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지난 2월 보도한 <총선 기획 3부작 - 청년 편>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찾아보니 이런 종류의 댓글이 적지 않았다. <총선 기획 3부작 - 여성 편>의 댓글도 찾아봤다. 역시 '성별이 왜 중요하냐'는 댓글이 있었다. 다른 언론사 기사는 어떨까. 이번 총선에서 유독 언론은 청년과 여성 후보를 얼마나 공천할지 관심이 많았다. 또 비슷한 댓글을 발견했다. 뉴스타파와 여러 언론은 우리 국회의 다양성을 키워야 한다고 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게 뭐가 대수냐, 능력이 최고다'고 말하고 있었다.
올해 31살인 기자는 또래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다.(그중엔 여성도 있었다) "국회의원 중 여성·청년이 많이 적은데 늘려야 할까?"라고 질문했다. 일부는 '늘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냥 능력만 있으면 되지, 성별·나이가 중요한가?'라는 답도 돌아왔다. 이번에 사전투표를 했다는 한 친구는 "그 후보는 어려서 신뢰가 안 간다"고 말했다.
모두가 국회의원의 능력을 따지는데,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도대체 국회의원의 능력이 뭔데?
뉴스타파는 지난 2월 <총선 기획 3부작 - 청년편>을 보도했다. 국회의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에 반대하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국회의원의 나이와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능력이 중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사람은 나이와 성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회 홈페이지를 보면 국회의원의 역할은 법을 만들고, 정부 예산안을 심의하고, 국정을 감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의 능력은 사회에 필요한 법을 적시에 만들고, 여기서 정부가 어긋나는 걸 견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사회에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게 우선순위인지, 그래서 어떤 법을 먼저 만들지는 국회의원들이 정한다. 또 이는 그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미 여러 사회학 연구들이 증명하듯 '사회적 환경'은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계급, 계층, 인종, 지역 등이 대표적이다. 세대와 성별은 어떨까. 어떤 시대에 태어나 어떤 성별로서 커왔는지 말이다.
기자는 현재 부모님과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다. 1960년대생인 기자의 아버지는 '애를 낳으면 나라에서 돈도 주고 세상 좋아졌다'고 말한다. 반면 나는 '그 돈 줘도 안 낳는다. 한국 사회에서 애를 키우려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1930년대생인 할아버지는 '애는 당연히 둘 이상 가져야 한다. 애는 처(그대로 옮긴다)가 키우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나 때는 6.25 전쟁 직후에도...'라고 말하면 얘기는 거기서 끝이다. 한 가족인데도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기자와 아버지, 할아버지가 전혀 다른 시대에 태어나, 다른 사회 환경을 거치며, 다른 가치관을 형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가 변했어도 익숙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긴 어려운 법이다.
세대가 같아도 성별에 따라 인식은 갈리기도 한다. 상대 성별이 겪기 어려운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단적인 예가 남성은 군대이고, 여성에게는 경력 단절이다. 그 결과 현재 남성들은 '해병대 채 상병의 죽음'에, 여성은 육아휴직 관련 뉴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가 성별과 전혀 무관하다고 여기는 분야에서도 시각차는 드러난다. 2021년 12월 <시사인>은 한국리서치와 함께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여성이 남성보다 기후위기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20대 여성 중 기후위기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위기 상황이다'고 답한 비율은 43.1%였는데 남성은 15.4%였다. 50대에서도 여성 중 33.7%는 기후위기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위기 상황이다'고 답했는데, 남성은 22.1%뿐이었다. '어떤 성별로 태어났는지'의 영향력은 우리의 추측보다 상당히 광범위하다.
성별·나이도 능력이다
이제 국회의원으로 돌아오자. 국회의원은 법을 만들고, 정부의 예산안에 대고 '이건 늘리고 이건 줄이자'고 하는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국회의원의 평소 가치관이 투영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성별과 나이에 영향을 받는다. 취재 중 만난 한 30대 국회의원은 상임위원회 회의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동거 가구를 지원해 보자고 제안했는데, 한 의원님이 '같이 살 거면 왜 동거해? 그냥 결혼하면 되잖아. 나는 반지하에서부터 시작했어'라고 말했어요. 상당히 깨어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랐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세대 차이는 국회에도 똑같이 있다.
물론 성별과 나이가 곧바로 한계를 결정하는 편견이 돼선 안 된다. 청년을 위한 법안을 내는 중장년 국회의원도 있고, 군 장병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여성 의원도 있다.
하지만 통계는 국회의원의 생각과 활동의 스펙트럼이 세대·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뉴스타파는 21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 2만여 개를 분석했다. '청년 키워드 법안'(청년·결혼·육아·창업 등 키워드를 담은 법안) 980개의 '연령별 의원 1인당 발의 건수'도 계산했다. 그 결과, 2030대 의원 1인당 발의 건수는 6.8개였고, 40대는 1인당 3.6건, 50대는 3.1건, 60대는 3.2건이었다. (관련 기사 : 세대 다양성 국회 ③'젊은 국회'를 상상하다)
또 21대 국회에 나온 전체 법안에서 상위 500개 키워드를 뽑아보니, 남녀 의원의 관심사 차이도 두드러졌다. 남성 의원들이 낸 법안의 상위 500개 키워드에는 '아동학대', '노동', '성폭력', '인권', '어린이'가 없었고, 여성 의원의 법안 상위 500개 키워드에는 '회사', '농업', '수도권' 등이 없었다. (관련 기사 : 성평등 국회 ① 여성 19%, 국회는 여성을 대표하지 못한다)
이제 국회를 다양하게 구성해야 하는 이유는 꽤 분명하다. 그게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다. 젊은 의원은 중장년 의원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여성 의원은 남성 의원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국회의 관심과 우선순위가 특정 사안과 방향에만 쏠리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21대 국회 본회의 모습.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 2030대 의원은 4.3%(13명), 여성 의원은 19%(57명)이다. 뉴스타파는 21대 국회에 발의된 청년 법안과 여성 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의원의 연령대와 성별에 따라 입법 활동에는 차이를 보였다.
