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X와 기울어진 아파트, 도심 터널의 잠재적 위험

2021년 07월 15일 15시 56분

최근 서울과 수도권 지역 곳곳에서 GTX 공사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GTX 운행을 위해서는 도심 지역의 깊숙한 지하를 통과하는 터널 즉 도심 대심도 터널을 뚫어야 하는데, 내 집 밑으로 터널이 지나가는 것을 불안해 하는 주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GTX-A 노선이 지나가는 서울 청담동 주택가 지역과 최근 GTX-C 노선의 통과가 결정된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다. 주민들의 불안에는 근거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나친 우려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뉴스타파가 도심 대심도 터널의 안전성 문제를 심층취재했다. 

GTX의 불안한 미래, 인천 삼두 1차 아파트

인천 동구 송현동에 위치한 삼두 1차 아파트. 이 아파트 지하 42미터 지점에는 6차선 도로인 인천 북항 터널이 지나간다. 수도권 제2 외곽순환 고속도로 인천-김포 구간의 일부다. 지난 2015년 말, 아파트 지하에서 터널 공사가 시작되면서 멀쩡하던 아파트에 집집마다 동시 다발적으로 하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인천 삼두 1차 아파트. 아파트 지하로 지나가는 인천 북항 터널 공사가 시작되고 난 뒤 동시다발적인 하자와 아파트 기울어짐 등의 피해를 입었다.
처음에는 벽지가 들뜨고 새로 한 몰딩이 벌어지거나 욕실 타일이 깨지는 정도였다. 공사가 계속되면서 현관 문이 닫히지 않는 경우, 배관에 문제가 생겨 누수가 되는 경우가 나타났다. 나중에는 급기야 안방과 발코니 벽, 거실 천장 등 집안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조기운 입주자 회장에 따르면 당시 배관에 문제가 생기는 집이 많아 아래층 세대와 위층 세대 사이의 분쟁이 빈발했다고 한다.
인천 북항 터널 공사가 시작된 뒤 집집마다 생겨난 하자
인천 삼두아파트 지하를 지나는 인천 북항터널은 NATM 공법으로 굴착됐다. NATM 공법이란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지하에 조금씩 구멍을 파낸 뒤, 순차적으로 숏크리트(빨리 마르는 콘크리트)를 치고 락볼트(길고 커다란 나사)를 박아가면서 터널을 만드는 공법이다. 발파를 하지 않고 터널을 파는 공법으로는 TBM 공법이 있다. 거대한 굴착기 앞에 드릴을 장착해 터널을 파내려가는 공법이다. NATM 공법으로 터널을 파면 발파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소음과 진동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인천 삼두 1차 아파트 지하에서는 2015년 12월 8일부터 2016년 3월 24일까지 무려 184차례, 1주일에 11번 꼴로 발파가 진행됐다. 주민들은 아파트에 하자가 생긴 일차적 원인이 바로 발파에 따른 진동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삼두 1차 아파트는 ‘벽에 못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지어진 덕에 30년 가까이 거의 하자가 생기지 않았는데 터널 공사 이후 갑자기 하자가 속출했으므로 그 원인은 발파 진동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인근에 지어진 인천 삼두 2차 아파트의 경우, 지금도 거의 하자가 없이 멀쩡한 상태다. 
그러나 시공사였던 포스코 건설은 발파 진동과 아파트 건물 하자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발파 당시 진동을 측정한 결과, 현행 소음 진동법에 따른 허용 기준인 75 데시벨을 초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주민들은 포스코 건설이 내놓은 진동 계측 결과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들은 엄청난 진동과 소리를 듣고 있는데 계측기 가져다대면 75데시벨이 딱 나오는 거예요. 아니 금방 꽝 했어도 75(데시벨), 쿵쿵해도. 75. 말이 됩니까 그게.  

