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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Jasia18] 전쟁의 한복판, 당신이라면 무엇을 기록하겠습니까?

2018년 10월 15일 13시 20분

적막한 고속도로. 한편에는 시체더미들이 뒹굴고 있습니다. 한 여인이 남편의 얼굴을 확인하고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닙니다. 취재노트 한 권을 쥐고 있는 당신이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자, 이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상상과 현실은 다릅니다. 영화처럼 죽음의 현장에서 트렌치코트를 휘날리며 도도한 표정을 짓는 기자는 없습니다. 그저 한명의 인간으로서 끔찍한 현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6일 오전 세션 <죽음을 말할 때 : 재판외 살해를 고발하기 When you state murders : exposing extrajuicial killing>의 발표자, 페트리샤 에반젤리스타 기자의 질문에 전세계 언론인들의 분위기가 숙연해졌습니다. 에반젤리스타 기자는 2016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필리핀 '마약과의 전쟁'을 취재하는 필리핀 매체 <래플러 rappler>의 기자입니다.

에반젤리스타 기자는 담담하게 필리핀의 현실을 전했습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한 이후 필리핀에서는 매일 수십명씩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마약 범죄자뿐만아니라 마약 중독자나 생계형 마리화나상도 죽습니다.

취재는 쉽지 않습니다. 정부의 감시와 마약범죄자의 죽음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습니다. 정부 관료도 아무렇지 않게 살해하는 범죄자들과 그의 가족들을 취재하는 일은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죽음의 현장에서 생존자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는 일도 현장 기자에겐 심각한 트라우마입니다.

에반젤리스타 기자는 몇가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일단 인권을 다룬다는 원칙입니다. 끔찍한 범죄자, 부패한 경찰이기 이전에 한명의 사람으로 대상을 본다는 겁니다.

기자가 현장의 진실을 모두 아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자료와 증언을 얻을 수 있지만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충실히 기록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중요한 원칙입니다.

감정을 절제하고 기자 본연의 역할에 집중한다는 것도 현장의 원칙입니다. 관찰하고 기록하되 선을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극적인 촬영을 자제하고, 다양한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담는데 주력합니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원칙도 있습니다. 암호화된 메일을 사용하고 취재원들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에 부칩니다. 항상 팀을 이뤄 움직이고 자신의 이동경로를 기록합니다.

같은 세션 발표자인 클래어 볼드윈 기자(로이터)도 필리핀 현지 취재 때는 같은 행동 패턴을 피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로 이동하지 않고, 정기적인 업무는 타인과 공유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전쟁터나 다름없는 취재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탐사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두 여성기자에게 참가 언론인들의 질문과 격려가 쏟아졌습니다. 해외 단신 정도로 듣고 흘렸던 필리핀 뉴스, 현장의 탐사기자들을 생각하면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나요?

정리·사진 : 뉴스타파 오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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