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글로벌탐사저널리즘네트워크(GIJN)과 함께 전 세계 저명 저널리스트의 탐사보도 노하우와 취재 팁을 우리 말로 번역해 공개합니다. 비영리 탐사보도 기관인 뉴스타파와 GIJN이 공동 진행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탐사저널리즘의 저변 확대를 위해 기획됐습니다. 편집자 주
상반되는 주장, 방대한 양의 데이터, 알려진 바 없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코로나19는 저널리스트들을 공중보건과 의약 개발을 아우르는 복잡한 세계를 직면하는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널리스트들은 팬데믹 속에서 부패와 사기를 적발하고 이해 상충을 폭로하며 제약회사의 영향력을 조명하는 취재를 해냈습니다. 아울러 언론이 백신이나 코로나 치료법을 교육하는 역할도 해냈습니다.
코로나19는 보건과 제약 분야가 낯선 저널리스트에게 공무원과 제약 업계의 책임을 따지고, 언론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취재 방법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오보나 정제되지 않은 데이터, 주제에 대한 이해 부족이 초래할 수 있는 피해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코로나19는 저널리스트들이 얼마나 쉽게 함정에 빠질 수 있는지도 보여줬습니다.
티나리는 극도로 빠르게 진행된 코로나19 백신 승인 과정을 예로 들며 "무엇이 예외적인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정상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리바는 코로나19 이전의 의약품 승인 절차는 긴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이었고, 이는 필요한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관료주의가 아닙니다. 환자와 대중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과정입니다. (의약품이) 대중에게 끼칠 혜택과 위험의 비율을 따졌을 때 이익이 더 크다는 최선의 지식과 증거들을 내놓게 하려면 규제라는 틀이 필요합니다.”
리바는 이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을 몇 달 정도로 줄여야 한다는 제약 업계의 압력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고 덧붙이며 코로나19로 인해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데이터 수집 등의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초 가속화’된 승인 절차가 어떤 결과를 양산하고, 업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탐사보도의 대상입니다.
2. 의약품 시험이 설계된 방식과 각 단계의 차이점을 이해하라
의약품 시험은 다양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저널리스트는 특정 시험이 무엇을 평가할 목적으로 설계됐는지, 이를 통해 의약품에 대해 알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사에도 이러한 맥락이 당연히 반영되어야 합니다. 리바와 티나리가 만든 GIJN 보건·의약 탐사보도 가이드는 의약품 시험 설계와 관련한 다양한 방법론을 설명해줍니다.
▲GIJN 보건·의약 탐사보도 가이드는 공중보건 분야를 취재하는 저널리스트이 의약품 임상시험의 다양한 설계법과 의미를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어, 토레스의 설명에 따르면 이미 특정한 결과가 나오도록 시험 설계가 편향되어 있거나 표본의 크기와 결과 정도가 연구가 주장하는 것만큼 유의미하지 않다면 분명한 적신호 입니다.
3. 과학과 규제 관련 보도자료를 주시하라
새로운 백신이나 특정 약품이 향후 시장을 변화시킬 것으로 보도자료가 발표됩니까? 출처와 의제가 무엇인지, 기간과 초점, 또 구체적으로 무엇을 테스트했는지 등 해당 시험 관련한 세부사항을 확인하십시오.
예를 들어, 2020년 11월 화이자와 BioNTech가 새로 개발한 백신이 95%의 사람들을 코로나19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보도자료를 발표했을 때 전세계 언론들이 이를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자료를 리체크(Re-Check)도 분석해 보았습니다. 리바는 "우리에겐 데이터가 없었고 화이자의 말만 들은 상태에서 그것을 믿어야 한다고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제약회사의 홍보는 근거로는 결론을 내리거나 보건 정책 결정을 내리는 근거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4. 긴급사용승인이 시험 데이터에 끼치는 영향을 파악하라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긴급사용승인(EUA)이 의약품 시험 데이터의 품질에 끼친 영향을 볼 때 이러한 '초고속' 승인을 광범위한 의약품 시험에 적용하는 일은 "나쁜 생각일 수 있다"고 리바는 말합니다. “한 번 문이 열린 이상 다른 제약사들에게 당신들 제품은 정상적으로 승인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정당화하기가 어려워진 거죠.”
