 수익사업 과정에서 횡령·배임 등 각종 불법 의혹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희망브리지는 33억원이라는 코로나19 국민성금을 현행법을 위반한 P사와 재향군인회와의 마스크 거래에 쏟아 부은 셈이다. 그럼 도대체 왜 희망브리지는 이들 업체와 거래를 한 걸까. 
취재진은 희망브리지가 이들 업체와 계약을 한 배경을 취재하던 중 입수한 녹음파일에서 의문점을 풀어줄 단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 희망브리지 직원이 지인과 나눈 대화내용이었다. 녹음파일에는 “문제의 거래가 재향군인회 출신인 김정희 희망브리지 사무총장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사무총장이 마스크 거래 지시"

먼저 수의계약으로 이뤄진 긴급구매를 긴급입찰이라고 표현한 지인이 재향군인회와 희망브리지 간의 거래에 의문을 제기한다.
⚫ 지인 : 긴급입찰을 하는 이유가 뭐냐? 뻔하잖아. 자기 아는 사람, 재향군인회, 다 자기 사람 주려고 하는 거 아냐?
⚪희망브리지 직원 : 가장 최근에 마지막에 향군(재향군인회)에서 엮여 가지고, 그 200만장, 그게 문제인 거에요.
⚫ 지인 : 그러게, 그 소문이 파다해 벌써
⚪희망브리지 직원 : 돌아버리겠어 나도

희망브리지 직원과 지인이 나눈 대화 음성파일
희망브리지는 외형적으로는 P사에서 200만 장의 마스크를 사들인 것으로 돼 있지만, 대화 내용을 보면 당시 희망브리지 직원 중 상당수는 실제 거래 대상이 P사가 아니라 재향군인회였음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녹음파일에는 무자격자인 재향군인회와 문제의 마스크 거래를 지시한 사람이 언급된다. 김정희 희망브리지 사무총장이었다.
⚫ 지인 : 콕 찍었다며 (사무)총장이, 거기랑 하라고.
⚪희망브리지 직원 : 거기랑. 나도 내가 얘기 하면 큰일 날 것들이 많아서 얘기를 못하겠어 진짜

희망브리지 직원과 지인이 나눈 대화 음성파일
문제는 김정희 사무총장이 김진호 현 재향군인회 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이라는 점이다. 뉴스타파는 재향군인회 내부 비리를 고발해 온 시민단체 향군 정상화 위원회의 이상기 위원장(전 재향군인회 이사)을 통해 김진호 회장과 김정희 사무총장의 관계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김진호 회장이 사석에서 자신의 자서전을 김정희씨가 함께 썼다고 말할 만큼 두 사람은 끈끈한 관계였다.
김정희 사무총장이 재향군인회 비서실장이 됐을 때 논란이 많았다. 원래 재향군인회 직원은 군대를 갔다 오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데, 군 미필자인 김정희씨를 외형상으로는 홍보고문으로 위촉한 후 비서실장으로 기용하는 변칙을 썼다.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희씨가 재향군인회의 수익 사업과 관련된 규정을 몰랐을 리는 없다.

이상기 향군 정상화위원회 위원장 / 전 향군 이사
결국 모든 취재 내용은 김정희 사무총장이 자신이 몸 담았던 재향군인회의 불법적인 수익 사업을 돕기 위해 33억원의 코로나19 국민성금을 사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으로 귀결된다. 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수사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뉴스타파는 해명을 듣기 위해 먼저 P사를 찾았지만, P사 측은 “희망브리지와의 거래는 정상적이었다. 그런데 식약처에서 자료를 모두 폐기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식약처가 P사의 마스크 판매 신고내역을 삭제했기 때문에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P사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식약처는 “자료가 모두 폐기됐는지”를 묻는 뉴스타파의 질의에 “(P사의) 자료 삭제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P사 측에 추가 해명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희망브리지 역시 김정희 사무총장이 마스크 거래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제작진
촬영오준식 신영철
편집김은
CG정동우
웹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