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색폰세카까지 '3관왕' 한국인...국세청은 뭐하나?
2016년 04월 08일 20시 42분
지난 5월 3일, 서울 북가좌동에 있는 민간 정보업체 ‘라이언폭스 컨설팅’ 사무실에 남자 두 명이 찾아왔다. ‘라이언 폭스 컨설팅’은 미국과 관련된 정보 조사를 대행해주는 업체로, 미국 현지의 민간 조사관, 즉 사설 탐정들을 통해 의뢰인이 요구하는 다양한 정보를 조사한다.
이 회사를 찾아온 사람들은 장 모 씨와 그의 상관으로 보이는 또 다른 사람이었다. 이들은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 재력가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대한항공 부회장을 지냈던 조중건씨와 그 부인 이영학 씨에 대한 정보 조사를 의뢰했다. 조중건 씨는 대한항공 창업주인 고 조중훈씨의 동생이다. 이들이 조사를 의뢰한 정보는 조중건, 이영학 부부의 미국 내 금융 자산 및 부동산 보유 내역과 세금 납부 내역, 그리고 이 부부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한 페이퍼 컴퍼니의 재무 제표 등이었다. ‘라이언폭스 컨설팅’에 재벌가에 대한 조사 의뢰가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있는 일이라 이 정보가 왜 필요한 것인지 묻자, 이들은 “우리도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라며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돈은 충분하니 제대로 된 정보만 조사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은 계약서 작성을 마치자마자 검은 가방에서 5만원 권 뭉치를 꺼내더니 현금 865만 원을 세어 곧바로 지급했다. 영수증을 발급하려하자 “필요없다”며 거절했다. 거액의 정보 자문료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한다.
한 달 뒤인 6월 3일, ‘라이언폭스 컨설팅’은 의뢰받은 내용 가운데 조사가 가능했던 항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의뢰인들에게 건네주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 차례의 거래를 마치고 난 뒤, 이 의뢰인들은 또 다른 조사를 요구했다.이번의 조사 대상은 00그룹의 모 회장. 이번 의뢰는 훨씬 더 구체적이었다.그 회장이 갖고 있는 특정 금융회사 계좌의 잔액과 거래 내역 등을 조사해 달라는 것.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금융정보 조회 화면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나 금융회사에서 직접 발급한 서류를 확보해달라는 요구까지 덧붙였다.
문제는 이 같은 행위가 미국 현지법상 불법이라는 것이다. ‘라이언폭스 컨설팅’에 따르면, 조중건 씨 부부에 대한 의뢰 건처럼 금융 계좌 전체의 잔액을 조사하는 것은 미국에서 불법도 합법도 아닌 이른바 ‘회색 지대’의 영역에 있는 업무라서 조사관의 능력에 따라 가능한 일이지만, 특정 계좌의 잔액과 거래 내역을 조사하거나 촬영하는 것은 미국의 금융정보 보호법인 Fair Credit Reporting Act 와 개인정보 보호법인 Grann-Leach-Bliley Act 에 저촉되는 사항이라고 한다. ‘라이언폭스 컨설팅’ 은 의뢰 내용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한 뒤 의뢰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여러차례 요구했지만 이들은 반복적으로 불법 조사를 종용했다. 양측의 입장 차이로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이 수상한 의뢰인들의 신분이 드러났다. 스스로 ‘재일 교포 재력가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했던 의뢰인들은 바로 국세청 역외탈세 담당관실의 직원이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전화 번호조차 알려주지 않는 등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나름 애를 썼으나 어처구니없게도 술자리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뒤 그 가방을 되찾기 위해 ‘라이언폭스 컨설팅’ 측에 전화를 거는 과정에서 자신의 전화번호를 노출했다.
