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죽음] 1-① 무면허 배달 내몰렸다 사망...18살 은범 군 이야기
2019년 09월 24일 08시 00분
이른바 ‘배달 산업’은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하며 연간 20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노동자들의 희생이 감춰져 있다. <뉴스타파>와 <프레시안> 공동취재팀은 지난 수개월간 플랫폼 배달노동자들이 겪는 사건사고와 안전실태를 취재했다. 특히 지난해 4월 배달 중 숨진 18살 김은범 군의 죽음을 통해, 청년 라이더들이 처한 비참한 노동현실과 비정상적인 법체계를 고발한다. ‘뉴스타파X프레시안’ 공동기획 ‘배달 죽음’은 4차례에 거쳐 연재된다. 매편의 ①번 기사는 주요 취재내용을, ②번 기사는 취재기를 담고 있다.(‘배달 죽음’ 다큐 바로가기(YOUTUBE)) -편집자 주 3-① 죽음의 청년산업... 18~24세 산재 사망 1위 ‘배달’ |
최근 3년간 일을 하다 사망한 18~24세 청년의 44%(72명 중 32명)가 오토바이 배달 중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배달’은 청년 산재 사망 원인 중 1위였다. 일반 노동자들의 경우 건설업에서 가장 많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것과 확연히 비교된다.
고용노동부 정보공개청구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18~24세 청년 중 오토바이 배달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32명이었다. 연도별로 보면, 2016년에는 총 21명의 청년이 산재로 사망했는데 이중 10명이 오토바이 배달 중 사망한 경우였다. 2017년에는 13명 중 4명, 2018년에는 30명 중 12명이었다. 2019년 상반기에도 8명 중 6명이 오토바이 배달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형태는 다양했다. 피자와 치킨, 분식, 족발, 햄버거 등을 배달하거나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발생했다. 터널을 빠져나와 직진하다가 3차로에 주차돼 있는 화물차를 들이받은 경우, 불법 주차돼 있는 차량과 충돌한 경우, 경계석에 부딪히면서 오토바이가 전도돼 사망한 경우 등이었다.
일반적으로 ‘노동자 사망사고’는 건설업 분야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사고 형태로 구분하면 ‘추락’이나 ‘끼임’, ‘부딪힘’ 등이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사망한 노동자는 총 971명이었는데 그 중 건설업 분야 사망자는 485명(49.9%)으로 절반에 달했다. 제조업(217명)과 서비스업(154명)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오토바이 배달사고’는 순위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올해 5월 노동부가 발표한 산재 사망 감소 대책도 건설 관련 사고 예방에 초점이 맞춰졌다. ‘추락재해 예방을 위한 감독 실시’, ‘추락재해 예방의 날 확대운영’ 같은 대책이었다. 노동부가 발표한 대책 중 ‘오토바이 배달사고’를 막기 위한 대책은 단 하나도 없었다. 청년 산재 사망원인 1위임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 배달사고’는 사실상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청년들의 오토바이 배달 사망사고가 관리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교통 사고’라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조사에서는 배제되고 있고, 조사를 한다해도 형식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동부의 산재 관리 항목에 ‘배달업’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취재진은 청년 오토바이 배달 사망사고 실태를 취재하면서 사망자수를 파악하는데만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다. 먼저 최근 3년간의 산재 사망자 중 ‘사업장 외 교통사고’로 사망한 건수를 정보공개청구와 국회를 통해 확인한 뒤, 각 사건의 개요를 별도로 확보하고, 여기에서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가 사망한 경우만 따로 추린 뒤에야 ‘오토바이 배달 사망 건수’를 집계할 수 있었다.
현재 산안법은 오토바이 배달 사고와 관련해 딱 두 가지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로자가 헬멧을 착용하지 않은 경우’와 ‘사업주가 정상적인 오토바이를 제공하지 않은 경우’다.
⑪ 사업주는 전조등, 제동등, 후미등, 후사경 또는 제동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아니하는 이륜자동차에 근로자를 탑승시켜서는 아니 된다.
취재진은 고용노동부 측에 “이 밖의 다른 경우로 근로자가 사망하는 경우, 예컨대 은범이 사례처럼 업주가 무면허 운전을 시켰다가 근로자가 사망하는 경우에는 산안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는지” 등을 물어 봤다. 고용노동부 측은 “처벌할 수 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청년 배달 사망사고 32건(2016~2019년 상반기)에 대한 노동청 조사 여부를 확인한 결과, 산안법 위반으로 중대조사보고서가 작성돼 업주가 산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했다. 근로자가 헬멧을 쓰지 않은 채 사고를 당한 사건으로, 노동부가 설명한 ‘명백한 산안법 위반’에 해당되는 사례였다.(아래 상자내용 참조)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에도 업주가 받은 처벌은 고작 ‘벌금 300만 원 약식기소’에 불과했다.
② 사업주의 산업안전보건법 상 제재 여부
- 아래 재해* 관련하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의견 송치
* (연번26번/2018년) 치킨배달 주문을 받고 배달을 가던 중 재해발생 장소 4거리에서 신호를 위반하여 진행 중 상대차량에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당하였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사망
취재진은 청년 배달 사고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점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사망사고의 상당수가 입사 직후 발생한다는 점이다. 2016~2018년까지 발생한 청년 배달 사망사고 26건 중 11건이 일을 시작한 지 보름 안에 발생한 사고였다. 입사한 당일과 이틀째 되는 날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도 각각 3건씩이었다. 취재 중 만난 복수의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로 ‘좋지 않은 노동환경’과 ‘관리 감독 부재’를 꼽았다.
근속기간이 짧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자리의 특징입니다. 보통 배달 노동자들은 짧은 기간 안에 일자리를 자주 옮기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배달업의 특성상 신호체계나 방향 등 교통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길을 자주 다녀야 한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가 청년 배달사고 죽음에 대해서는 도로교통법 말고는 전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들의 안전이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급속한 사회 변화에 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망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특별한 묘안이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서울 강서구병)은 “청년 노동자들이 선호하는 배달 업종에서 사망 등의 중대 재해가 증가하고 있지만 ‘사업장 외 교통사고’로 분류돼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산업안전규칙과 근로 감독 규정이 산업 변화에 부응하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1-① 무면허 배달 내몰린 18살 은범이의 죽음 (기사 링크)
1-② “친구 목숨이 30만 원으로 끝났어요” (기사 링크)
2-① 손 놓은 노동청...법 밖에 있는 '라이더' (기사 링크)
2-② 영세 가게에서 배달하다 죽으면 노동자가 아니다?(기사 링크)
취재 | 강혜인, 프레시안 허환주 |
연출 | 신동윤 |
촬영 | 최형석 |
편집 | 정지성 |
CG | 정동우 |
그래픽 | 이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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