조기운/인천 삼두 1차 아파트 입주민 회장

“발파 진동 잘못 계측”... 발파 기록도 부실

뉴스타파는 포스코 건설이 법원에 제출한 발파 기록을 전문가와 함께 검토했다. 자문을 해준 전문가는 하홍순 전 국무조정실 부패척결단 과장. 그는 터널 감사 전문가로 현역 시절 120여 곳의 터널 공사를 감사했으며 그 결과 850억 원의 공사비를 환수했다. 그의 감사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도 50명이 넘는다. 퇴직 뒤에는 현역 시절의 경험을 살려 <발로 쓴 터널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현장직들과 교수들이 두루 인정하는 터널 감사의 전문가다. 
하홍순 전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 과장. 현역 시절 터널 120여 곳을 감사했다. 환수한 공사비가 850억 원에 이른다.
하 전 과장은 포스코 건설이 제출한 발파 진동 계측 사진을 보자마자 잘못된 계측이라고 단언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발파 진동을 측정하는 계측기의 센서가 땅에 밀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땅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진동을 제대로 재려면 센서가 땅과 밀착되어 있어야 하는데 포스코 건설이 제출한 자료의 계측 사진을 보면 센서들이 하나같이 그냥 땅에 놓여져 있다. 
인천 북항 터널 공사 당시 발파 진동을 계측한 현장 사진. 센서를 땅에 밀착시키지 않고 그냥 땅 위에 올려 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ISEE (International Society of Explosives Engineer) 즉 국제발파기술자협회가 발간한 현장실무지침에 따르면 발파 진동을 제대로 계측하기 위해서는 1) 지표면이 콘크리트인 경우는 모르타르와 볼트를 이용해 센서를 지면에 밀착 고정시켜야 하고 2) 지표면이 흙인 경우는 15cm 깊이로 땅을 파고 센서를 묻어야 한다. 3) 둘 다 할 수 없는 경우라면 12킬로그램의 모래 주머니로 센서를 눌러야 한다. 하 전 과장은 현역 시절 ISEE의 지침에 따라 계측한 경우와 그냥 땅 위에 센서를 올려 둔 경우를 비교해 계측하는 실험을 여러 차례 했는데, 진동 계측 결과가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10배까지 차이가 났다고 한다. 즉, 포스코 건설이 제출한 발파 진동 계측 기록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하 전 과장은 발파 당시 사용한 화약량이 너무 많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포스코 건설이 법원에 제출한 발파 기록에 따르면 하루 138킬로그램의 폭약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하 전 과장은 도심 지역에서 이렇게 많은 폭약을 사용한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도심에서 138kg를 쓰면 일단 난리 날 걸요. 100kg 이상 넘으면 일단 난리 날 거예요. 도심지에서 사용한 화약 사용량 치고 100kg 넘게 사용한 것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하홍순 / 전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 과장
포스코 건설은 이렇게 무리한 발파를 하면서도 제대로 된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예를 들면 포스코 건설이 제출한 기록에서는 발파를 한 번 할 때마다 필수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막장 지질 기록부가 텅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막장 지질 기록부는 발파에 앞서 지질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예상치 못한 암반이나 지하수가 있는지 등을 기록해 두는 서류다. 통상적인 막장 기록부와 비교하면 기록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왼쪽이 다른 터널 공사 현장에서 작성한 정상적인 막장 기록부, 오른쪽이 인천 북항터널 공사현장에서 작성한 텅 빈 막장 기록부다.
작업 나가는 것만 신경 썼지 정작 중요한 안전이라든가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안 썼다는 이야기거나, 아니면 공개 못 할 뭐가 있어서 진짜는 숨겨놓고 이렇게 엉터리로 백지만 제출한 것일 수도 있죠.

