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참사 한 달...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 묻지 않을 결심'

2022년 12월 01일 20시 00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그 한 달은 누군가에는 '이제 그만 잊자'고 말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들에게는 마치 박제된 듯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 박제된 듯한 시간을 뚫고 유가족들은 조금씩, 어렵게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뉴스타파는 우선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참사 초기에는 그렇게 유가족들을 상대로 취재 경쟁을 벌이던 기성 언론들이, 한 달이 지나자 막상 유가족들이 스스로 내는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타파는 계속해서 유족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참사 희생자들을 사회적 기억과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21살 송채림, 25살 조예진

2002년생, 올해로 21살이 된 송채림 씨는 삼남매 중 막내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엉뚱하지만 정이 많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고등학생 때는 직접 만든 옷으로 상을 탔고 21살이 된 올해는 직접 인터넷 쇼핑몰을 창업할 정도로 재주가 많고 주관이 뚜렷한 젊은이로 성장했습니다. 
1998년생, 올해 25살이 된 조예진 씨는 독립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합격했지만 '스무살이 되면 응당 집을 나가야 한다'며 기숙사에 들어갔습니다.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했습니다. 부동산 전문가를 꿈꾸던 조예진 씨는 스스로 번 돈을 모아 '제주 살이'를 하며 제주 정착을 준비했고, 오랜 연인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20022년 10월 29일, 송채림과 조예진 씨 두 사람의 우주가 사라졌습니다. 연락을 받은 부모들은 서울에 올라와 딸의 시신을 찾아 헤매야했습니다. 10여 시간을 헤매고 기다린 끝에 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송채림 씨의 시신은 경기도 송탄에, 조예진 씨의 시신은 경기도 일산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를 가리키는 단어는 세상에 없다’라고 저희 집사람이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비슷한 단어를 찾아보면 그래도 단 하나의 비슷한 단어가 있던데, 그 단어가 죄인이래요. 자식을 먼저 보낸 죄인.

지난 한 달은 정말 세상에 둘도 없고 저의 진짜 모든 것이었던 제 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죄인이었습니다. 제 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이 죄인, 그래서 지금 딸에게 무엇이라도 조금이라도 해줄 만한 게 뭐 없을까 하다 이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조기동/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예진 씨의 아버지
긴 영화나 드라마를 한 편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드라마가 끝나면 우리 애가 내려올 것 같은, ‘아빠’하고 쫓아내려올 것 같은... 현실감이 없어요. 그냥 그냥 시도 때도 없이 눈물만 나고,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눈물 쏟아지면 한 10분씩 서 있다가...

송진영/이태원 참사 희생자 송채림 씨 아버지
각각 따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두 아버지가 공통적으로 말한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내 딸의 오명을 벗겨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오명'을 벗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냥 놀러갔다가 운 나쁘게 죽은 게 아니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사실로 밝혀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참사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것, 그리고 진정 어린 사과를 받는 것입니다. 두 아버지는 이를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정부가 하는 행동을 봐서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들고요. 그런데 세상이 무너졌어요, 저희한테는. 저희는 그냥 평범하게 살던 시민이에요. 그런데 10월 29일 이전하고 이후하고 인생이 바뀌었어요. 하늘이 무너졌는데 저희한테 아까운게 뭐가 있겠습니까.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송진영/이태원 참사 희생자 송채림 씨 아버지
긴 싸움이 되겠죠. 이 정권이 아직 힘이 있는 한 긴 싸움이 될 겁니다. 예상합니다. 하지만 자식 잃은 부모가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자식 잃은 부모는 더 이상 두렵거나 무서울 게 없습니다.

조기동/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예진 씨의 아버지

책임자 문책 없는 '재발방지대책'의 공허함

지난 한 달 사이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이태원 참사는 정부가 기존에 있던 제도와 시스템을 제대로만 운용했더라도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기존의 제도와 시스템을 제대로 운용하지 않은 사람들이참사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이 따라 나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참사 직후부터 이런 간단하고 명확한 결론을 외면한 채 “주최자 없는 행사에 적용할 수 있는 안전 관리 시스템이 없었다”,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기술이 부족했다”, “재발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라는 엉뚱한 얘기만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진작 책임을 지고 물러났어야 할 이들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대책 회의를 주선하는 등 오히려 더 전면에 나서는 기막힌 장면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참사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책임을 지고 물러난 공직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책임질 이들이 마련하고 있다는 '재발방지 대책'이란 대체 뭘까요? 그 일만큼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요? 확인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참사 발생 닷새째였던 11월 3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다중밀집 인파사고 예방 안전관리 대책 회의'를 열었습니다.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죠. 뉴스타파가 회의 다음 날 행안부가 전국 지자체에 내려보낸 공문을 확인해보니, 회의를 통해 마련된 세 가지 재발방지 대책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 가지 대책은 모두 이미 기존에도 하고 있던 것이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들이었습니다. 한 지자체 담당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하고요. 그거를 전부 다 도입한다는 거는 전 지역을 그걸로 다 교체를 해야 되는 부분이라서 아마 회의상에는 ‘그렇게 해야지 잘 되지 않겠느냐’라고 의논할 수는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저희 현실에서는 바로바로 적용하기는 어려운 면이 좀 있습니다.

B 광역 지방자치단체 담당 공무원
결국 이번 참사가 정부의 통제 범위 밖에서 벌어진 것이라며 내부적인 책임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으로 선을 긋고 외부에서 주된 참사 원인을 찾으며 대책을 마련하는 한, 정부가 마련하는 '재발방지대책'은 공허하게 헛돌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있는 매뉴얼도 안 지킨 경찰, 또 새 매뉴얼 만든다

재발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경찰청은 이른바 '경찰 대혁신 태스크포스'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이 거창한 이름의 조직은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도 적용되는 새로운 안전 관리 매뉴얼을 만들어서 연말까지 발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뉴스타팍 2014년 경찰이 만든 안전관리 매뉴얼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주최자가 없는 다중 행사에 따른 초동 조치 매뉴얼은 이미 있었습니다. 매뉴얼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라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겁니다. 경찰 TF가 새놓을 새 매뉴얼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권력자의 말... "책임 묻지 않을 결심"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8일이 지난 시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11월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 회의, 윤석열 대통령 발언 중
이 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나아가 공동체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의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언론들은 이 말을, 오로지 형사적 법적 책임만을 세상의 전부로 보는 '검사의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대표하는 특수부 검사라는 집단은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한다”는, 대통령 스스로 말한 그 현대사회의 원칙을 여러 차례 깨뜨려 왔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이 말은 제대로 된 검사의 말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나와 내 측근에게는 책임을 묻지 말라'는 권력자의 말입니다. 그 권력자의 말은, 책임을 명확히 하기도 전에 하나마나한 재발방지 대책을 앞세우는 방식으로 결국 대통령 자신과 측근의 책임을 지우는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이 비극적 참사로 인해 생긴 공동체의 아픔과 상처를 직시하고 대통령이 해야할 일을 하기 바랍니다. 
<주간 뉴스타파>의 자세한 내용은 개별 기사와 영상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제작진
취재임선응 홍주환 박상희
연출송원근 박종화
촬영정형민 오준식
편집정지성 윤석민 정애주 김은
CG 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