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2020년 12월 반환된 미군기지 12곳의 환경오염 '위해성 평가 보고서'(환경부 시행)를 최초로 입수해 2021년 2월 3일부터 차례로 그 내용을 보도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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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한국정부가 돌려받은 서울 지역 일부 미군기지 터의 인체 발암 위해성이 기준치를 초과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뉴스타파가 최근 입수한 환경부의 ‘미군기지 위해성 평가 보고서’를 통해 확인됐다.
인체 위해성이 가장 심각한 곳은 서울 중구 을지로 청계천 옆 미군 ‘극동공병단(FED COMPOUND)’ 부지다. 이 곳은 주거지역으로 쓰일 경우와 상/공업지역(상가 건물 등)으로 쓰일 경우 모두 거주자와 근로자에게 암을 유발시킬 확률이 기준치 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극동공병안 터는 토양 정화가 시급하지만 정화가 이뤄지기 전에 이미 일부가 국립중앙의료원의 코로나19 긴급 병동으로 사용되고 있다.
반환 대상 미군기지의 위해성 평가 보고서는 국민의 알 권리와 건강권을 위해서 반드시 공개돼야 하는 정보다. 하지만 지금까지 위해성 평가 보고서의 존재 자체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조사 주체인 환경부도 자발적으로 해당 정보를 공개한 적이 없다.
'위해성 평가 보고서'란?
뉴스타파가 최근 입수한 서울 지역 미군기지 4곳의 '위해성 평가 보고서'. 이 기지들은 지난해 12월 반환됐다.
뉴스타파는 최근 미군기지 관련 취재 과정에서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반환 완료된 12군데 미군기지의 ‘위해성 평가 보고서’를 입수했다. 그중 4개 기지의 위해성 평가 결과를 먼저 보도한다. 이들 4개 미군기지는 모두 서울 도심에 있다. 극동공병단(서울 중구)과 서빙고 정보대(용산 서빙고동), 니블로 배럭스(용산 한남동), 종교휴양소(용산 한남동) 등이다. 서울 소재 미군기지 위해성 평가 보고서가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위해성 평가 보고서’는 국정감사 등을 통해 공개된 바 있는 미군기지 '환경조사 보고서'와는 다르다. 환경조사 보고서가 반환 대상인 미군기지 안에 어떤 환경오염물질이 있는지 조사해서 그 결과를 담은 보고서라면, 위해성 평가 보고서는 환경조사를 통해 검출된 오염물질들이 실제 인체에 얼마나 위해성을 가지는지를 조사,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토양과 지하수 등에 있는 오염 물질들은 직접 섭취(놀이터 토양 흙 등), 흡입(비산 먼지, 휘발성 물질 등), 피부 접촉 등의 경로로 인체에 유입된다.
위해성 평가는 이러한 노출 경로와 함께, 부지 이용 용도에 따른 노출 시간 등을 가정해 이뤄진다. 예컨대 해당 부지가 주거지역으로 쓰일 경우 거주자는 장시간 노출되고, 상/공업지역으로 쓰일 경우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거주자 보다는 짧은 시간 동안 오염물질에 노출된다는 가정이다. 이와 함께 환경오염 정화 작업 등으로 이 부지를 드나드는 현장 작업자에 대한 위해성 평가도 이뤄진다.
이때 ‘위해성’은 ‘발암위해성’과 ‘비발암위해성’으로 구분해 각각 확률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발암위해성은 말그대로 특정 사람이 특정 오염물질에 노출돼 암에 걸릴 확률을, 비발암위해성은 암은 아니지만 질병에 걸리는 등의 건강상 위해가 있을 확률을 말한다.
한국 정부는 미군기지를 돌려받기 전에 미국 측과 환경오염 정화 협상 등을 위해 환경조사와 위해성 평가 조사를 한다.
"극동공병단, 위해도 상당히 높아...사람 활동 위험"
환경부가 시행한 미군기지 위해성 평가 결과 서울 을지로에 청계천을 끼고 있는 미군 극동공병단 터에서는 주거지역 거주자와 상/공업지역 근로자의 경우 오염물질에 의해 암에 걸릴 확률이 기준치보다 높게 측정됐다. 1군 발암물질 비소와 다이옥신, 그리고 각종 토양가스들의 독성과 노출량 등을 합쳐 계산한 결과다.
