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휴대폰 또 폭발...갤럭시 A8모델 “원인 파악 중”
2018년 05월 16일 15시 02분
지난 2016년 9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삼성전자의 현직 고위 임원이 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팔아 넘기려다 적발됐다는 것입니다. 당시 언론들은 반도체 기술의 경쟁력이 무너지는 국가적인 위기를 가까스로 피하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보도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습니다. 1심 재판도 끝이 났습니다. 이제 삼성의 기술을 중국으로 팔아 넘기려 했다는 임원에게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이 기술 유출 사건의 진실을 처음부터 추적해봤습니다. 진실은 언론들의 보도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지난 2005년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의 주인공 김선우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 씨의 대사입니다. 보스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해왔을 뿐인데 이유도 모른채 죽임을 당할 뻔한 김선우가, 보스에게 복수를 하러 가서 던진 말입니다. 보스는 김선우에게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대답하고, 김선우는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 7년 동안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해온 나를!” 이렇게 소리치며 보스를 쏩니다.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이 영화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사건의 주인공인 이 전무는 한국에서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MIT에서 석사, 스탠포드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세계 최고의 반도체 업체인 인텔에서 일하다 지난 2008년 45살의 나이에 삼성에 임원으로 스카우트됐습니다. 인텔에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삼성이 당시 ‘노어 플래시’ 개발이라는 기술적 난관을 돌파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그렇게 7년여를 밤낮없이 일했고 지난 2015년 말에는 전무로 승진했습니다. 연봉도 7억 원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2016년 7월 30일, 그에게는 정말 잊고 싶고 되돌리고 싶은, 악몽이 시작됩니다.
2016년 7월 29일, 이 전무는 병가 중이었습니다. 병가 중임에도 밤늦게 회사에 들러 업무 자료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자정을 넘겨 회사 차량을 타고 퇴근하던 길, 보안요원의 검문 검색이 있었습니다. 차량 뒷자리에 놓여있던 그의 가방에는 2,3개월 전에 출력된 자료 31장이 들어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입사 이래 8년 동안 그는 자유롭게 회사 자료를 소지한 채 출입 했고, 아무도 그걸 문제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8월 4일, 회사는 그를 고소했습니다. 다음 날에는 그의 사무실과 자택이 압수수색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무는 경찰에 몇 차례 출석해 조사를 받으면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여전히 몰랐다고 합니다. 회사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으며, 그 오해만 풀리면 별 일 없이 복직을 할 거라고 믿었습니다. 자신을 조사하는 경찰관에게 “이제 복직을 해야하니까 빨리 조사를 끝내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2016년 9월 21일, 이 전무는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영장이 나왔으니 내일 실질심사를 받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영장이 뭔지를 몰랐다고 합니다. 그래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다 싶어 서초동으로 가서 눈앞에 보이는 가까운 변호사 사무실로 무작정 들어가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그제서야 자신에게 닥친 일을 이해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는 별다른 준비 없이 다음 날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들어갔고, 곧바로 구속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던 그에게, 6개월 반에 이르는 구치소 생활은 악몽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언론은 대서특필했습니다. 이 사건을 최초로 단독 보도한 SBS는 “삼성전자 현직 임원이 삼성의 최신 스마트폰 기술을 중국업체에 통째로 팔아넘기려다 붙잡혔”다 라고 보도했고, 삼성, 스마트폰 기술 유출, 중국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들이 다음 날 거의 모든 신문의 지면을 채웠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구치소에 갇혀있던 그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것도 몰랐습니다. 한참이 지나서 뒤늦게 그의 아내가 기사를 프린트해 구치소 면회실 창문 넘어로 보여줬습니다. 그는 그 당시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때 받은 충격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때 너무 충격이 커서 말조차 안 나왔어요, 한동안. 그리고 또... 그때 감정이 살아나 아이 참…(눈물) 그래서 그때는 정말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안들었어요. 제가 평생 쌓아올린 어떤 노력과 명예가 완전히 다 박살이 났다고, 땅에 떨어진다고 생각을 하니까
이 사건을 단독 보도한 SBS를 포함해 많은 언론들은이 전무가 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에 팔아넘기려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타파는 검찰의 공소장을 확인해 봤지만 ‘중국’이라는 단어는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의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대부분 입수해 확인해봤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취재진이 유일하게 ‘중국’이라는 단어를 발견한 것은 경찰이 작성해 검찰에 넘긴 구속영장 청구서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온 ‘중국’이라는 단어도 이 전무의 혐의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최근 중국의 업체들이 반도체 분야의 인재 스카웃에 주력하고 있다는 일반적인 서술에 사용됐을 뿐입니다.