하홍순 / 전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 과장
포스코 건설은 뉴스타파 질의에 대해 진동 계측은 포스코 건설이 아니라 인천 동구청 직원이 직접 수행했으며, 발파 기록은 현장에 상주하는 현장 감리원의 확인을 거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파트가 기울어지고 있다

그런데 인천 삼두 1차 아파트에는 발파 진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또 있다. 발파 진동의 피해는 어쨌든 공사를 하는 시기에만 발생하는 것인데 이 아파트의 경우 터널 공사가 끝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아파트의 기울어짐 현상이다. 인천 삼두 1차 아파트는 터널 공사가 아파트 지하를 지나간 뒤에도, 더 나아가 아예 모든 구간의 터널 공사가 끝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실제로 터널 공사가 모두 끝나고 3년 뒤인 2019년 4월의 안전진단 결과, 측정 지점에 따라 아파트가 최대 82cm 기울어진 것으로 나왔다. 건물이 기울어진 방향은 2개 동 모두 터널이 생긴 쪽이었다. 기울기와 상태평가 모두  E 등급이 나왔는데, 다만 구조재의 설계 강도가 소요 강도 이상, 즉 처음 지을 때 튼튼한 자재를 썼다는 이유로 전체적인 안정성 평가에서는 B등급이 나왔다.
취재진이 주민들과 함께 아파트를 둘러본 결과, 아파트 현관 위 처마 지붕과 그 아래를 받치고 있는 수직 기둥 사이에는 거대한 틈새가 생겨 임시로 모래주머니를 받쳐 놓았고, 고층 복도 벽에는 한 눈에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이는 균열이 생겼다. 균열이 생긴 위치를 보면 아파트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마치 건물의 끝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중인 것처럼 보였다. 
아파트가 기울어지면서 고층 복도를 중심으로 특정 방향으로 균열이 생겼다. (왼쪽) 오른쪽 사진은 1층 현관의 지붕과 기둥 사이에 벌어진 틈새에 임시 모래주머니를 끼워넣은 모습이다. 
이렇게 아파트가 기울어지고 있는 것은 땅이 가라앉는 현상, 즉 지반 침하 때문이다. 실제로 인천 삼두1차 아파트 현장에서는 말 그대로 땅이 가라앉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5년에 아파트 외벽을 새로 칠했는데, 새로 칠한 부분의 아래 쪽으로 칠하지 않은 부분이 7~8cm 가량 노출된 부분이 있다. 지상 주차장의 경우 지하에 구조물이 있는 부분은 멀쩡한데 비해 구조물이 없는 부분만 쑥 가라앉아 있는 모습을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다. 
삼두 1차 아파트 주민들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변영철 변호사가 지반 침하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새로 칠한 아파트 외벽 아래로 칠하지 않은 부분이 노출되어 있다. 지반 침하의 증거다.
아파트 상태가 이렇다보니 당연히 아파트 값은 폭락했다. 그나마 팔리지도 않는다. 불안한 주민들은 이사를 가고 싶어도 아파트가 팔리지 않으니 이사를 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지하수 ‘무한 리필’과 지반 침하

