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을 곳을 찾기 위해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고 있었는데 그 때만 해도 인파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고, 그때도 이렇다할 위험은 감지하지 못했어요.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해밀턴 호텔 건물 뒤쪽을 지날 때 이태원 역 출구가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몰리는 인파에 몸을 가누기가 어렵더라고요.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셋이서 줄지어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빨리 나가려고 서둘렀지만 계속 인파에 떠밀렸어요.그 와중에 저희가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골목 쪽으로 향했어요. ‘저 쪽이 (나갈) 길이다, 일단은 골목을 벗어나자’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골목에 진입하니까… 너무 위험한 거에요.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서 누나 먼저 밖으로 나가라고 했어요. ‘우리는 벽 쪽에 좀 붙어 있다가 사람들 빠져서 안전해 지면 나갈게’라고 누나한테 말했어요.하지만 사람들이 계속 그 골목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압박이 점점 더 심해졌어요. ‘빨리 나가라고!’ ‘내려가라고!’ 이렇게 여기 저기서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아요.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시간이 조금씩 지나니까 사람들이 소리칠 힘도 없고 숨도 잘 못 쉬니까, 골목이 갑자기 고요해졌어요. 주변 상가에서는 음악 소리가 크게 울려퍼지는데 그 공간은 더 없이 조용했던 거죠.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 이 생각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계속 되뇌었던 거 같아요.어머니가 인파에 끼어서 땅에서 3~5센티미터 정도 발이 떠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아무 것도 못하고 계속 어머니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어요. ‘나는 죽어도 좋으니 엄마를 살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머니 다리를 안고 위로 올려서 숨을 쉬게 하고 싶은데, 너무 끼어서 그 조차 안되더라고요. 그렇게 제가 한 손은 어머니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옆사람 손목을 잡고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면서 버텼던 거 같아요. 그 때 어머니가 호흡곤란이 와서 거의 숨을 못 쉬셨어요. 엄마한테 조금만 참으라고 했지만 ‘우리가 여기서 죽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빠져나와서 바로 누나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그 때가 10시 41분이었어요. 누나 한테 우리 갇혀 있었다고, 죽을 뻔 했다고 얘기할 생각이었는데 누나가 계속 통화가 안 되는 거에요. 누나가 인파에 휩쓸린 건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도 저희가 온 몸에 힘이 빠지고 그 때까지도 공포에 질려 있어서 한 20~30분은 계속 그 골목에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의식이 없이 쓰러져 계신 분들이 이렇게 인도에 누워 있는데, 그 속에 혹시라도 누나가 있을까봐. 차마 볼 수가 없는데도 그 의식이 없는 분들의 얼굴을 한 분 한 분 보면서 누나가 있는지 확인을 했어요.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한동안은 제가 밤에 밖에 못 나왔어요. 두렵기도 하고, 작은 소리만 나도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하구요. 운전하다 보면 가끔 차 바닥에 옷 가지 같은 게 떨어져 있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 것만 봐도 진정이 안되더라구요. 2주 정도 쉬고 다시 출근해서 일주일 정도 일을 했는데요, 한 시간에도 몇 번씩 마음이 울컥 울컥 하더라구요. 일을 그만 뒀어요.정신 없이 장례식을 마치고 그 후로 무인도에 갇힌 것처럼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었어요.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정부에서는 제대로 책임지려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외신 기자 인터뷰에서 농담하는 총리, 경찰을 미리 배치했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거라는 행안부 장관을 보면서 더 마음이 아팠어요.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억울한 마음도 많이 드는데요, 그런데 저는 살아 있어서 말을 할 수가 있잖아요. 이미 돌아가신 분들은 하늘에서 얼마나 답답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겠어요. 그분들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추모하는 게 남은 유가족들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따금 어머니랑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저랑 어머니도 원래는 죽을 운명이었는데 누나가 우리를 지켜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누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갈 겁니다. 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때까지 국민 여러분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박지혜(29)씨의 동생 박진성(25)씨
촬영 | 김기철 정형민 |
편집 | 박서영 |
디자인 | 이도현 |
타이틀 | 정동우 |
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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