당시 이 사건을 단독 보도한 SBS 기자에게, 어떤 근거로 이 전무가 중국에 반도체 기술을 팔아 넘기려 했다는 표현을 썼는지 물었습니다. 해당 기자는 “검찰에서 연락을 받았고 삼성에도 연락을 해서 기사를 쓴 것 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중국이라는 얘기를 누가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기사를 쓴 기자조차 누가 언급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중국’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전무가 받은 피해는 극심합니다. 지금도 해당 기사들의 댓글창을 열어보면, 중국에 기술을 팔아넘기려고 한 이 전무를 “사형 시켜야 한다”는 식의 댓글들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이런 언론 보도를 접한 이 전무의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쓰러졌고, 지금까지도 거동이 불편한 상태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전무가 중국으로 기술을 팔아넘기려고 했다는 혐의는 아무런 실체가 없었습니다.
경찰은 기술 유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이 전무의 휴대전화와 이메일을 압수수색하고 금융거래 기록까지 모두 조회했습니다. 그 결과, 문서를 유출하기 넉 달 전 이 전무가 헤드헌터와 접촉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사실은 이후 이어지는 재판에서 검찰의 핵심 논거가 됐습니다. 검찰은 법정에서 헤드헌터와 접촉을 한 것을 보니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려한 것이 틀림없고, 이직을 하려 했으니 기술을 빼돌려 팔아 넘기려 한 것이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전무가 접촉한 헤드헌터 대표 김 모 씨에게 이 전무를 만나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재판 중인 사안이라 말해주기 어렵다면서도, 이 전무가 자신을 만났을 당시 구체적인 이직 의사를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로부터 “삼성전자에 다니는 유능한 인재가 있으니 만나보라”고 소개를 받아, 인맥을 넓히는 차원에서 한 번 만났을 뿐이라는 겁니다. 그가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도 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죽마고우인 송00이 저에게 연락을 하여 삼성전자에 근무중인 고급 인재가 있는데 한 번 만나서 자문을 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하였습니다. 저와 이 00전무는 3-40분 정도의 미팅을 한 이후에는 더 이상 만난 적이 없고, 연락을 한 적도 전혀 없습니다. 이직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협의하거나 정식으로 의뢰를 받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특별히 연락을 주고받을 일도 없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이 전무에게 헤드헌터 김 씨를 소개해준 친구 송 모 씨와 이 전무 사이의 메신저 대화 내용에서도 같은 정황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헤드헌터 신 모 씨와는 문자를 한두 차례 주고 받았을 뿐 아예 만난 적도 없었습니다.
한 명의 헤드헌터와 만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이직과 관련된 얘기는 하지 않았다, 또 다른 헤드헌터와는 문자를 한두 차례 주고 받았다. 이것만으로 이 전무가 이직을 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참고로, 대기업의 임원들은 해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관계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신세이기 때문에 헤드헌터들과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문제는 경찰과 검찰입니다. 이 전무의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기 위해서는 이 전무와 접촉한 헤드헌터를 조사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두 헤드헌터들에 대해서 소환 조사나 서면 조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헤드헌터와 접촉한 게 기술을 팔아넘기려고 한 핵심 근거라고 주장한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오히려 이 전무 쪽에서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두 헤드헌터와의 대질 심문을 요청했지만,경찰과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에게 왜 그랬는지를 물었습니다. 해당 검사는 “수사 단계에서 참고인을 강제로 부를 수는 없다”는 다소 엉뚱한 답변을 했습니다. 강제로 부르라는 게 아니라 연락은 해봤냐고 다시 묻자,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전무가 경쟁업체로 이직하려 했다는 것은 근거가 매우 희박한 의심에 지나지 않았던 겁니다.
중국이나 다른 업체로 기술을 팔아넘기려 한 것은 사실이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반도체 핵심기술을 빼돌린 것은 잘못 아니냐고요? 삼성과 검찰도 재판에서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이 부분도 검증해봤습니다.
경찰은 이 전무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수천 장의 회사 자료를 발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자료들 가운데 반도체와 관련된 기술 자료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경찰이 압수한 문서 가운데는, 업무와 관련된 자료도 있지만 업무와 전혀 무관한 자료, 즉 회사 헬스클럽의 팸플릿이나 임원 연수 교육에 관한 자료도 섞여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 자료를 뭐하러 힘들게 유출했을까요?
