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회] 최용익 칼럼_꼬리자르기식 사과

2012년 09월 28일 01시 25분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해서 공식 사과했습니다. 박 후보의 입에서 나온 최초의 공개적인 과거사 반성이자 사과입니다. 그런데도 왠지 마음 한구석에 찜찜함이 남는 것은 왜일까요?

사람이 오랜 기간 지녀온 생각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경험치 때문입니다. 불과 2-3주일 전까지도 5.16과 유신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며 구국의 결단이라고 강변했던 박 후보입니다. 그리고 박 후보의 이런 생각은 20년 훨씬 전인 1989년에도 똑같았다는 것이 MBC에서 제작한 박경제의 시사토론 프로그램 테잎이 공개되면서 밝혀졌습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사과를 하겠다며 기자회견을 연 것입니다. 도대체 사과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당 대변인의 일방적인 사과에 따른 경질 해프닝과 더불어 급속하게 떨어지는 여론 조사 지지율이었습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 박 후보가 두 개의 판결 운운하며 희생자 유족들이의 염장을 지르는 발언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다급해진 홍일표 대변인이 사과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대변인의 이 사과는 박 후보 본인에게는 알리지도 않은 일방적인 발표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자작극이 아니라 자작 발표였던 셈이죠.

사과를 거부하는 박 후보의 오기로 벌어진 새누리당 내부의 혼란상은 곧바로 역풍을 불러왔습니다. 50%에 육박하던 박 후보의 지지율이 10% 포인트 가까이 빠지면서 뒤쳐져 있던 안철수, 문재인 후보와 박빙 상태이거나 심지어 오차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큰 차이로 우열이 뒤바뀌는 양상으로 접어든 것입니다. 선거전이 시작된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야권 후보들을 멀찌감치 떨어뜨리고 대세론을 구가하던 박 후보 캠프에 비상이 걸린 것은 사필귀정입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바로 대국민 사과문 발표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론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내놓은 불안전한 사과이며 그나마도 실기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5.16 쿠데타와 유신에 대해 헌법 정신을 짓밟고 민주주의와 국민의 인권을 유린했다고 떳떳하게 사과하는 대신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식의 간접화법으로 피해갔습니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지지율 하락으로 수세에 몰리자 마음에 없는 말로 사과한 것이라면서 반발한 것도 이같은 이유입니다. 박근혜 후보의 속내는 엉뚱한 데서 터져나왔습니다. 자작발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홍일표 의원 후임으로 내정된 김재원 의원은 첫 날부터 기자들과 내정 축하 회식이라는 이름의 술판을 벌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의원은 박 후보가 대권 경쟁에 나선 것은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며 박 후보와 박정희의 관계를 베드로와 예수의 관계로 비유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사형에 처해지게 된 예수의 제자 베드로는 자신을 의심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세 번이나 예수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추락하는 지지율이 끌어올리기 위해서 박근혜 후보가 우선은 아버지를 부정할 수밖에 없지만 베드로가 후일 예수의 가장 충직한 제자로 살았듯이 박근혜 후보도 집권만 하면 아버지의 명예회복에 나설 것이라는 뜻이 사과문 발표에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개인의 비리 문제가 터지면 진상을 알아보고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된 개인을 출당하거나 제명함으로써 박 후보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미리 막는 식의 이른바 꼬리자르기식 대처에 능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올해 들어서만도 현영희 의원과 홍사덕 박근혜 후보 경선캠프 선거대책위원장, 그리고 최근에는 송영선 전 의원에 이르기까지 뇌물 수수 의혹과 관련된 사건이 터질 때마다 탈당 또는 제명으로 의혹이 당 차원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해 왔습니다.

여기에 총선에서 논문 표절과 제수 성폭행 의혹 미수에 휘말린 문대성, 김형태 의원과 안철수 후보 불출마 협박 발언을 한 정준길 공보의원, 그리고 김재원 의원의 기자들에 대한 욕설 파문과 언론과의 커넥션 의혹 등등의 누적으로 새누리당은 그야말로 바람 잘 날이 없을 지경입니다.

박 후보의 이번 대국민 사과도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라기보다는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한 꼬리자르기식 미봉책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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