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대통령기록물법 무시...알 권리 침해 우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기록물 ‘열람대리인’ 지정 보류 논란

대통령기록의 열람권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에는 전직 대통령 사후의 열람대리인을 둘러싼 문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족은 지난 1월 16일 대통령기록관에 재임 중 대통령기록의 ‘열람 등을 할 수 있는 사람(이하 ‘열람대리인’)’으로 오상호 전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을 추천하고, 대리인 지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 관련 법을 무시하고 대리인 지정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 
현행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대리인 지정요청서를 받으면, 대통령기록관장은 15일 이내에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리인 지정을 통보하도록 정해 놓았다. 그러나 정부는 열람대리인의 범위와 열람방법 등이 불명확하다며 지정을 보류하더니, 최근 대통령기록물의 열람을 제한하거나 축소하는 방향으로 대통령기록물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열람대리인 추천과 지정 요청은 전직 대통령의 재임 중 대통령기록의 열람권에 해당한다는 게 현행법의 취지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대통령기록관은 전직 대통령의 기록 열람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은 또 열람대리인을 지정할 수 있으며, 사망이나 의식불명 등의 사유로 열람대리인을 지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전임 대통령 가족이 추천을 할 수 있다. 

열람대리인 지정, 요청 후 15일 이내에 처리해야

대통령기록관은 열람대리인 지청요청이 오면 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 대리인을 지정하고 그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애초에는 사후 열람대리인을 지정하는 절차가 없었는데, 지난 2020년 12월에 법률을 개정해 보완했다. 이것은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이 확대된 것으로서 대통령기록물법의 제정 취지에도 부합하는 조치다.
대통령기록물법의 전직 대통령 열람권 부여는 어떤 의미인가? 첫째, 대통령기록의 생산과 누락없는 이관을 독려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대통령기록물법의 골간은 대통령기록의 보호와 열람권에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대통령기록의 소실 없는 관리를 위한 것이다. 
대통령기록 보호제도는 재임 중 생산한 기록을 퇴임 후 15년 동안 보호해 줄 테니 적극적으로 기록을 생산하고, 그것을 누락없이 이관해 역사기록으로 관리하도록 하자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전직 대통령에게 열람권을 부여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퇴임 이후에도 재임 중 기록에 접근하여 열람하는 ‘모든 편의’(애초 제도 도입 취지는 모든 형태의 ‘기록정보서비스’였다)를 제공할 테니 기록을 잘 남기도록 독려하는 취지로 열람권을 도입했다.
둘째,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은 시민의 알 권리 확대에도 기여한다. 기록이 있어야 알 권리도 실현된다는 측면에서 (기록 독려 장치로서) 열람권은 알 권리에 기여한다. 전직 대통령과 열람 대리인은 퇴임 후 대통령지정기록 등에 접근하여 장기 보호의 실익이 없는 것은 바로바로 해제하도록 하는 의견을 내는 등 공개 분류 관련 입장을 제시할 수 있다.
현행 대통령기록물법은 전직 대통령의 경우 지정해제를 요구할 수 있고, 열람대리인은 비밀이 아닌 내용을 출판물이나 언론매체를 통해 공표함으로써 보호의 필요성을 없애는 방법으로 지정해제를 요청할 수 있다. 즉, 전직 대통령의 사후에 보호 기간이 미치지 못했더라도 열람대리인이 대통령지정기록에 접근하여 지정해제를 촉진함으로써 시민의 알 권리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
대통령기록관은 비공개기록의 공개 전환을 검토할 때 전직 대통령 재임 당시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맥락을 살피고 분류를 해야 한다. 이 때 전직 대통령의 열람대리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알 권리 행정에 유리한 조건이고, 결국 시민의 알 권리 확대에 도움이 된다.