단서가 있습니다. 그가 유출했다는 자료들은 대부분 이 전무 자신이 받은 이메일의 첨부 문서였다는 겁니다. 이는 법원의 명령으로 삼성전자가 이 전무의 사무실 컴퓨터를 스스로 조사한 결과 확인된 사실입니다. 즉, 이 전무 쪽의 주장이 아니라 법원이 인정한 ‘인정 사실’이라는 뜻입니다. 이 전무는 자신에게 온 이메일 가운데 다시 보고 싶은 문서나 자료는 가리지 않고 출력해 집으로 가져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전무가 자신에게 온 이메일을 굳이 출력해서 집으로 가져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삼성 전자의 사내 메일은 2주가 지나면 자동으로 지워진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이 전무는 입사한 이래 계속,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메일이 지워질까봐 첨부파일을 다운로드 받거나 출력해서 보관해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 역시 삼성전자가 이 전무의 사무실 컴퓨터를 조사한 결과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실제로 경찰이 압수한 문서 가운데는최근 문서 뿐 아니라 6,7년 전의 문서, 즉 이 전무가 삼성에 입사했을 당시의 문서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전무는 또 학생시절부터 자료를 출력해 메모를 해가면서 검토하는 게 자신의 오랜 공부 습관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실제 경찰이 압수한 문서들에는 그가 공부나 검토를 하기 위해 메모를 한 흔적들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기술을 유출해 누구에게인가 넘기는 게 목적이었다면, 낙서나 메모를 남기지 않고 깨끗한 문서를 보관하는 게 상식일 겁니다.
이 전무의 옛 상사인 퇴직 임원은 법정에 제출한 동영상 진술에서 이 전무의 공부 습관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피의자에게 프린트 인쇄 자료가 많은 것은, 피의자의 오랜 공부 습관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8년 11월에 입사하였을 당시 피의자의 업무 진행 모습을 기억해보면, 관련 기술 자료를 인쇄해서 책상 위에 잔뜩 쌓아놓고는, 자료에 메모하고, 포스트잇을 붙이는 등 마치 고3 수험생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퇴근 시간이 되면 주섬 주섬 자료를 챙겨서 가고는 했습니다.
자신에게 온 이메일을 보다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서 출력한 뒤 집에 가져간 사실이, 수사기관의 손을 거치면서 “대량의 반도체 핵심 기술 자료 유출”로 둔갑한 겁니다.
설령 검토나 공부를 하기 위한 목적이였다고 해도, 이 전무가 자료를 집으로 가져간 것 자체가 불법이나 규정 위반은 아니었을까요? 뉴스타파는 이 부분도 검증해봤습니다.
삼성전자는 회사 규정상 자료를 가지고 나갈 때는 모든 임직원이 반출 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 전무는 신고를 하지 않았으므로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규정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이런 규정이 일반 직원에게 엄격히 적용되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실제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정문에 가보면 대부분의 직원은 걸어서 회사 정문을 통과하며, 이때 엄격한 검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무는 직원에게는 엄격히 적용되는 보안 규정이, 임원에 대해서는 사실상 적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임원들은 회사의 관리자이고 보안의 결재자인만큼 스스로 판단을 해서 자료의 반출 여부를 결정해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임원들은 대개 회사가 제공한 차량을 타고 회사를 출입하는데, 이때 차량 안을 검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따라서 임원의 자료 반출을 회사가 사실상 용인해왔다는 겁니다.
이 부분은 재판의 중요한 쟁점이 됐습니다. 법적으로 기술 유출 혐의를 입증하려면 “회사가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기술을 보호해왔다”라는 점이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결정적 증언이 나왔습니다. 사건의 발단이 됐던 2016년 7월 30일, 이 전무의 서류 반출을 직접 적발했던 보안 담당 직원 김 모씨가 증인으로 출석한 겁니다. 그는 검찰의 요청에 의해 증인으로 나왔는데, 당시 삼성을 퇴사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 사건과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는 재판에 나와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규정과 달리, 임원들의 차량은 간이 검사만으로 통과시켜줬다는 사실이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보안 직원의 증언으로 확인이 된 겁니다.
뉴스타파는 실제 이 보안직원의 증언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삼성전자 기흥 사업장 반도체 사업부를 찾아가 확인해봤습니다. 그 결과, 일반 직원들의 차량은 내부를 금속 탐지기로 검사하지만, 임원들의 차량은 트렁크만 열어볼 뿐 내부는 아예 들여다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뉴스타파가 지난 5월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수십 대의 출입 차량을 지켜본 결과 예외는 없었습니다. 삼성은 재판에서 임원과 일반 직원에 대한 보안 규정이 똑같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임원 차량에 대해 형식적인 검색만을 하고 있었습니다.