환경부 고시 '토양오염물질 위해성평가 지침'에 따르면, 인체에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발암위해도의 ‘허용가능한’ 기준은 10⁻⁵(확률 1/100,000)~10⁻⁶(확률 1/1,000,000)으로, 발암위해도가 이보다 크면 발암위해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극동공병단의 발암위해도(주거지역 거주자와 상/공업지역 근로자)는 10⁻⁴(확률 1/10,000)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암위해도와 더불어, 질병 등 건강상 위해가 있을 확률인 '비발암위해도'도 기준보다 높게 측정됐다. 지침상 비발암위해도의 기준치는 '1'이다. 평가된 지수가 '1'보다 크면 비발암위해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극동공병단은 주거지역 어린이와 성인, 상/공업지역 노동자, 오염 정화 현장 작업자에게 “모두 1을 초과”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주거지역 어린이의 경우 기준을 8배 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즉, 이 부지가 주거지역으로 쓰일 경우 어린이와 성인에게 모두 건강상 위해가 있을 수 있고, 사무실로 쓰일 경우 노동자에게, 또 토양정화나 재개발 사업 등 해당 부지에서 작업하는 현장 노동자에게 모두 건강상 위해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각종 토양가스들이다. 토양오염 위해성 평가 전문가인 정승우 군산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토양가스들은 휘발되기 때문에 부지 밖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극동공병단 부지는 아주 위해한 부지이기 때문에 그 부지에서 상주하거나 그 부지에서 사람이 활동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인구 밀집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토양 오염 부지는 주변에 환경 영향, 인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하루빨리 정화가 되어서 주변에 미치는 환경 영향 또는 인체 영향을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검출된 토양가스인 1,3-부타디엔, 클로로포름 등의 토양가스들은 환경조사에선 다루지 않은 항목들로, 환경조서 보고서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그런데 위해성 평가를 위해 토양가스를 추가 조사했고, 다량 검출된 것이다. 환경조사 보고서 외에 위해성 평가 보고서 또한 공개돼야 하는 이유다.
극동공병단 부지. 반환받은 뒤 환경정화 전, 코로나19 긴급 병동으로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미군 극동공병단 터에 향후 중앙감염병병원가 들어설 예정이란 점이다. 특히 현재 극동공병단 터 일부는 코로나19 긴급 병동 및 백신 중앙접종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이에 대해 병동으로 사용하는 곳은 극동공병단 부지에서 오염이 심하지 않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원 측 관계자는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구역은 다른 곳과 비교했을 때 오염이 비교적 덜 하다"고 말했다.
미군 극동공병단 환경 정화는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고 긴급 병동이 철수한 뒤에야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서빙고 정보대, 니블로배럭스도 기준 초과
서빙고초등학교와 접해있는 미군 서빙고 정보대 역시 인체 발암 위해도가 높게 측정됐다. 이곳은 주거지역으로 쓰일 경우 발암위해도가 기준치인 10⁻⁵, 상/공업지역으로 쓰일 경우 10⁻⁶을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거지역에 거주하는 어린이에 대한 비발암위해도는 허용 가능한 수준인 1을 초과했다.
니블로배럭스 기지는 현재 서울 한남동 '나인원한남'과 인접해 있다. 니블로배럭스의 경우 주거지역으로 사용할 경우 발암 위해도가 10⁻⁶을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위해성 평가에서 서울 한남동에 있는 미군 종교 시설 '종교휴양소'는 발암, 비발암 위해도가 기준을 초과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 위해성 평가 보고서 공개해야
극동공병단과 서빙고 정보대, 니블로배럭스는 모두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기지들이다. 극동공병단은 청계천에 인접해있고, 서빙고 정보대는 초등학교와 맞닿아 있다. 니블로배럭스 서쪽으로는 빌라 등 주거 밀집 지역이다. 앞으로 모두 서울 시민들이 사용하게 될 땅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국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군기지 위해성 평가 보고서 내용을 일체 공개하지 않았다. 법원 판단도 비슷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018년, 부평 미군기지 위해성평가보고서를 반환 전에 공개해달라는 시민단체 인천녹색연합의 소송에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며 비공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같은 판단은 이후 2심 법원인 서울고등법원에서도 똑같이 유지됐다.
당시 소송을 진행했던 인천녹색연합의 박주희 사무처장은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부지를 반환 받는 것도 결국에는 시민들을 위해서 아니냐"며 "시민들의 알권리나 건강권은 등한시하고 외교적인 협상에 대한 부분만 계속 강조를 하다 보면 결국에는 국익이 누구를 위한 국익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오염된 부지가 미군기지가 아니라면 위해성 평가 정보는 공개된다. 환경부 고시 '토양오염물질 위해성평가 지침'에도 위해성 평가를 실시하면 그 결과를 20일 이상 공고하고, 특히 영향을 받을 지역 주민 등이 평가서를 공람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4월, 충북 서천 장항제련소 부지의 위해성평가 내용이 주민들에게 공고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미군기지인 경우에는 다른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미군기지 위해성 평가를 실시하게 된 규정인 한미 공동환경평가절차서(2009·JEAP)의 원문에는 "양국의 합의 없이 어느 한 국가가 환경 조사 내용을 공개해선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해성 평가 내용을 비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문에는 "오랫동안 유지돼온 SOFA 합동위원회의 절차 준수에 대한 신뢰나 확신이 위배된다면 주한미군은 귀 부처(환경부)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미군기지 내부에 대한 어떤 정보도 공유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공동환경평가절차서(JEAP)의 원문은 현재 전문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