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접경 지역에서 태어난 이기인 할머니는 전쟁과 개발이 교차한 '땅' 위에서 평생을 살아왔다. 어느 날 덤프트럭이 할머니 논에 들어와 흙을 가득 부어버렸다. 철원군이 '철원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할머니의 땅을 강제수용했다. 일제강점기, 번성했던 철원 역사를 재현한다는 목적이다. 할머니는 작은 몸으로 불도저를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다. 이 땅은 이른바 ‘후방 땅’이라 불린다.
대한민국엔 두 종류의 땅이 있다. 민통선 안 '전방 땅', 민통선 초소 바깥 '후방 땅’이다. 접경 지역 주민들은 사람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민통선 내부와 출입이 ‘자유로운’ 민통선 밖으로 땅을 구분한다. 전방 땅에선 농사를 짓다가도 해가 지면 밖으로 나와야 한다.
강원도 철원에 사는 이기인 할머니는 전방과 후방을 오가는 농사꾼이다. 할머니는 전쟁으로 고향 땅을 잃은 적이 있다. 1951년 겨울 한국전쟁 당시 할머니가 살던 경기도 연천에 미군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중공군이 내려온다며 3일만 서울에 가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대로 휴전선이 그어졌고 다시는 고향에 갈 수 없게 됐다.
철원의 논과 밭은 할머니가 숱한 고생을 하며 마련한 땅이다. 고향을 잃은 후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전후 복구 사업에 동원되어 전국을 누볐다. 할머니는 분단으로 갈 수 없는 고향 연천 대신 외갓집이 있던 철원으로 돌아왔다. 비록 해가 지면 들어갈 수 없는 땅이지만 비옥해서 농사짓기 좋았다.
국가권력에 의해 땅에서 쫓겨나기도, 땅을 빼앗기기도 한 이기인 할머니는 과연 이번에 ‘후방 땅’을 지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