땅이 가라앉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018년 주민들의 의뢰로 현장을 조사한 터널환경학회 이찬우 회장은, 터널 공사에 따른 지하수 유출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뉴스타파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는 이찬우 한국터널환경학회 회장
삼두아파트는 바닷가이기 때문에 지표에서 조금만 땅을 파게 되면 물이 나오는 지하수가 높은 지질층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밑에서 터널을 뚫게 되면 지하수가 내려가겠죠.  왜냐하면 밑에 터널 막장이라는 공간이 생기면서 밑 빠진 독처럼 되니까요. 그런데 지하수가 내려가면서 위쪽에 있는 토사를 같이 끌고 내려가는 거죠. 그러니까 흙탕물이 나오게 되는 거죠. 그 결과 위에 있는 땅 속에는 지층 구조들이 텅 비게 되는, 공동화 현상이 생겨 가지고 위에서 지표면도 같이 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찬우 / 한국터널환경학회 회장
즉, 엄청나게 많은 지하수가 터널 막장 안으로 유출되면서 지하수 위에 있던 토사를 함께 끌고 내려오는 바람에 지층 안에 빈 공간이 생겼고 그 결과 지반의 일부가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터널 공사 당시의 지하수 유출량 데이터를 입수했다. 즉 터널 위쪽의 지하수층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지하수가 터널 막장 안으로 쏟아졌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다. 
자료를 보면, 설계 당시에 예상된 지하수 유출량은 하루 천 300톤에서 2천 톤 사이였다. 실제로 2016년 3월까지는 실제 지하수 유출량도 그 범위 내에 있었다. 그런데  2016년 4월부터 급격히 지하수 유출량이 늘어난다. 2016년 4월 지하수 유출량은 하루 4천 6백 톤, 설계 당시 예상 범위의 두 배를 넘는 수치다. 2016년 7월에는 하루에 무려 6천 6백 톤의 지하수가 유출됐다. 그리고 공사가 끝난 2017년 3월까지 내내 하루 4천 톤을 상회했다. 
인천 삼두아파트 지하 터널 막장의 지하수 유출량 데이터. 가운데 강조 표시된 열이 원설계 당시의 지하수 유출 예상량, 오른쪽 강조 표시된 열이 실제 지하수 유출량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이렇게 하루 수천 톤 씩 지하수가 빠져나갔는데도 지하수의 수위가 그렇게 많이 낮아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삼두 1차 아파트 인근에서 측정한 지하수위 데이터를 보면 터널 공사 이후 지하수 수위는 불과 2m 정도 밖에는 낮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찬우 터널환경학회 회장은 인근에 있던 바다가 지하수 공급원 역할을 해서 지하수가 ‘무한 리필’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지하수가 터널 안으로 빠져 나간 뒤 바닷물이 들어와 그 자리를 채웠고, 다시 바닷물이 터널 안으로 빠져나가는 과정이 반복되었을 거라는 얘기다. 이찬우 회장에 따르면 이러한 반복적인 지하수 유출은 일회적인 유출에 비해 훨씬 위험하다. 지하수가 유출될 때마다 그 위에 있던 토사를 함께 끌고 내려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지반의 공동화 현상이 훨씬 심해지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이러한 설명이 맞는 것인지 지반공학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의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토목공학과 교수는 “터널을 파면 지하수위가 떨어지고, 그 결과 지반이 침하된다는 것은 지반공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식”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인터뷰에 응해달라는 요청에는 “건설사와 얽혀 있는 이해관계가 많아 어렵다”며 “우리나라의 전문가 대부분이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포스코 건설은 피 나는 부위를 덮어버렸다”?

시공사인 포스코 건설은 이런 사실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알았다면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포스코 건설은 터널 공사 당시, 인천 삼두 1차 아파트의 지반이 침하되고 있는지 계측을 하지 않았다. 공사 초기에는 발파 진동이 더 큰 이슈였고 주민들은 지반 침하 가능성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지하 터널 공사가 끝난 뒤에야 주민들은 지반 침하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됐고 뒤늦게 포스코 측에 지반 침하량 계측을 요구했다. 포스코 건설은 주민들의 요구로 2016년 5월부터 지반 침하 계측을 시작했다. 
포스코 건설은 삼두 아파트 안쪽 부지 6곳을 선정해 주기적으로 지반이 내려 앉고 있는지를 측정했다. 포스코 건설이 작성한 데이터를 보면, 처음 넉 달 동안은 0에서 4mm 정도만 내려 앉아 나름 안정적인 것처럼 보였지만,다섯달 째부터는 지반침하 속도가 빨라져 1cm까지 내려앉은 게 확인됐다.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지반이 내려 앉는 추세였다. 이대로 가면 꽤 심각한 지반침하가 측정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포스코 건설은 이 시점에서 갑자기 지반 침하량 측정을 중단해 버렸다. 
처음에는 서서히 한 달에 1mm씩 늘어나다가 막판에 한 20일 동안에 계속 2, 3일에 1mm씩 막 늘어났거든요. 다급해졌다는 얘기죠. 사람으로 따지면 굉장히 중요한 동맥이 절단돼 가지고 응급상황이 발생된 건데 조치를 하지 않았단 말이에요. 누가 남이 볼까 봐 덮어버린 거잖아요. 환자의 피 나는 부위를 일부러 덮어버린 거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기들은 떠났단 말이에요. 내 책임 아니야. 피는 여기까지밖에 안 났어. 