전직 대통령 열람권은 시민 알 권리 확대에 기여

셋째, 전직 대통령의 재임 중 기록을 활용한 학술, 문화 등 여러 기념사업을 촉진하게 할 수 있다. 전직대통령법에 따르면 “민간단체 등이 전직 대통령을 위한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경우에는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라고 정해 놓았는데, 여러 기념사업에 재임 중의 대통령기록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기념사업은 퇴임 대통령의 생존 시기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진행되기 때문에 열람대리인의 대통령기록 접근은 매우 중요한 기념사업의 도구가 된다.
이와 같은 취지로 볼 때 전직 대통령의 사후에라도 열람대리인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 권한도 제한되거나 축소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열람대리인 지정 취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권리를 부여하지 않거나 제한하려고 하고 있다.
대통령기록관리 제도 도입 당시 가장 많은 참고를 했던 미국의 경우, 열람 대리인은 대통령 및 전직 대통령과 동일한 열람 권한을 행사한다. 비공개기록은 물론 비밀기록도 접근·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비밀기록관리 법령에 비밀을 열람할 수 있는 조건으로 그 정보를 “알아야 할 필요성(need to know)”을 인정받거나 증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것마저도 예외가 인정된다. 이 권한은 당연히 대통령이나 전직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도 부여받는다. 이렇듯 미국은 대통령이나 전직 대통령의 대리인에게 동일한 권한을 부여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한 번도 시행해보지도 않고 열람의 방법과 절차의 미비를 이유로 열람대리인의 지정을 미루더니 제도 도입의 취지를 무시하는 대통령기록물법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는 대리인을 추천하는 경우 열람목적을 기재하게 한다거나, 사본·복제물을 요청할 경우 60일 이내에 가능 여부를 통지하도록 하고, 전직 대통령 가족이 대리인을 추천하는 경우 90일 이내에 통보하도록 하며, 대리인의 기록물 열람 범위를 전직 대통령 측의 권리구제나 전기를 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정하는 등 열람권 부여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윤석열 정부, 열람권 취지 무시하는 시행령 입법 예고

이런 개정안이 나오게 된 것은 전직 대통령의 열람대리인과 가족이 추천하는 열람대리인이 달라야 한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얼핏 보면 이 생각이 맞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전직 대통령 사후 열람대리인을 가족이 추천하게 한 것은 유족에게 대통령기록 열람이라는 특혜를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열람권은 대통령기록의 공개·열람을 확대하거나 전직 대통령의 제반 기념사업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대통령 사후 이런 일을 추진하기 위해 열람권을 실현하려면 열람대리인이 필요한데, 기존의 법령은 그것을 부여할 절차나 방법이 없었다. 만약 미국이라면 국립기록관리처의 처장이 열람권을 부여하면 되지만 기관의 독립성이 없는 우리는 대통령기록관장이 그 역할을 할 수 없다. 따라서 궁여지책으로 가족이 추천하는 방법으로 열람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가족이 추천하는 열람대리인이라고 해서 가족에게 열람권을 주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전직 대통령 측’이라고 포괄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번 열람대리인 지정 문제가 심각한 것은 대통령실이나 행정안전부가 열람대리인의 지정 문제에 개입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대통령기록물법에 의하면 가족, 대통령기록관, 그리고 전문위원회가 열람대리인 절차에 참여하는 주체이다. 법령에 따른 절차에는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가 이 문제에 개입할 여지는 없다. 만약 열람대리인의 지정과 운영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대통령기록관이 실무적으로 해결하거나 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대통령실이 나서고, 행정안전부가 나선 것은 분명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전직 대통령 사후 열람대리인의 지정과 열람의 시행이 처음이므로 제도를 만들 때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보완해 제도나 절차를 정비하면 된다. 제도 개선의 공론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발생하지도 않은 우려 사항을 내밀어 시행해보지도 않고 열람의 권한을 미루고, 결국 제도 도입의 취지를 무시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내놓는 것은 제도의 합리적 운용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제도 개선하려면 열람권 더 확실하게 보장해야

제도를 개선한다면 열람대리인의 열람권 제한이나 축소가 아니라 더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 현재의 대통령기록물법령은 사후 열람대리인의 열람권을 보장하면서도, 열람 등을 할 수 있는 대통령기록의 범위, 열람 방법을 시행령으로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했다.(법 제18조 제3항) 열람권의 일부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는데, 특히 열람 범위를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그리고 열람대리인을 두는 법령 취지에 부합한다.
또 개별 대통령기록관 제도를 현실화하여 그것의 설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이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만약 개별 대통령기록관을 설치·운영할 수 있다면 열람대리인의 지정과 역할이 축소되거나 필요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법령에는 개별 대통령기록관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사후 열람대리인의 대통령기록에 대한 접근·열람 권한마저 축소한다면 대통령기록문화의 싹은 더 자라지 못하고 소멸하게 될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앞에서 사례를 든 미국은 개별 대통령기록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 문제는 대통령기록관리의 뜨거운 감자이다. 2008년 이른바 ‘봉하마을 대통령기록 유출 논란’이 빚어진 것도 열람권 때문이고,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대통령지정기록에 대한 문제도 열람권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 문제는 공론장에서 더 논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행해보지도 않고 열람대리인의 지정을 미루고, 제도 도입의 취지에 벗어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기록문화와 알 권리를 분명 후퇴시키는 행위다.
조영삼 전문위원/전 서울기록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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