삼성의 주장이 허위라는 것은 기록으로도 확인됩니다. 만약 임원도 자료 반출 신고를 해야 한다는 삼성 쪽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160명에 달하는 반도체 부문 임원들이 자료를 가지고 나갈 때마다 반출 신고가 있어야 하므로 한 달에 수백 건 이상의 반출 신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건이 있기 직전인 2016년 6월 한 달 동안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는 임원들의 자료 반출 신고가 단 1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법원의 사실 조회 요청에 따라 삼성전자 측이 직접 확인한 사실입니다. 이는 임원들의 경우 사실상 자료 반출에 대해 통제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됐습니다.
이 전무가 자료를 집에 가지고 간 것을 불법 유출이라고 보기 어려운 결정적 근거는 또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임원에게 피씨와 태블릿 피씨,휴대전화를 지급하고 여기에 회사 업무 시스템을 설치해줍니다. 이른바 RBS (Remote Business Support System, 원격업무시스템) 라고 불리는 시스템입니다. 임원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접속해 회사의 내부 자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자료를 출력해서 반출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만약 임원이 자료를 유출하기로 마음먹는다면 회사에서 서류를 출력해 들고 나오는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습니다. 서류를 출력해서 나올 경우 일단 인쇄 기록이 남게 되고, 출입문을 통과할 때 적발될 우려도 있기 때문입니다. 서류 하단에는 출력자와 출력 일시가 조그만 글씨로 남게 되는데, 이는 나중에라도 기술 유출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서류를 출력해서 나오는 것보다는 자택에서 원격 업무 시스템의 화면을 띄워놓고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편이 훨씬 편리하고 안전하다는 말입니다. 이 전무는 경찰과 검찰에서 이런 사실을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묵살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진짜로 유출하려고 했으면 그 방법을 쓰지 바보같이 그것도 먼 회사까지 가서, 바보같이 그 무거운 종이 들고 나오는... 그것도 위험까지 감수해가면서 왜 그런 짓을 하겠냐고. 이것만 봐도 말이 안되는 건데, 이건 검사 쪽에서 전혀 언급을 안해요.
이 전무는 1심에서 기술 유출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비록 무죄가 나오기는 했지만, 삼성은 재판과정에서 그를 기술유출범으로 옭아매기 위해 온갖 꼼수를 썼습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가 거짓 진술과 인신 공격입니다.
삼성전자 인사팀의 공모 대리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 전무가 병가 직전 자신의 사무실에서 박스 2개 분량의 서류를 출력해서 나갔으며, 비슷한 시기 “자료가 다 수집되지 않았다. 다 수집될 때까지 시간을 더 달라”라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사실을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어떤 물증도 제시하지 못했으며 반대 증언이 나오거나 증언을 철회했습니다.
이 전무의 부하 직원이었던 허 모 선임 역시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 전무가 팀장급에게 나오는 회의비를 오로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으며, 평소 직원들에게 갑질을 일삼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허 선임의 이러한 주장은, 재판 과정에서 거의 기각됐습니다. 이 전무가 회의비 사용 내역을 제출했고, 이 전무가 이끌던 팀의 직원 만족도가 40개 팀 가운데 5위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는 사실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이 전무는 자신에 대한 인신공격이 허위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과거 자신의 부하 직원이었던 고려대 이 모 교수를 증인으로 섭외했습니다. 퇴직 후 고려대 산학 협동 과정의 교수로 가 있던 이 교수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는 이 전무와 직접 만난 자리에서 “전무님은 우리한테 참 잘해주셨다. 저 뿐아니라 다른 분에게도 큰소리 내는 걸 한 번도 못봤다”라고 증언하며 기꺼이 증인으로 나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판을 4일 남겨두고, 이 교수는 갑자기 증인 출석을 못하겠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이후 그는 이 전무와의 대화에서, 삼성전자 총괄 인사팀의 최 모 상무가 전화를 걸어 증인 출석을 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삼성이 예산을 지원해주고 있는 산학 협동 과제 등을 언급하며 압박을 가했다는 겁니다. 삼성전자는 임원이 퇴직하면 대학에 자리를 마련해주고 산학 협동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교수도 그랬습니다. 이 교수는 이 전무에게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월급이 삼성에서 나오잖아요? 과제도 하는 거고, 당장 또 내일 들어가야 돼요. 내일 들어가 일을 해야되는데, 삼성에 들어가거든요. 거기 또 벌여놓은 일들도 있고, 양해를 부탁합니다.
