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이 불법에 맞선 '죄', 징역 5년

2021년 12월 24일 19시 00분

한 피고인은 최후 진술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고, 다른 피고인은 죄값을 달게 받겠다고 했다. 재판을 방청하던 누군가는 판사를 향해 “피고인들을 가두려면 본인을 대신 가두라”고 외치기도 했다. 마지막 가을비가 내리던 지난 11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09호 형사 법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날 509호 법정에선 피고인 17명에 대한 두 번째 결심 공판이 열렸다. 결심 공판은 판결 선고 전 열리는 마지막 공판이다. 원래 10월19일이 마지막 공판이었는데, 검찰이 피고인들의 구형량을 변경하기로 해 이례적으로 결심 공판이 두 번 열리게 됐다. 
이날 검찰은 피고인의 일부 죄명을 변경했다. 당초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를 적용했던 사건에는 ‘공동주거침입’ 혐의를, ‘공동주거침입’ 혐의를 적용했던 사건에는 ‘공동퇴거불응’으로 죄명을 변경했다. 죄명이 바뀌면서 일부 피고인들의 형량도 줄었다. 17명 피고인에 대한 검사 구형량 합계는 징역 21년 2개월. 1차 결심 공판과 비교하면 1년 4개월 줄었다. 피고인들의 변호인은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던 걸 자인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1월 30일 김수억 씨 등 비정규직 17명이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벌인 집회, 시위 등에 최대 징역 5년의 중형을 구형한 검찰을 규탄했다.

불법 파견에 맞서 집회, 시위에 나선 죄…징역 5년

검찰이 무리수라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판사에게 피고인들의 죄값을 무겁게 요구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7명의 피고인들은 대체 어떤 잘못을 했기에 법정에 서게 된 걸까.
피고인 17명은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다. 기아차 비정규직 8명, 현대차 3명, 한국GM 2명, 아사히 글라스 2명 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오랜 기간 불법 파견 시정을 요구하며 투쟁해왔다는 점이다. 파견법(파견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제조업 직접 공정에는 파견 근로자를 써서는 안 된다. 그 외 공정에도 파견 근로자를 2년 이상 쓸 경우에는 직접 고용해야 한다. 원청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는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게 법의 취지다. 
현대 기아차는 2004년, 한국GM은 2005년, 아사히 글라스는 2017년에 이미 고용노동부와 법원으로부터 불법 파견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임금은 낮고 처우는 열악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를 불법적으로 파견받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날 검찰은 불법 파견을 저지른 회사가 아닌 노동자들에게 죄를 물었다. 이유는 뭘까.
검찰로부터 징역 5년을 구형받은 김수억 씨가 현대 기아차의 불법 파견 소송 과정에 대해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현대 기아차의 불법 파견 여부를 따지는 소송에서 노동자들은 현재까지 32차례나 승소했다.
검찰로부터 가장 무거운 구형량을 받은 사람은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김수억 씨. 그는 전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이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 모임인 '비정규직 이제그만'의 공동 소집권자(공동대표 격)이기도 하다. 검찰은 이날 그에게 징역 5년형을 구형했다. 첫번째 결심 공판에서 구형한 5년 6개월에서 6개월을 깎아준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현대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8년 9월,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불법 파견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고용노동청 점거 농성을 벌였다. 검찰은 이 농성에 당초 '특수건조물침입'죄를 적용했다가 '공동주거침입'으로 죄명을 변경했다. 
김수억 씨의 죄명은 공동주거침입, 공동퇴거불응 등 다양하지만 모두 불법 집회,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것이다. 그는 2018년부터 2019년 초까지 여러 차례 문재인 정부를 향해 불법 파견 문제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였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4층 복도나 대검찰청 민원실 앞에서 농성을 하고, 청와대 행진 도중 차로를 막았다는 혐의로 2019년 7월 재판에 넘겨졌다. 김 씨의 혐의 중에는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사망한 고 김용균 씨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다 기소된 것도 있다.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김 씨와 함께 농성하거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시위를 벌였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이미 법원이 불법 파견이라고 선고한 사용자들의 범죄는 거의 처벌받지도 않았고 불법 상태가 바로잡히지도 않았는데, 이러한 문제를 바로 잡아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던 노동자들에게만 무거운 죄값이 부여된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최후 진술 “우리를 가둘 거면 재벌도 함께 가둬라”

