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소송 폭탄: <죄수와 검사>에 대처하는 검사들의 (뻔)뻔한 자세

2021년 05월 25일 17시 59분

5월 21일 점심 먹고 사무실에 들어가니 우편물이 책상에 놓여있다. 낯익은 흰색 서류봉투. 봉투 왼쪽에 ‘특별송달’이라고 커다랗게 인쇄돼 있다. 9번째다. 익숙하다. 익숙하지만 지겹다. 지겨운 걸 넘어 꽤 고통스럽다. 
▲익숙할 때도 됐지만 볼 때마다 여전히 가슴이 내려앉는 소송 서류. 
우편물을 보낸 곳은 대한민국 법원. 소(訴)장이다. 2019년 뉴스타파가 <죄수와 검사>를 처음 보도한 이래 무더기 소송이 시작됐다. 소송을 제기한 쪽은 모두 전직 검사들이다. 아래는 전직 검사들이 뉴스타파에 제기한 지금까지 소송 내역이다. 
먹고 사는 일은 신성하다. 좀스럽지만 돈 계산을 해보자. 이행 지연금을 뺀 손해배상 금액만 6억 5천만 원이다. 이 정도 금액이면 패소할 경우 뉴스타파의 생존을 위태롭게 할 정도다.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뉴스타파도 변호사를 선임했다. 수임 비용은 소송 한 건당 아무리 적게 잡아도 4~5백만 원이 넘는다. 뉴스타파가 변호사 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은 지금까지 5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이번에 발간한 <죄수와 검사> 책을 한 권 팔면 출판사에 떨어지는 돈이 4~5천 원 남짓이니 만 권을 넘게 팔아야 겨우 충당할 수 있는 돈이다. (6~7쇄는 팔려야 가능하니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자문 변호사의 배려로 가장 저렴하게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소송을 제기한 전직 검사들이 법조시장에 유통시킨 돈은 수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래저래 법조시장만 살찌우는 일이다. 

검사의 실명은 성역일까? 

물론 이런 하소연은 뉴스타파의 입장일 뿐이다. 소송 당사자들은 억울하니까 소송을 제기한 것 아니겠나. 소송의 구체적인 이유를 살펴보자. 
먼저 박수종 전 검사(변호사, 이하 호칭 생략). 박수종의 소송은 성실하고도 끈질기다. 박수종은 2019년 10월 뉴스타파와 MBC 피디수첩이 함께 만든 프로그램에 대해 방영 직전 방송금지가처분을 신청했다. 물론 기각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사를 삭제해 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다. 역시 기각. 항고한다. 또 기각. 가처분이 끝나자 이제 본안 소송을 제기한다. 손해배상 3억 원. 다시 기각. 항소심이 계류 중이다. 대법원까지 갈 기세다. 
2020년 6월 박수종은 <죄수와 검사> 보도 열 달 만에 구속됐다. 검찰은 보도에 나온 주가조작 혐의 등을 상당부분 인정해 기소했다. 물론 검찰은 박수종과 검사들의 유착 의혹은 수사하지 않았다. 박수종은 구속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뉴스타파에 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12월 박수종은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럼 박수종이 보도에서 문제 삼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박수종이 가장 억울하게 생각한 것은 ‘실명’이 나왔다는 부분이다. 박수종의 각종 소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아무런 객관적인 근거가 없이 오로지 몇 명의 제보자의 진술에만 의존하여 추측성 보도를 내 보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원고(박수종)의 실명을 그대로 보도문에 기재하였다는 점 역시 불법성이 너무나도 큰 부분입니다.” 
법원의 판단을 보자. 서울 중앙지법 민사 제 14부(재판장 김종민)는 판결문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원고(박수종)의 행위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을 저해하고, 일반 국민의 공직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위험을 초래하며, 자본시장의 건전성과 투자자들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해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이 유지됨으로써 얻는 이익이 원고의 실명을 보도함으로써 얻는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보다 더 우월하다고 보아 원고의 실명 보도가 위법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쉽게 말해 박수종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보다 공익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언론의 범죄 혐의 실명 보도에 있어 큰 의미가 있는 판결이었다. 
일반적으로 언론이 사건을 보도할 때 주요 범죄자(혹은 죄수)는 실명으로 보도하는 반면, 검찰 쪽 입장을 실을 때는 ‘검찰 관계자’ 등 익명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뉴스타파는 <죄수와 검사>를 보도할 때 반대의 입장을 견지했다.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는 실명으로, 사인에 불과한 죄수는 익명으로. 보도 전에 걱정이 됐다. 법 전문가인 검사들이 소송을 제기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돌파해야 할 관행이라고 판단했다. 기존 언론 관행으로 볼 때는 다소 무모한 결정일 수도 있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각 기사의 취지나 범죄행위의 특성에 비추어 원고(박수종)를 특정하지 않고서는 범죄행위의 구성이나 검사들과의 연계성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정확하게 뉴스타파의 입장에 동의했다. 
박수종이 내세운 또 하나의 쟁점은 검찰이 본인을 수사하면서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뉴스타파의 보도 내용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원고(박수종)가 검사와 빈번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것은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황이고, 더구나 원고는 이에 대하여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뉴스타파가 “객관적 자료와 그에 기초한 제보 내용을 토대로 여러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등 충분한 취재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는 점, 원고 측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실패하였던 점, (중략) 등을 종합하여 보면, (중략) 피고들(뉴스타파)로서는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전직이든 현직이든 검사들은 한결같다. 보도하기 전에는 묵묵부답. 좀처럼 반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도가 나가면 바로 소송. 
▲이번에 뉴스타파에서 출간한 책 <죄수와 검사>.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돼 1만 권이 팔려도 소송 비용을 충당하지 못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언론

