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의 동생이 방심위에 민원을 낸 사실을 방심위 직원이 확인해 류 위원장에게 보고한 이후 민원 제출이 일제히 끊긴 사실이 뉴스타파 분석 결과 확인됐다. 류 위원장이 동생 민원 사실을 보고 받은 날, 류 위원장이 활동한 보수 언론단체 관계자가 ‘청부 의심’ 민원 3건을 취하한 사실도 드러났다.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보도 인용 방송사에 대한 심의·징계를 요구한 수백 건의 수상한 민원이 누군가의 기획하에 제출된 게 아닌지 의심되는 정황이다.
뉴스타파는 또 지난해 9월 4일부터 18일까지 방심위에 들어온 민원 277건을 분석해, 류희림 위원장의 가족과 주변 인물 15명이 각각 3~4건씩 낸 민원에서 동일한 패턴을 확인했다.
뉴스타파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는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동생 민원 발각, 지인 민원 취하 직후 '청부 의심' 민원 뚝 끊겨
지난해 9월 4일, 이동관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은 국회에서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보도를 방심위가 엄중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 발언 직후부터 9월 18일까지 방심위에는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를 심의·징계해 달라는 민원이 모두 277건 들어왔다. 날짜별로 보면, 이동관 발언 당일인 9월 4일 52건, 9월 5일 81건, 6일 36건, 7일 19건, 11일 32건 13일 22건이 들어왔다가 14일부터 크게 감소한다.
뉴스타파는 이렇게 들어온 277건의 민원 중 민주언론운동연합과 국민의힘이 낸 것을 제외한 나머지 215건이 들어온 날짜와 패턴을 분석했다.
먼저, 9월 4일 이후 봇물 터지듯 들어오던 '청부 의심' 민원이 9월 14일을 기점으로 갑자기 크게 줄어들다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이 확인됐다. 9월 14일에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류희림의 ‘청부 민원’ 의혹을 고발한 공익제보자의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신고서에 따르면, 방심위 사무처의 한 팀장은 지난해 9월 14일 류희림 위원장에게 ‘위원장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민원을 신청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해충돌 문제가 있으니 이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에 류 위원장은 관여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전했다. 하지만 류 위원장은 가족 민원을 근거로 진행된 방송사 심의를 회피하지 않았다.
권익위 신고서에는 또 같은 날(9월 14일) 류희림 위원장이 활동했던 보수 언론단체 '미디어연대' 간부 박모 씨가 9월 4일에서 5일 사이 냈던 민원 3건을 취하했다고 적혀 있다.
결국 류희림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이 방심위에 민원을 낸 사실이 방심위 직원들에게 발각되고, 또 취하된 바로 당일부터 ‘청부 의심’ 민원 신청이 일제히 끊긴 것이다. 문장 구성과 내용은 물론 오탈자까지 똑같은 200건이 넘는 민원이 특정 시점 이후 완전히 멈췄다는 이런 사실은, 이들 민원이 누군가의 사전 기획과 지휘로 일사분란하게 진행됐다는 걸 보여주는 또 다른 정황이다.
지난해 9월 4일부터 18일까지 방심위에 들어온 민원의 일자별 접수 추이. 류 위원장 동생이 민원을 낸 사실이 방심위 직원들에 발각된 9월 14일 이후 추가 민원이 자취를 감춘 사실이 확인된다.
류희림 가족과 주변 인물 15명이 동일 패턴 민원 내
민원을 낸 류희림 위원장 주변 사람들은 가족과 전 직장 관계자 등 크게 대여섯개 그룹으로 나뉜다. 류희림이 사무총장과 대표를 지낸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그가 대표로 활동한 보수 언론단체 미디어연대 등이다. 이들 그룹은 류희림으로 연결된 것 외에는 서로 연관성이 없다.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서로 연락해 민원 내용을 오탈자까지 통일하고, 민원 제출 시기나 대상 방송을 조율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서로 다른 그룹에 속한 인물들이 낸 민원을 분석해 보니 추가로 공통점이 드러났다.
류희림 방심위원장 주변 인물 15명이 낸 민원 패턴에서 동일성이 발견됐다.
지난해 9월 4일, 류희림이 대표를 지낸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관계자 이 모 씨는 4건의 민원을 방심위에 냈다. MBC와 KBS를 상대로 각 한 건씩, 그리고 JTBC 보도를 상대로 2건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민원 패턴이 류희림 주변의 여러 그룹에서 동일하게 발견됐다. 류 위원장의 아들과 친인척 채OO씨, 공정언론국민연대 간부 석모 씨 부인, 경주엑스포와 MOU를 맺은 예술단 대표와 그의 주변인물들, 또 류희림 위원장의 동생이 운영하는 대구 A수련원 관계자 4명 중 3명, 류 위원장이 나온 경북대 언론인회 소속 인사 김모 씨 등이었다.
각각 3건의 민원을 낸 공언련 간부 2명과 대구A수련원 관계자 1명도 3건 중 2건이 JTBC에 대한 민원이었다. 이렇게 민원 패턴이 동일한 류희림 관련 인물은 총 15명에 달했다.
문제는 JTBC 보도를 대상으로 들어온 민원은 모두 시점이 맞지 않는 엉터리 민원이라는 점이다. 문제의 JTBC 보도가 나간 건 2022년 2월 21일과 28일이다. 뉴스타파 보도는 그보다 일주일에서 보름 가량 뒤인 3월 6일 나왔다. 그런데도 이들 15명이 낸 민원글에는 모두 “JTBC가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것에 문제가 있으니 심의·징계해 달라”는 취지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의 조직적인 기획과 개입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전국언론노조 방심위지부는 오늘(11일) 류희림 위원장 등 방심위원 7명에 대한 직무수행평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합원의 96.8%가 매우 미흡 혹은 미흡하다고 답했다.
방심위 노조 조합원 96.8%가 '류희림 업무 수행 미흡' 평가
사상 유례없는 방심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을 익명의 제보자가 권익위에 신고(지난해 12월 23일)한 지 20일이 지났다. 이해충돌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류희림 위원장은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청부민원' 의혹이 거론되는 것 자체를 막기 위해 갑자기 회의에 불참하거나 회의장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등 방심위 회의를 파행으로 이끌고 있다. 방심위 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
지난 9일 열린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는 일부 방심위원들이 “류 위원장은 사건의 이해당사자이므로 회의에 참석하면 안 된다”고 문제제기 했지만, 류 위원장은 이를 무시한 채 심의 회의 진행을 강행했다. 야권 추천인 옥시찬 위원이 “니가 위원장이냐”며 욕설을 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류희림 위원장은 이를 빌미로 내일(1월 12일) 임시회의를 열어 폭력, 욕설, 비밀유지의무 위반 등 범법 행위 대응을 안건으로 상정하고 야권 방심위원 2명의 해촉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방심위 노동조합은 오늘(11일) 류희림 위원장 등 방심위원 7명에 대한 직무수행평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사퇴해야 할 사람은 류희림과 여권 추천 방심위원들"이라고 주장했다. 방심위 노조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 류희림 위원장의 직무 수행은 응답자의 96.8%(매우 미흡 76.2%, 미흡 20.6%)가 미흡이라고 답해 여야 추천을 통틀어 방심위원 7명 중 최하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