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죽음] 1-① 무면허 배달 내몰렸다 사망...18살 은범 군 이야기
2019년 09월 24일 08시 00분
업주의 지시로 무면허 배달을 나갔다가 사고로 사망한 고 김은범(제주, 사망 당시 18세) 군 사고와 관련해 노동청이 업주에 대해 재조사를 했지만 내사종결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상 업주를 처벌할 근거 조항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9일 뉴스타파 취재 결과, 제주 소관 노동청인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고 은범 군이 일했던 음식점 사장 부부 윤모 씨와 현모 씨에 대해 산안법 위반 책임을 묻지 않고 종결 처리했다. 지난해 사고 당시에는 산안법 위반으로는 조사 자체를 하지 않았고, 최근 진행된 두번째 조사에서는 산안법 위반 혐의 적용을 검토했으나, 은범군 사망과 관련해 업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동청은 “업주들이 은범 군에게 직접적으로 배달을 하도록 지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무면허인 은범 군이 오토바이를 운전하도록 방치하거나 말리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면서도 “산안법에 처벌 조항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청 측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다시 조사를 해봤지만 산안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행위에 (은범 군 사건이)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의 지휘를 받아 종결처리했다”고 밝혔다.
고 김은범 군은 지난해 4월, 제주도의 한 음식점에서 주방 보조(서빙)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가 오토바이 배달 일까지 하게 됐다. 당시 은범 군은 오토바이 면허가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시작 4일 만에 배달에서 돌아오다 사고를 당해 숨졌다. 업주는 처음부터 은범 군이 면허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8살 학생이 일을 하다 사망한 중대재해가 발생했지만, 노동청은 사고 직후 이 사건을 산안법 위반 혐의로 다루지 않았다. 단순 교통사고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노동청은 업주가 은범 군을 고용하면서 근로계약서 등을 작성하지 않은 혐의만 적용해 벌금 처분을 내렸다.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만원에 과태료 80만원이었다. 은범 군 사망사고에 대한 처벌은 검찰 단계에서 내려진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의 약식기소 처분인 벌금 30만원이 전부였다. 노동청은 뉴스타파와 프레시안의 공동취재팀이 은범 군 사건의 처리 과정에 대한 취재를 시작하자, 그제서야 재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재조사에도 불구하고 업주는 책임을 비껴갈 수 있게 됐다. 무면허 운전자에게 운전을 시킨 것이 현행 산안법이 규정하고 있는 ‘처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행 산안법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하 안전보건규칙)상 오토바이 운전과 관련해 업주를 처벌할 수 있는 경우는 두가지 경우 뿐이다. 노동자에게 안전모를 지급하지 않았을 경우, 그리고 제동장치(브레이크) 등이 고장난 오토바이를 지급했을 경우다. 무면허 운전 지시는 이 두가지에 해당되지 않아 관련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현재 노동청과 검찰의 판단이다.
유성규 노무법인 참터 공인노무사는 뉴스타파와의 전화통화에서 노동청과 검찰의 이런 법해석을 강하게 비판했다.
노동자들은 복잡하고 다양한 환경에서 일을 한다. 지금과 같은 노동청과 검찰의 법해석대로라면 새로운 물질이나 새로운 작업공정으로 인해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는 경우에도 (사업주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산안법과 그 규칙에서 정하고 있는 몇 개 조항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서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올바른 법해석이 아니다.
은범 군의 어머니 장수미 씨는 “노동청의 재조사로 업주가 벌금이라도 더 받았으면 하고 바랐다”며 “그래도 은범이를 위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려고 한다. 가만히 있는 게 은범이에게 더 죄스럽다”고 말했다.
취재 | 강혜인 |
디자인 | 이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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