이찬우 / 한국터널환경학회 회장
포스코 건설은 뉴스타파 질의에 대해 지반 침하량 계측을 중단한 것은 아파트 주민들의 비협조 때문이었으며, 지반 침하량은 관리 기준 이내였다고 해명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삼두 1차 아파트 잔혹사

인천 삼두1차 아파트 주민들은 터널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집 아래로 터널이 뚫린다는 걸 알게됐다. 공사를 하기 9년 전인 2007년 두 차례의 주민 설명회가 열리기는 했지만 그 뒤로는 주민들에게 어떤 고지도 없었던 것이다. 9년 전의 주민 설명회를 기억하고 있는 주민은 아무도 없었다. 
공사가 시작되기 얼마 전 국토교통부가 주민들에게 공문을 보내기는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국토부는 이 공문을 당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아니라 1980년대 삼두 1차 아파트를 처음으로 분양받은 분양자들의 주소로 보냈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주민들이 국토부를 찾아가 따지니 국토부는 그저 “실수였다”고 답했다. 
이렇게 통보도 받지 못한 채 갑자기 시작된 터널 공사, 발파 진동과 지반침하에 따른 피해가 발생하면서 주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아파트 앞에서, 인천 시청 앞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심지어 인천지방검찰청과 더불어민주당 당사, 청와대 앞에서까지 수십 차례 시위를 벌였다. 인천시나 인천 동구청에는 수십 차례 민원을 넣었다. 그러나 책임을 지고 이들을 상대해주는 기관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도로공사 측에서는 ‘이거는 민간 투자 사업이니까 인천-김포 고속도로 주식회사에 얘기를 해라’ 떠넘기는 거죠. 인천 -김포 고속도로 주식회사한테 가면 ‘이건 포스코가 하는 거다’ 또 떠넘기고요.  포스코한테 가면 ‘이건 국책사업이다. 국토부로 가라’ 떠넘기고요. 국토부에 가면 ‘이거 인천시에 가서 협의하십시오 거기서 다 해결할 거고 해결할 문제입니다’ 인천시에 떠넘기고요. 저희들은 맨날 도는 거죠. 실체는 있는데, 피해입은 당사자는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조기운 / 인천 삼두 1차 아파트 입주자 회장
인천 삼두 1차 아파트 주민들은 1년 반의 싸움 끝에 행정 소송을 제기했지만, 행정 소송의 시효를 넘겼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현재는 인천시가 도로구역 지정을 위법하게 했다는 취지로 또다른 행정소송을 제기해 진행하고 있고, 포스코 건설과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민사소송도 벌이고 있다.  