또 다른 전직 삼성전자 임원 원 모 씨도 처음에는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거듭 감사를 표시하는 이 전무에게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냐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공판 4일전, 증인 출석을 못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증인 출석을 못하겠다고 연락해온 날은 고려대 이 모 교수가 삼성의 전화를 받은 날과 같은 날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출장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지만 나중에 이 전무에게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있는 위치도 과거와 같이 삼성의 중요한 협력회사입니다. 더욱이 일본 업체이며 현재 수습기간으로 있으면서 삼성을 대응해 법정에 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위증과 증인출석 방해는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위중한 범죄입니다.
이 전무가 기술 유출 혐의에 대한 수사를 받던 도중, 삼성은 이 전무를 추가 고소했습니다. 기술 유출 수사를 받던 이 전무에 대해, 난데없이 업무 추진비 유용 혐의로 추가 고소를 한 것입니다. 기술 유출 수사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은 시점이었습니다.
삼성은 이 전무의 업무 추진비 사용 내역을 전수 조사한 결과,이 전무가 8년 동안 업무 추진비 7천8백만 원을 사적으로 사용했다고 고소했습니다. 삼성은 또 이 전무가 부하직원의 카드를 강제로 사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전무는 편의상 직원들의 카드를 쓴 적이 있지만 누구의 카드를 사용하든 임원인 자신에게 배정된 업무추진비 예산에서 지출이 되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피해를 준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업무 추진비를 일부 사적으로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액수는 삼성이나 검찰이 주장하는 7천8백만원이 아니라 8년동안 천 4백만 원, 한달에 14만원 정도라면서 형사고소를 당할만한 사안은 아니라고도 주장했습니다.
1심 재판에서 이 전무는 기술 유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받았지만 업무 추진비 7천 8백만 원 유용 혐의는 인정돼 징역 6개월에 집행 유예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검찰과 이 전무 모두 항소해,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대체 왜 삼성은 반도체 부문의 핵심 인력이었던 이 전무를 이렇게 가혹할 정도로 기술 유출 혐의로 몰아갔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사실 그 의문을 가장 오래 곱씹은 것은 이 전무 본인이었을 겁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사내 파벌 싸움의 희생양이 된 것은 아닌지 물었지만 자신은 파벌에 가담한 적도 없고, 전혀 짚이는 바가 없다고 합니다. 대체 왜 삼성은 이런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반도체 분야의 핵심 인력을 기술 유출범으로 몰아갔을까요? 이 전무의 변호인들은 법정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삼성 전자는 2015년경부터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에 심각한 위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중국 업체들은 2016년경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삼성전자는 반도체 분야의 전문 인력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내부 단속을 할 필요성이 매우 컸습니다. 그리하여 삼성전자는 피고인을 타겟으로 삼아 수사기관에 무리하게 고발하였고 이로 인해 삼성전자는 내부 인력을 단속할 수 있었습니다.
변호인들의 의견이 사실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아마 삼성이 이 전무를 기술유출범으로 몰아야 했던 이유는 그 일을 꾸민 누군가만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만약 변호인들의 의견이 사실이라면, 삼성이 정말로 이런 의도를 가지고 사건을 꾸며낸 것이라면, 역설적으로 그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습니다. 삼성의 최신 반도체 기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핵심인력인 이 전무가 이 사건으로 인해 지금 중국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전무는, “삼성에 맞서 재판을 벌이고 있는 자신을 국내 업체에서 채용해줄 리가 없고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형사 재판 중인 자신이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반면 중국은 지금도 반도체 기술을 가진 인재들을 호시탐탐 영입하고 싶어합니다. 그는 여전히 “중국을 위해서 일하고 싶지 않다, 조국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전무도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만큼 결국은 자신의 기술을 활용해 일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가 만약 중국의 반도체 업체로부터 채용 제안을 받아 취직한다면, 그건 삼성이 바라던 일일까요? 만약 이 전무가 중국의 반도체 업체에 취업해 한국과 중국의 반도체 기술 격차를 좁혀 버린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취재 : 심인보
촬영 : 신영철, 김남범, 오준식
편집 : 정지성, 윤석민
CG : 정동우
뉴스타파는 권력과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진실만을 보도하기 위해, 광고나 협찬 없이 오직 후원회원들의 회비로만 제작됩니다. 월 1만원 후원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