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정전’은 전쟁을 멈췄다는 뜻이죠.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70년 전 중단됐지만 공식적으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이런 상태로 이미 두 세대 이상이 흘렀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평화의 길을 모색해도 모자랄 판에 정전 70년을 앞두고 북은 미사일을 실험 발사하고, 남쪽에는 미국 핵잠수함이 들어오는 등 한반도 긴장은 극도로 고조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은 저마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돼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전쟁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민간인이라는 점입니다.
한국전쟁은 전투원의 희생보다 비전투원, 즉 민간인의 희생이 훨씬 컸던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전 70년이 되도록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희생됐는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뉴스타파,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사건 전수조사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이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난 몇 개월간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사건을 전수조사했습니다. 관련 데이터는 독립적 국가기구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가 펴낸 보고서에서 추출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1945년 8월 15일부터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뤄진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사건”에 대해 피해 관련자나 유가족 등의 진실규명 신청을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1기 진실화해위원회 때 10,000건, 2기 진실화해위엔 13,800여 건의 신청이 접수됐습니다.
2005년 출범해 2010년까지 활동한 1기 진실화해위원회와 2020년 출범해 현재 활동 중인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신청 사건 진상 규명 작업을 통해 2023년 상반기까지 모두 252권(경정신청 관련 보고서 제외)의 사건별 보고서를 펴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보고서를 전부 분석해 한국전쟁 시기에 해당하는 1950년 6월 25일~1953년 7월 27일 사이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만 별도로 추려냈습니다. 민간인 학살 희생자 데이터에서 부상자와 단순 행방불명자는 제외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 토대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5만 8천 명
분석 결과 민간인 학살 희생자는 모두 57,968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실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사건 희생자로 추정되는 10만 명~100만 명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이와 관련해 안병욱 1기 진실화해위원장(2007.12.~2009.11.)은 실제 희생자 수의 5~10퍼센트만 진실규명 신청을 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서울에서 ‘부역혐의자’ 처형이 진행되는 현장이 담긴 사진이 영국 ‘데일리워커’지 1950년 11월 29일자에 실렸다.
한국전쟁 다큐, ‘당신이 보지 못한 한국전쟁 4화: 민간인 학살’ 공개
뉴스타파는 이 같은 분석 결과를 토대로 한국전쟁 다큐 시리즈 ‘당신이 보지 못한 한국전쟁’의 제4화 ‘민간인 학살’ 편을 제작해 공개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6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을 학살한 주체는 과연 누구인지, 언제 어디서 학살됐는지를 입체적으로 추적했습니다.
이 다큐가 공개하는 여러 장면과 분석 결과는 누군가에겐 ‘불편한 진실’일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100만 명 희생자라더니 왜 6만 명’밖에 안 되냐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민간인 학살 사건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정확하게 인용할 수 있는 공식 통계조차 존재하지 않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업이 단초가 돼, 늦었지만 민간인 학살의 전모를 국가가 제대로 파악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합니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부침을 겪어왔지만, 2005년부터 시작된 진실화해위의 민간인 희생 진실 규명 노력도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구 소련의 스탈린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1명의 죽음은 비극이다.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뉴스타파는 진실화해위 보고서를 통해 확인한 한국전쟁기 민간인 6만 명의 억울한 죽음이 단순한 ‘통계’가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들의 죽음을 추적하고 분석했습니다. 70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의 이면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여정의 또 다른 결과물 ‘당신이 보지 못한 민간인학살’ 특별 페이지를 다음주 목요일, 7월 27일에 공개합니다. 또 같은 날 판문점을 둘러싼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한국전쟁 정전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송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