GTX와 인천 삼두 1차 아파트  

이제 다시 GTX 얘기로 돌아와 보자. GTX- A 노선이 지나갈 예정인 서울 청담동 지역의 주민들은 2년 반째 GTX 노선 변경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청담동 주민들은 특히 예비타당성 조사 때만해도 다른 쪽으로 지나가게 되어 있던 GTX-A 노선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청담동 지역으로 변경된 과정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실제로 예비타당성 조사 때만해도 GTX-A 노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가운데 하나인 서울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 지하와 앞으로 재개발이 예정된 금싸라기 땅, 한남동 지역을 지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토부와 사업시행사인 에스지레일은 ‘집단 민원’이 우려된다며 노선을 변경했고, 이 노선의 일부가 청담동 주택가 지역의 지하를 600미터 통과하게 된 것이다. 변경된 노선은 원래 노선에 비해 260미터가 더 길어 공사비도 더 들고 공사 기간도 더 소요된다. 
GTX-A 노선에 대한 국토교통부 설명 자료. 당초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지나가기로 돼 있던 노선을 변경한 이유를 '집단민원 우려'로 적시하고 있다.  
문제는 새로 노선을 옮기게 된 청담동 주택가 지역이 한강과 가까워 지하수 유출에 따른 지반 침하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인천 삼두 1차아파트 주위에 있던 바다가 지하수를 ‘무한리필’하는 지하수 공급원이 된 것처럼, 청담동에서는 한강이 지하수의 공급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에서 본 것처럼, 지하수가 터널 막장 쪽으로 유출된 뒤 한강물로 다시 채워지고 또 유출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토사 유출이 심해져 지반이 침하될 우려가 있다. 
주민들은 전문가들과 협의해 주택가를 우회하는 대안 노선을 제안했다. 그러나 국토부와 시행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담동 주민들이 전문가들과 협의해 제시한 대안 노선. 그러나 국토부와 시행사는 공사비가 더 들고 공사 기간이 더 길어진다며 대안 노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압구정에서 우리로 바꾼 것까지는 그래요, 다수 세대 민원 저촉 우려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요. 군인이라면 아군이 천 명 죽을 거 이백 명 죽는 방향을 선택하는 게 낫잖아요. 그거는 이해가 가는데, 우리가 제시한 대안 노선에 은 한 250 미터 더 돌거든요, 지금 현재 노선보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사비 더 든다, 공사 기간이 더 든다’라면서 안된다는 거예요. 압구정에서 우리 쪽으로 옮길 때도 공사 기간, 공사비 더 들지 않았습니까. 똑같은 이유인데 우리는 안 되고 그쪽은 옮긴 거예요.

최영해 / 청담동 GTX 비대위 위원장
청담동 주민들 역시, 두 차례 열린 주민설명회 때 정작 주민들은 누구도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청담동 GTX 비대위가 국민의 힘 태영호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주민설명회 참석 명단을 보면, 참석한 주민들의 주소가 청담동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되어 있다. 주민설명회에 참석했다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공무원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청담동 주택가 지하에 뚫리게 될 터널이 인천 삼두 1차 아파트의 사례처럼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지, 아니면 별다른 피해 없이 굴착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터널 공사가 이제 막 시작됐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발파진동과 지반침하의 위험 그 자체보다는 지난 2년 반 동안 정부와 시행사가 보여준 무책임한 태도일 것이다. 인천 삼두 1차 아파트 주민들처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가운데 오롯이 그들끼리 남아 길고 외로운 싸움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인천 삼두1차 아파트의 사례를 보면, 그들의 우려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어 보인다. 
국토부하고 시행사하고 서로 핑퐁 게임하고 있어요. 우리가 뭘 알아보려 그러면 시행사는 국토부 핑계대고 국토부는 또 시행사 핑계대고… 제가 여태까지 2년 반 동안 국토부 담당자들을  만나서 계속 미팅을 했는데, 몇 번 바뀌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 담당자들이 나 있을 때 동안은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말고 그냥 그냥 지나가자 이런 거 같아요. 폭탄 돌리기 같아요. 내가 있을 때는 터지지 않게 하기 그런 것 같아요.