간소화된 의약품 시험은 단 몇 달 동안만 진행됩니다. 약물이 시장에 출시되고 나면 더 이상 대조군이 없습니다. 리바는 “시험 단계에서 얻은 데이터는 일상에서 수집하게 되는 데이터보다 질이 더 좋다”며 “임상시험에서 약물을 연구할 때는 규칙이 확실하지만 실제 상황에는 복잡한 요소가 너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5. 이해충돌 여부를 조사하라
제약회사의 영향을 받는 공무원이나 의료진의 이해충돌 여부는 기자들에게 풍부한 기사 거리를 제공합니다. 살루드 꼰 루파가 한 중국 제약회사가 은밀하게 제공한 백신 물량과 페루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를 다룬 '바쿠나게이트' 보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해충돌 여부를 확인하고 객관적인 취재원을 찾는 일은 투명하고 외부 영향을 받지 않는 보도를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토레스는 "해당 사안 관련자가 아니고, 해당 분야와 주제를 잘 알고 있지만 독립적인 전문가를 찾으라”고 말했습니다.
6. 기사를 재구성하라
토레스는 “보건 분야를 취재할 때 고민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지금 독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홍수처럼 넘쳐나는 새로운 데이터와 연구에 직면해 새로운 탐사보도 기사를 쓸 때 유용한 전략입니다. 살루드 꼰 루파는 여지껏 가장 많이 논의된 코로나19 치료법을 분석했습니다. 이 분석툴은 42개 약품과 치료법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단계’에서부터 ‘표준 치료법 단계’까지 등급을 나눠 독자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살루드 꼰 루파’의 코로나19 치료법 분석툴. 연구 결과를 분류했다. 번역본은 바로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살루드 꼰 루파’의 코로나19 치료법 분석툴
1.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음
현존하는 과학적 지식으로도 충분한 위험 또는 희박한 혜택이 명확하기 때문에 임상시험이 진행될 수 없는 경우.
2. 이용에 부적절
치료 이후 얻어지는 혜택이 없고, 이득보다는 위험이 크거나, 비용 대비 이익이 적은 치료법이라는 게 타당한 근거로 뒷받침된 경우로 어떤 임상시험에서도 사용해서는 안 됨. 추가 연구가 필요함. 그러나 부정적 결과가 도출된 인구 샘플과 환경을 제외한 상황에서 진행해야만 함.
3. 기약 없음
고무적이지 않은 초기 실험 결과. 그렇다고 해당 치료법이 무용하다고 확실히 결론 내리기도 애매한 경우. 실망스러운 결과가 도출된 인구 샘플이나 환경을 제외한 나머지를 대상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
4. 중립
연구 결과가 엇갈려 근거의 확실성이 현저히 낮거나 데이터의 신뢰도가 떨어짐.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경우로 추가 연구 필요.
5. 어느 정도 희망이 있음
이 경우 초기 결과는 고무적이지만, 치료의 이익이 위험도나 비용을 능가하는지 여부를 확신할 수는 없음. 사용하기엔 아직 이르고 추가 연구가 필요.
6. 사용 준비 완료
치료의 위험도나 비용 및 기타 상황적 요인 대비 이익을 따졌을 때 이익이 더 크다는 결론이 충분한 근거로 뒷받침된 단계.
7. 표준 치료법
접근 가능하고, 효과적이며 안전한 치료법이라는 게 확실성 높은 근거들로 탄탄히 뒷받침된 경우. 비슷한 치료법들 가운데 최선의 옵션이라고 볼 수 있음.
7. 보도되지 않은 사안을 살펴보라
약물 및 백신 개발, 승인 절차, 코로나19에 대한 과학적 사실은 수시로 변하며 언론에는 이와 관련한 최신 업데이트로 가득합니다. 보도되지 않은 사안을 살펴보는 것은 기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합니다. 토레스는 “정부에 조언하는 의사나 과학자 그리고 학자들이 어떠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치료법이나 백신 개발의 효과와 관련해 철회된 주장들도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철회된 연구 논문과 논란이 됐던 연구들을 한데 모은 데이터베이스 ‘리트랙션 워치(Retraction Watch)’는 이런 사안을 살펴보기에 좋은 소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