'여성 정조' 말한 국회가 스토킹처벌법을 만들기까지
1953년 국회는 형법 제정하며 성폭력 처벌 규정에 '정조에 관한 죄'를 만들었다. 당시 형법이 지키고자 한 대상은 '성적 자기결정권'이 아니었다. '여성의 정조'였다. 실제 이 법에 따라 정조가 없다고 판단된 '음란한 여성'은 성폭행을 당한 게 명백해도 피해자가 될 수 없었다. 당연히 가해자도 처벌받지 않았다. 지금 보면 어처구니 없는 규정이다. 이 규정은 1995년이 돼서야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뀌었다.
돌이켜보면 기자가 중·고등학생이던 2000년대만 해도 전 애인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일은 '로맨스'로 치부됐다. 지상파 드라마에는 여성의 집 앞에서 소리치는 남자들의 모습이 더러 나왔다. 당시도 스토킹 문제가 종종 보도되기는 했지만, 국회는 무관심했다. 2005년 첫 발의 이후 스토킹처벌법은 발의와 폐기를 거듭했다. 스토킹처벌법은 2021년에서야 만들어졌다.
정조에 관한 죄를 만들었던 1953년 2대 국회, 법명을 개정한 1995년 14대 국회, 스토킹처벌법이 처음 발의된 2005년 17대 국회, 스토킹처벌법을 제정한 2021년 21대 국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여성 국회의원 비율의 증가와 세대 변화를 놓고 설명이 가능할까.
2대 국회에 여성의원은 1%(210명 중 2명)도 안 됐다. 그리고 여성의원의 비율은 꾸준히 늘어 17대 국회에 13.4%(299명 중 40명) 됐다. 21대 국회는 19%(300명 중 57명)였다. 또 2대 국회의원 중 대다수는 19세기 말에 태어났다. 스토킹처벌법이 처음 발의된 17대 국회에는 2030대 의원 비율이 역대 최대인 7.4%(299명 중 22명)였다. 스토킹처벌법을 통과시킨 21대 국회는 그다음인 4.3%(300명 중 13명)였다. 21대 국회는 1990년대생이 처음으로 국회에 진출한 회기이기도 하다.
22대 총선 사전투표가 진행 중인 투표소의 모습.
'다양성 최악' 22대 국회, 어떤 능력 있을까
22대 국회는 이미 다양성 측면에서 '최악'을 예약했다. 7개 정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새로운미래·녹색정의당·개혁신당·진보당·새진보연합)의 지역구 후보 중 여성은 15.1%(92명), 청년은 4.9%(30명)에 불과하다. 21대 총선 때보다 적은 수준이다. 이마저도 여성·청년 후보 대부분은 당선 확률이 매우 낮은 험지에 공천을 받았다.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청년은 당선권 밖이 다수다.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과 국민의미래의 경우 비례대표 15번 이내에 2030대 후보는 각각 두 명뿐이다. 새로운미래 개혁신당은 5번 이내에 딱 1명이 있고, 조국혁신당의 경우 2030대는 17번, 20번에 있었다. 당선권 내 여성의 비율도 높지 않았다. 이미 남성 절대우위인 지역구 후보 비율을 보완하려면, 비례대표 당선권에 다 여성을 배치해도 모자라다. 하지만 더불어민주연합과 국민의미래는 당선권인 비례대표 15번 이내에 여성 후보가 각각 9명, 8명이 전부다. 여성 후보로 비례의 절반을 채우도록 한 법 규정을 지킨 정도 수준일 뿐 비례대표를 통해 여성 의원을 대폭 늘리겠다는 의지는 찾기 힘들다.
결국 22대 국회의 청년·여성 비율은 지난 21대 국회(여성 19%, 청년 4.3%)보다 낮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역대 최고령 국회가 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총선의 후보 평균 연령은 56.8세다. 21대 총선 후보의 평균 연령은 54.8세였다. 역대 최고령이었던 20대 국회의 평균 연령은 55.5세였다.
21대 총선 해였던 2020년보다 사회는 '4년 더' 변했다. 의료공백과 인구유출 등 지방소멸의 효과는 점차 가시화됐고, 저출생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전세사기 사태로 현재의 부동산 시장 구조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도 명백해졌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전례 없이 커졌고, 기존의 노동법으로 포괄할 수 없는 플랫폼 노동도 만연해지고 있다. 갈수록 잦아지는 홍수와 산불이 보여주듯 기후위기의 위협도 피부로 와닿고 있다.
기존의 중장년층 남성 위주의 국회는 이 문제들에 대해 전혀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시간을 거스른' 더 많은 남성 위주의 22대 국회는 과연 어떤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자신이 타고난 세대와 성별을 초월하는 '초능력'의 소유자들이길 바라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