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미국인 유족 "삶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2022년 11월 17일 15시 02분

2022년 11월 17일 15시 02분

"앉아 계십니까?"
한국 시간 10월 30일, 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전전긍긍하던 스티브 블레시 씨의 전화 벨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 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는 블레시 씨에게 "앉아 계시냐"고 물었다. 블레시 씨는 "그 말을 듣자마자 스티븐이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29일 밤, 블레시 씨는 한국의 핼러윈 축제에 간 사람들이 여러 명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장 블레시 씨는 아들 스티븐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그러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블레시 씨는 대사관의 전화를 받았다. 블레시 씨의 막내 아들 스티븐은 스무 살의 나이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가 됐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11월 12일(한국 시간), 이태원 참사의 미국 희생자 중 한 명인 스티븐 블레시 씨의 아버지 스티브 블레시 씨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모든 미래가 사라졌어요"

국제경영학을 전공하던 스티븐 씨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 블레시 씨는 아들이 모험심이 강했고 세계 곳곳의 다른 문화에 대해 애정이 있는 아이였다고 소개했다. 
"아들은 힘들거나 넘어졌을 때 스스로 일어나는 아이였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한 뒤에 털어버리고 다음엔 더 잘 하려고 했습니다. 아들은 모험심과 세계 여러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충만한 아이였습니다. 아들은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 항상 여행을 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제주도에 가서 여기저기를 하이킹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쉽게 친구를 사귀는 아이였어요."
그러나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났던 스티븐 씨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블레시 씨는 참사 발생 이후 12일 만인 지난 10일(미국 시간), 아들 스티븐의 유골함을 품에 안았다. 아들 스티븐 씨의 유골은 한국에서 화장된 뒤 미국 뉴욕 공항으로 갔다가, 뉴욕에서 다시 애틀랜타로 왔다. 미국 장례 업체가 이 일을 했다. 
"아들의 유골이 어제 집으로 왔습니다. 이제 아들은 우리 남은 일생 동안 집에 함께 있을 겁니다. 저는 아들을 다시 안을 수가 없습니다. 아들의 재가 들어있는 단지만 볼 수 있어요."
블레시 씨 가족은 스티븐 씨를 위해 새로운 유골함을 준비했다. 산 모양의 단지였다. 모험을 즐겼던 아들이 좋아했을 만한 산이었다. 블레시 씨는 "아들이 모험하기 원했을 산처럼 보여서 아내가 이 단지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스티븐 씨의 유골함. 블레시 씨의 가족은 산 모양을 닮은 이 유골함을 아들 스티븐을 위해 준비했다. 
"하루하루 무너지고 있습니다. (...) 주위에서 가능한 한 저희를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아들을 다시 안을 수도, 키스를 할 수도 없어요. 아들에게 펼쳐졌을 멋진 삶도 볼 수가 없습니다. 아들이 행복하게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모습도 사라졌습니다. 모든 미래가 사라졌어요."
"마음이 찢어집니다. 너무 슬퍼요. 아내와 스티븐의 형도요. 우리의 삶은 영원히 바뀌었습니다."
블레시 씨는 아들 스티븐이 29일 밤, 정확히 몇 시에 사망을 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참사 이후 한국 정부가 따로 블레시 씨 가족에게 사고에 대한 설명을 하거나 연락을 취해오지는 않았다고 했다. 애틀랜타에 있는 한국 총영사관에서 블레시 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 다였다.  
아들의 마지막 순간은 어땠을까. 블레시 씨는 그저 상상만 해본다. 
"아들의 친구가 인터뷰를 했어요. 그도 이태원에 갔는데 너무 사람이 많아서 다른 곳으로 갔고 스티븐에게도 그곳을 벗어나라고 한 것 같아요. 누구도 아들의 죽음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습니다. 사망확인서에는 그저 아들이 거리에서 죽었다고만 돼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아마 골목에서 사람들 아래에 깔리지 않았을까요. 그건 물 속에서 익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끔찍한 죽음입니다." 
블레시 씨는 한국에서 참사 책임자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뉴스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파 예측, 대단한 지능이 필요한 일 아냐"

그는 경찰이 제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이 참사는 "완전히 예방(totally preventable)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은 그 정도의 군중을 통제해야 한다. 그게 그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한국 당국에 정말 화가 난다"고도 했다. 
"아들은 끔찍하게 죽었습니다. 저는 한국 당국에 정말 화가 납니다. (...) 왜 아들이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들은 분명히 거길 빠져나오려고 했을 거예요. 거기 짓밟힐 필요가 없었습니다."
현재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은 이태원 참사 관련 책임자들을 수사하고 있다. 이임재 용산서장,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류미진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 박희영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 정보과장, 해밀턴호텔 대표 등 7명을 형사입건한 데 이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고발장 접수에 따라 형사입건했다. 
블레시 씨는 "이 조사가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적은 경찰병력이 있었는지, 그 조사는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이 아닙니다. 청년들이 2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갇혀있었어요. 나가서 놀려고 했을 겁니다. 이걸 예측하는 건 그렇게 대단한 지능이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현장에 바리케이트를 치거나 한 방향으로 통행하도록 해 병목현상이 생기지 않도록 했다면 이 일은 모두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나빠진다는 걸 몇 시간 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국은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죠? 정말 궁금합니다. 왜 아무 것도 안 했습니까?"
블레시 씨와의 인터뷰에 앞서 11월 11일 특수본에서 수사를 받던 용산경찰서 정보계장 정모 경감이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블레시 씨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참사에 책임 있는 사람은 사임하거나, 스스로 사임하지 않으면 (직위에서) 파면돼야 한다"고 말했다. 
"저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임 있는 사람은 사임하거나, 아니면 파면돼야 합니다. 사임하지 않는다면 파면해야 합니다."
블레시 씨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에 대해서는 "만약 다른 가족들이 그런 노력을 한다면 거기에서 빠진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그렇게 하기를 아들이 원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블레시 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일 뿐, 다른 것이 아니었다. 
"아내와 나는 아름다운 가정과 두 아들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매우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들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면 내가 가진 모든 돈을 다 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어떤 것도 아들을 살려낼 수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인생은 계속 됩니다. 힘든 일이지만 우리는 큰아들 조이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동생 스티븐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제 아내와 저는 매일 일어날 때마다 맨 먼저 아들이 떠났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내와 제가 어떻게 다시 웃음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떤 부모도 이런 고통을 겪지 않길 바랍니다."

"조치를 요구하세요"

지난달 29일 이태원역에서 발생한 참사로 현재까지 158명이 숨졌다. 이중 26명은 외국인이다. 블레시 씨는 한국 시민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이 비극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세요. 이 수사가 실질적인 조치가 없는, 보여주기 식 쇼가 되도록 하지 마세요. 그들은 변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시민들과, 우리 아들 같은 방문자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확실한 조치가 결과로 나와야 합니다. 만약 제가 한국인이었다면, 저는 조치를 요구했을 겁니다. 결과를 요구했을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경찰이 자신들의 임무를 더 잘 하도록 요구했을 겁니다."
블레시 씨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이 조사의 결과를 보고싶습니다."
제작진
취재강혜인 이명주
촬영정형민 김기철
편집박서영
디자인이도현
출판심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