이날 결심 공판이 열린 법정은 17명 피고인들만으로 자리가 꽉 찼다. 얼마 남지 않은 방청석 맨 뒷자리에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앉아 재판을 지켜봤다. 이날 김수억 씨를 포함해 비정규직 노동자 4명이 최후 진술을 했다. 최후 진술에는 이들이 왜 법을 어기면서까지 집회와 시위를 해야했는지 그 이유가 담겨있다. 
오늘 검찰은 비정규직 노동자 17명 중 단 한 명도 빼지 않고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떠한 중죄를 저지른 것입니까.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청년 노동자 김용균이 회사의 책임으로 죽어갔을 때, 
그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매일 2천 명이 넘게 일하다 죽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멈추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2004년과 2005년 노동부는 현대기아차, 한국지엠 
마찬가지로 아사히글라스 역시 고용노동부 스스로 모두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습니다.
특히 현대 기아차는 16년의 세월 동안 법원이 32번이나 불법 파견이라고 판정했습니다.
그러나 16년의 그 긴 시간 동안 고용노동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기소는커녕 조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무려 21년에 이르는 이 죄를 그리고 이러한 구형을 우리가 달게 받아서
더 이상의 불법 파견 범죄가 없어질 수 있다면,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로 조금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불법 파견 범죄자인 정몽구, 정의선 회장, 한국GM의 카허카젬 회장도
검찰이 기소하고 구속시키고 그 죄를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최소한의 상식과 정의가 아니겠습니까.

김수억 / 전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 (징역 5년 구형)
한국GM도 2005년부터 고용노동부터 불법 판결 판정을 받았고요. 
16년이 지난 지금도 공장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 파견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수천 명은 그 기간 동안 자신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또는 자신이 정당하게 받아가야 할 이익을 그들에게 다 뺏겨가면서 희생당해왔고,
지금도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통해서 저희들은 하루하루 너무나도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거꾸로 이렇게 재판장에 서야 되는 현실,
지금도 해고로 고통받고 있는데 누구 하나 알아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 진짜로 바로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황호인 / 한국지엠 부평공장 해고 노동자 (징역 1년 구형)
우리는 행동하면서 조금씩 스스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왔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회적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에서 죽어간 노동자나 가족들은 여전히 스스로 고통을 감내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위험에 노출돼서 함께 죽어간 동료들을 보고 슬퍼만 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행동하면서 저희는 조금씩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경찰 조사와 검찰 조사 그리고 지금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
우리가 왜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고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이유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묻지 않습니다. 
우리가 왜 거리에서 외칠 수밖에 없었는지 헤아려 주십시오

이태의 /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징역 10개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한 말이 있습니다. 
앞장서서 뭘 하지 말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있는 이 피고인들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했던 사람들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월차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했고 머리도 기르지 못했습니다.
파마도 하지 못했습니다. 염색을 하면 해고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너희 아이만 아프냐며 회사에 일할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었고, 부당함에 맞섰습니다. 
제 구형량을 듣고 중학교 1학년 아들이 '도대체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정민기 / 현대차 울산 비정규직 노동자(징역 1년)
이렇게 피고인들의 최후 진술이 모두 끝났다. 판사가 재판을 마무리 지으려던 찰나, 방청석 맨 뒤에 앉아있던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가 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방청석 맨 앞자리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판사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여기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웠던 것은 용균이의 억울한 죽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비정규직들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싸운 것이었고 
현재도 죽을 수밖에 없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모두 함께 싸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검찰 구형을 받게 된 겁니다.
이 사람들을 감옥에 넣으려면 저도 같이 넣어 주십시오.”

김미숙 / 고 김용균 씨 어머니(김용균 재단 이사장)
법정은 잠시 숙연해졌다. 판사는 숙고하겠다며 선고기일을 넉넉히 잡았다. 비정규직 노동자 17명에 대한 1심 선고는 내년 2월 9일 내려진다. 법정을 나오는 노동자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오전 내내 내리던 비도 어느새 그쳐있었다. 과연 법원은 십 수년간 불법에 맞섰던 이들의 투쟁에 얼만큼의 죄를 물을까. 
* 더 자세한 내용은 영상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제작진
촬영신영철, 이상찬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