최영해 / 청담동 GTX 비대위 위원장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는 ‘터널 갈등’

이런 문제가 잠재되어 있는 건 비단 GTX 사업 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아파트나 주택가 아래로 터널이 지나가는 모든 지역에서 비슷한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되는 광명-서울간 고속도로에는 길이 1km에 달하는 왕복 6차선의 온수터널이 포함되어 있는데, 온수터널 역시 서울 구로구 항동의 아파트 단지 밑을 지니간다. 아파트 건물들은 가까스로 피해가지만 단지 내 초등학교와 중학교 바로 아래에 터널이 뚫리게 된다. 
서울 구로구 항동의 아파트 단지 지하를 지나가는 온수터널 노선도. 아파트 건물은 가까스로 비껴가지만 단지 내 초등학교와 중학교 지하를 관통할 예정이다.
항동 주민들 역시 인천 삼두 1차 아파트의 사례가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인천 삼두 1차 아파트 주위에 바다가 있던 것처럼, 그리고 서울 청담동 지역 주위에 한강이 있는 것처럼, 항동 지역에는 역곡천이라는 하천과 항동 저수지라는 지하수 공급원이 있다. 역시 반복적인 지하수 유출에 따른 지반 침하 우려가 큰 지역이라는 얘기다. 항동 주민들 역시 인천 삼두 1차 아파트 주민들처럼 곳곳을 찾아다니며 수십 차례 시위를 벌였고 심지어 위원장은 단식 투쟁까지 했지만 달라진 것은 딱 하나, 당초 지하 30미터였던 터널의 심도를 50미터 정도로 낮추겠다고 한 것 뿐이었다.  
삼두 아파트가 정말 항동의 불안한 미래가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많이 있고요. 우리나라 (삼두 아파트는) 굴지의 건설회사라고 하는 포스코 건설에서공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겼었던 것이고 또 건설사에서 어떠한 책임도 인정하지 않고 재판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면 똑같이 항동에서도 건설사가 기준에 맞춰서 우리는 법대로 했을 뿐이다라면서 문제가 생겼도 발뺌할 경우에 주민들은 그걸 입증하려고 또 다른 굉장히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고… 

최재희 / 항동지구 현안대책위원장

갈등은 있는데 법이 없다

수도권 집중이 점점 심해지고 그 결과 광역 교통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 지하 공간에 대한 개발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자연스럽게 사람이 살고 있는 주거 지역 지하를 개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이에 따라 분쟁도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기존의 환경영향평가법이나 소음진동 규제에 관한 법률로는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이 갈등들을 해결하거나 중재할 수 없다. 단적인 예로 당장 현행 법에 규정된 느슨한 발파 진동 기준으로는 인천 삼두1차 아파트와 같은 피해를 막을 수가 없고, 지하수 유출과 그에 따른 지반침하에 대해서는 따로 규정된 법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입법의 움직임이 있지만 너무 느리고 너무 약하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실은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을 발의하기 위해 지난 2월부터 환경부와 논의를 하고 있다. 터널을 뚫기 전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발파에 따른 소음 진동과 지하수 유출에 대한 데이터를 사업자가 정량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런데 뜻밖에도 환경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제가 보기에는 약간 환경부는 두려움도 좀 있는 것 같아요. 일단 너무 모른다, 자기들이. 특히 제가 예전에 지하수위나 이런 거 논의할 때 그런 느낌들이 확실히 있었던 것 같아요. 자기네들이 전문성이 좀 부족하다는 두려움도 좀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장철민 / 더불어민주당 의원
환경부는 이에 대해 법안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상위법에 반영하는 것은 법 체계상 무리가 있어, 올해 예정된 환경부 고시 개정안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정부와 사업자가 주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은 자업자득의 결과다. 당장 인천 삼두 1차 아파트의 사례만 봐도, 여전히 피해 회복은커녕 피해원인 조차 규명되지 않은 채, 정부도 사업자도 지자체도 나몰라라 하고 있다. 주민들만 오롯이 남아 외로운 싸움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상태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주민들은 인천 삼두 1차 아파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공부하고 이에 근거해 정부와 사업자에 문제를 제기할 수 밖에 없다. 불신의 악순환이다. 지금까지 발생한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 이미 늦었지만 이제라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인 길이다.
제작진
촬영신영철
편집박서영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