‘라이언폭스 컨설팅’은 안 그래도 수상했던 차라 확보된 전화번호를 토대로 SNS 등을 조사해보니 의뢰인 가운데 한 명이 국세청 역외탈세 담당관실의 7급 직원 장 모씨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장 모 씨는 의뢰 당시 가명이 적힌 명함을 건넸으며 계약서에도 가명을 적었다. ‘라이언폭스 컨설팅’은 이에 대해 “신분을 숨긴 채 가명으로 정보 조사를 의뢰한 것은 사문서 위조에 해당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 기관인 국세청 직원들이 민간 업체에 반복적으로 불법 정보 조사를 종용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라이언폭스 컨설팅’은 지난 8월 11일 장 모씨를 통해 국세청의 사과와 관련자들에 대한 감사를 요구했으나 국세청으로부터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세청 담당자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정보 활동을 하면서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사문서 위조 혐의의 경우 국가기관의 정당한 활동에 대해서는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정보 활동의 개별적인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국세청 역외탈세 담당관실은 역외 조세도피와의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조직이다. 지능적 조세 도피범들에 맞서 거대한 규모의 역외 탈세를 추적해 징수해야 하는 책무를 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적극적으로 재벌들의 해외 재산 규모를 파악하려고 했던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국세청 역외탈세 담당관실의 수준과 윤리 의식은 우려를 자아낸다.
첫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미국 현지의 계좌 정보를 국내의 민간 정보 업체에 의뢰했다는 점이다. 국세청은 해외 탈세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10개국에 21명의 세정요원을 파견해 운용하고 있다. (2014년 기준) 국세청은 해외 파견 세정 요원의 숫자를 2011년 9명에서 2012년 14명, 2013년 16명, 2014년 21명으로 꾸준히 늘려왔다. 미국에도 2명의 세정요원이 파견되어 있다. 이들의 현지 체류비와 정보 조사비는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국세청은 왜 이들을 활용하지 않고 국내의 민간 정보 업체에 수백만 원의 비용을 지불했을까? 특히 신분까지 속여야 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보안이 요구되는 업무임을 감안하면 더욱 의아하다.
지난 2014년 12월에 발표된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감사원이 해외 세정요원 21명 가운데 16명의 토익 점수를 확인한 결과 평균 점수가 585점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정도의 영어 실력으로 미국에서 원활한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해 은닉재산을 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감사원의 감사 결과 2013년 1년 동안 해외 세정요원들이 수집한 역외탈세혐의 정보는 19건에 불과했고, 그나마 이 가운데 실제 세금추징에 활용된 양질의 정보는 5건 밖에 되지 않았다.
둘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민간 정보 업체에 불법 조사를 종용한 것에서 드러난 국세청의 무지다. 국세청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도 강요했다면 범죄 교사에 해당하는 행위다. 그게 아니라면, 국세청은 자신이 의뢰한 조사 활동이 미국에서 불법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 2011년에 설립돼 5년 동안 수백, 수천 건의 역외 탈세 조사를 수행해왔을 국세청 역외탈세 담당관실이 미국에서의 금융 계좌 조사 가운데 어디까지가 불법인지 정말 모르고 있었다면, 개탄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는, “정보 활동이기 때문에 신분을 숨기는 것은 당연하다” 면서도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신분을 노출하고만 국세청 직원의 무능과 무사안일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명색이 ‘정보활동 요원’이라는 사람이 술자리에서 가방을 잃어버리고, 그 가방을 되찾기 위해 그동안 철저히 숨겨왔던 전화 번호를 노출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한 편의 촌극에 가깝다. 더구나 정보원에게 ‘술을 마시자’고 먼저 요구한 것은 해당 직원이었다고 한다. 영수증 처리가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를 지출하고 난 뒤 그 대가로 접대를 요구한 셈이다.
지난 19일 오후 1시 49분, 중앙일보 온라인 판에 이번 사건을 다룬 기사가 나갔다. ‘라이언폭스 컨설팅’의 제보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불과 한 시간 뒤 기사가 사라졌다. 문제의 기사를 작성한 중앙일보 기자는 “기사가 나간 뒤 국세청 직원들이 회사를 찾아왔다”며 “기사 때문에 외교 마찰이 있을 수 있고 그에 따라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정보 요원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국세청의 항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라이언폭스’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한 보도자료를 여러 언론사에 보냈다. 그러나 기사화된 것은 중앙일보 한 곳 뿐이었고, 그마저 한 시간 만에 삭제되었다. JTBC의 경우 ‘라이언폭스’ 측을 인터뷰하기까지 했지만 결국 방송이 나가지는 않았다.
국세청은 ‘세무조사’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기관이다. 그 힘은 일반 기업들에게는 절대적인 두려움의 대상이고 경우에 따라 언론사들마저 위축시킬 수 있다. 중앙일보의 기사 삭제나 다른 언론들의 침묵이 그 힘을 두려워한 결과는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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