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책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화두는 ‘국가 개조’였다. 4월 29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각 전체가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국가개조’를 한다는 자세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 달라.
국가 개조라는 말은 ‘개혁’이나 ‘개선’, ‘혁신’과 달리 모든 것을 다 뜯어 고치겠다는 보다 과격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이 말은 1930년대 일본의 사상가인 ‘기타잇키’가 당시 대공황과 만주 사변으로 인해 몸살을 앓던 일본을 뜯어 고쳐야 한다며 내세웠던 말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가 제시한 구체적 방법론은 다음과 같이 매우 과하다.
정당과 재계, 군부와 파벌을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 <국가개조안 원리 대강> 중 -
기타잇키의 ‘국가개조론’에 큰 영향을 받았던 당시 젊은 하급 장교들은 실제로 쿠데타를 일으킨다. 1936년 2월 26일 일어난 이 쿠데타로 인해 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암살을 당한다. 나아가 이들은 천황 친정 체제, 즉 정당 정치가 아닌 천황의 1인 직접 통치 체제를 요구한다. 당시 정당 체제를 정쟁이나 일삼는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쿠데타에 놀란 천황이 이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원대 복귀를 명령하면서 쿠데타는 실패로 끝나지만, 이 일로 인해 정당 정치는 소수 총칼에 무력화 될 수 있는 무기력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이 된다. 나아가 군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본은 군국주의 국가로 폭주하고 만다.
국가 개조라는 말은 단지 일본에서만 사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던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당시 자신이 일으킨 쿠데타의 명분을 국가 개조에서 찾고 있다.
그는 왜 당시 국가 개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는 당시 대한민국에 대한 생각을 또 다른 책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는 한마디로 말해서 퇴영과 조잡과 침체의 연쇄사였다. -『국가와 혁명과 나』, 박정희 -
쉽게 말해 당시의 현실만이 아니라 애초에 대한민국 역사 자체가 모든 것을 뜯어 고치지 않으면 안될 만큼 후진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선 당시 정당 체제로는 어렵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민주주의라는 빛 좋은 개살구는 기아와 절망에 시달리는 국민 대중에게는 너무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 박정희 -
그래서 그는 민주주의 대신 강력한 지도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스스로가 강력한 지도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독재라는 결과로 폭주하고 만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타잇키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국가 개조’라는 말은 단순히 모든 걸 뜯어 고쳐야 한다는 ‘방법론’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시대의 현실은 ‘모조리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과격한 현실인식에 근거한다. 동시에 그러한 현실을 뜯어 고칠 수 있는 건 물리적 힘을 지닌 군부라는 인식도 공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후 ‘국가 개조’는 파시즘적 성격을 지닌 용어로 규정되곤 한다.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국가 개조’라는 말은 바로 이런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단순히 말 한 마디, 표현 하나를 가지고 꼬투리를 잡는다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이후 진행된 ‘해경 해체’라는 과격한 방법, 그리고 청와대를 포함한 박근혜 대통령 자신은 개조의 ‘주체’고, 나머지 모든 것이 개조의 ‘대상’이 되는 식의 뉘앙스 역시 이러한 우려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특히 가장 우려스러운 건 국가 개조라는 과격한 말에 비해 막상 개조를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쿠데타를 일으켰던 1930년대 일본의 하급 장교들이 천황의 원대 복귀 명령 하나로 급격하게 와해된 이유가 역설적으로 천황의 친정 체제 요구 외에 딱히 ‘국가 개조’를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대안이 없었다는 점은 국가 개조라는 말이 ‘구호’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실질적 대안이 되기 대단히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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