다른 전직 검사들이 낸 소송의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뉴스타파는 지금까지 <죄수와 검사>와 관련된 모든 소송에서 승소했다. 물론 일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법리적인 판단은 상식과 괴리될 때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돌파해 나갈 것이다. 공익의 수호자인 대한민국 전현직 검사의 이름을 고작 ‘검찰 관계자’ ‘A검사’ ‘김 모 검사’라고 쓰는 게 말이 되는가. 실명을 써도 된다는 뉴스타파의 재판 결과를 기사로 쓰면서도 박수종을 박수종이라고 하지 못하고 박 모 변호사라고 쓰는 상당수 언론들을 보면 확실히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승소하면 소송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전액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상처뿐인 승리일 뿐이다. 그나마 김형준 전 검사는 패소가 확정되자 대법원이 인정한 소송비용을 바로 보내줬다. 그런데 박수종 전 검사는 가처분이 확정됐지만 내용증명을 보내도 감감 무소식이다. 법을 그렇게 좋아하시는 분이 왜 법원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지는 알 수 없다. 
이쯤 되면 이유를 한 번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질 것이 뻔한 소송을 전 검사들은 왜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제기하는 것일까. 전직 검사이고 현직 변호사이면 법 전문가이며 법 기술자이다. 누구보다 소송의 승소 확률에 대해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을 거다. 질 확률이 매우 높은 소송을 끝까지 진행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억울해서’일 수도 있다. 정확하게는 본인이 억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대외적으로 ‘나는 무리한 언론 보도의 피해자’라는 연기를 하는 거다. (연기가 진심일 수는 있겠다.) 또 하나. 소송이라는 것이 언론을 괴롭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법 전문가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대기업에서 노조와 활동가들에게 제기하는 천문학적 손해배상 소송, 가압류와 일맥상통한다. 
그들의 작전대로 됐다. 일단 귀찮고. 이단 돈이 많이 들고. 삼단 그래서 괴롭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멈춰야 하는가. 소송이 무서워 법 전문가들을 기사에서도 특별 대접해 줘야 하는가. 괴롭지만 누군가는 바꿔야 할 일이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